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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토크:카메라를 든 여성] 네명의 여성감독과 함께한 즐거운 수다!

by Banglee 2008. 10. 1.
오픈토크
카메라를 든 여성 : 한국과 일본, 국경을 넘어선 여성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통쾌한 수다

일시 / 2008년 9월 26일(금) 오후 5시

초청자 / 다케후지 카요 (<반신반의> 감독)

               오노 사야카 (<미운오리새끼> 감독)

패널 /  류미례 (<엄마> 감독)

            박정숙 (<동백아가씨> 감독)

사회 / 김소혜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김소혜
한국과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네 분의 감독님을 모시고 오픈토크를 시작한다. 우선 각국의 다큐멘터리 작업과 환경에 대한 잘 모를 것 같아, 먼저 박정숙 감독님이 먼저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 여성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박정숙

94년에 처음 카메라를 잡았고, 그때가 24살이었다. 처음 영상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독립영화/다큐멘터리의 역사는 89년도 대통령 선거 당시 영화가 운동으로서의 역사로 시작되었고, 그리고 김동원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처음 맞이하게 되었다.

올해가 한국독립영화협회라는 단체가 10주년이 되는 해인데, 단체 회원들이 100여 명 가입되어 있다. 물론 그 중에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만, 한독협이라는 단체만 놓고 봤을 때는 100명 중 50여명 정도가 다큐분과 회원이고 그 중 40명 정도가 제작자, 나머지는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성 감독이 15-20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성감독들의 주제는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는데, 차차 같이 얘기를 나누는게 좋을 것 같다.




다케후지 카요
일본영화역사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하면, 한국의 해방 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영화는 전쟁 도구로서 이용되어 왔다. 그리고 전쟁 후/해방 후부터 기업의 영상 PR, TV방영을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이 주로 제작되었다.
본격적인 독립다큐멘터리는 이와나미 프로덕션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상업을 위한 영화제작에서 빠져나온 오가와 신스케 감독 등,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영화를 찍는, 상업적 표현을 위한 영화에서 벗어나 독립적 스타일로 영화를 찍어내는 방식이 오늘날의 일본다큐의 역사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성감독을 꼽아보자면 70년대까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만큼 소수였다. 이것은 지금 일본 영화 내에서 여성감독이 거의 없는 것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부터 가정용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개인이 영상을 많이 찍고, 다양한 모습을 많이 찍게 됐는데, 그 중에 힘 있는 여성 감독의 영화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경우도 자신의 모습을 찍으면서 작가로 발전한 경우이다.


김소혜
한국과 일본의 다큐멘터리 역사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텐데, 서로의 영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오노 사야카

저는 일본에서 하라 카즈오 감독 밑에서 공부했다. 제가 주로 좋아하는 영화는 얼얼하고, 마음 아픈, 혹은 살아가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인데,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에 있어서의 도덕 문제라든지, 한계를 넘어서는 말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후지 감독의 영화는 삶과 병, 죽음에 대해 영화를 찍고, 저는 가족 안의 성, 공동체의 문제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박정숙 감독의 한센병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를 보았는데, 이것은 운동을 위한 시점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표현하는 바는 잘 받아들일 수 있는데, 자신의 삶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 비슷한 주제의 영화로 <대나무숲의 유언>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 한센병이 어느 정도 터부시된다.
박정숙 감독의 다른 영화는 못 봤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는 표현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끼어들 틈이 없는 것 같다.





박정숙


자신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듣는 건 참 떨리면서도 괴롭다. 이 작품은 2003년에 첫 촬영을 했는데, 그 전 작품은 여성철도노동자에 대한 작품으로, 여성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이다. <소금>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의 파업, 산업재해에 대한 교육물을 주로 만들면서 형식은 나레이션과 인터뷰 등의 굉장히 익숙한 방식을 사용했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94년부터 2000년까지 노동조합에 관련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작품에서도 운동성이 느껴지는 건 그런 역사적 맥락이 아닐까 싶다.
오노 사야카씨가 지금 24살인데, 저도 24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는 다큐멘터리 영화보다는 운동으로서의 영상활동를 했다. 한국의 대규모 파업이 가장 많이 일어나던 때였는데 나의 임무는 카메라를 들고 할 수 있는, 방송에 나오지 않는 모습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주제로 바뀌면서 그때의 사명감과는 다른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한센병’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소록도에 우연히 갔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남성’에 대한 기록은 있는데, ‘여성’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는데, 만났던 할머니가 닭장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레이션이 과도한 부분이 있었고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것은 그 당시의 내 상태가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때의 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감정의 과잉이지만, 그 상황에서의 감정의 불안정한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오노 사야카
영화를 보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바가 같았고, 화장터 신 깥은 경우 인간으로서 마음이 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류미례

<미운오리새끼>를 본 후 영화를 잘 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예술작품이든지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고, 자신의 상처를 헤집어내는 과정이 용기있으면서도 참 혹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도 사적다큐를 만들기 때문에 주로 혼자 촬영하는데, 내밀한 공기가 카메라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많다. 겸독의 경우 최소한 두 명의 스텝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 공기를 어떻게 깨뜨리지 않고 촬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사적 다큐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할때 카메라와 나의 삶이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너무 빠지거나, 깨지거나 하는데, 그게 굉장히 혹독하면서도 긴장감이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때 드는 생각이 누가 찍어줬으면 하는 생각인데 나의 마음과 같은 스텝과 일하는게 정말 어렵다. 다큐멘터리인데 극영화처럼 촬영한게 아니라면 그런 스텝과 함께 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궁금하다.


오노 사야카
당시 학생이었는데, 혼자 찍을 실력은 못되었고 스텝이 필요했는데, 가장 우수한 친구를 칭찬으로 꼬셔서 데리고 왔다. 찍을 때 그 와의 저항, 불신감 등 힘든 점이 많았는데, 오빠와의 이야기를 찍을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류미례

<반신반의>보면서 등장인물인 야마기시 감독은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선배가 있고, 나도 꼭 그렇게 경외를 표할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질문을 드리면, 실제로 야마기시 감독에 대해 배우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재현장면을 보면서, 주관객층이 누굴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 관객층이 굉장히 유의미한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일반관객층은 아니었던 것 같고, 주로 어떤 사람과 영화를 보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다케후지 카요
야마기시 감독님은 일본 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때 조감독으로 일했던 이치카와 콘 감독은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우선 내 삶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왔던 그 사람을 찍고 싶었다. 여러분도 유명하진 않지만 가장 밀접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몇 십년이 지나도 슈퍼히어로로 이름이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를 포함해서 수십 년 후에는 잊혀지는 인물이 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보통의 삶, 그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고, 지금도 삶에 대한 주제로 작품을 찍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다케후지 감독님께 묻고 싶은데, 현재 일본영화의 침체기라고 볼 수 있는데 재현장편을 보면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다케후지 카요
일본의 영화산업은 틀림없이 사양산업이다. 야마기시 감독이 활동했던 70년대부터 영화사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TV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다. 애니메이션이 발전하는 반면 다른 영화들은 왜 쇠퇴할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쓰지 않는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길이 점점 줄어든다.
야마기시 감독의 경우 30대에도 매우 큰 규모의 영화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지금의 일본에는 없다. 그게 노스탤지어라고 말했던 맥락, 그러한 배경에 대한 향수이다.
<미운오리새끼>도 영화학교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저도 학교에서 만든 작품이 이미지포럼에서 상영되었는데, 학교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한데, 실제로 사회에 나와서 영화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한때의 패기로 잠깐 동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의 감독들은 아이가 있으면서 이런 것들이 터부시되지 않고 자연스런 일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일본과 비교가 된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다 팽개치고 뭐하냐는 식으로 말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한국에서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이다.

김소혜
야마기시 테츠로라는 인물의 일본 황금기의 환상을 봉합하는 인물인데, 일본의 국가주의, 전체주의라는 핵심적 이슈로 인해 한국관객들이 보기에는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케후지 카요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좋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온, 인류의 조화와 진보에 대해 상당히 모순되어 있지만, 감독의 말을 살렸다. 특별히 이것을 주장하려던 건 아니지만 의견은 같다.
<동백아가씨>를 보면 일본인으로서 매우 마음이 아프다. 영화를 통해, 운동적, 계몽적으로 많이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서 슬픈 역사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와 함께 느끼는 건 한국의 아주머니들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아주머니는 정말 힘을 느낄 수 있다. 손이 없어도, 발이 없어도 밥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서 이런 모습이 이해될지, 가족을 그런 상황에서도 돌보는 것에 있어 힘을 느꼈다.
류미례 감독의 영화에서도 ‘아이가 있어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진심인지 묻고 싶다. 일본의 경우 여성이 영화작업을 하면서 아이 돌보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까지 해서 작업을 해야 되는지 책임을 묻는다. 그 힘은 <동백아가씨>에서 받은 힘과 유사하고, 나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엄마의 남자친구와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강함을 느꼈고, 당시 감독이 임신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여성이 힘이 크다고 느꼈다. 딸도 있는데, 매우 힘차 보이고 어떻게 자랄지 매우 궁금하다.


박정숙
두 분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소금>을 찍을 때 첫 애가 18개월 때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도 아이도 많이 힘들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울었던 기억도 많고 편집할 때는 가장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있는 아이가 우리 아이였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 힘든 것 보다 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지금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는데, 어릴때 그렇게 떨어져 있어 그런 행동을 보인 거라 듣고 아팠던 시간을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아픔도 함께 가져가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금>이라는 영화에 12명의 여성 노동자가 나오는데, 임산과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찍을 때는 힘들지만 나중에 삶에 대한 의지가 되고, 큰 용기가 된다. 지금 새 작품을 찍고 있는데, 그 할머니에게 그 에너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일본과 한국이 가깝긴 하지만 역사도 다르고, 영화에 대한 배경도 다르다. 그렇지만 계속 서로의 작품을 만들어서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김소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교류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의 다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시간을 마치겠다.

오노 사야카
제 차기작의 테마는 바로 ‘여성’이다. 여성의 문제를 젠더적 접근이 아닌, 여성이 여성으로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생에 대한 모습을 담으려 한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미운오리새끼>를 일본 내에서 상영하는게 작업의 하나이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찍는다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모두 선배들인데, 선배들의 여성으로서의 시점을 더 깊이 생각, 버리지 않고 다음 작품을 하려 한다. 정말로 감사하다.

류미례
<엄마...>를 만들면서 아이를 계속 키우고 있는데, 보육교사가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고, 천대받고 있다. 모성을 신비한 영역으로 격상시키면서, 보육교사나 돌봄 노동자에게든 봉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행복한 보육교사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다. 사회적 엄마인 보육교사와 엄마의 자리에서 어떻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업하고 있고 제목은 <먼길>(My Sweet Baby)이다.

다케후지 카요
저희 차기작은 ‘마야메’라는 여성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내년 1월에 교토에서 전시회를 여는데, 이와 함께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에 있다. 전작에서 볼 수 있듯 다큐적 측면과 함께 줄거리가 있고, 여러 장치가 있는 장면이 존재한다. 찍고자 하는 것은 설정하기 때문에 때론 다큐가 될 수 있고, 극영화가 될 수도 있다.

박정숙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은 89년, 한국의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의 공장이 있는데, 일본의 ‘스미다’라는 공장이다. 네 명의 여성노동자, 일본사람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의 차이를 다룰 예정이다.


 


 20080926@INDIE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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