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륜의 시대> 전규환
일시: 2월 26일(화)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참석: 전규환 감독, 배우 윤동환
진행: 윤동환 배우께서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어떤 부분이 마음을 사로잡아 선택하게 된 건지 궁금하네요.
윤동환 배우: 타운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불륜의 시대>역시 감독님의 색이 뚜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좀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형식이 굉장히 독창적이고 개성이 강했죠. 시나리오 자체도 물론 좋았지만 일단 타운 시리즈를 제작하신 감독님 자체에 대한 신뢰가 커서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 감독님께서 <불륜의 시대>를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네 인물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전규환 감독: 제가 타운 시리즈를 끝내고 다양한 장르실험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 첫 번째로 멜로라는 장르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실 멜로라는 장르는 이미 흔하게 나와 있죠. 저는 저만의 색깔이 나오는 새로운 문법의 멜로를 만들고 싶어서 네 남녀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서로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지만 욕망과 사랑이라는 허물을 살짝만 벗겨내면 굉장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진행: 영화의 편집도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현재가 섞여있음에도 과거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전규환: 처음 이야기를 만들어 갈 때 글 자체도 복잡하게 써 내려갔어요. 현대인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와 복잡성 그리고 그 복잡한 생각 안에서 파편적으로 튀어나오는 사건들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쓸 때부터 사건들을 섞어놨죠. 그리고 이야기를 붙여 놓은 상태에서 한 번 더 교차편집을 했어요. 그럼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파편적으로 부딪치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관객: 시간을 뒤섞어 놓으신 것에 대해서 더 여쭤보자면, 그렇게 시간을 잘게 쪼개어 편집하신 것이 관객들에게 불편을 줄 것을 알면서도 하신 거잖아요. 그 과정에 대해 듣고 싶고요. 그리고 <불륜의 시대>에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장면이 많이 표현된 것 같아요. 움직이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신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우 분들이 굉장히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셨는데, 감독님과 배우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전규환: 영화 속의 사건이 불과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죠. 처음에 글을 쓸 때부터 현대인이 갖고 있는 복잡한 스트레스와 인간의 위선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하는 의도를 갖고 기획을 했는데, 편집 후에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순차적으로 편집이 된 것 같더라고요. 저는 착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친절한 감독들은 이미 많으니까 저처럼 불편한 감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스트레스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편집 과정에서 한 번 더 시간을 쪼개어 섞게 됐죠. 그리고 이동수단이 많았던 이유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삶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주인공 역시 종착역도 모른 채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바라나시까지 가게 된 거죠. 그런 의도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동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윤동환: <불륜의 시대>를 시작하기 전에 타운 시리즈를 보면서 감독님의 스타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직접적으로 감독님과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연기 스타일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미니멀리즘이죠. 표정과 눈빛, 그리고 그 어떠한 제스쳐도 제외하고 감정을 밑으로 쭉- 가는 식이었어요.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의 타운 3부작을 모두 봤는데 <불륜의 시대>를 보니 이전 영화에 비해 캐릭터들이 물질적인 환경은 가장 나아졌지만 반면 그들이 최후에 도달하는 과정은 가장 비극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그리는 영화 속에서 우리가 소위 행복이라고 말하는 요소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전규환: 제가 장르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충무로 안에서는 새로운 텍스트가 될 만한 문법의 영화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굳이 제가 또 할 필요는 없죠. 그렇다고 소수 관객을 위한 것만은 아니고 물론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죠. 제가 유일하게 만든 전체관람가 영화 편집을 최근에 마쳤는데, 이 영화에도 사실 행복이 들어있지는 않아요. 마냥 행복한 이야기들은 제 손이 오그라들어서 잘 안 써지더라고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 지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궁금해요. 일련의 사건들에 관련은 되어 있는데, 대사가 많이 없고 간접적으로 등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사고하나 안 칠 것 같던 여자가 사랑에 빠져 바라나시까지 가게 된 마음은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지영이라는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규환: 영화에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하고 한 명에게는 영화의 시간이 굉장히 할애가 되어 있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왜 남자는 불륜이 허용되고 여자는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이데올로기를 집어넣고 보세요. 그런데 저는 그저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쓴 것 뿐 이에요.(웃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있는 거잖아요. 평론가나 관객 분들의 입맛에 맞춰 쓰게 되면 제가 이미 관습에 젖어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좀 더 다른 방식의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어요. 분명 불편해 하는 관객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안고 가야 할 문제죠.
관객: 처음 말씀하실 때 인간이 갖고 있는 위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영화 속에서 기존에 우리가 해오던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사랑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그래서 제가 볼 때 이 영화 속에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위선을 말씀하시는 건지, 자본주의화 된 삶 속에서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삶 전체의 위선을 말씀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전규환: 남녀 간의 문제는 인류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순간서부터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위선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겠죠. 왜냐하면 끊임없이 이성을 만나며 갈구하게 되고 또 다른 새로운 이성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다 그 매력에 빠지는 것을 반복하니까요.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의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종교가 됐든 신의 심부름꾼인 사람조차도 위선적인 행동을 하죠. 인간이 그 순간 사랑을 하는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제가 위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믿고 있던 그 신념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바뀌는 순간의 껍질을 저는 위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윤동환: 저는 이 영화를 일곱 번째 보면서 감독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위선에 대해 생각해 왔어요. 제 나름대로의 해석은 남자에게 두 여자가 있고 여자 역시 두 남자가 있잖아요. 우리의 삶은 사실 일부일처제가 아닌데, 그럼에도 사회제도라는 것은 일부일처제를 강요하고 있어요. 종교 역시 굉장히 새로워지는 세상 속에서 옛날 것들을 계속해서 강요하고 있고요. 정치, 종교, 경제, 성에 관한 모든 부분에서 규범적으로 딱 ‘이러해야 한다’라든지 도덕이라는 이름 하에서 제단 되어 있는 세상 속에 살기를 강요되고 있는데, 우리의 성정은 그렇지 않잖아요. 제도가 요구하는 것들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또 적당히 맞춰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 위선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위선과 스트레스 그리고 길의 방향성을 잃은 어떤 영혼들의 일탈과 도피의 방향이 바라나시라는 도시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위선의 표현이 조금 약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배우들이 너무나도 덤덤하게 갈등과 방황 없이 바람을 피우고 주저 없이 바라나시에 가는데, 미니멀리즘이라는 장르 형식 자체가 감독님께서 표현하시려고 했던 위선과 스트레스를 오히려 정당화 시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영어제목과 한글제목인 <불륜의 시대> 뜻이 다른데, 어떤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전규환: 제가 위선이라는 주제를 갖고 남녀의 이야기를 끄집어냈지만 사실 그것이 위선인지 아닌지는 저도 몰라요. 그 순간만큼은 진정한 사랑을 하고 헤어지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위선 혹은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죠. 그런 아이러니 역시 위선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울고불고 떠나가는 동기 행동들을 모두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이 되더라고요. 수돗물을 켜 놓은 상태에서 고심한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모습들에서 충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에 관해서는 ‘바라나시’가 인도 최대의 성지인데 그러다보니 종교영화로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제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가 끊임없이 불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남녀의 불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해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불륜이라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된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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