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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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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지금도 쉼없이 달리고 있을 아이들  <소년, 달리다>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21일(일) 오후 2 상영 후

참석: 강석필 감독

진행: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님의 글입니다.


소년들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이나, 다른 성장영화들과는 결이 다르다. 성미산 마을공동체에서 자란 두 소년들은 다른 또래들과 다름없이 사춘기를 겪고 방황하지만,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공기 속에서 지냄이 느껴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부모는 끊임없이 지지해주고 도전 속에서 좌절하고 넘어지더라도 부모는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자유로움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함을 던져주는 <소년, 달리다>를 인디스페이스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이하 고): 서두에 ‘성미산 아이들 1세대 아이들이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왜 ‘민수’와 ‘상호’ 두 소년을 택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석필 감독(이하 강): 마을에서도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 하필 이 두 친구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소녀도 있고, 외모가 더 출중하거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진 아이도 있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대학 잘 들어간 아이도 있긴 하죠. 하지만 우선 이 친구들과 가장 친했습니다.(웃음) 단순히 친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그룹을 대표하는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아이들로만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업 본능 상 이 친구들에게서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했었습니다. 당장 제 눈앞에 보이는 이 아이들에게서 내면을 이끌어내고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 다양한 연령층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네요. 저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청소년기가 지난 젊은 분들 역시 나는 어땠었나, 그리고 부모님은 어땠는지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이 드신 분들도 나름대로 손주들을 생각해 보면서 공감하는 점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영화의 첫 장면이 2014년도인걸로 기억합니다. 2016년인 현재, 영화 속 두 소년들은 제대를 했는지 궁금하고, 아이들은 영화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강: 자전거 타고 남도로 가는 첫 장면은 아이들이 제대 직후 사회에 나가기 전에 자전거 타고 남도에 가자고 의기투합해서 다른 친구 2명과 함께 간 장면입니다. 현재 민수는 어머님이 운영하는 ‘동네부엌’이라는 마을 기업에서 일을 돕고 있습니다. 맞벌이나 혼자 사는 분들에게 유기농 반찬을 제공하는 곳인데, 거기서 일을 배우면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듣기로는 민수가 마을 일을 배우면서 협동조합이나 유기농사업 등 의미 있는 여러 소규모 기업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런 기업들이 소비자들과 만나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걸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전국 각지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규모 기업들과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상호와 함께 열심히 컨설팅 받으며 다니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제대하고 이러저러한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스스로 가치와 보람, 재미를 느끼며 돈벌이도 하는 본격적인 첫 사업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소년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응원하고 있죠.(웃음)

고: 성미산 마을의 특징이 일터와 삶터가 같이 있는 곳이고 지난 20여 년간 마을에 뿌리 내린 사람도 많다보니 이 친구들을 이끌어주실 분들이 많은데요. 아마 이 청년들한테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을까 싶네요.


관객: 사춘기 소년들을 장기간 촬영하면서 아이들 때문에 힘들거나 촬영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강: 주변에 성미산 마을의 공동육아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 걱정스런 말이 많습니다. 사회가 정말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데, 아이들을 너무 격 없이 키우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 아이들은 사적관계와 공적관계를 구분하는 개념이 10대 초반만 되도 생기더라고요. 마을 안에서는 자유분방해 보여도 정작 밖에 나가면 정말 예의바르고 생활력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성인식 장면에서 제일 미안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상호는 사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반면, 민수는 저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촬영 때 협조 안하고 맨날 뺀질거려서요.(웃음) 촬영하면서 아이들이 서로의 속내를 얘기하고 자기가 필요하고 원하는 만큼 털어놓았기에 7년간 촬영하며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 아이들이 주관이 강한 편인데 모일 때마다 항상 회의를 합니다. 어른들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이 갈등을 겪은 경험이 많다 보니 오히려 밖에 나가서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하고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지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조숙한 모습을 보이는 편입니다.

관객: 서울에도 이런 대안적인 공간이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잘 되었다거나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과는 정말 많이 다른 점이 보였습니다. 그런 점을 캐치하셔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신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감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강: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함께 놀며 정말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회의하고 논의하는 민주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어른들보다 훨씬 고차원적이에요. 이처럼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전파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대안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대학진학이 힘든 구조라서 대학을 가고 싶어도 못가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성미산 마을의 대다수 아이들은 자존감을 느끼며 스스로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가 넘칩니다. 이 친구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비록 풍족한 생활을 못할지라도 누구보다도 정말 행복하게 살 것 같다는 생각에는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

관객: 촬영하는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있었고 일부 장면에서는 어른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는데요, 이처럼 시선의 변화가 생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강: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대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가장 근원적인 질문 중 하나에요. 객관적인 거리두기를 하면서 촬영할지, 아니면 카메라가 직접적으로 그 안으로 개입할지. 어쨌든 저 역시 마을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관찰만 하는 방식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어딘가 망가지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저를 부른 적도 있습니다. 편집할 때도 카메라의 시점과 감독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굳이 설정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입할 때는 개입하고, 관찰할 때는 관찰하는 시점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고: 가장 어린 아이는 3살에 학교에 들어옵니다. 그때부터 들어온 아이를 계속 찍는다고 하면, 아무래도 촬영 여부에 앞서 객관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아예 어렵다는 걸 느끼시지 않을까 합니다.


관객: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오늘은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에 눈이 갔습니다. 듣기로는 부모에 대한 영화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강: 사실 3부작을 기획하고 촬영을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3부가 부모에 대한 영화인데요, 아이들 키우는 얘기만 집중하기 보다는 마을에서 살다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이야기들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잃어버렸던 인간관계를 다시 찾아가는 분도 계시고, 생각 차이로 나가는 분도 계시기 때문이죠. 아마 차기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듯합니다. <소년, 달리다>가 개봉하고 마무리가 되는 시점에 바로 3부 편집을 들어가지 않을까 하네요. 3부작을 3년 내로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이게 10년 가까이 걸릴 줄은 몰랐네요.(웃음)

관객: 6년간 촬영하면서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촬영 시작 후에 스토리라인의 방향을 결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강: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감독들도 많다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최소한의 가설을 가지고서 다큐를 시작합니다. 원래는 보통 청소년기가 끝나는 대학 입시 시기 전후의 3년 정도를 담고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이들은 그 시기가 전혀 분기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연장선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도 담으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전반을 담고자 했습니다. 원래는 ‘창희’라는 친구도 주인공으로 있었고, 여기서 아이를 키우는 저 역시 화자의 한 축으로 들어가 소년들과 아들을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편집을 해보고 나니 방대한 분량이 나와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로 저와 창희의 이야기를 덜어내게 되었습니다.

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감독님의 1부작은 <춤추는 숲>(2012)입니다. 인디플러그를 비롯해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시면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현재 <소년, 달리다> 개봉은 어떻게 준비 중인지 궁금합니다.

강: 관심 있는 분들을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 제작하는 만큼 배급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가장 의지하는 곳이 영화진흥위원회의 배급지원정책과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그런데 영진위의 배급지원정책이 작년부터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올봄에는 개봉하길 원했는데 아직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개봉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생각입니다.

고: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해주시고요, 마무리 하겠습니다.

강: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나중에 개봉하게 되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미산 마을뿐만 아니라 전국에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사람으로 커나가는 데에 있어 어떻게 해야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행복한지,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질문을 가지고 갈수 있는 작품이길 바라며 만약 느낀 점이 있다면 주변 분들과 함께 의견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감독은 성미산 마을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고 고민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아내는 것이 꼭 필요했다고 말한다. 성미산 마을공동체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일구어나가는 결과들을 다음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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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추운 겨울을 찾아온 여름 이야기  <한여름의 판타지아>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20일(토) 오후 8 상영 후

참석: 장건재 감독

진행: 김현수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채소라 님의 글입니다.


늦겨울의 찬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20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2015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상영됐다. 영화 상영 후 인디토크의 진행을 맡은 씨네21의 김현수 기자는 객석 뒤쪽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앞쪽으로 모은 후 본격적으로 인디토크를 시작했다. 



김현수 기자(이하 김):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들하고 만나는 자리를 갖게 됐는데, 그동안 들었던 소회와 간단한 인사 해주세요.

장건재 감독(이하 장):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작년 6월에 개봉을 했었고 당시 메르스가 돌던 때라 다른 영화들은 개봉을 미루고 그랬어요. 어부지리로 개봉관 확보에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는 보시다시피 이런 영화고, 또 여름 시즌의 호쾌한 액션 블록버스터 같은 건 아니라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변이 생겼죠. 관객들이 이 영화에 호응을 해주셨어요. 외롭지 않게 잘 지냈어요.
 
김: 영화가 몇 개 나라에서 선보였는지 기억하세요?

장: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요, 스무 개 도시에서 상영한 것 같아요.
 
김: 해외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해외의 관객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장: 주로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어요. 저는 한국감독이잖아요, 어떻게 일본에서 촬영하게 됐는지 궁금해 하셨어요. 프로듀서가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이시거든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됐는지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질문이 많았어요. 그 감독님을 아시는 분들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질문했어요.
 
김: 처음 보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간단히 알려주세요.

장: 이게 두 파트로 나뉜 영화잖아요. 1부는 제 이야기예요. 제가 일본 가서 ‘태훈’(임형국 분)처럼 사람들 인터뷰하고 조사하고 다녔거든요. 왜냐하면 이 프로젝트가 일본에서 기획이 돼서 제가 참여하는 영화였기 때문이에요. 도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돌아다녔죠. 근데 태훈처럼 저도 그 공간이 주는 느낌 같은 것들은 있었는데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이라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어요. 원래 일본의 고조라는 곳과 상관없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불가능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해서 1부의 이야기가 나온 거고, 2부 이야기는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렇게 만들게 됐습니다.(웃음)
 
김:  처음에 고조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을 때 갖고 있던 방향은 1부 정도였던 것인가요?

장: 저것도 거의 저의 취재 과정에서 나온 트리트먼트 같은 거예요.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에요.(웃음) 사실 영화 개봉 했을 때는 열심히 얘기하긴 했는데 할 얘기가 많은 영화는 아니에요. 시간이 부족한 영화였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설명 드리긴 좀 그런데, 부족한 시간 안에 못 찍으면 무산되는 프로젝트였어요. 근데 저는 이 영화를 되게 찍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제가 살고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기사 같은 거 찾아보신 분들도 있으실 테지만 2부는 아이템 정도만 가지고 6일 정도 안에 촬영한 영화거든요. 여배우가 와서 혼자 여행한다는 설정으로 막 찍었어요. 엔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찍은 영화였어요. 스텝들도, 저도 사실 몰랐고.(웃음) 현지 일본 스태프들이 대부분이어서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게 필요했던 과정이었습니다.
 
김: 일본 영화인들과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거고 영화를 만드는 방식의 차이도 있을 텐데, 대본도 잘 짜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설득과정을 거쳤는지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장: 저는 시나리오가 있어도 현장에서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고 배우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첫째 날, 둘째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통역하시는 분이 두 분 정도 계셨는데 배우하고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것들은 공식적인 통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 때 일본 스태프들이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려야 했어요. 이 영화 찍을 때 제가 유난히 배우들하고 이야기 많이 했거든요. 당시 현장 스태프들은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을 하셨던 분들이었어요. 첫날 촬영 끝나고 일본 조감독이 와서 ‘일본 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배우가 대사 NG를 냈을 때 말고는 현장에서 지시할 게 많이 없다. 대사대로 못했을 경우 다시 찍으면 되는 거고, 감독이 현장에서 오래 이야기를 하는 게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 제기가 들어 왔어요. 둘째 날 촬영을 하는데 눈치가 보여서 끝나고 스태프들 모아서 좀 봐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준비가 많이 안 된 프로젝트라서 배우하고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다. 한국의 스타일도 아니고 제 스타일도 아니고, 이번 프로젝트는 그냥 이렇게 해야 될 것 같다’라고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조금 나아졌어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본 스태프들은 빨라요. 제 조감독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조감독이었거든요. 최근에 작업하신 두, 세 편의 어시스트로 일했던 친구예요. 상업과 예술영화에 이해가 있는 친구고 일을 굉장히 잘하는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도움 많이 받았어요. 시간 관리도 분 단위로 체크가 들어오고. 저도 찍다보니 적응을 했던 것 같아요.
 
김: 감독님도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자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과 공동제작으로 이름이 올랐는데, 제작과 연출을 같이 겸하게 되신 이유가 궁금해요.

장: 저는 기본적으로 제작자라고 생각을 해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비의 사이즈를 정하고 어떤 게 가능한지 아닌지 가늠하고 찍는 게 중요해요. 늘 그렇게 해왔어요. 이번 작업도 준비를 하다보니까 어떤 부분에 있어 주도하지 못하는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원래 가와세 감독님께서 기획을 하시고 판을 짜주셨는데, 한국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섞였고 후반작업도 대부분 한국에서 했어요. 그렇게 꾸려지면서 제가 ‘공동제작을 하자. 제작비의 반 정도를 내가 갖고 오겠다. 마무리와 마스터링은 한국에서 할 테니 크레딧과 권한을 부여해 달라.’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들은 척도 안 하셨어요.(웃음) 왜냐하면 가와세 감독도 저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시는 분이거든요. 감독님의 품에 안겨서 영화를 찍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었어요. 오랫동안 답변을 얻지 못하다가 여러 번 설득을 해서 이렇게 되었어요.
 
김: 어떤 결말로 갈지 모르는 스토리입니다. 이런 제작 방식에 대해서 감독님께 전권을 일임했는지, 아니면 어떤 부분에 가와세 감독님의 의견이 들어갔는지 궁금해요.

장: 결과적으로는 감독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다 했어요. 충고, 조언, 간섭, 훼방 등 이런 거 다 하셨는데 도움이 됐고요. 영화의 배경인 나라현이라고 하는 공간은 가와세 감독님께서 태어나 지난 20년 간 영화 작업을 했던 고향이고 너무 잘 아는 곳이에요.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알아볼 정도라 제가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가와세 감독님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특유의 자연적인 것, 그 지역의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죠. 제가 그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런식으로 보이면 어떨까 유도는 많이 하셨어요. ‘저런 그림들 너무 아름답지 않냐’해서 보면 가와세 나오미 영화에 나오는 컷이에요. 그런 풍광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촬영 감독님이 현장에 오시면 또 되게 불안했어요. 인서트 찍으라고 할까봐. 저는 안 쓴다 얘기도 했고요. 제 강박일 수도 있는데, 보면 ‘가와세 쇼트’같은 게 막 있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카메라를 뒤로 빼거나 더 들어가 보자, 다르게 위치를 찾아보자 했던 기억이 나요.
 


김: 고조라는 지역색이라고 해야 될까요? 지역색이 강하게 보이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저도 여러 번 영화를 보면서 볼 때마다 궁금했던 게, 영화 속 인물들의 동선이 실제 지리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지였어요. 그 쪽 지역을 잘 몰라서요.

장: 실제로도 극중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다닐 수 있어요. 넓은 범위가 압축돼서 나온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 제가 산책을 하거나 하면서 발견한 공간이에요. 지역적 특색이랄까 고유의 어떤 것들을 저는 사실 찾아내지는 못했어요. 비교할만한 다른 지방 도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요. 그런데 신기한 건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시골이나 지방 도시에 가면 이주 여성들이 되게 많잖아요. 고조에는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정말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영화에 사람이 나와야 되는데 너무 없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이 프로젝트가 나라영화제에서 기획한 영화인데, 제가 그 프로젝트의 세 번째 감독이거든요. 앞 선 두 영화들은 지방의 한적함, 아름다움, 텅 빈 공간을 다룬 다큐멘터리였어요. 굉장히 서구적인 시선으로 만들어진 자연다큐멘터리, 오지의 늙은 노인을 다룬 영화들이었어요. 쇼트의 느낌은 가와세 나오미와 같았고요. 그 공간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부분들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 첫 장면이 카페에 노인들 앉아있는 장면이에요. 헌팅 다니다가 카페에 쉬러 들어갔더니 노인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왜냐면 간판도 없었고, 부근에 영업을 안 하는 곳이 많아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 단골손님들이시더라고요. 그리고 거리에 사람이 없는데 집 담벼락에 귀를 기울이면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요. 이런 것들이 이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김: 혹시 현지 분들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나요?

장: 네. 제작비 일부가 고조시에서 나오기도 해서 2014년 나라영화제와 부산영화제 사이에 고조에서 상영한 적이 있대요. 영화 완성했을 때 상영본 파일을 일본으로 보냈어요. 고조에 200석 정도 규모의 회관에서 가와세 감독님의 주관으로 특별 상영회처럼 상영을 했었어요. 저도 초대를 받았는데 못 갔어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마을 분들을 인터뷰 할 때 다들 의아해 하셨어요. 여기에서 왜 영화를 찍느냐고. 그런데 그런 곳에서 스토리텔링이 나온 것에 대해 되게 즐거워 하셨대요. 젊은 애들이 여기 와서 데이트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기뻐하시고, 동네 아는 사람들 나오니까 즐거워하시고. 또 2부에서 ‘러브러브’ 하잖아요. 그때 아주머니들이 상당히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 영화감독 태훈이 만난 현지 노인들이 실제 고조시에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분들 캐스팅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장: 사전 인터뷰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촬영 요청 말씀을 드렸던 분들도 있고, 돌아와서 일본 스태프한테 섭외 부탁한 분들도 있어요. 대부분은 다 제가 미리 만났던 분들이에요. 처음 나왔던 카페 노부부도 그렇고, 주리 카페 사장님도 그렇고. 인터뷰 장면은 제가 처음 조사하면서 드린 질문들로 이루어졌어요. 처음 드렸던 질문에 조금씩 첨가해서 만든 장면들이예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 질문이 있었어요. “‘고조’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영화를 찍으면 좋겠나요?”였어요. 주리 카페에서의 러브스토리는 그분의 실제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드린 디렉션이에요. 원래 “‘고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했을 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셨고, “어떤 영화를 찍으면 좋겠나요?” 했더니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셨어요.(웃음) 그리고 촬영 시작할 때 장비들이 도착하니까 다들 되게 놀라셨어요. ‘진짜 찍네’ 하시고. 처음 나온 카페의 부부께서는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하세요. 질문도 싫어하셔서 겨우겨우 대답을 이끌어냈어요. 촬영도 계속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와세 감독님이 뒤에서 손을 써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김: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추모 문구는 어떤 분께 쓰신 건가요?

장: 1부에 겐지 씨 어머니로 나오는 할머니, 시노하라에 계신 할머니가 영화 설정으로 2부에 돌아가시는 걸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후반 작업할 때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분의 이름을 앞에 넣고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김: 이 영화가 작년 한 해 사랑받은 이유가, 영화의 독특한 구성과 더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처음 봤을 땐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는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봤었고, 두세 번째 볼 때는 또 다른 영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를테면 1부의 주인공들이 죽고 난 이후 그 자식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1부와 2부의 순서가 뒤바뀌어도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고요. 많은 관객들을 만나셨을 텐데, 독특한, 인상적이었던 해석이 있나요?

장: 이야기 해 주신대로 2부의 이야기가 태훈이 오기 전에 고조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는 감상이 있었어요. 영화 만들면서는 의식을 전혀 못했는데 그 얘기 듣고 나서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느낌이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1부는 다큐멘터리풍의 이야기, 2부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극영화로 구분하면서 제작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 작업방식은 완전 달랐어요. 2부를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1부는 짜인 각본대로 찍었거든요. 상반된 작업 방식에서 나온 기이한 영화로 봐주신 것 같아요. 단순하게 재미없다고 이야기 해주신 분들보다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이 고마워요. 왜냐하면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 분들이 이 영화를 봐주실까도 고민했지만, 보셔도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럴 바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보자, 하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다수의 불특정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장면 없이, 감독으로 저의 의도나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관철시키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들이 나오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죠. 
 
김: 또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음악이에요. 처음에 시내에서 시노하라로 들어가는 과정, 도로를 따라서 갈 때 음악이 사용이 됐는데, 영화 음악에 대한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장: 1부에는 소극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에 반해 2부는 ‘혜정’(김새벽 분)이라는 인물의 감정에 조력할 수 있는 소리로의 음악이라는 컨셉은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감독님과 그렇게 디자인 했어요. 저도 처음 작업해보는 분이었고,  ‘무키무키만만세’의 만수 씨에요. 영화음악도 하시고 본인 개인 작업도 하는 뮤지션이에요. 그 전에 영화음악 작업한 두 편의 작품을 보고서 소개를 받았어요. 일단 이 감독님의 장점은 본인 음악과 영화음악이 스타일이 달라요. 두 개의 영혼을 갖고 계시고.(웃음) 그래서 새로운 작업을 기대할 수 있었어요. 제가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요.
 
관객: 묘한 영화라서 보고나니까 기분이 이상합니다.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결국 키스를 하잖아요. 일관되게 유지했던 정서, 그 나른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가 이 영화의 특이한 기조, 분위기라고 느꼈는데, 그게 해소되어 여운이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그러셨어요?(웃음) 찍을 당시에 감독으로서의 판단을 말씀드리면 대답이 될지 모르겠어요. 작별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키스신은 계획에 없던 장면이었거든요. 보통 그 시점에서 입을 맞추면 숙소 앞이기도 하니까 ‘라면 먹고’ 갈 수 있잖아요.(웃음) 근데 입을 맞춰도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그렇게 찍어보자, 하고 찍었습니다.
 


김: 여자는 ‘NO’라는 제스처를 했지만 계속해서 ‘시도’하는 남자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장: 이와세 료 배우와 김새벽 배우의 성향들이 반영되었어요. 하지만 이와세 료는 그렇게 적극적인 타입은 아니에요. 아마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주문을 해서 저런 인물이 됐어요. 제가 그런 타입이거든요. 보통의 경우라면 어색하게 헤어졌을텐데, 내가 서울 가면 가이드 해달라는 말이 새벽 다섯 시에 홍대 클럽에서 놀고 나온 후 편의점 앞에서 해장국 먹으러 가자는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아요.
 
김: 디테일한 묘사들은 감독님이 디렉션을 해주신 건가요?

장: 마지막 장면은 배우들이 채워 넣은 게 굉장히 많아요. 저는 두세 포인트 정도의 미션을 줬어요. 1부에서 태훈과 미정이 맥주 마시면서 오늘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즉흥적인 연기에 기반을 두고 만든 신이예요. 배우들이 한 행동이 되게 많아요. 손등에 연락처 쓰는 장면도 그렇고, 2부에서 둘이 우물 갔다가 같이 점심식사 하는 장면들도 그렇게 만들었어요.

관객: 이 작업을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찍으신 건지, 영화를 찍는 프로젝트를 하는 마음으로 하셨는지가 궁금해요.

장: 어떤 의도로 질문 하셨는지는 알겠는데, 저에게는 그 둘 다 같은 마음이에요. 정반합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로 만들었어요.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다가는 안 되겠다, 하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후반작업에서는 돈도 똑 떨어지고. 그래도 완성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관객: 1부와 2부가 연속적인 측면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아요. ‘유스케’(이와세 료 분)가 똑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 그리고 할머니도 그렇고.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1부와 2부가 굉장히 차이나는 게 폐교 장면이에요. 1부에서는 사진을 직접 보여주다가 2부에서는 유스케의 손짓으로만 보이고 완전히 보이지 않는 순간이 그랬어요. 그 연속성에 대해 감독이 스스로 차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도가 있었나요?

장: 리스트 업을 해보면 장소가 많지 않아요. 같은 곳에서 촬영했지만 한 번에 찍지 않았고 2부는 두 번 방문해서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단순하게, 그 공간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상반되거나 대구를 이루지만 좀 다른 조화나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특히 촬영감독님하고 저하고 되게 좋았거든요. 화학적인 반응이랄까.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김: 1부에서 할머니 인터뷰할 때에는 고조시의 전경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두 사람이 할머니가 살았던 집이라는 대화를 할 때 방 안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고조시를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도 독특했어요.

장: 1부 촬영을 순서대로 끝내고나서 1부가 어떻게 구축이 될지 대강의 감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감독 모니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현장 편집 전혀 없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찍었어요. 2부 찍을 때는 제가 배우들과 리허설 하고 있으면 촬영감독님이 대충 셋업을 하셨어요. 제가 원하는, 상상했던 그림들이어서 수정을 많이 안했어요. 1부의 시간을 겪으면서 2부의 콘셉트를 짤 때는 둘의 판단이 대립 없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관객: 고조시의 우물의 전설이 원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영화의 복선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요.

장: 지팡이로 찍은 곳에 우물이 생긴 것은 있는 이야기이고요, 그 뒤의 이야기는 지어낸 거예요. 약간 에로틱하잖아요. 에로틱한 농이 이 여자에 대한 마음의 은유적인 표현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 그 이야기가 마치 나무꾼과 선녀처럼, 그곳에 왔다가 간 사람이 혜정 같고 남아있는 사람이 유스케 같아요. 
 
관객: 1부와 2부의 데칼코마니 같은 그런 형식적인 특징을 통해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 사실 그렇게 둘로 쪼개고 비슷한 요소를 배치하고 같은 인물이 다른 역할을 하고, 그렇게 찍으시는 분이 홍상수 감독님이잖아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도 그렇고. 찍을 때는 그런 걸 의식을 못했어요. 원래 2부는 김새벽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일본 배우 캐스팅 진행을 했었어요. 그게 잘 안돼서 새벽 씨한테 체류 일정을 늘려 달라 부탁을 했죠. 1부의 미정과 2부의 혜정 이름 다른 건 그 이유예요. 유스케는 같은 인물로 하려고 했었고요. 1부의 감독 취재기를 바탕으로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것은 희미하게 있었어요. 제가 마치 그 감독인 것처럼 찍었거든요. 만약 1부와 2부의 관계를 의식했다면 아마 적극적으로 피했을 거예요. 1,2부 구조라는 것이 근래의 몇몇 작가들이 쓰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때의 최선의 판단이었어요. 


김: 김새벽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연기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디렉션을 줬는지, 애드리브로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도 궁금해요.

장: 김새벽 배우는 감독이 많이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예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즐기는 배우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감독의 완전한 종속체로 연기하는 것이 목표라고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배우에요. 하지만 엄청 도움을 받았어요. 새벽 씨가 저의 부족한 부분들, 빈약한 상상력을 많이 채워줬어요. 그리고 혼자 여행을 많이 해요. 그런 감각을 갖고 있었고,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목소리에서 주는 어떤 믿음직스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미적으로도 훌륭하고 그 아름다움이 주는 신뢰감이 부여되는 인물의 느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장점이 있는 배우고 또 일본어를 되게 잘 해줬는데, 원래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대학 다닐 때 졸업하기 위해 필요해서 공부했던 거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단시간 내에 만들어내는 집중력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납득이 안 되면 연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게 많이 보였어요. 서로 정직하게 작업을 해나갔던 것 같아요.
 
김: 이와세 료 배우에 대해서도 여쭤볼게요. 두 배우의 연기스타일 차이가 어떤 게 있는지요?

장: 일단 2부에서 조화가 좋잖아요. 둘 다 리시브, 리액션이 좋은 배우들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장면도 굉장히 흥미롭게 잘 만들어 냈어요. 이와세 료 씨는 개인적으로 그 전부터 알고지낸 친구였고, 그래서 작업하며 쿵짝이 잘 맞았어요. 그리고 귀엽고요. 그렇습니다.(웃음)
 
김: 뜬금없는 질문인데, 2부가 하늘, 구름으로 시작하잖아요. 그건 실제 고조시의 하늘이었나요?

장: 촬영 소스 확인 하는데 촬영감독님이 하늘을 엄청 많이 찍어 놓으셨더라고요. 그 중에 되게 좋은 구름이 있었어요. 마치 그림 같은 구름이잖아요. 불꽃놀이와 더불어 2부의 타이틀백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김: 하늘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나요?

장: 그냥 선택했어요. 편집을 직접 했는데 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되는, 청명한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배치를 했어요.
 
김: 감독님 전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렇게 알려져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내가 좀 해보고 싶다, 요새 주목하고 있는 혹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장: 네, 있어요. 요즘 ‘왜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그런 생각 많이 하지 않으세요? 정말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들어요. 이 지경이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될까,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고 영화적인 상상을 가미해서 코멘트 해보고 싶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까지, 약간 영화로 도망 간 느낌이 들거든요.
 
김: 지금까지의 세 작품(<회오리 바람>, <잠 못 드는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과는 조금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장: 만들어봐야 알 것 같아요.(웃음) 전작을 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연애 이야기를 주로 만드시네요’ 라고 말하며 ‘사랑꾼 감독님’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영화는 제가 30대에 만든 영화고, 이제 불혹이 됐어요. 40대에 만들 지도, 펼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관객들을 위해 한 마디 해주세요.

장: 오늘 날씨가 갑자기 좀 추워진 것 같아요. 주말인데도 밖에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구정이 지난 2월은 쓸쓸해요. 봄이 오기 직전이라 마음도 좀 그런데, 인디스페이스까지 찾아오셔서 철지난 영화, 계절이 다른 영화를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다른 계절에 봐도 좋으니까 나중에도 봐주세요. 또 홍보 좀 하자면 이 영화가 6월에 일본에서 아주 작게 개봉합니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해요. 그때 프로모션 하러 갈 것 같고, 일본 관객들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그곳의 독립영화 시장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간 새해 덕담으로 ‘올해 잘 버텨보자’ 식의 말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실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더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 못하신다면 저는 다른 나라에 사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인디스페이스도 그렇고,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로 4월에 총선도 있으니 우리가 잘 해야지, 마냥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난데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겨울은 다른 국면으로 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 인디스페이스가 좌석도 되게 많고 공간 채우기가 많이 어려워요. 옆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도 많이 찾아와주시고 주변 분들한테도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주말 잘 보내시고 잘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반팔을 입고 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덥다고 말하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력하게 뿜어낸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여름에 보아도 좋고 겨울에 보아도 좋은 영화였다. 인디토크 자리에서 장건재 감독은 판타지 같은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판타지 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드는,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낸 영화는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해볼만 하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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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현재 진행형의 기록  <나쁜 나라>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20일(토) 오후 4 30분 상영 후

참석: 김진열 감독

진행: 백재호 감독 (<그들이 죽었다>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민중이다. 제목 그대로 <나쁜 나라>는 정부에 대한 분노이자, 민중을 향한 외침이다. 세월호를 잊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잊지 말자고, 더는 나쁜 나라로 만들지 말자고 외치는 목소리이다.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난 토요일,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기획전에서 <나쁜 나라>의 김진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 <나쁜 나라>를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진열 감독(이하 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며칠간은 TV와 인터넷으로 상황을 지켜봤어요. 그러던 중에 기록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안산 시민단체 쪽에서 왔어요. 처음에는 워낙 큰 참사였기 때문에 그 현장에 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렵다고 말씀드리고 다른 작업자를 찾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안산 시민단체 쪽에서 20~30년 후에 세월호 참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기록 작업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부담을 덜면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 전에 안산 지역에 인연이 있는데, 안산에서 6년 전부터 소수자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제가 교육하던 지역이 안산 단원고 아이들이 많이 움직이는 장소였어요.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거리에서 마주쳤을 아이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백: <다이빙벨>(2014) 이후 세월호에 관한 영화가 나오지 않은 걸 보면서, 제작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만들 때 유가족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거부감이 들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워지잖아요. <나쁜 나라>를 제작할 때 유가족들이 도움을 주시거나 자문을 주신 게 있었나요?


김: 처음 시민단체 쪽의 요청을 받아들인 뒤 저희가 제안했던 게, 유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기록을 하겠다는 거였어요. 가족협의회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한 달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그 동의를 얻는 과정에는 안산 지역에 활동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많이 컸죠. 그 당시 언론과 카메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있으셨는데, 기록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안산 시민단체 분들이 많이 얘기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도 가족들 기록을 하다 보면, 현장 활동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도 했어요. 시간이 꽤 흐른 뒤, 가족들이 ‘우리 옆에 남아 줬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있어서 힘이 난다’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나쁜 나라> 개봉을 하고 관객을 만나는 과정에서 작업자로서의 기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이 영화를 통해 시민들을 만나게 됐다는 기쁨이 좀 더 큰 것 같아요.


백: <나쁜 나라>는 관객들의 티켓 나눔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혼자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보여줌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진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것 같아 티켓 나눔은 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이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신지, 아니면 기록에 의미를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처음에 기록 측면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와 안산 측에서 이야기했던 게,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완성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죠. 동의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게 있을지 생각하게 됐어요. 기록을 3개월 정도 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을 의도와 주제로 정리했죠. 그 후에 가족들이 물어보면, 우리의 주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유가족의 활동’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나쁜 나라>의 경우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떤 다큐멘터리든지 연출자의 의도는 분명히 있어요. 그 의도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고요.


관객: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지금도 후속으로 어떤 작품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고민 중에 있어요. 관객을 만나면서 가족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선보이는 게 가족에게, 관객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추후 계획은 몇몇 분한테 의논을 드린 단계로 아직 기획 단계에 있어요. 그리고 대안매체가 세월호 참사 기록에 큰 기여를 했어요. 저는 대안매체 활동가를 만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거든요. 이후에도 꾸준히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또 가족 안에도 ‘416 TV’라고 유가족이 운영하는 방송이 있어요. 그 아버님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 416 연대 안에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구성된 ‘미디어위원회’도 있어요. 이곳에서는 2주기에 맞춰서 세월호 옴니버스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4월에 <업사이드 다운>이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세월호 참사에 관한 작업을 진행 중에 있어요.


백: 유가족과 같이 관객을 많이 만나셨어요. 관객과의 대화 중에 기억나는 질문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는지요.


김: 가족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관객들은 가족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 하세요. 가족들은 저한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관객에게 하시더라고요. 공적인 공간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안에 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어떤 어머니는 GV 끝나고 나서 저에게 ‘저 화면 속에 있는 사람이 참 슬프네요’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본인의 모습을 객관화시키는 거죠. 마음이 좀 그랬어요. 그래도 영화를 6번 본 다른 어머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지난날을 많이 생각해봤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과거에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앞으로 좀 더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시간에 대해서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올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을 거 같아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가족들이 말씀해주세요.


백: 영화를 처음 접할 때 <나쁜 나라>라는 제목, 세월호라는 소재의 무거움 때문에 절 더 분노하게 하는 영화를 기대했었어요. 근데 잔잔한 분위기로 가족들이 활동하는 걸 가까이 보는 거여서, 약하다, 강력하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늘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면서 그때 가진 생각이 달라졌어요.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 당시 나는 저기서 무엇을 했는데, 지금은 뭘 하고 있지. 한 아버님의 인터뷰 중에 다른 참사가 있었을 때 외면했는데 그때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참사가 일어난 거 같다며 지금 이걸 하는 건 본인과 죽은 아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셨을 때 한 번 더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어요. 완성도를 떠나 소중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 영화의 완성도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마음의 표현으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편으로, 가족들이 배상, 보상을 받고 활동을 멈춘 게 아니라 끝까지 싸우겠다며 아직 거리에 계시고, 가족들의 활동이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나쁜 나라>를 찾아주시는 거 같아요.


백: 얼마 전에 유민 아버지가 경제적 상황으로 운동을 중단하신 걸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현재 운동하시는 유가족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알고 싶어요.


김: 가족들은 우선 ‘노란 리본 달아줬으면 좋겠다.’, ’농성장 상황을 공유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요. 현재 유민 아버님을 비롯한 많은 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고 싶은 분들도 계신 거 같은데요. 이제 ‘416 가족 협의회’가 사단 법인으로 됐어요. 조만간 후원을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어요.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가족 협의회로 후원을 해주시면 가족들이 이후에 계속 활동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백: 마무리 발언 부탁드립니다.


김: 언젠가 분명히 세월호 침몰의 이유,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 제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가족들 옆에 있든, 가족들과 좀 떨어져서 다른 일들을 하든, 세월호 참사에 마음을 놓지 않고, 제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거 같고,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함께 해주는 게 연대의 표현이라 생각해요. 나중에 우리 모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힘 모아서 함께 했으면 합니다.


세월호를 잊는다면 <나쁜 나라>는 계속 나쁜 나라로 남는다. 나쁜 나라를 좋은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세월호를 잊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삶 속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작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감독의 말처럼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 힘을 보탠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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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  <잡식가족의 딜레마>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19일(금)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황윤 감독

진행: 조세영 감독 (<자, 이제 댄스타임>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이번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화제였던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누구나 좋아하고 즐겨먹는 ‘고기’, 그것에 대해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어두운 이면의 현실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육식은 이제 더 이상 외면 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조세영 감독의 진행 하에 황윤 감독과 함께한 인디토크는 이 영화의 탄생 비화부터 미처 몰랐던 속사정까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조세영 감독(이하 조): 황윤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찍게 되셨어요?


황윤 감독(이하 황): 제가 야생동물에 관한 영화를 만든 적이 있어요. 벌써 15년이 흘렀는데요. 그 후로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세상에는 야생동물의 생태를 다루는 다큐가 많지만,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9년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구제역 살처분이 전국을 휩쓰는 시기에,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이기도 하신) 임순례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마침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욱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이 천안이라, 근처에 살처분이 행해지고 있다 들어서 현장에 방문을 했습니다. 처음엔 거센 바람소리인 줄 알았던 ‘끼익-’하던 소리가 알고 보니 돼지들의 비명소리였어요. 그렇게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작년 5월, 4년 4개월 만에 최종본이 나와서 개봉을 했습니다.


조: 그래서 임순례 감독님은 그 후에 어떤 영화를 만드셨나요?


황: <미안해, 고마워>(2011) 옴니버스를 만드셨죠.


조: 많은 관객 분들이 엔딩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실 텐데요.


황: 여러 관객 분들도 궁금해 하셨는데요, 마지막에 제가 받은 선물은 그야말로 ‘선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냉장고에 넣고 몇 달을 고민했어요. 결국,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관객: 저희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특히 돼지가 새끼를 낳고, 거세당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작년에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다른 영화들도 보고나서, (고기를) ‘감사하면서 먹자‘는 게 저만의 타협점이에요. 이런 문제들을 보면서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할까‘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가족들 간의 딜레마는 어느 집에서나 벌어지게 될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나 음식을 제공하는 엄마로서 그런 문제를 더 느끼는데요, ’타협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황: 제가 영화에서 정답을 말하지 않았듯이 선택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채식주의자도 종류가 다양하거든요. 유연하게. 밖에서는 (고기를) 안 먹고, 집에서는 잘 키워진 고기를 먹는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 결론을 짓기보다는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짚고 싶었고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흔쾌히 농장 편을 들 수도 없었습니다. ‘단가’라는 것 때문에 농장에서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해답은 먹는 소비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관객: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돼지생각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피해갈 수 없는 우리는 과연 어떤 소비자로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이 들었습니다. 


황: 중요한 지적이에요. 저도 처음엔 돼지에 대한 영화를 찍었는데, 계속 고민을 하다 보니 나중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의 문제까지 가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선언이었어요. 사회에서 무의식중에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많아요. 축산업 쪽에서 대량화 시설을 갖춰야지만 국가에서는 예산을 지원합니다. 그러다보니 고기의 소비가 높아졌고 심장병, 암, 뇌졸중의 통계 그래프가 늘어났습니다. 누군가가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탈출하는 것이 곧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선택이구나 느꼈습니다. 



조: 감독님이 이번에 녹색당에 비례대표로 출마를 하셨어요. 


황: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판을 떠날 생각은 아닙니다.


관객: 육고기만 안 먹은 지 11개월째입니다. 책을 읽고 내가 생각했던 현실과 실제 까발려진 현실 간의 괴리를 느낀 후 고기를 끊었습니다. 회식이나 어려운 자리에 갈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사소한 질문인데요, 감독님이 하는 행동의 추진력을 주는 에너지는 뭐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또 축산업 쪽의 외압은 없었나요?


황: 개인적으로 금기시 되는 문을 들어갔을 때, 두려움이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국내 PD님한테 여쭤봤을 때도, 이 사안 관련 방송할 때 업계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상영을 많이 했던 작년엔 아무 일 없었어요. 제가 공장축산을 악의 축으로만 그리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기획의도도 충분히 말씀드렸고, 몰래카메라로 찍지도 않았습니다. 제 고민으로 풀어나간 거죠.


조: 현재 추진하고 있는 건 있으세요?


황: ‘정의감’에 대해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단순히 동물을 좋아해서 찍는 건 아니에요. ‘비인간 동물’에 대해서 찍을 때 왜 사람들은 단순히 호불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사회적 약자이자 가장 억울한 존재는 ‘비인간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저의 편견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저 또한 약간 그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조: 아까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돼지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각자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주체성을 어떻게 확립해야 하는지를 계속 진동시키는 진폭제의 역할을 이 다큐멘터리가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에 인터뷰하신 분은 어떻게 섭외하신건가요? 또 모성애 얘기를 하셨잖아요. 이건 자칫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도 있는데요. 어떤 관객들의 경우는 너무 감정호소에 매달린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황: 단순히 돼지들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인간과의 관계, 바이러스로 인한 생존의 피해를 함축하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살상에 동원된 사람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크레파스 그림은 살처분에 동원되었던 군인들의 그림이에요. 그 군인들의 인터뷰 중 이런 게 있었어요. 처음엔 너무 하기 싫어서 회피했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나중엔 즐기기까지 했다고요. 평상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단계까지 간 것이죠. 그 중에서는 과로하셔서 뇌출혈로 사망하신 분도 계십니다. 낮에는 살처분하고 밤에는 민원 업무 해결하느라 과로에 걸리셨어요. 제가 인터뷰를 한 분은 이 문제에 대해 알리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입니다. 모성애의 경우, 모성애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생명체를 키우는 인간과 돼지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십순이의 출산을 보며 나의 출산이 떠올랐고 또 십순이의 인내심에 감탄했습니다. 여성 페미니즘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조: ‘홧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인터넷 댓글에서 특히 많이 보게 되는데요.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분노로 해소를 하는데, 그 분노의 대상들은 곧 약자가 되죠. 또 그 중에 극단적인 약자는 동물, 어린이, 여성입니다.


황: 미국에서는 FBI가 동물살해하는 사람을 강력범으로 취급합니다. 엽기살해자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모두 ‘방황’과 ‘동물학대’를 합니다. 그 동물학대가 곧 사람들에게 전이된다는 점을 미리 알고, 미국은 강력하게 단속시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의 권리보다 그 주인의 소유권이 더 강조됩니다. 동물을 전혀 구출할 수가 없어요. 



조: 도영이 급식 문제는 요청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황: 그 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유치원 급식 또한 매일 고기만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간식을 매일 아침마다 싸줍니다. 오히려 이 급식만 먹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예요. 공장축산에서 수많은 약병이 굴러다니는 것을 봤고요, 그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취가 나고, 돼지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또 그런 스트레스 받은 돼지를 우리가 먹고 있고요. 실제로 광주에서도 그렇고 몇몇 도시에서는 선택 가능한 급식을 시행한 적이 있어요. 법으로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남편 분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콩고기를 드셨는데요.


황: 이게 전자담배랑 비슷한데요, 이미 너무 고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콩고기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유럽은 전체적으로 채식으로 기우는 추세에요. 구글과 페이스북의 CEO들도 채식고기를 파는 기업을 인수했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런 트렌드가 형성될 것 같습니다.


조: 남편 분의 마인드는 바뀌셨나요?


황: 채식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또 지금은 옹호적으로 바뀌었죠. 저에게는 고마운 사람이에요.


조: 다큐멘터리 업계에 떠도는 말로, ‘첫 단추를 잘 끼워라’는 말이 있는데요. 감독님은 현재 동물 소재로 15년 하고 계시고, 저는 섹슈얼리티로 15년 째 하고 있습니다.(웃음) 감독님께서 마무리 말씀 해주세요. 


황: 좋은 시간이었고 보람이 있어요. 현실로도 많이 퍼지게끔 같이 고민해주세요. 현재 스톨 없애는 것에 100만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녹색당에서 할 수도 있고, (동물보호단체) ‘카라’ 홈페이지에서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관을 나서서 올라탄 버스는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만원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통화 소리와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공간 때문에 얼른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던 와중, 문득 평생을 좁은 스톨 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하는 동물들이 생각났다. 상상도 못하는 악취와 오물덩어리 사이에서 일평생 지내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 동물들은, 그 어떤 선택권마저도 모두 빼앗긴 채로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으로 다른 약자의 그것을 짓밟고 말살해버리는 건 아닐까. 자연은 영원히 순환한다. 무심코 행하는 잔인한 관습들이 언젠가 결국 자신에게 다 되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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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온당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외침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18일(목) 오후 8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강유가람 감독 (<진주머리방>, <모래>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선 ‘혐오’가 절대다수의 정당한 폭력수단이 되어버린 듯하다. 따라서 ‘불온’이란 딱지로 소수를 배격하는 일이 그리 놀랍지 않은 현실이다. 소수가 다수 속에서 존재 자체만으로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모순적인 사회. 온당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영화에 담은 이영 감독이 지난 목요일, 2015년을 빛낸 독립영화를 보여주는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에 영화 <불온한 당신>으로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다.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 저는 영화를 두 번째 보는데 마지막 장면의 북춤이 가슴 아프고 영화를 찍은 감독님 또한 괴로웠을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를 어떻게 기획하시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이영 감독(이하 이): <불온한 당신>은 2012년도에 기획해 2015년 9월에 완성했습니다. 2012년 영화를 기획할 당시 성소수자들이 ‘종북’이라는, 종북몰이가 공공연하게 또 다시 시작됐는데요. 심지어 ‘종북게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어요. 실체 없는 종북몰이를 보면서 위기감을 느꼈고, 이러한 종북몰이가 어디를 향해 갈지에 대해 지켜봐야겠다는 불안한 마음에서 영화를 기획하게 됐어요. 


강: 영화 속에서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 특히 세월호와 관련된 사안을 외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탄압을 받는 상황이 나오는데요. 세월호 유가족과 퀴어축제 앞에서 끊임없이 시위를 벌이며 사회를 보는 남성의 등장은 혐오를 하는 세력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성소수자들까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영화가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프닝엔 선배님이라 불리는 ‘이묵’씨가 나오는데 어떻게 만나 촬영하게 됐나요?


이: 2007년도에 10대 레즈비언의 성장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어요. 그 때 10대 레즈비언 친구들을 만나 작업을 했는데 당시 30대였던 저에게 그 친구들이 “30대에도 레즈비언해요?”라는 질문을 하더라고요.(웃음) 10대 레즈비언 친구들이 반가웠고 그렇다면 우리의 선배 세대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신문이나 책과 같은 자료가 없어서 70~80대 선배님들을 만나 뵙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소문이나 신문기사에서 선배님 같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분들을 50여분 넘게 만나 인터뷰를 했고 그 중 후배들을 위해 당신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이묵 선배님을 만나 함께 영화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강: 이묵 선배님은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그리고 영화를 보셨는지, 보시고 난 후에 어떤 반응이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선배님은 레즈비언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현실이 예전에 비해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영화 속에서나 현재 일어나는 상황들을 지켜보면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이: 선배님은 영화에 나오듯이 노후를 여수와 용인을 오고가며 보내고 계세요. 선배님 상황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영화 전체를 보여드려야하는데 보고 충격 받으실까 우려돼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선배님께 영화에 이런 장면들이 들어가고 선배님의 말씀이 어떻게 나올지 알려드렸을 때, 본인의 이야기가 후배들이 당당하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부분이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쿨 하셔서 ‘꼭 영화를 봐야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보여드리면 어떨지 걱정스런 마음은 있어요.



강: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혐오세력들의 발언의 강도가 세고 폭력적이라서 영화 전체를 보여주지 못한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일본에 직접 가서 논과 텐 커플을 만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국내 상황을 보여주고 이묵 선배님의 일상을 따라가다가 일본이라는 공간으로 갔을 때,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논과 텐 커플 장면에서는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일본에서 촬영할 때의 이야기나 어떻게 그들을 만나게 됐는지, 누군가 보기엔 이 장면이 왜 꼭 들어갔는지 궁금해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영화는 이묵 선배님의 이야기, 논과 텐의 이야기, 그리고 제 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요. 이묵 선배님과의 인터뷰에선 선배님이 살아오신 일상을 다룬다면, 제 이야기에서는 한국사회에서 혐오라는 현상이 어떻게 사회적인 사건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말하고 있어요. 일본을 통해서는 ‘쓰나미’라는 극단적인 재난 상황 속에서 성소수자의 삶은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재난 상황에서 논과 텐 커플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커밍아웃 밖에 없었어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서로를 찾을 수 있는 보호 장치는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LGBT들의 상황은 일본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결혼이 합법화 되어 있지 않고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해요. 그래서 재난상황을 거친 일본에서 LGBT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고 친구들을 통해 그 커플을 만나게 된 거였어요. 인터뷰를 하다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니 재난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은 모두 대피소로 피난을 가야했다고 해요. 대피소엔 규정이 있고, 생존과 관련해 우선순위로 정해진 것들은 이성애자 중심적이기 때문에 만약 LGBT들이 대피소에 있다면 기존의 질서와 틀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트랜스젠더와 같이 호르몬 투여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 곳에선 호르몬투여도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어 있고 가족단위로 나눠져 있어요. LGBT들에게 이러한 틀 안에서 맞춰 사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일 수 있죠. 이런 이유로 폐허에 남기로 결정한 LGBT들이 많았다고 해요.

재난으로 모든 일본 사람들이 위기를 맞았겠지만 LGBT 커뮤니티도 위기에 직면했어요. 커뮤니티 내부에선 커밍아웃을 하기 어려워 별칭을 쓰는데 이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서로를 찾기 어려운거예요. 연락이 두절됐을 때 찾을 수 없다는 좌절감을 겪으면서 LGBT 커뮤니티는 재난 상황 안에서 LGBT가 겪는 문제, 대피소 안에서의 상황들에 대해 대응할 활동들을 준비 중이라고 해요. 지진은 앞으로도 올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고 개인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맞게 되면 사실 홀로 선 개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점을 논과 텐 커플의 이야기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강: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일반인들에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성소수자에겐 ‘커밍아웃’과 같은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네요.


관객: ‘바지’씨로 살면서 겪은 힘든 일이 이묵 선배님의 인터뷰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묵 선생님이 인터뷰 도중에 언급하신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이: 바지는 남자의 전유물이고, 이묵 선배님은 여자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편견의 시대를 사신 분이잖아요. 쉽지 않은 삶을 사신 분이지만 지금은 70대이시기에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고통은 아닌 거죠. 현재는 현재의 삶이 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선배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14번의 살림을 꾸리시면서 겪은 14번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결국 혼자 남아 노후를 보내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어요. 늘 저에게 “한 여자랑 오래 살아라. 그래야 돈도 모은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선배님 세대가 20대에겐 조부모, 저에겐 부모 세대인데요. 선배님이 사셨던 그 당시는 현재보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적었고 10대 때부터 빨리 자립해서 살아야했기에 가족들의 간섭이 적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20대가 된 ‘치마’씨에겐 시집에 대한 압박이 있고 심지어 강제결혼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치마씨들이 도망쳐오고 바지씨들이 구출해 오는 일들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관객: 촬영기간이 3~4년이어서 촬영분도 많은데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으시려 노력하신 것 같아요. 내레이션도 중요한 부분에만 들어가 있고, 청와대 지붕 장면에서도 특별한 사운드 없이 담백하게 표현하셨고요. 그래서 편집하실 때 어느 정도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시위현장은 주로 통제되는데 어떻게 찍으셨고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공중에서 아래를 보는듯한 풀 샷이 필요해서 30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 올라갔어요. 옥상 가장자리에 삼각대를 올려두고 촬영을 했는데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혜란 촬영감독님이 욕심이 많아서 목숨 걸고 찍은 장면들이 많아요.(웃음) 편집과 구성에 있어서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삶의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 현상이 사건이 되어가는 현장들이 있는데 사건과 삶을 어떻게 다룰지 구성상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십 번, 수백 번은 바꿔봤던 것 같아요. 사실 현재 버전은 마지막 버전이긴 한데 만약 개봉을 한다면 또 다른 버전으로 준비해볼까 싶어요. 그 정도로 구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돼요.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데 무엇보다도 관객 분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꼭 다뤄야하는 정보만 다루고 다루지 않아야 될 정보는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죠. 또 연출을 흥미롭게 하기 위해 혐오가 이뤄지는 공적 공간 안에서 행해지는 사람들의 혐오의 몸짓, 현상들을 집중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관객들이 정보보단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관객: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와 관련된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고 거리청소년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불온한 당신>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혐오 발언이 이뤄지는 현장과 사건을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 “우리들은 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결과론적으로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달았다”라는 말을 다른 청소년 단체 선생님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일종의 계몽을 시켜준 것 같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감독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다음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우선 바지씨 선배님들을 계속 만나 와서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불온한 당신>을 만들고 나서 영화에 등장하시는 분이 자신을 혐오주의자로 그렸다는 이유로 저를 고소해서 내일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갑니다. ‘이 이야기가 <불온한 당신2>가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촬영을 하고 있고요. 영화에 대해서 관심 가져주시면 영화가 힘을 얻고, 개인적으로도 용기를 내서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 감독님 개인이 영화의 화자이자 커밍아웃을 했고, 직접 일본에 찾아가 그곳의 상황을 보여주는 구성 때문에 이 영화가 파워풀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네요.


관객: 논텐 커플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받는 차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곳에 함께 살아있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 말에 큰 위안과 감동을 받았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엮어내고 완성해가시면서 계속 떠올랐던 질문이 있으시다면, 그 질문이 영화를 마무리 할 때 어디 머물러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미 영화를 통해 그 부분에 대해 감독님이 말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사실 처음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질문보단 불안함이었어요. 이 사회가 나와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불안감, 레즈비언인 당사자로서의 불안감. 불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고, 더욱 두려워졌으며, 설마 했던 일들이 재현되는 현실을 보며 절망스럽기도 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혐오세력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존재하되 드러내지 마라’, ‘침묵해라’라고 계속 종용하고 있잖아요.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이유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관객 분들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거나 제가 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시도하고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통해 관객 분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던 거였죠.


강: 절망을 다뤘지만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오히려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긴 시간 함께 해주시고 좋은 영화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절대다수의 불통은 소수의 소통에서 변화의 계기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혐오’가 자연스러워진 사회이더라도 누군가의 행동과 외침이 사람들을 이끌고 소통의 창을 만들어준다면 상황은 언제든 개선될 수 있다. 인디토크에 끝까지 남아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들의 모습은 <불온한 당신>이 ‘온당하지 못한 사회’를 공론화 시키는 창구가 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를 찾을 <불온한 당신2>가 기대되고 그 끝에서 ‘온당해져 가는 사회’를 기다릴 뿐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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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8 - 2016.02.24 인디스페이스 상영 시간표 

<귀향> 조정래 | 127분 | 극영화 | 15세 이상 관람가

<울보> 이진우 | 97분 | 극영화 | 청소년 관람불가

<거미의 땅> 박경태, 김동령 | 150분 | 다큐멘터리 | 15세 이상 관람가

<프랑스 영화처럼> 신연식 | 103분 | 극영화 | 15세 이상 관람가 

<나쁜 나라> 김진열 | 120분 | 다큐멘터리 | 12세 이상 관람가

































예매 안내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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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NT & INFO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 기간 2016년 2월 18일(목) ~ 21일(일) | 4일간

●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관람료 7,000원 (후원회원 무료 / 멤버십 6,000원)


☞ 자세한 내용 http://indiespace.kr/2783


2월 인디돌잔치 <꿈보다 해몽>

● 일시 2월 23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 부대행사 상영 후 인디토크 (참석: 이광국 감독)

● 입장료 7,000원 (멤버십/후원회원 무료)


<귀향> 2월 24일 개봉


<울보> 2월 22일(월) 오전 10시 30분 종영


<거미의 땅> 2월 23일(화) 오후 4시 50분 종영


<프랑스 영화처럼> 2월 24일(수) 오후 5시 30분 종영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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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나는 독립영화愛人이다]에 가입하세요.

매월 상영작과 함께 특별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가입방법 자세히 보기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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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일 독립영화 보는 날 


인디스페이스, 매월 1일은 독립영화를 보자!


매월 1일을 “독립영화 보는 날”로 제정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그리고 다양한 상상력으로, 재기발랄한 감성으로

한국영화의 토대가 되어온 영화가 바로 독립영화입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매달 1일을 “독립영화 보는 날”로 제정하고

이 공간에서 독립영화의 새로운 담론을 이야기하고, 관객과의 커뮤니티가 확장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독립영화 아지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의 매력을 흠뻑 느껴보세요.


 독립영화 보는 날의 특별한 혜택 

◦ 모든 상영작 천 원 할인 (조조, 단체 할인, 단편 상영작 제외, 단 멤버십 중복할인 가능)

◦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하는 독립영화와의 특별한 만남

◦ 인디스페이스만의 다양한 경품 이벤트까지.

 


 상영작 



  


 



 

:: 3월 1일 (일상영시간표 ::


10:30 조류인간

12:30 댐키퍼

13:20 다이빙벨

15:00 조류인간 +GV

18:00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20:00 꿈보다 해몽




매월 독립영화 보는 날에만 발행되던 10+1 스탬프쿠폰은 

2015년 1월 1일부터 영화 관람시 모든 관객분들께 발행됩니다.


+ 1인 1매 제공됩니다. (예: 1인 1영화 2매 구매시 2장 발급 / 1인 2영화 2매 구매시 1장 발급) 

+ 1장 이상의 쿠폰 도장 합산은 불가합니다. 

+ 도장은 반드시 티켓 구입 또는 예약 티켓 발권시에 찍으셔야 합니다.








 EVENT 01 

매회 관람료 천원 할인!

조조, 단체관람료는 중복할인 불가.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독립영화애인" 중복할인 가능.


 EVENT 02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나는 독립영화愛人이다'에 가입하세요 :D

3월의 독립영화 보는 날, 멤버십에 가입하시면 

인디스페이스 2015 쿠폰북 + 노트를 드립니다.


 EVENT 03 


"독립영화 보는 날" 독립영화 포스터 증정!

매월 1일 독립영화 보는 날에만 만나는 독립영화 포스터 나눔!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포스터를 자유롭게 가져가세요 :)


 EVENT 04 


으랏차차 독립영화, 함께 응원해요!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 분들께 인디스페이스 물티슈를 드립니다.




 EVENT 05 


<조류인간> 인디토크(GV)


● 일시: 3월 1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신연식 감독, 배우 정한비 이유미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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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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