인디's 페이스 (Indie's Face)
상영 후 감독 배우들과 함께하는 인디토크와 인터뷰, 상영작 리뷰 등 인디스페이스의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 기록 자원활동가 입니다. 극장 안 이야기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의 얼굴, <인디's 페이스>와 더욱 알찬 소식 만나세요 :D
영화: 사이비_ 연상호
상영일시: 2013년 11월 23일
참석: 연상호 감독
진행: 조영각 프로듀서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2011년 <돼지의 왕>으로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상호 감독이 2012년 중편 <창>에 이어 2013년 두 번째 장편영화 <사이비>로 돌아왔다. 개봉 3일차에 진행된 인디토크에는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돼지의 왕>에 이어 <사이비>의 프로듀서를 맡은 조영각 프로듀서와 연상호 감독이 참석했다.
조영각: 연상호 감독님은 되게 열심히 작업을 하십니다. 2011년 11월에 <돼지의 왕>이 개봉을 했는데 딱 2년 만에 장편이 나온 거예요. 중간에 중편 <창>이 나왔고요. 엄청나게 빠르잖아요. 한국에서도 이례적이지만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특히나 인디펜던트 측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이렇게 빨리 작업하는 비결은 뭘까요?
연상호: 단편애니메이션을 오래 했는데, 오래하다 보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쉽진 않아요. 애니메이션 시장이 크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투자하기를 꺼려하는 거예요. 저는 되게 단순해요. ‘투자하는 쪽에서 용인할 수 있는 액수가 얼마인가’,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얼마정도를 받아야 하는가’를 정해요. 이걸 나누면 제작기간이 나와요. 제작기간은 항상 짧아요. 그래도 그 기간에 무조건 만드는 거예요. 물론 그렇게 하다보면 작품이 후지게 나올 수 있잖아요. ‘졸작’ 혹은 ‘디지털 쓰레기’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건 항상 감수하고 갑니다. 다행히 <돼지의 왕> 같은 경우에도 많은 분들이 보시진 않았지만 손해가 나진 않은데다가 외적으로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디지털 쓰레기’는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사이비>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못 만들든 잘 만들든 항상 ‘디지털 쓰레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관객: <돼지의 왕>도 재미있게 잘 봤고, <사랑의 단백질>도 재밌게 봤거든요. 이번 <사이비>까지 해서 감독님께서 굉장히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가지신 분이 아닌가 싶었어요. ‘여기서 내가 웃기려고 했던 건데, 사람들이 왜 안 웃지’라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상호: 오히려 웃기라고 만든 건 아닌데 웃긴 반응이 있었던 부분들이 있어요. 민철이라고 하는 캐릭터가 원래는 전혀 개그가 없는 캐릭터였어요.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근데 이 캐릭터가 너무 무서워지기 보단 주접스러워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익준이라는 배우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걸 알기에 민철을 연기했을 때 무서워지기보다는 주접스러워질 거라 생각을 했어요.
조영각: 배우들에게 한 연기 디렉션(지도)이나 목소리 연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제가 보기에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중에서 목소리 연기는 최고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연상호: 목소리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는 사실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거기에 신경을 쓰다보면 함몰되는 게 있어요. <돼지의 왕> 만들 때도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저는 일부러 안 맞는 분을 캐스팅하는 편이예요. 안 맞아 보일 수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하는 편이예요. 왜 그러냐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안 맞는다고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얼굴과 목소리가 다를 때가 되게 많아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그런 경우가 없어요. 똑같이 붙이는 게 사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거예요. 물론 100% 안 맞게 캐스팅 하는 건 아닌데,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의외의 인물을 캐스팅하려고 하는 편이예요.
디렉션은 많이 하진 않는 편이고요. 배우가 편하게 하는 게 제일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목소리 더빙이나 연기를 하는 건 입을 딱딱 맞추거나 또박또박 말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생동감이 넘치려면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의외의 것들,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될 수 있으면 편하게 하려고 하고, 배우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배우에 맞게 대하는 거죠. 양익준 배우는 예민하고 감정 끌어올리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디렉션을 잘 안줘요. 조금 오래 기다리죠. 오정세 배우 같은 경우에는 기계적으로 연기하는 편이라 많이 물어봐요. ‘어떤 연출의도를 가지고 있냐’, ‘어떻게 해야 하냐’, 그런 경우에는 얘길 많이 해주죠. 사람마다 디렉션을 다르게 주는 편이예요.
조영각: 녹음실에 자주 들어가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연상호: 녹음실은 무음상태라서 공간감이 느껴질 수가 없어요. 원래 배우들은 현실공간에 있기 때문에 연기가 가능한데, 좁은 공간에 있으면 톤이 점점 떨어져요. 성우들은 기계적으로 톤이 떨어지지 않게 연습을 해요. 자꾸 중간에 들어가서 소리가 움직이는 폭 같은 거 있잖아요. 배우에게 디렉션을 줄 때 톤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톤을 높여 말합니다.
관객: 마지막에 최장로를 찾아간 민철을 동네바보가 죽이려고 할 때 목사님이 기도하는 게 마치 랩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해외에서 상영할 때 자막에 그런 부분들을 살릴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연상호: 외국 리뷰어들이 많이 얘기하는데, <사이비>가 <돼지의 왕>보다 욕 번역이 잘 됐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것에 대한 인식이 좀 있었던 거예요. 이번에 번역하시는 분들이 욕이나 그런 걸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놓고 수정한 적도 있어요. 심지어 욕보는 재미로 봤다는 관객도 있더라고요. 이번 <사이비>를 번역하시는 분들이 번역을 되게 열심히 하신 것 같아요.
관객: 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드셨는지 궁금하고요. 이 영화도 자전적인 얘기가 들어있는 건지, 캐릭터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해요.
연상호: <사이비> 캐릭터들 대부분이 저랑 닮았어요. 대부분의 캐릭터가 저의 모습에서 만들어 낸 캐릭터고요. 조금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성철우가 과거의 제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창>에서 정철민 병장이 생각하는 선은 다수의 선이예요. 다수가 이익을 볼 수 있는 게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소수의견은 묵살해버리려는 사람이에요. <창>은 100% 저의 군대시절 있었던 일이고 정철민 병장이 제 캐릭터로 만든 거라, 성철우 캐릭터는 정철민 병장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성철우가 악해지는 것은, 성철우가 생각하는 실제 선의 모습이 보여 지는 거라 생각해요. 성철우는 다수의 행복을 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두 명의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자기가 희생해서 선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믿음에 관한 얘기라 관심이 많았는데요. 영화에 계속 열광적으로 믿는 사람하고 의심하면서 믿는 목사, 그리고 믿음이 없다는 걸 믿는 주인공, 믿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등 다양한 믿음이 나오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부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믿음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주문을 외우듯이 바뀌어버리는 게 불편하고 납득이 잘 안됐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연상호: 이 영화는 다른 가치를 믿고 있는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누가 잘못했다고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고 그들이 결합이 됐을 때 싸우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엔딩의 경우 그들의 가치가 모두 깨지는 건데, 그중에서도 민철이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갖게 되어 민철의 가치가 깨진 걸 구상했어요. 여러 가지를 담고 싶었는데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민철이 무너졌다는 것과 민철의 믿음이 저주인지 속죄인지 기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는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 ‘인간이 아주 원시적인 형태에서 지닌 믿음의 형태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남이나 자기에 대한 저주의 형태, 아니면 속죄의 형태, 아니면 기원의 형태였을까 그런 것에 대해 관객 분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엔딩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칠성이가 어떻게 됐을까 그런 게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웃음) 감독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되게 많거든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걸 보니까 느끼는 바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첫 상영 때 보면서 느낀 게 ‘최경석의 과거가 성철우일수도 있겠다’, ‘성철우의 미래가 최경석일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 둘은 하나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 쓸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건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관객: <돼지의 왕> 작업하셨을 때도 양익준과 오정세를 캐스팅하셨고 이번에도 캐스팅하셨는데 <돼지의 왕> 하셨을 때 캐스팅하셨던 이유와 이번에 다시 캐스팅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연상호: 일단은 양익준 감독이랑 오정세 배우 같은 경우에는 그전에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작품도 했었어요. 양익준 감독이랑은 이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고 자주 만나서 술 먹던 시절이 있었어요. 당시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영화를 만들까” 이런 얘기도 많이 했었어요. <똥파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잘될 때 충격을 받았는데 그때 제가 <돼지의 왕>을 못 들어가고 있을 때였어요. 양익준 감독이 당시 자신감이 넘쳐서 <똥파리> 상영회 뒤풀이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양익준 감독이 “너는 내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 때까지 못 들어갈 거다”라고 했었는데 제가 이번에 두 번째 장편영화인데 양익준 감독은 아직도 <똥파리>예요. (웃음) 양익준 감독의 소개로 오정세 배우를 만났는데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잘하셔서 <돼지의 왕>을 하면 두 분(양익준 감독, 오정세 배우)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일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제작비가 넉넉하면 배우 오디션도 보고 배우들이랑 뭔가를 더 해볼 수도 있는데 예산이 타이트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모르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연기를 못할 경우 스케줄이 꼬이는 거예요. 이왕이면 제가 잘 아는 사람을 맡겨요. 그런 이유가 크고, 또한 믿음이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이 사람한테 어떤 걸 맡기면 어떻게 할 거라는 게 보이니까.
조영각: 오늘이 개봉 3일차입니다. 항상 연상호 감독이나 제가 SNS나 무비꼴라쥬가서 관객이 얼마나 들었을까 마음 졸이는 순간인데, 재미있기도 합니다. 영화투자를 받고 제작하는 것과, 영화제 가는 것과는 다르게 관객 분들을 순수하게 만날 때 기쁨과 희열,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상영해주셔서 기쁘고요. 관객 분들 감사드립니다.
연상호: 제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 공약을 하나 걸었습니다. 관객이 3만 명이 넘는 순간 김민철이 발레 하는 영상을 올리겠다고 했는데요. 영상은 이미 만들어놨습니다. 10만 명이 넘으면 영선이가 태극권 하는 영상을 올리려고 합니다. 많이 홍보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아니라서 입소문에 많이 기대고 있어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으면 입소문 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개봉 4일 만에 <사이비> 관객 수가 1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작인 <돼지의 왕>이 개봉 17일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인데, 부디 3만 명, 10만 명을 돌파하여 <사이비>의 비하인드 영상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리/최이슬 자원활동가(iamyise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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