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깜짝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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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보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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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작

<디렉터스 컷>(감독 박준범 | 2015년 7월 2일)

<마돈나>(감독 신수원 | 2015년 7월 2일)

<레드 툼>(감독 구자환 | 2015년 7월 9일)

<파스카>(감독 안선경 | 2015년 7월 9일)

<밀양 아리랑>(감독 박배일 | 2015년 7월 16일)

<살인재능>(감독 전재홍 | 2015년 7월 30일)


● 투표기간: ~ 7월 14일(목)

● 발표: 7월 15일(금) 이후

● 상영일: 7월 26일(화) 저녁 

(입장료: 7,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분(1인2매)을 선정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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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역사를 기록하다 <레드 툼>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7월 15일(수) 오후 8시 10분

참석: 구자환 감독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교과서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사건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에 대해 <레드 툼>이라는 영화가 해설 없이 묵직하게 기록했다. 그 기록의 현장의 힘듦에 대해 지난 15일에 들어볼 수 있었다.



구자환 감독(이하 구): 7월은 전국적으로 학살이 많았던 달입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7월에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멀리서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영화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희 프로그래머(이하 이): 사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오셨을 것 같아요. 워낙 소규모로 개봉을 해서 영화 정보를 접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사실 개봉도 어렵지만 제작부터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구: 이 영화 제작을 마음먹은 건 2004년이에요. 그 당시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서 제가 잘 몰랐어요. 그때 제 나이가 삼십 대 중후반 정도였고요. 대학원까지 다녔고, 그렇게 오래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 당시에 나왔던 처참한 유품들, 사연들, 더구나 부역을 했다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 밖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을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주민 분들도 만나고 피해자 유족 분들도 만났겠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빨갱이’라는 올가미가 덧씌워진 상태에서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여전히 힘들어하시는 분들인데 어떻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구: 2004년 당시에는 영화에 나왔던 몇 분들 외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드러나지도 않았고 자신이 유족인 걸 밝히지도 않았었고. 그분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행히 유골이 발굴돼서 언론 보도가 나가니까 몇 분들이 와주시더라고요. 또 잠정적인 매장지로 추정되는 마을에 가서 가장 나이든 분을 찾아내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작비를 준비해 진행한 게 아니고 그냥 뛰어든 거였고 경남 지역 쪽에 지원 신청을 했었지만 여러 번 철회되었어요. 창원시 같은 경우, 영화 제작 지원 시스템을 만들고 나서 제가 선 신청을 했을 때 문화 쪽에 있는 분이 이런 소재를 지원해주기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고요.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 등에 요청도 했었는데, 그 분들의 말씀은 ‘종북으로 몰릴 수 있다’는 거였어요. 결국 돈 안 들어왔죠. 영화라는 것이 돈이 필요한 작업이고 돈이 들어감에 따라 영화의 실질적 내용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제가 <레드 툼>을 봤을 때 영화 미적으로는 막막한 부분들이 많아요. 있는 그대로,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과 인물,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보도연맹사건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어요.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고요. 보시는 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그럼에도 보도연맹 자체를 설명하고 끄집어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굉장히 오래 제작하신 것 같은데, 의미 있고 용기 있게 만드신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스럽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우리나라 좌우익의 아픔인데 왜 굳이 ‘레드 툼’이라는 영어 제목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관객을 먼저 생각한다면, 이 아픈 사람들을 생각 한다면 여기에 적절한 우리말로 하시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구: 원래 제목은 지금 부제로 사용하는 ‘빨갱이 무덤’이었어요. 제가 영화를 만든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을 알리겠다’. 시사회 이후에 내부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빨갱이 무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이 영화를 걸 수 있겠느냐’. 개봉을 못한다는 이야기였죠. 계속 고집을 피우다가 그렇다면 조금 순화시켜보자, 한국뿐 아니라 외국까지 내보내자 해서 조금 머리를 굴려 만든 게 ‘레드 툼’이에요. ‘툼’은 일반적인 무덤보다 더 큰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을 말합니다. 저는 돌아가신 분들이 왕족이나 귀족만큼이나 소중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툼이라 설정했어요. 제가 빨갱이 무덤이라고 애초에 제목을 지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레드 툼>(빨갱이 무덤)을 지금 이 시대에 소위 보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이승만을 두둔하는 사람들, 과거의 학살자를 애국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눈여겨봐라, 당신들은 정말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냐, 그것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었고요. 또 역설적으로 빨갱이 무덤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영화의 기본적 골격은 빨갱이로 몰려서 죽은 인간의 무덤이거든요. 그래서 ‘빨갱이 무덤’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겁니다.


이: 안타깝게도 감독님께서 정말 보여주고 싶은 분들이 이 영화를 언젠가 볼지 의문이 듭니다. 


관객: 유족들과 관계자 외에 더 많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죄송하지만 좀 더 관객의 입장에서 조그만 친절함을 가지셨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해설을 좀 넣어주셨다면 관객들이 따라가기에 좋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구: 제작 기획서를 쓸 때부터 내레이션을 넣지 않으려고 생각했어요. 이런 역사물 같은 경우는 내레이션을 넣지 않고 가면 정말 위험하죠.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이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전체적으로 뚝뚝 끊길 수 있어요. 내레이션을 넣으면 조금 유연하게, 관심과 흥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초에 그렇게 기획을 잡은 이유가 역사 기록물 하나를 남겨놓겠다는 생각이어서 에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팩트 하나만큼은 기록으로 남겨놓자’, 자칫 잘못해 감정에 치우친 채로 내레이션을 넣으면 영화 자체를 망칠 수가 있거든요. 어차피 영화 하나로 모든 걸 관객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걸 설명하지 않고 내가 눈에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자는 측면에서 만들었습니다. 


이: 아마 만듦새를 떠나서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아요. 


관객: 한국전쟁의 경우,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다, 좌우 사상의 대립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몇 가지의 폭력이 여과 없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국가를 소재로 삼아서 한 쪽에서는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다른 편으로 <레드 툼>이 나왔습니다. 같은 시기에 상이한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감독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구: 아직 <연평해전>을 보지 못했고 영화 평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특정 사실에 대해서 영화나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봐요. 그 부분은 분명히 존중해야 하는 부분인데 단지 왜곡하는 영화는 예술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지를 못해서 말씀을 정확히는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연평해전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 동기가 영화에서 전해졌다면 그 영화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렇게 그려졌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모든 사건은 충돌이 있어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원인과 배경의 동기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레드 툼>의 경우는 전국 12개관에서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로 흥행을 기대하진 않았어요. <연평해전>은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대관, 단체관람을 하고 있다던데 홍보와 마케팅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의 수만 보면 <연평해전>은 성공했고 (<레드 툼>은 그런 측면에서) 실패하고 있죠. 하지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보도연맹사건이 영화화됐다는 게 알려지면 분명히 모종의 반응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어떤 변화들이 있나요?


구: 계속 인터넷에 오르고 지역 방송, 신문들에도 나왔어요. 중앙일보는 상업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사회 때부터 보도를 하더라고요. 이 사건을 아시는 분들은 얼마나 참혹했던 일인지 알고 계신 거고, 이승만 정권 당시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계보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실패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레드 툼>으로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유족 분들과 피해자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셨는데, 그 이후 작업을 더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후속이 나올 수 있는 건지요.


구: 유족 분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분들은 1세대에요. 피해자의 배우자인 할머니들은 연세가 많으셔서 정정한 분들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요. 1세대의 자녀분들은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연좌제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1세대의 자식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얼만큼 피해를 받고 있는지 그 삶을 조명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제가 자신이 없거든요. (웃음)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관객: 주로 경남 지역을 다루셨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 쪽을 다루신 건지요?


구: 경남 지역에서 피해자가 가장 많았어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간단히 말씀 드리면 전국으로 다닐 만큼 제가 돈이 없었어요. 보도연맹사건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지만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경남 지역만 설명을 해도 전체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알리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 제작하고 나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이후 변한 상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 피해자 분들이 국가를 상대로 1차로 손해배상을 받았어요.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는 거죠. 하지만 배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그분들이 아직도 빨갱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 진상위원회가 만들어져서 국가가 조사하긴 했지만 하다만 거죠. 다 하지 못했어요. 형식적인 보상만이 있을 뿐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어요. 


이: 역사가 그대로 기록해주지 않으니 다큐멘터리 감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것 같아요. 마지막 인사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구: 아직도 영화는 개봉 중이니 입 소문 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 기록해주지 않은 일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다수의 기억에 남기기 위해 영화로 남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레드 툼>은 지워진 역사의 한 줄을 채우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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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툼>




SYNOPSYS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레드 툼>줄 관람평

양지모 | 학살의 현장에 없었던 카메라가 과거를 기록하는 방법

김민범 | 아파할 수 있을 권리와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

이도경 | 기억이 모여서 기록이 된다

전지애 | 매장되어선 안 될 진실들




<레드 툼>리뷰

<레드 툼> :  아파할 수 있을 권리와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범 님의 글입니다.


EBS의 역사 강사가 독립 운동가들을 설명하다가 잠시 멈춘다. 지금 자신이 시험에 나오는 중요도에 따라 설명하고 있지만, 이분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시험에 나오는 빈도수와 다르게 모두 위대한 분이라고 설명한다. 교과서에서는 수십 년의 역사도 한 줄로 요약된다. 한 줄로 줄이기 위해 생략된 피와 땀, 눈물과 슬픔의 역사를 모두 배우기는 힘들다. 영화 <레드 툼>은 행간에 숨어 있던 오욕의 역사를 보여준다. 



<레드 툼>은 한국전쟁 초기에 남한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적에게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23만 ~ 43만 명을 학살한 국민보도연맹원 사건을 다룬다. 23살에 남편을 잃고, 당시 배 속에 있던 아이를 기르며 남편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살아온 할머니, 몸이 안 좋아서 운이 좋게 살아남은 할아버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웃을 묻었던 생존자까지 그 동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다. 이전까지 보복이 두려워 외부에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생존자들 역시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완전히 알지 못한다. 풍문으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2002년 9월,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태풍 루사로 인해 흙이 쓸려 내려오면서 50년간 소문처럼 떠돌던 진실이 밝혀진다. 무너진 토사 사이로 보이는 유골들은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 시간에 짧은 설명으로 들었던 ‘무고한 사람들도 죽었습니다’와는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뒤엉킨 유골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느껴진다.



수습된 유골들을 보면 계층과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학살된 것을 알 수 있다. 최초 국민보도연맹의 목적은 남한의 좌익세력을 전향하는, 선량한 국민 육성이었다. 이 후 목적이 변질되어 무차별적인 가입이 이루어졌고, 학살된 사람 중에는 아예 무관한 사람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평범한 국민이 한 순간에 반역자가 되어 골짜기로 끌려가고 물속으로 빠져야만 했다. 남은 이들에게도 세상은 여전히 가혹했다. 한 할머니는 좋은 세상이 된 것 같지만,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두렵다고 연신 겁이 난다고 했다. 무고한 희생자의 자손들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오히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진실 규명 요구는 유족회의 구속과 부관참시로 돌아왔다. 더는 이들의 이야기에 무감해서는 안 된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차마 말 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고 유감스러워야 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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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NOPSYS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INFORMATION 

영문제목: Red Tomb

감독구자환

제작국가: 한국

상영시간: 91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일: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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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an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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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툼> 



7월 9일 (목) 18:10 개봉


7월 30일(목) 16:20

8월 01일(토) 13:00

8월 02일(일) 14:30

8월 03일(월) 10:30

8월 04일(화) 16:20

8월 05일(수) 10:30

8월 06일(목) 14:30 +종영










...이후 상영일정은 추후 공개됩니다.



예매 안내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 인디토크(GV) ::





● 일시: 7월 15일 (수) 오후 8시 10분 상영 후

● 참석: 구자환 감독 외






 SYNOPSYS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INFORMATION 

영문제목: Red Tomb

감독구자환

제작국가: 한국

상영시간: 91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일: 2015-07-09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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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NOPSYS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INFORMATION 

영문제목: Red Tomb

감독구자환

제작국가: 한국

상영시간: 91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일: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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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툼> 인디토크 (GV)

일시: 2014년 6월 25일

참석: 구자환 감독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윤상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625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선 한 달에 한번 돌베개 출판사와 함께 진행하는 <돌베개 책씨 상영회>가 있었다. 625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절대 잊혀 질 수 없는 날이다. 이날 상영된 <레드 툼>빨갱이 무덤’, 말 그대로 좌익을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무고한 국민들이 국가에 의해 처참히 학살당한 국민보도연맹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감독은 그저 묵묵히 어떤 이념도 존재하지 않던 빨갱이 무덤,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평생 가슴속에만 담아두어야 했던 사람들을 어떠한 과장도 포장도 없이 화면 속에 담아냈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념분쟁과 전쟁의 끔찍하고 추악한 상처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영화가 끝난 직후 조금은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모든 관객들이 이런 뜻 깊은 영화를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감독: <레드 툼>을 제작한 구자환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제가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날 꼭 상영을 하고 싶었거든요. 상영을 해 주겠다는 곳이 없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돌베개 출판사에서 이렇게 상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진행: 오늘이 625일입니다. 사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625일의 의미를 크게 염두 해 두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레드 툼>을 보면서 그동안 정말 관심이 부족했구나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어요. 먼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보도연맹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사실 학교 다닐 때는 민간인이 한국전쟁 때 학살됐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어 자체도 전혀 듣지를 못했었죠. 기자생활을 하던 어느 날 어디서 유골이 나왔다고 해서 단순히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주민 분들한테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듣게 됐어요. 그중 하나가 그 동네에 조그만 계곡이 있는데,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피서를 온다고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계곡이 당시 핏물로 변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논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단지 그 마을 주민들만 자기들끼리 쉬쉬하면서 자기 자식들에게도 전해주지 않았던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차원에서 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2004년도의 인터뷰가 들어가 있으니 거의 10년에 걸쳐 제작된 영화인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영화가 원래 긴 호흡을 가지고 제작되긴 하지만 짧은 기간은 아니잖아요. 10년이라는 기간이 걸리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이 어떤 것이었나요? 혹은 10년이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감독: 10년까지 촬영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요. 그 중간쯤에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이 영화만큼은 의욕이 강해서 잘 만들고 싶었어요. 카메라도 좀 여러 대 놓고 다양한 풍경장면도 찍고 세밀하게 인터뷰도 따려고 했는데, 제작비 마련을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이 흘러가게 됐었죠. 그러다 2년 전 쯤 우연찮게 지역에서 보도연맹 관련뿐만 아니라 미군에 관련된 학살 장소에 대한 조사연구에 참여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제작을 하면 되겠다하며 덤벼들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 당시 사건들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너무나 많이 돌아가신 거예요. 그때 충격을 받고 더 이상 미루면 사람은 없고 장소만 남겠구나싶어서 부랴부랴 서둘러 제작을 끝내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 10년이 걸렸네요.

 

진행: 지금은 더 많은 분들이 역사적 진실을 가슴에 한처럼 묻고 가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영화는 거의 인터뷰만으로 이루어 졌고 보도연맹에 대한 설명은 간략하게 나오는데, 저는 더 궁금했던 것이 이 사건에 대해서 국가적인 배상이나 이후 움직임, 그리고 현재 어떻게 이 사건이 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독: 일단은 최근 유족 분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당시엔 진실 화해 위원회가 만들어져 국민보도연맹사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과거사에 대해 조사 작업이 있었어요. 그때는 만족스럽진 않아도 어느 정도 일정 부분은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조사 활동 기간이 만료된 진실 화해 위원회가 유족 분들과 연구 담당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간이 연장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또 정권이 바뀌고 이제는 여지껏 파악했던 내용들까지 부인을 하며 과거 좌파정부에서 이루어진 조사이기 때문에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족 분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과거 빨갱이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연좌제로 그 후손까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한들 공직에 진출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 분들의 입장에선 살아남기 위해 결국 권력과 경제력을 쥐 사람들에게 빌붙어야 했죠. 그러다보니 자녀분들은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건 알지만 얼마만큼 처참하게 돌아가셨는지는 잘 몰라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국민보도연맹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자신의 아버지는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 있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또 다른 2차 피해, 자신들도 빨갱이로 몰릴게 될까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셨어요.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상 문제가 나오니까 다시 얼굴을 들고 나오신 분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분들 자체가 일단 국민보도연맹사건 자체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국가가 해결해줘야 할 부분이 어떤 것이라고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갈수록 해결이 더 어려워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행: 사실 국가 폭력에 의해서 자행된 양민학살 임에도 불구하고 판결을 다시금 뒤집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관객 분들도 궁금한 것 있으시면 손들고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관객: 인터뷰가 주로 경남지방에서 이루어 졌는데 경남지방에서 학살이 더 많이 이루어졌던 건지 궁금하고요. 마지막 쯤 할머니께서 다시 숨어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올까 걱정하셨는데,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그분들이 보셨는지, 보셨다면 반응이 어땠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감독: 처음 제가 기획할 때는 전국적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결국 제작비 문제로 포기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보도연맹으로 인한 희생자가 가장 많은 곳이 경북과 경남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오늘 보셨던 학살지는 경남 지역의 학살지 중 채 10%도 되지 않을 겁니다.

 

진행: 그럼 혹시 경남지역에서 유독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가 있나요?

 

감독: 국민보도연맹사건의 특징이 한국전쟁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전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실제적으로 보면 전쟁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일어난 일이에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15~30일 사이에 이분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는데 아까 할머니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인민군이 점령하기 이전에 국민보도연맹들을 예비구속 하고 학살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정확하게 보면 그 피해자들은 전쟁과 관련 없이 오직 이념 문제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가셨던 분들인 겁니다.

마지막에 나오신 할머니는 굉장히 겁을 많이 내셨어요. 같이 갔던 선배와 설득을 많이 했는데, 촬영하는 당시까지만 해도 딸에게 제 이야기를 못하고 계셨더라고요. 그런 분들께는 옛날의 그 끔찍했던 기억들을 되새겨드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습니다. 영화 완성 후 한번은 시사회 형태로 진행했었는데 지역에서 유족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우리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다 담아줘서 고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관객: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피해자의 진술을 담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 일 것 같은데 감독님의 노력이 영화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시기상으로도 제주 4.3사건을 정당화하는 총리내정자가 등장한 이 시기에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건 참 뜻 깊은 일 인 것 같습니다. 배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록 관리차원에서 국가나 다른 공공기관에서 보도연맹학살에 관한 기록물 보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보면 학살 장소를 임시방편 식인 푯말을 세워둔 것들이 보였는데 아직까지도 그렇게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진술을 주로 담으셨는데, 가해자의 진술을 담으려는 시도는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제가 첫 장면의 자막에 희생자를 최소 20만에서 최대 43만 명으로 기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떤 분들은 20만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43만까지 이야기를 해요. 국민보도연맹에 관한 사건 만큼은 1960년대 국회에서 조사했던 그 내용 외에 더 이상 조사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615.16쿠데타를 일으키고 박정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국민보도연맹 유족회를 군사 법으로 회부하는 일이었어요. 때로는 사형을 선고 받기도 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박정희 정권이 당시 발굴된 유골들, 그리고 각자 마을에 조사해 놓았던 기록들 까지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록이 없어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구전이죠.

그리고 학살 현장에 말뚝 정도로 밖에 할 수 없었느냐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단지 말뚝을 박아놓은 곳에 GPS측정을 하여 위성표시를 해놓았거든요. 그래서 찾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 이후 경상남도가 했던 일이 그 지역에 푯말로 이곳이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입니다라고 붙여놓은 정도고, 아직 발굴은 하지 못하고 있죠.

그리고 가해자를 딱 한사람 찾았어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정말 찾기 어려웠는데, 진주에서 제가 테이프 세 개 정도를 날리면서까지 끈질긴 인터뷰 시도를 했었죠. 그런데 다른 이야기는 하면서 그 얘기는 끝끝내 하지 않더라고요. 그 당시 전반적 상황들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중요한 증언이면 영화에 포함시킬까 했지만, 오히려 의구심을 증폭시킬 것 같아서 결국 제외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만나게 된 다른 한분은 당시 교도관을 했던 분인데, 그분은 그 당시 교도소에 와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서북청년단이나 특무대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이야기 많이 하셨는데, 이후에 자기 인터뷰를 빼달라고 요구하셨어요. 정권이 바뀌니 불안 하셨던 거죠. 그런 사정들이 있었습니다.

 

진행: 기록으로써 충분히 보존되진 못했지만, 이 영화가 구술사 자료로 남게 되겠죠. 감독님이 인터뷰하신 방대한 분량들이 혹시 어느 정도 될까요?

 

감독: 10년 동안 며칠을 촬영 했나 헤아려 봤는데 86일이더라고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프리뷰 단계를 거치는 것이었거든요. 영상을 틀어놓고 매 타임라인 시간대마다 나오는 오디오와 장면들, 그리고 누구인지 모두 기록을 해요. 그렇게 쭉 해봤는데 A4용지 10포인트로 두꺼운 책만큼 나오더라고요. 그 중 제가 간추려서 이야기를 끌어내 만든 것이 지금 보신 <레드 툼>입니다.

 

 



관객: 영상에 나오신 분들을 보면 학살당하신 분들 자체가 빨갱이로 몰렸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 이라든지 혹은 자신이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60년 동안 마음속에 한으로 품고 살아가셨다고 했는데, 그런 분들을 어떻게 찾아내서 인터뷰를 받으셨고 어떻게 설득을 하셨는지 궁급합니다.

 

감독: 매번 영화제마다 이 질문을 꼭 하시던데요. 사실 인터뷰가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좀 세상이 좋아져서 내가 이렇게 일을 당했다고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2004년도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사람들이 굉장히 겁을 냈어요.

저분들을 찾아낸 건 시골마을의 노인회관에서 이야기를 하면 아는 척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조금 더 물어보면 더 이상 말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을 따로 만나서 설득을 하는데 통상적으로 제가 설득했던 방법은 이겁니다. “어르신, 그분들이 정말 억울하게 돌아가셨지 않습니까?”하면, 다 맞대요. 불쌍하게 죽었다고. “그런데 어르신이 그 이야기를 안 해주시면 그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특히 젊은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데, 어르신께서 말씀 안하시고 그냥 이렇게 계시다 눈 감으시면 저분들 정말 억울하게 죽게 되는 겁니다이런 식으로 꾸준히 설득했어요.

실질적으로 어떤 마을의 경우는 학살된 곳으로 마을사람들이 와서 부역을 했거든요. 죽은 사람들을 파묻었잖아요. 그런 끔찍한 고통을 가진 분들한테 그 이야기를 물었을 때 당연히 이야기 안하려고 하시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죽여서 인근에 묻혀 져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게 어딘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그것까지 알아내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죠. 저는 말 주변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 했고요.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분들도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한이 맺혔을 텐데,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느 순간 한마디 딱 끄집어내시더니 이건 정말, 말을하시는 게아니라, 말을 토해내시는거더라고요. 얼마나 한이 맺히셨던지.. 처음에 한번 이렇게 마음이 열리니 다음은 굉장히 쉬워졌어요.

 

진행: 어쩌면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가슴 아픈 기억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되지 않나 싶네요. 10년간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겠지만 아직도 못 다한 말씀이 있다면 관객 분들께 전달 부탁드리고요. 지금 감독님께서는 어떤 작업을 이어나가고 계신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감독: 제가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 선친도 국민보도 연맹원 이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거든요. 제 선친은 학살당하시진 않고, 영화에도 나왔던 창녕지역에서 아마 당시 순경이 문을 열어줬을 때 살아나가신 것 같아요. 아버님께서 그때 돌아가셨으면 저는 살아있지 못했겠죠. 사실 제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1945~50년을 중심으로 보고 있거든요. 아마 현대사회구조의 모순들을 좀 아시려면 이 사이 오년 간 역사를 뒤져보시고 공부해 보시면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는 사실 고민이 좀 많아요. 지금 극영화를 해볼까 하고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민간인 학살이외에는 마음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자꾸 그게 눈에 밟혀요. 그런데 주위에서는 자꾸 말립니다. “<레드 툼> 같은 영화 절대 성공 못 한다. 너 한 번 더 망하면 끝이다.”(웃음) 마음은 가는데 용기는 없고요. 한 쪽은 하고 싶지 않은 데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혼란을 겪고 있는데 조만간 이번 달 안으로 둘 중 하나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제작비를 마련해야 제가 하고 싶은 영화를 충실하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진행: 오늘 영화 보셨던 분들은 이후에도 감독님 작품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요. 오늘 이 자리는 돌베개 출판사와 함께하는 영화와 책의 만남입니다. 매달 이렇게 돌베개 출판사가 선정하는 책,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7월 에도 민영화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인 <블랙 딜>이라는 영화와 만날 예정입니다. 그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자리를 통해 또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이 자리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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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6.30 16: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 보고 갑니다. 활기찬 한주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