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토크
카메라를 든 여성 : 한국과 일본, 국경을 넘어선 여성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통쾌한 수다

일시 / 2008년 9월 26일(금) 오후 5시

초청자 / 다케후지 카요 (<반신반의> 감독)

               오노 사야카 (<미운오리새끼> 감독)

패널 /  류미례 (<엄마> 감독)

            박정숙 (<동백아가씨> 감독)

사회 / 김소혜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김소혜
한국과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네 분의 감독님을 모시고 오픈토크를 시작한다. 우선 각국의 다큐멘터리 작업과 환경에 대한 잘 모를 것 같아, 먼저 박정숙 감독님이 먼저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 여성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박정숙

94년에 처음 카메라를 잡았고, 그때가 24살이었다. 처음 영상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독립영화/다큐멘터리의 역사는 89년도 대통령 선거 당시 영화가 운동으로서의 역사로 시작되었고, 그리고 김동원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처음 맞이하게 되었다.

올해가 한국독립영화협회라는 단체가 10주년이 되는 해인데, 단체 회원들이 100여 명 가입되어 있다. 물론 그 중에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만, 한독협이라는 단체만 놓고 봤을 때는 100명 중 50여명 정도가 다큐분과 회원이고 그 중 40명 정도가 제작자, 나머지는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성 감독이 15-20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성감독들의 주제는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는데, 차차 같이 얘기를 나누는게 좋을 것 같다.




다케후지 카요
일본영화역사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하면, 한국의 해방 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영화는 전쟁 도구로서 이용되어 왔다. 그리고 전쟁 후/해방 후부터 기업의 영상 PR, TV방영을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이 주로 제작되었다.
본격적인 독립다큐멘터리는 이와나미 프로덕션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상업을 위한 영화제작에서 빠져나온 오가와 신스케 감독 등,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영화를 찍는, 상업적 표현을 위한 영화에서 벗어나 독립적 스타일로 영화를 찍어내는 방식이 오늘날의 일본다큐의 역사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성감독을 꼽아보자면 70년대까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만큼 소수였다. 이것은 지금 일본 영화 내에서 여성감독이 거의 없는 것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부터 가정용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개인이 영상을 많이 찍고, 다양한 모습을 많이 찍게 됐는데, 그 중에 힘 있는 여성 감독의 영화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경우도 자신의 모습을 찍으면서 작가로 발전한 경우이다.


김소혜
한국과 일본의 다큐멘터리 역사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텐데, 서로의 영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오노 사야카

저는 일본에서 하라 카즈오 감독 밑에서 공부했다. 제가 주로 좋아하는 영화는 얼얼하고, 마음 아픈, 혹은 살아가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인데,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에 있어서의 도덕 문제라든지, 한계를 넘어서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후지 감독의 영화는 삶과 병, 죽음에 대해 영화를 찍고, 저는 가족 안의 성, 공동체의 문제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박정숙 감독의 한센병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를 보았는데, 이것은 운동을 위한 시점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표현하는 바는 잘 받아들일 수 있는데, 자신의 삶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 비슷한 주제의 영화로 <대나무숲의 유언>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 한센병이 어느 정도 터부시된다.
박정숙 감독의 다른 영화는 못 봤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는 표현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끼어들 틈이 없는 것 같다.





박정숙


자신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듣는 건 참 떨리면서도 괴롭다. 이 작품은 2003년에 첫 촬영을 했는데, 그 전 작품은 여성철도노동자에 대한 작품으로, 여성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이다. <소금>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의 파업, 산업재해에 대한 교육물을 주로 만들면서 형식은 나레이션과 인터뷰 등의 굉장히 익숙한 방식을 사용했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94년부터 2000년까지 노동조합에 관련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작품에서도 운동성이 느껴지는 건 그런 역사적 맥락이 아닐까 싶다.
오노 사야카씨가 지금 24살인데, 저도 24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는 다큐멘터리 영화보다는 운동으로서의 영상활동를 했다. 한국의 대규모 파업이 가장 많이 일어나던 때였는데 나의 임무는 카메라를 들고 할 수 있는, 방송에 나오지 않는 모습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주제로 바뀌면서 그때의 사명감과는 다른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한센병’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소록도에 우연히 갔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남성’에 대한 기록은 있는데, ‘여성’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는데, 만났던 할머니가 닭장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레이션이 과도한 부분이 있었고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것은 그 당시의 내 상태가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때의 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감정의 과잉이지만, 그 상황에서의 감정의 불안정한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오노 사야카
영화를 보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바가 같았고, 화장터 신 깥은 경우 인간으로서 마음이 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류미례

<미운오리새끼>를 본 후 영화를 잘 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예술작품이든지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고, 자신의 상처를 헤집어내는 과정이 용기있으면서도 참 혹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도 사적다큐를 만들기 때문에 주로 혼자 촬영하는데, 내밀한 공기가 카메라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많다. 겸독의 경우 최소한 두 명의 스텝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 공기를 어떻게 깨뜨리지 않고 촬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사적 다큐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할때 카메라와 나의 삶이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너무 빠지거나, 깨지거나 하는데, 그게 굉장히 혹독하면서도 긴장감이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때 드는 생각이 누가 찍어줬으면 하는 생각인데 나의 마음과 같은 스텝과 일하는게 정말 어렵다. 다큐멘터리인데 극영화처럼 촬영한게 아니라면 그런 스텝과 함께 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궁금하다.


오노 사야카
당시 학생이었는데, 혼자 찍을 실력은 못되었고 스텝이 필요했는데, 가장 우수한 친구를 칭찬으로 꼬셔서 데리고 왔다. 찍을 때 그 와의 저항, 불신감 등 힘든 점이 많았는데, 오빠와의 이야기를 찍을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류미례

<반신반의>보면서 등장인물인 야마기시 감독은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선배가 있고, 나도 꼭 그렇게 경외를 표할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질문을 드리면, 실제로 야마기시 감독에 대해 배우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재현장면을 보면서, 주관객층이 누굴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 관객층이 굉장히 유의미한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일반관객층은 아니었던 것 같고, 주로 어떤 사람과 영화를 보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다케후지 카요
야마기시 감독님은 일본 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때 조감독으로 일했던 이치카와 콘 감독은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우선 내 삶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왔던 그 사람을 찍고 싶었다. 여러분도 유명하진 않지만 가장 밀접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몇 십년이 지나도 슈퍼히어로로 이름이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를 포함해서 수십 년 후에는 잊혀지는 인물이 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보통의 삶, 그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고, 지금도 삶에 대한 주제로 작품을 찍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다케후지 감독님께 묻고 싶은데, 현재 일본영화의 침체기라고 볼 수 있는데 재현장편을 보면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다케후지 카요
일본의 영화산업은 틀림없이 사양산업이다. 야마기시 감독이 활동했던 70년대부터 영화사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TV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다. 애니메이션이 발전하는 반면 다른 영화들은 왜 쇠퇴할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쓰지 않는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길이 점점 줄어든다.
야마기시 감독의 경우 30대에도 매우 큰 규모의 영화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지금의 일본에는 없다. 그게 노스탤지어라고 말했던 맥락, 그러한 배경에 대한 향수이다.
<미운오리새끼>도 영화학교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저도 학교에서 만든 작품이 이미지포럼에서 상영되었는데, 학교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한데, 실제로 사회에 나와서 영화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한때의 패기로 잠깐 동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의 감독들은 아이가 있으면서 이런 것들이 터부시되지 않고 자연스런 일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일본과 비교가 된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다 팽개치고 뭐하냐는 식으로 말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한국에서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이다.

김소혜
야마기시 테츠로라는 인물의 일본 황금기의 환상을 봉합하는 인물인데, 일본의 국가주의, 전체주의라는 핵심적 이슈로 인해 한국관객들이 보기에는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케후지 카요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좋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온, 인류의 조화와 진보에 대해 상당히 모순되어 있지만, 감독의 말을 살렸다. 특별히 이것을 주장하려던 건 아니지만 의견은 같다.
<동백아가씨>를 보면 일본인으로서 매우 마음이 아프다. 영화를 통해, 운동적, 계몽적으로 많이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서 슬픈 역사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와 함께 느끼는 건 한국의 아주머니들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아주머니는 정말 힘을 느낄 수 있다. 손이 없어도, 발이 없어도 밥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서 이런 모습이 이해될지, 가족을 그런 상황에서도 돌보는 것에 있어 힘을 느꼈다.
류미례 감독의 영화에서도 ‘아이가 있어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진심인지 묻고 싶다. 일본의 경우 여성이 영화작업을 하면서 아이 돌보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까지 해서 작업을 해야 되는지 책임을 묻는다. 그 힘은 <동백아가씨>에서 받은 힘과 유사하고,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엄마의 남자친구와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강함을 느꼈고, 당시 감독이 임신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여성이 힘이 크다고 느꼈다. 딸도 있는데, 매우 힘차 보이고 어떻게 자랄지 매우 궁금하다.


박정숙
두 분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소금>을 찍을 때 첫 애가 18개월 때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도 아이도 많이 힘들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울었던 기억도 많고 편집할 때는 가장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있는 아이가 우리 아이였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 힘든 것 보다 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지금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는데, 어릴때 그렇게 떨어져 있어 그런 행동을 보인 거라 듣고 아팠던 시간을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아픔도 함께 가져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금>이라는 영화에 12명의 여성 노동자가 나오는데, 임산과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찍을 때는 힘들지만 나중에 삶에 대한 의지가 되고, 큰 용기가 된다. 지금 새 작품을 찍고 있는데, 그 할머니에게 그 에너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일본과 한국이 가깝긴 하지만 역사도 다르고, 영화에 대한 배경도 다르다. 그렇지만 계속 서로의 작품을 만들어서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김소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교류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의 다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시간을 마치겠다.

오노 사야카
제 차기작의 테마는 바로 ‘여성’이다. 여성의 문제를 젠더적 접근이 아닌, 여성이 여성으로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생에 대한 모습을 담으려 한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미운오리새끼>를 일본 내에서 상영하는게 작업의 하나이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찍는다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모두 선배들인데, 선배들의 여성으로서의 시점을 더 깊이 생각, 버리지 않고 다음 작품을 하려 한다. 정말로 감사하다.

류미례
<엄마...>를 만들면서 아이를 계속 키우고 있는데, 보육교사가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고, 천대받고 있다. 모성을 신비한 영역으로 격상시키면서, 보육교사나 돌봄 노동자에게든 봉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행복한 보육교사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다. 사회적 엄마인 보육교사와 엄마의 자리에서 어떻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업하고 있고 제목은 <먼길>(My Sweet Baby)이다.

다케후지 카요
저희 차기작은 ‘마야메’라는 여성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내년 1월에 교토에서 전시회를 여는데, 이와 함께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에 있다. 전작에서 볼 수 있듯 다큐적 측면과 함께 줄거리가 있고, 여러 장치가 있는 장면이 존재한다. 찍고자 하는 것은 설정하기 때문에 때론 다큐가 될 수 있고, 극영화가 될 수도 있다.

박정숙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은 89년, 한국의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의 공장이 있는데, 일본의 ‘스미다’라는 공장이다. 네 명의 여성노동자, 일본사람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의 차이를 다룰 예정이다.


 


 20080926@INDIE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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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2. 새로운 미디어 운동, 아시아의 연대

일시 / 2008년 9월 28일(일) 오후 2시 30분

초청자 / 츠치야 유타카 (<새로운 신> 감독)
발표 / 허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간사)
사회 / 조동원 (미디어문화행동 활동가)


츠치야 유타카

일본의 활동에 대해 연대별로 설명하겠다.
60-70년대는 일본에서 사회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굉장히 활발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시대는 영화 자체도 뜨거운 시대였고,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극영화에서도 정치, 사회문제에 관한 영화가 많이 나왔다.
60-70년의의 흐름 속에 미디어 액티비즘에서 가장 주요했던 것은 자주상영이다. 상징적인 예로 <적군>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버스를 이용하여 자주상영 운동을 했고, 이것은 미디어 운동의 역사에서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사회운동은 활발함을 잃는 반면, 개인이 만든 영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의 움직임이 새롭게 시작한다. 1978년에 “도쿄비디오페스티발”을 시작되었는데, 이 축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것은 시민들이 만든 비디오, 개인이 찍은 비디오 영상을 사회 속에서 넗혀 가는 역할을 했다. 이 영상물들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장르로 새롭게 확산되게 된다.
그러나 70년대는 비디오의 값이 비쌌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은 80년대 들어 더 활발해졌다. 85년에 만들어진 <당하면 복수하라>는 영화가 있는데, 도쿄의 일용직 노동자가 모여있는 산야지구에서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지원자들이 스스로 만든 영상이다.
89년에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시작되어 다큐멘터리, 비디오아트, 실험영화를 다 포함한 영화제로 시작되어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다큐멘터리 영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90년대 들어와서는, 95년에 miniDV가 발매되기 시작, 이것은 새로운 규격의 비디오 활동을 시작을 알렸다.방송의 영상보다는 질이 떨어지지만 높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내 비디오 활동을 한 단계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91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전쟁반대자들이 뉴욕에서 ‘피파타이거’라는 비디오 그룹 활동을 시작하여, 이 활동이 일본에 들어와서 새로운 역할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일들이 일어났는데 하는 FMYY라는 커뮤니티 라디오가 시작했고, 95년 <우리는 민주노총이다>라는 영화를 한국의 노동자뉴스제작단과 함께 번역해서 제작하고, 켄 로치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작업들을 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인터넷이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비디오 영상을 인터넷 상에 올리는 활동들을 시작, 국제적으로도 인디미디어 활동들이 올해 G8에 대항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다.
G8활동가들이 여기 와계시기 때문에 토론 할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참고로 도쿄 신주쿠에 있는 지하도에서 노숙자들이 만든 영상 <신주쿠 노상 TV>를 함께 보겠다.
도쿄 신주쿠 지하도 노숙자들이 종이 박스를 집으로 삼아 모여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들에게는 여기가 집이고, 보통집과 달리 거실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거실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TV를 설치하고, 공동으로 밥을 먹고, 노숙자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운동을 했다.
영상을 보고 발표를 마치겠다.


허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의 간사를 맡고 있고, 이 자리가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 운동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집중적으로 논의할 주제를 함께 하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은 제한적으로나마 짧게 설명하겠다.
한국의 상황 역시 정치적, 민중운동적, 사회문화적인 미디어 운동이었고, 기술의 변화 발전에 따라 함께 변화했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일본과 달라서 세가지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1980년 5월, 2002년 5월, 2008년 5월의 세 가지 사례로 설명할 수 있는데, 1980년 5월은 한국의 군사정권에 대해서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있었던 때이고, 주류 방송국에서는 광주 민중들을 폭도, 간첩,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오도, 왜곡했었고, 그때의 대표적 미디어 방식은 광주 MBC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은 한국 사회운동에서 큰 분기점이 되는 시기인데, 그 이후 한국 민중운동이 크게 확산되었고, 미디어운동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되었다. 광주MBC사건과 이로 인한 미디어운동의 분화를 얘기해보면, 기존의 지상파 방송국 시스템 안에서의 운동, 영화 시스템 안에서의 운동으로, 내부 개혁운동의 흐름이 있고, 시스템밖에 독립영화, 독립미디어운동 이렇게 80년 이후에 분화가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영역의 운동이 진행되었고,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독립미디어, 독립영와 운동은 전업적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외에도 시민, 민중이 직접 미디어를 만들고 주류에 참여하는 공간을, 그것과 별도로 미디어를 소유하는 방식의 참여적, 대안적 미디어운동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5년 5월에는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를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내쫓는 일이 벌어졌고, 군사기지이전을 저지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80년 광주에서는 방송국을 불태웠지만 20년 후에는 다른 미디어 운동의 양상이 벌어졌는데, 그 동안의 주류 방송국에서는 일부 프로그램이 평택의 상황을 알리는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평택에서는 독립영화 운동, 미디어활동가들이 직접 평택에 들어가서 주민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들소리 방송국)을 만들어 주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변화된 상황일 수도 있고, 이러한 운동은 직접 주민들이 싸우기도 하고, 조직된 운동세력이 많이 모이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제한적인 활동이 될 수밖에 없었고, ‘들소리 방송국’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 성과와 과제에 대해 토론되지 못했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올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저지 운동이 벌어졌는데 미디어운동의 활동은 아주 큰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군사기지 이전 투쟁처럼 중요한 투쟁처럼 보이는 주제가 아닌, 직접 자기가 먹는것,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이슈는 모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었다.
평택의 활동가들은 미디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었고, 촛불은 모든 시민들이 만들었고, 이것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2008년 초부터 시작된 싸움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잇고 그것과 관련한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운동이 자본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중적 이슈로 투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미디어 운동 진영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안적인 미디어 활동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다.
내가 활동하는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시민들의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는데, 정작 기획하는 것에 있어 대중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고민하고 있고, 그런 영역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각 미디어 운동 진영에서는 이 과제를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미디어 운동의 영역을 짜 나갈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조동원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 운동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을 말씀해주신 것 같다.
발표에 대한 질문 혹은 보충, 생각들을 말해 달라.



관객 : 야마카와라고 한다. 일본에서 왔는데 이번 G8미디어 네트워크 참가했고, 츠치야씨와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했다. 츠치야씨의 발표에 나온 연표와 관련해서 적군파에 관한 영화를 제작했던 와카마츠 코지가 하고 있는 프로덕션에서 일을 했었고, 하라 마사토씨와도 같이 작업을 했다.
지금 보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연표 안에서 운동과 영화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비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비디오가 시작하면서 다큐멘터리가, 시작 전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지만 개인의 영화, 자신이 주제를 잡아서 찍는 영화가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영화들인데 <오사카 스토리>, <안녕 김치> 등 재일 조선인, 한국인들이 개인 혹은 가족을 향해서 만든 좋은 영화들이 나왔다. 90년대 비디오를 가진 개인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흐름도 있었다. 이번 G8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서 개인이 네트워크를 만든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2008년에 개인이 인터넷도 하면서 운동에 참가하는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는데, 물론 역사가 다르긴 하지만, G8도 인터넷을 쓰기도 했지만, 한국에는 그런 인터넷을 미디어 활동하는 사람들이 운동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건가.


사회 / 1인 미디어라는 말이 언론에서 많이 보도되고 했는데, 1인 미디어가 이런 운동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위치잡는지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더 말씀을 듣고 답변을 듣겠다.

관객 /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있고 지금 한국과 일본의 행동주의 경향에 대한 테마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이 테마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여성들의 경우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한국의 이슈가 있을 때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평택대추리라든가, 광우병 이라는 이슈가 던져졌을 때 연대를 만들어 활동하는 움직임이 잇는데 일본의 경우 어떤 사회적 이슈가 있는지, 츠치야씨의 말처럼 1970년대 이후 미디어 연대라고 해서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어떤 연대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60년대 사회운동 시기를 넘은, 일본 미디어 활동의 계기가 있는지. 어떤 공통된 사회적 이슈가 있는지.


관객 / 방금 질문을 듣고, 오늘 한국 미디어 운동의 역사에 대해 듣게 되고, 미디어 운동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아까 앞에서 상영된 <신주쿠 노상 TV> 활동에 참여했었는데 왜 한국말 자막이 있냐면 광주의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참여했고 지금 DVD가 있어 원하시면 선물로 드리겠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디어가 중요한 이유는 미디어가 그것을 권력으로 인식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였다. 일본은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군사국가가 완전히 다른 보도를 하는 계기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왜 TV가 문제가 있는지 인식하기 어렵다. 일상적으로 매체가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고 있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분질성을 미디어가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방송국을 보면 어떤 방송이든지 보도는 거의 같다. 그래서 저는 방송 보신 노숙자 TV를 했는데 거기서 생각했던 건 노숙자가 보는 세계는 어떤 것인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방송국을 했다. 일본과 한국은 그런 점에서 정말 다른 것 같다. 또 하나는 허경씨에게 질문인데, 개인미디어가 한국의 경우 일본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프로가 아닌 시민이 어떻게 참여했는지, 비전이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면 설명해 달라.


관객 / 저는 이번 영화제에서 <왜놈에게>라는 재한원폭피해자에 대한 영화를 찍은 누노카와라고 한다. 지금도 같은 주제로 40대의 김인만씨와 20대의 나카무로 요코씨와 같이 작업하고 있다. 나는 73-86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영상작업을 했는데 그때 80년대 TV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중동에 가지 않겠냐 요청을 했고, 그때 내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광주의 투쟁이었다. 그때 광주의 보도를 TV에서 보고 지금 팔레스타인에 가는 게 좋지 않겠냐 라는 생각을 했다. TV 방송국에서 일하면 모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는데, 광주의 싸움을 보면서 팔레스티나, 아프간, 레바논 등 가게 되었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광주와의 연대, 입장이 제 자신에 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데, 한국의 미디어 활동가 만나면서 재한 원폭피해자와 이런 만남을 갖게 되면서 저는 세계의 움직임을 느끼게 됐다. 저는 일본의 TV 균질화라는 말에는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의 1인 미디어 / 일본의 70-8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의 발전

허경

촛불, 광우병, 1인 미디어만 가지고도 어떻게 프로가 아닌 시민이 참여했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수많은 토론과 연구들이 되고 있다.

크게는 기술적인 조건과, 세대의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넷 보급률은 정말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모두 컴퓨터를 다루고, 핸드폰 등오로 촬영할 수 있다. 이런 기술적 조건은 운동이 아닌 미디어 산업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어서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물론 한편에 있다.
문화적 조건은 촛불의 주 세대였던 10-20대와 달라 분석은 어려운데, 고등학교, 대학생 친구들은 자기들에게 이건 너무 당연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카페를 통해 네트워크하고, 연예인들의 공연장에서 피켓들을 만들어서 응원하고, 자신의 생각을 인터넷에서 묻히지 않게 할 수 잇는 수많은 노하우를 가진 세대이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는 이미 3-4년 전부터 얘기했지만 대중적 언어 소통방식을 만들지 못했었고, 주도적 역할을 못했다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개인적인 노하우를 통해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츠치야 유타카

70년대 이후 미디어 운동과 사회운동의 연계에 대해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일본의 경우 미디어 운동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활발해진 계기는 없다. 물론 각각 사회문제/주제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졌고, 작품들이 생산되어 왔는데, 예를 들어 ‘국철민영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찍는 활동도 했고, 원자력발전소 등 각 문제에 대한 작품활동을 해왔고, 주체자들이 영상을 만들어왔는데, 그런 각각의 운동들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주요한 사건들은 몇 개 있었는데, 걸프전 당시 보도비판을 했던 ‘피파타이거’의 활동을 통해 정보를 확산할 수 잇었고, 인디미디어를 접하면서 활동을 했던 것도 하나의 큰 계기였다.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비디오로 데모하는 모습을 찍고, 인터넷으로 그런 영상을 올리는 활동들을 했는데, 9.11이후 아프간 전쟁 후,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지금 활동하고 있는 G8에 대항하는 운동과 함께 G8미디어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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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1. 전향적 다큐멘터리 배급의 전략, 일본과 한국의 사례


일시 / 9월 27일(토) 오후 3시


초청 / 야마가미 테츠지로 (배급사 SIGLO 대표)

패널 / 김동원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권 (다큐멘터리 배급사 ‘시네마 달’ 대표)


사회 /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


 

 

야마가미 테츠지로


시그로는 제가 만든 회사인데 올해 22년이 된다. 시그로는 영화제작회사이며 배급회사이다. 지금까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만들어 왔고, 40편 정도로 다큐멘터리가 압도적으로 많고, 극영화는 열편 정도. 그리고 우리가 제작한 영화 이외에 일본 내 다큐멘터리, 해외 다큐멘터리를 배급해왔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만든 영화는 자기가 배급하게 되는데, 옆의 김동원 감독의 <송환> 같은 경우엔 씨네콰논과 함께 배급을 하였고, 그 외에도 시그로의 극영화는 다른 회사를 통해서도 배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다큐멘터리의 경우 자기가 배급, 선전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테마(주제)가 다양하고 배급방식 또한 하나하나 전부 다르기 때문에 그 전에 했던 배급방식을 참고하는 일은 아주 적고, 제각각 정성스럽게 공개하는 방식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배급의 현황에 대해서는 일본의 영화에 대해 공부한 바 없기 때문에 체험으로 알고 있는 바를 말할 수밖에 없는데, 우선 다큐멘터리에 한해서만 말씀드리겠다. 일본에서는 한해 470편의 작품이 있고, 이중 극장에서 제대로 공개되는 다큐멘터리는 열편 내지 스무편 정도 밖에 없다. 그러나 극장 이외의 다른 방식, 특수한 방식,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다큐멘터리의 수를 합치면 아마 100편, 혹은 200편이 더 추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중 하나가 일본 내 영화학교에서 졸업생들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가 몇 십 편 되지 않나 생각한다.


십년 동안 가장 크게 변한 흐름에는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 일 텐데, 그 중 기자재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었다. 70년대 내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때는 16mm로 찍었는데,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컸었고, 쉽게 영화를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그때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키네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제작방식은 바뀌었지만, 공개되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은 지방에서도 프로젝터로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비디오 상영이 가능한 극장은 아마 10-20%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적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기 때문에 굉장히 드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작품수가 늘었기 때문에 어느 극장에서도 장기간 상영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건 극영화, 다큐멘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히트를 쳐도 2주 정도 관객이 오고, 그 후는 관객 수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다른 작품으로 계속해서 바꿔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틀고 있다. 영화의 작품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많이 개봉하게 되는 논리가 있다.

같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볼링 포 콜롬바인>, <화씨 911>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만든 영화를 개봉했을 때 1만 명 내지 3만 명이 오면 큰 히트를 쳤다고 할 수 있다. 일 년 동안 3만 명 정도의 관객이 모였던 영화는 <개미군대>, <야스쿠니>, <미이케>, <꽃은 어디로 갔나>정도였다.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보통 객석이 100석 정도 되기 때문에 장기상영을 하지 않으면 이런 정도의 관객을 모을 수 없다. 그만큼 장기상영하는 극장은 정말 드물고, 작품마다 다른데, 어떤 영화는 일시적인 히트를 치지 않아도 관객이 따라오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들이 2주 내지 3주 사이에 판단되고 관객 수에 따라 짤리게 된다.


대체로 일본에서는 “도쿄에서 동원하는 관객수 = 기타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관객수”입니다. 즉, 50%의 관객이 도쿄에서 동원이 된다. 그래서 극장 상영만으로 모을 수 있는 관객은 정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그로에서는 극장 이외의 자주상영방식으로 상영을 한다.

이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극장에서 공개할 경우 선전(홍보)은 거의 우리가 하는 반면, 자주상영의 경우 선전은 지방마다 있는 그룹들이 한다.

또한 자주상영의 좋은 점은, 가능한 감독들을 상영회에 부르는 것이다. 감독을 부르고 강연을 부탁해서, 영화상영료 말고도 강연료가 지불되는, 구체적으로 감독의 교통비, 숙박비는 감독 자신이 부담하게 되고, 그 외 3만엔(30만원 정도)의 강연료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영화감독의 경우, 영화가 만들어지는 사이엔 괜찮은데, 영화가 완성되고 난 후 수입이 없어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 때 상영회를 가지면 한 달에 네댓 번 상영회를 가게 되는데, 보통 주말에 가게 되고, 전국 여러 지역을 가서 상영회를 하면 감독의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 또한 감독이 여러 지방을 돌아 다니면서 여러 테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직접 비평을 듣게 되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그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식인데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은 제작, 선전 모든 것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감독료를 지불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이러한 방식은 시그로에서밖에 할 수 없게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몇몇 히트 친 영화를 말씀드렸는데, 그 영화들은 모두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회적 주제를 확실히,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영화가 자주상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알기 쉬운, 이해하기 쉬운 테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영화의 경우 -예술영화, 사적영화-의 경우는 자주상영방식이 힘들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해왔던 역할을 정말 무시할 수 없다. 그들 덕분에, 그 시대마의 사회성을 볼 수 있고, 작품성으로 작품을 평가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원승환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하는 다큐멘터리가 있고, 극장/ 극장 밖에서도 만나는데, 그런 만남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배급사가 필요하다. 독립영화배급사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로부터 소개와 배급방향을 듣겠다.




김일권

시네마 달은 배급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되었다. 시그로는 22년이 됐는데, 우리는 막 태어난 셈이다. 같이 일하는 이상엽 피디가 작년부터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을 하겠다면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개인의 작업이 아닌 조직적으로 같이 해보자 하여 시네마 달(이하 달)을 만들었다. 달도 마찬가지로 배급사이며 제작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극영화를 우리가 배급하지 않는다는게 원칙이고, 가능하면 다큐멘터리에 올인하자 하여 독립영화전문배급사로 되어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배급하고 있다.


현재 60편 정도 계약해서 배급할 예정이고, 목표는 연내 안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다 할 계획이고 100편 정도의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이다.

첫 계약작이기도 한 <동백아가씨>를 첫 개봉작으로 선정하였고, 극장개봉, 공동체상영, 해외배급, 다큐멘터리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배급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극장 개봉으로 <송환>, <우리학교>, <비상> 등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작품들이 있지만  개봉하지 못한 작품이 많고, 극장 개봉 자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우선은 공동체 상영에 실질적인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내부적으로 통계를 내 본 결과, 1만명 이상의 대박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극장에서 개봉하여 관객 수가 적게는 3백명, 많게는 3천 명 정도가 일반적인 것 같고, 1천 명을 넘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5백명을 넘으면 선방했고, 그 이상이면 히트를 한 건데, <어느 날 그 길에서>가 3천 명, <우린 액션배우다>가 1만 명을 넘었다.

작년 인디스페이스가 생기면서 1년에 5편 내외가 극장에서 개봉하는데,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는 대략 60-70편, 장편만 보면 적으면 10편, 많으면 20편 정도 만들어지는 걸로 알고 잇다. 그 중 다섯 편 정도가 개봉하고, 3-4년 주기로 1만 명 넘는 작품들이 하나씩 나오는 것 같다.


영화 성격에 따라 공동체 상영이 잘 되는 것이 있는데, <안녕, 사요나라>, <어느 날 그 길에서>처럼 시민단체, 노조, 학교 등에서 공동체 상영이 잘 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택시 블루스>같은 경우 노조와 하고 싶어도 택시 노조는 워낙에 바쁘기 때문에 공동체상영이 힘들었따. 작품 주제나 성격에 따라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공동체 상영에 방점을 두는 것은 사회적 이슈가 잇는 것만 작품을 보진 않기 때문에 공동체 상영에 대한 네트워크를 최대한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다양한 기획, 방식으로 공동체 상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점점 한국사회도 시민단체, 자치모임, 풀뿌리가 많이 생겨나는데, 단체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영역이 굉장히 다양해졌다. 환경의 문제가 예전엔 관심 밖이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지금 가장 안 되고 있는 부분의 하나가 방송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가 많이 없다. 그것을 뚫어서 배급의 범위를 넓혀야겠고, 해외쪽 배급을 많이 해야 겠다. 일단 영화제를 중심으로 많이 알리고, 일본 같은 경우 한일 문제를 다룬 영화의 경우 자주상영을 하고 있지만, 우리쪽에서 뭔가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좀더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규모 있고,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잇는 상태에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후반작업까지 펀딩을 잡아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생긴 지 두 달 밖에 안되어서 끝까지 버틴다는 내부적 목표이고, 시그로가 22년 동안 4억 엔 정도의 빚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22년 지나면 40억의 빚을 지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선 버티어야 할 것 같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빚이 있긴 하지만 연간 3-4억의 수입은 있다. 시그로가 22년 동안 할 수 았었던 비결에는 극영화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 크다. 대체로 우리가 만드는 극영화는 제작비가 2-3억엔 정도이고, 그 영화의 제작위원회를 시그로가 중심으로 하는데 제작비가 일단 시그로에 들어오게 된다. 즉, 극영화의 경우, 회사가 여럿 모여서 하니까 일단 제작비는 쓰지만, 2-3억엔의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제작비도 마련되는 흐름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기간은 오래 걸리지만, 제작비는 다 회수해왔고 평균 5년 정도 걸린다. 즉, 몇 번이나 상영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결국은 작품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김동원 감독의 <송환>도 몇 번을 봐도 눈물 나고 감동 받는다. 그런 작품은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



원승환

<송환>의 배급은 일본에서는 시그로, 한국에서는 인디스토리와 아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에서 극장 개봉을 하고 푸른영상에서도 비극장상영, 현재 ‘시네마 달’에 배급이 맡겨졌는데, 많은 경험이 있으시니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서 기대하는 것이 생각하는 바를 김동원 감독으로부터 듣겠다.



김동원


얘기를 듣다 보니 몇 가지가 생각난다. 일본의 다큐멘터리와 한국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도 많고 우리랑 비교해서 수치적으로 앞선 게 있다. 예를 들어 제작편수가 일본은 70-80, 한국은 20여 편이라는 차이가 있고, 일본을 몇 번 가면서 느낀 건 일본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앞선, 다큐멘터리도 일본은 60년대부터 독립다큐멘터리가 시작된 반면, 우리는 80년대부터 시작. 20년 앞서 있고, 규모도 조금 크고, 인구학적으로도 관객 수가 많고, 우리보다는 유리한 상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양적인 비교일 뿐인 것 같다.

부러운 점은 질적인 문제, 커뮤니티의 문제이다.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만 보더라도 인디다큐페스티발과 비교하면 가장 극적인 비교가 될 수 있는데, 다큐멘터리 문화로서 인정되는, 소사이어티가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런데 우린 달랑 다큐멘터리하는 사람들 뿐이고, 그런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확장하지 못한다.

시그로처럼,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이 와주고, 다큐멘터리쪽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네트워킹, 인맥이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 술자리에 가면 만화가도 있고, 극영화 사장도 와있는데, 우리는 우리뿐이다. 이게 우리의 액티비즘의 전통, 뿌리가 되고 있는데, 지금은 그것을 확장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극장이나 지역사회에서 전향적인 배급을 한다고 했을 때는 우군들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에 관한 생각들을 우리 스스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고, 작품들의 작품성도 좋아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일상적인 활동 안에서 영역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극장 배급이든, 대안 배급이든, 배급 활동이 좀 더 원활하게 진전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야마가미씨가 동갑인데, 나보다 어리게 보이는 것도 부럽고, 미나마타 시리즈로 유명한 츠치모토 노리아키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제작부터 시작해 직원이 11명인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부럽다. 다큐멘터리가 그런 게 있다. 사업성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갸우뚱하게 되는, 우리는 가장 최저의 제작비로 조금만 빚지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데, 시그로의 경우 한 편당 제작비가 얼마나 되는지, 제작비가 회수된다면 그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아웃 오브 플레이스>같은 경우 제작비도 많이 들어갔을 텐데 어떻게 회수되는지 궁금하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아웃 오브 플레이스>는 이미 회수됐을 거라 생각한다. <아웃 오브 플레이스>의 경우 제작비가 5천 만엔(5천 만원) 정도이고 그 중 3분의 1은 국가 조성금을 받았다. 그리고 DVD 미니멈 개런티로 1천 2백만엔, 케이블방송에 6백 만엔, 극장배급으로 1천 만엔을 받았다.

제작비가 많이 든 이유는 두가지 정도가 있는데, 먼저 감독의 개런티로 18개월 정도, 다른 스텝들의 근속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었다. 또 한가지, PAL방식으로 작품을 찍었는데, 프랑스에서 35mm 필름으로 키네코 하는 비용이다. 이야기에서 약간 벗어난 거지만 오늘 오셨던 관객들은 필름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는데, 35mm필름으로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이다. 비디오의 경우 비디오와 프로젝터의 30프레임이 연결되어 계속 그림을 보게 되는데, 필름은 24프레임으로 실제로 보고 있는 시간은 반이 된다. 이것이 영화가 인간에게 주는 부드러움이 아닐까, 자극이 전혀 다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원승환

일본에서 <송환일기>의 관객은 어느 정도 들었나요.


 

야마가미 테츠지로


송환은 안타깝게도 우리들이 힘이 모자라 히트를 칠 수 없었다. 관객이 1만 6천-7천 명 정도인것 같고, 씨네콰논에서 선전비를 많이 들였고, 올해 안에 DVD 계약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내년엔 김동원 감독님께 상영료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핑계지만,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일본과 북한의 관계로 인해 선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김동원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못 물어봤었는데. 첫 날 예측을 할 때는 10만을 바라보았는데, 기대에 못 미친 숫자였지만, 굉장히 고맙고 감명 깊었던 건 8개 도시를 순회하는 계획을 미리 잡아놓고, 최저 2주 상영을 보장하는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더라.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결국은 그 계획대로 상영한 것 같고, 실제 2만 명 정도면 상상 이상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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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22년 동안 배급사를 운영하셨는데, 그 동안 시그로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변화가 배급방식에 어떤 영화을 미쳤는지 묻고 싶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자기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해왔는지 잊어 버릴 정도로 힘들었다. 네 번 정도, 안되겠다, 도망쳐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러나 행운이, 그럴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나를 지원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만들어왔던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 작품이 그런 신념을 만들어줬다. 지금도 그렇지만 돈이 눈 앞에서 있어서 영화를 만들자 한 건 아니고 작품이 있어서 그냥 만들기 시작하는 거다. 이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돈을 번 다음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정말 영화를 찍고 싶으면 먼저 시작해야 한다.


관객

지금까지 세 편 정도의 작품을 했는데, 한편은 기획, 두 편은 장편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작품을 하는게 꿈이고, 지금 작품도 다른 일을 계속 하면서 만들고 있는데, 상영작품의 감독 개런티가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하고, 일본도 처음부터 감독을 고용해서 제작하진 않았을텐데, 언제부터 그런 시스템이 된 건지, 또 일본의 시그로와 같은 제작, 배급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시그로 외에는 잘 모르는데, 저는 시그로 전에 청림사라는 제작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담배값, 술값은 나오는데 개런티는 없고, 정말 이상하다 생각해서 시그로 시작할 때 처음부터 돈을 주었다. 그런 결과 시그로에서는 열 한명의 스텝을 고용하고, 두 명의 극영화 작가와 한 명의 다큐 작가를 고용하여 영화를 제작하고 있지 않은 제작기간 외에도 급여를 주고 있다. 대신 영화가 완성된 후 2년 정도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와 함께 강연을 하고 다니는 식으로 감독의 생계는 유지된다. 시그로와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 회사는 아마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관객

일본의 경우, 방송국에서 제작지원, 혹은 공동제작의 형태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경우가 잇는지, 그리고 방송다큐멘터리와 독립다큐멘터리가 구분이 되는지 알고 싶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참 어렵다. 일본의 경우 NHK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기획적인 다큐로 그 경우가 드물다. 그럴 경우 방송권을 방송국이 가지고 방송 버전으로 바꿔서 방송한다. 또한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는 경우는 있지만 극장에서 개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민간 방송의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고, 있다면 야생동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다큐멘터리 감독이 TV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시그로의 경우 NHK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점은 TV에 판매를 하거나 DVD 미니멈 개런티를 파는 것이 일본회사가 개봉되어서는 아니고, 친구들이 있어 사주는 것이다. 결국 인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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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두 달 밖에 안됐는데 시그로처럼 되기를 빌어주시고 열심히 하겠다.


김동원

일본이 앞서 있고, 유리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우리도 방송과 다큐의 연계가 원활하진 않다. 우리는 최소 지난 10년 동안은 조건이 좋았다. 일본은 정부지원이 거의 없다. 반면 이런 극장을 개인이 운영하고 많은 후원인이 있고, 개인회원들이 제작기금을 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분발해야 하고, 제작부터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대안적 방법으로 제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야마가미 테츠지로

정말 영화를 만드는 일은 힘들지만, 개인의 힘이 크다. 인간을 믿을 수밖에 없다. 시네마 달이 꼭 성공하길 바란다.

올해 막내가 대학을 졸업한다. 이제 양육에서 해방된다면 영화에 대한 의욕을 잃지 않을까, 노년이 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거기엔 빚의 힘이 있지만, 어찌 되었든 계속 할 수밖에 없고, 계속 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공동제작을 꼭 하고 싶다.



20080927@INDIE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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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미운오리새끼>의 오노 사야카 감독님과의 "관객과의 대화"입니다.
오노 사야카 감독은 한국에 첫 방문이시고, 한국의 음식, 사람들,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스고이! 스고이!!"를 연발하며, 무한 애정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삶과, 그리고 자신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변화해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감정의 울림"이 있는 영화를 계속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짧지만 감독의 생각을 조금은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영화를 보셨던 분들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미운오리새끼>를 떠올려 보실 수 있겠네요.



<미운오리새끼> 오노사야카 감독 GV

저는 지방에 살다가 도쿄 중심지의 도쿄영화학교에서 3년간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작 당시에는 이 영화를 찍거나 아니면 죽거나 하는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관객 / 이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

가족을 다루는데, 촬영과 오디오 스텝도 같이 있고 해서 더 이상 찍지 말라고 중단시키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자신을 찍는 다는 것, 타자를 찍고, 타자를 내 안에 들여보낸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타자가 보는 나에 대한 관점을 하나씩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여기서 상영을 하고 여러분과 만나게 된 것도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관객 / 잘 봤습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등장하는 학교를 보니 현재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들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비용이 많이 드는데도 자연친화적인 것을 생각해서 보내는 성격의 학교인지,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서 보내는 학교인지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궁금합니다. 또 하나, 저도 다큐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참 용기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찍고 나면 그 시간들이 자기 것이 되는 것 같거든요. 에너지가 되길 바랍니다.

야마기시 학원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제가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모여 살며 재산을 공유하고, 교육도 하는 사회주의적인 공동체입니다. 시초는 1970년대 학생운동이 패배하고 그 사람들이 시골로 가서 만든 공동체였는데요. 이후 버블경제가 살아나면서 아이들에게 친환경적인, 도시와 다른 경험을 넓혀 주고 싶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많이 보내는 쪽으로 성격이 변화합니다. 저는 후자 쪽이고 제가 다닐 때는 다달이 5만엔(50만원)을 냈습니다.
저의 부모님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우익에 가까우세요. 천황제에도 동의하시는 면이 많고요. 하지만 한편으로 자녀들에게 성장 위주의 경쟁 사회 속에서 경험하기 힘든, 정이 넘치고 풍요로웠던 경험을 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까 김소혜 프로그래머가 일본의 사적다큐멘터리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렇습니다. 일본에는 자기 얘기, 자기와 가까운 얘기를 하는 특히, 여성 감독들이 많습니다. 촬영 대상이 자신이 된다는 것이 주목이 되고, 많이 물어오는데요. 일본에서도 물론 다큐멘터리가 사회 전반에 대한 통찰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부터 맞닥뜨리고 나서 다시 사회와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다 보여주고 나타내고 난 후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  상처들을 씻어내는 과정이 보이는데, 어떤 부분의 영향이 가장 컸는지요.

큰 오빠에 관한 부분이 제가 가장 제어했던 얘기였어요. 남성기피증도 있었고,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저에게 매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겪어 냈다고 생각하고요. 한국에 와서 이렇게 대화한 것도 저의 경험입니다.

관객 / 다큐멘터리의 결론 부분에서 ‘괜찮다’고 하는데, 정말로 이제는 괜찮으세요? 최근의 가족 관계는 어떤가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에서 상영을 하기 위해 가족들의 허가를 얻어가는 중이고요. 가족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 이 영화를 하면서 저의 성과였고, 야마가시 학교 유치부 친구들과의 영화를 통한 재회와 인연이 또 하나의 성과입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현재 다음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게 큰 어려움입니다. 다음 작품을 만들어서 다시 이곳에서 상영하고 여러분들이 만날 수 있을 때 그 어려움이 없어지겠지요. 그때는 많은 포옹을 해주세요.
제가 일본에서 비디오가게를 하고 있는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빌려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개 좋은 사람들입니다(웃음). 여러분과 영화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일본에 가서 저도 이것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008.09.26 @ INDIE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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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시간표에서
9월29일 2:30 <아마추어의 반란>
10월1일 2:30 <치즈와 구더기>
상영이 추가되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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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다큐멘터리 특별전』의 리뷰를 남겨주세요!

19편의 삶과 예술과 일본사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들.
여러분은 어떤 영화가 가장 보고 싶으셨나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어떤 느낌인가요?

인디스페이스가 정말 야심차게 준비한 『일본다큐멘터리 특별전』의 19편 상영작 모두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서 준비한 이벤트 하나!
『일본다큐멘터리 특별전』의 상영작을 보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너무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섯 줄이든 열 줄이든 여러분이보고 느낀 바를, 혹은 추천하고 싶은 멘트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리뷰를 작성해주신 분 중 총 20분을 선정하여
인디스페이스가 마련한 선물을 드립니다.

  

참여방법 :

① 『일본다큐멘터리 특별전』의 리뷰를 자신의 블로그에 남기신 후
포스트 댓글에 리뷰를 올리신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세요.

 

참여기간 : 2008년 10월 5일(일) 까지

당첨자 발표 : 2008년 10월 6일(월)

 

이벤트 선물은 무엇?

① 최초의 노동장편영화, 장산곶매의 [파업전야]DVD (2명)
②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출시한 독립영화 DVD 택1 (5명)
- [엄마를 찾아서] (감독 정호현)
- [농가일기] (감독 권우정)

③ 한국독립영화의 기념비적 작품,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박스 세트 (3명)

④ 인디스페이스 초대권 2매 (5명)
⑤ 아름다운 패자 (책세상) (5명)

 

※ 선물은 인디스페이스 2층 사무실에서 직접 수령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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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디스페이스입니다.
아오야마 신지의 7시간 23분짜리 영화 [AA]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워낙 긴 영화이다 보니 슬쩍 걱정이 되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AA]상영은 두 번의 쉬는 타임을 갖습니다.
총  6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2부 3,4부  5,6부 이렇게 나뉘어 상영되고 대략 20여분의 쉬는 시간을 갖는답니다.
시네필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불끈 드는 [AA] 상영에 관객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심야상영 시 혹시 추울 수도 있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옷 잘 챙겨오시면 좋을 듯 합니다.
★ 따로 간식거리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너무 배고프지 않게 간단한 먹거리고 음료 챙겨 오시면 좋겠네요.


 9월 25일(목) AA 상영

AA 1,2부(131분)  12:30~2:41
AA 3,4부(152분)    3:00~5:32
AA 5,6부(154분)    5:50~9:24

 9월 27일(토) AA 심야상영

AA 1,2부(131분) 10:30~12:41
AA 3,4부(152분)   1:00~3:32
AA 5,6부(154분)   3: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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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3일(화) 16:30  | 상실의 파편+왜놈에게 상영 후 <왜놈에게>(누노카와 테츠로 감독) GV있습니다.

 9월 26일(금) 12:40  | 미운오리새끼 (오노 사야카 감독) 감독과의 대화 있습니다.
                         14:40  | 반신반의 (다케후지 카요 감독) 감독과의 대화 있습니다.

 9월 28일(일) 12:20  | 새로운 신 (츠치야 유타카 감독) 감독과의 대화 있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왜놈에게, 미운오리새끼, 반신반의, 새로운 신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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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1. 전향적 다큐멘터리 배급의 전략, 일본과 한국의 사례


일시_       9월 27일(토) 오후 3시
장소_      인디스페이스 (중앙시네마 3관)

초청자_   야마가미 테츠지로(YAMAGAMI Tetsujiro 山上徹二朗 ) :  배급사 SIGLO 대표
패널_      김동원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권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사회_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2>가 한국 최초로 장편 다큐멘터리로서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배급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공동체 배급과 극장 배급을 통해 6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는 전국 11만 관객을 동원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극장을 통해서 배급되는 다큐멘터리의 수는 극영화에 비해 미미한 수에 불과하며, 관객들에게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낯선 장르로 존재한다.

이에 인디스페이스는 일본 내에서 다큐멘터리 및 독립영화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급하고 있으며,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인 야마기시 테츠지로씨를 초청하여 일본 다큐멘터리 배급의 사례와 방법론, 그리고 자주상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송환>등을 일본에서 배급했던 SIGLO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들의 배급사례를 나누며
한국과 일본의 독립다큐멘터리 배급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들을 나누고, 서로의 연대 방법을 모색한다.



  ▶ 초청자 프로필                                                                                                                                          

야마가미 테츠지로(YAMAGAMI Tetsujiro 山上徹二朗 )

1954년 구마모토현 출생, 1981년 청림사(青林舎)에 입사하여 영화제작을 시작. 1986년 독립하여 SIGLO를 설립하였다.
<인간의 거리―오사카 피차별부락>(1986, 고이케 마사토 감독), <노인과 바다> (1990, 존 준커먼감독),<시가라키에서 불어오는 바람>(1990, 니시야마 마사히로 감독),  <아라카와>(1993, 하기와라 요시히로 감독), <고래잡이 바다>(1998, 우메가와 토시아키 감독),<한 낮의 별>(1998, 사토 마코토 감독) 등 기록영화 40편 이상을 독립 제작한 영화 프로듀서이자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배급한 일본의 대표적 배급사 SIGLO의 대표를 맡고 있다.



포럼 2. 새로운 미디어 운동, 아시아의 연대

일시 : 9월 28일(일) 오후 2시 30분
장소 : 인디스페이스 (중앙시네마 3관)

초청자 : 츠치야 유타카 (Tsuchiya Yutaka, 土屋豊), 일본 미디어 활동가들
토론자 : 허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간사), 박도영 (미디어문화행동)
사회 : 조동원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극영화로 이야기하기 힘든 사회적인 이슈를 포착해, 보다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80년대 그 출발부터 한국의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왔으며, 지금도 다양한 미디어의 변화 속에서 사회 운동 속으로 파고들어 운동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디스페이스는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 기간에 일본과 한국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미디어 운동에 대한 포럼을 준비했다. 이 기회를 통해, 일본에서 사회운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위축된 지금, 미디어를 통해 일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젊은 미디어 활동가들과 함께 일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도를 전망한다.
얼마 전 있었던 G8정상회담을 계기로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G8 Media Network를 결성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및 아시아의 다른 미디어 활동과 연대하여 극장상영에 국한되지 않는 전 방위적 미디어를 생산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9월 말 부안에서 있을 아시아 미디어 활동가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이들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경향과 사회운동과의 연계, 그리고 운동의 다양한 전략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하여 아시아 운동의 연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 초청자 프로필                                                                                                                                          

츠치야 유타카 (Tsuchiya Yutaka 土屋豊) : <새로운 신> 감독

1996년 생. 1990년부터 창작을 시작하여, 1994년에 셰어웨어 비디오인 <TV없이>를 배급. 1998년 독립영화 배급 기획 [비디오 액트]를 시작함. 미디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filmogrphy. <정체성>(1993), <새로운 신> (1999), <PEEP "TV" SHOW>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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