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소년〉 리뷰: 1997년도의 싱클레어
*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글입니다.
훈이 헌책방에서 찾는 책의 레퍼런스는 분명해 보인다. “착한 아이가 나쁜 아이를 만나 친구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으로 어딘가 엉성하게 일축되어 버린 요약에 헌책방 사장님은 다 안다는 듯 에로 소설을 내미셨지만, 우리는 영화에 인용된 소설이 「데미안」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훈의 고통을 둥그렇게 마모시키기에는 훈이 처한 상황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한참 벗어나긴 했지만, 어쨌거나 문학의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한 훈이 「데미안」에 반응하고 영화가 그를 호명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 한 명의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진통하고 있다. 그러나 훈의 세계에는 훈을 선악의 경계로 인도하는 ‘데미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데미안이 본질적으로 싱클레어와 한 몸이듯, 본래 다정한 심성을 가진 훈은 선각자 없이도 타인에게 품은 한 뼘의 기대와 이해가 번번이 좌절되는 세계에서 이미 혼돈을 본다. 훈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훈과 어머니를 학대하지만, 훈에게 매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주고 ‘가족’이라는 공허한 이름 아래 훈과 어머니에게 광적으로 집착한다. 아버지의 행동에서 훈은 혼란스럽다. 사랑일 리 없는 명백한 폭력에서 매번 위험을 감지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그의 구겨진 구두 뒤축이 눈에 들어온다. 훈은 “아빠도 마음이 아파서 그래.”라는 방어막을 닮은 말로 어떻게든 자신을 보호해 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을 형체도 없이 파괴시키는 선명한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훈의 어머니는 훈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훈이 그를 필요로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번 훈을 두고 사라진다. 훈에게 있어 어머니는 그가 마음 편히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다. 훈은 내심 어머니가 돌아왔으면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행하는 폭력을 알기에 어머니의 앞에서 훈은 늘 덜 자란 채로 어른이 된다. 하여 싱클레어는 혼자서 내면의 혼돈과 싸운다. 훈의 세상에는 크로머와 에바 부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크로머로 대변되는 기철과 찰나이지만 에바 부인처럼 훈에게 사랑의 감정을 일깨워 주는 연희도 97년도의 대한민국에서는 또 다른 싱클레어일 뿐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강조해 마지않는 IMF라는 설정이 영화에 시대의 불안을 불러들인다. 병태의 말을 빌리자면, ‘이해할 수 없지만’ 동시에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서 훈을 제외한 세 명의 미성년 또한 나름대로 위태롭게 흔들리며 각자의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 두려운 것이 없는 듯 보이는 기태는 사실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며 동류로 인식한 훈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외환 위기의 무자비함에서 비껴간 듯 보이는 연희도 연희를 겉으로만 읽어 내는 이들이 평생 알 수 없는 ‘자기만의 방’이 있음을 암시한다. 병태 또한 병태의 세계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다만 그가 한 선택이 훈을 크게 상처 입혔을 뿐이고, 병태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더욱 가쁘게 진통을 치러 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해 보인다. 흔들리는 대들보처럼 어느 한 사람 굳건한 이 없이 휘청이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겪어 내고 있는 훈은 몸을 숨길 곳이 없다. 그런 훈에게 안식처로 나타나는 것은 다름 아닌 문학의 세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IMF라는 배경 설정이 불안의 정서를 불러들이는 것 외에 영화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다소 아쉽기도 했다. 시대상을 진단하기에 인물들의 서사는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었고, 인물을 설명하기에 IMF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병태를 포함하여 시대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만, 훈이 겪어 내는 일들은 그것(IMF)과 무관하게 명백한 폭력이어서 오히려 영화가 수시로 시대를 소환해 낼 때마다 인물에게서도, 시대에게서도 분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또 훈을 끊임없이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을 극의 동력으로 사용하면서 인물의 심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 외에 훈이 갈등할 수 있는 선택지를 소거해 버리고 있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창작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야기의 진행 방향 외에도 훈을 끊임없이 고립시키는 사각 앵글과 핸드헬드, 샷 사이즈의 활용에서 인물을 대하는 연출자의 목적이 훈에게 가까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훈이 겪고야 마는 일련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현실이기에 과하다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연출자가 훈의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머무르면서 훈이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바라봐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그가 이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미성년의 문턱에서 많은 이들이 저 구절을 접하고 전율했듯, 훈도 어느 날 벼락처럼 꽂혀 든 문장을 쥐고 자신과 세상을 재인식하는 날이 올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환상처럼 나타난 기태의 손을 뿌리치고 책들에게 둘러쌓인 채 노란 빛 안에서 휴식하는 훈에게서 희망을 본다. 높게 솟은 책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듬직한 기둥 같고, 문학이라고 불리는 이 세계는 언제까지고 훈을 환대할 것이다. 훈의 진통이 너무 길지 않기를 빈다. 언젠가는 분명 자신의 몫이 아니게 될 고통 앞에 훈은 새로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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