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간에도 역사가 있다
〈홈그라운드〉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7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권아람 감독, 출연자 전해성, 로터스
진행 셀럽 맷 페미니스트 팟캐스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기록입니다.
레즈비언은 실재했다.
영화 〈홈그라운드〉는 아주 간단한 위 명제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여성을 사랑한 여성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외계인이 아니었음을. 우리도 물리적인 공간에 모여 나만의 문화를 구축했고, 계보를 가지고 있음을 담아낸다.
모두가 들어봤지만 마주한 적은 없는 사회의 유령들이 역설적으로 물리적 공간을 점유했을 때, 손 때묻은 의자와 벽지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배어있을까. 눈물, 추억, 회한과 환희가 뒤섞일 공간일지라도 레즈비언에게도 홈그라운드가 있다.
셀럽 맷 페미니스트 팟캐스터 (이하 셀럽 맷): 평일 저녁에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먼저 저희 세 분, 감독님부터 소개 부탁드릴게요.
권아람 감독(이하 권아람): 안녕하세요. 영화 〈홈그라운드〉를 연출한 권아람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로터스: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에 나온 퀴어 페미니스트 공간 루땐의 소모임 ‘배드 부치스’ 로터스입니다.
전해성: 안녕하세요. 저는 ‘끼리끼리’ 초대 회장을 맡았었고 '송지나의 취재 파일'이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처음 커밍아웃 했다고 얘기되는 전해성이라고 합니다.
셀럽 맷: 〈홈그라운드〉가 드디어 어제 개봉을 했어요. GV를 진행하니 또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반갑게 자리 함께 해주셨는데... 극장에 드디어 걸렸네요.
권아람: 너무 너무 감개무량하고요. 사실 영화를 기획하면서 편집 마무리할 때까지 거의 5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는데요. 개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개봉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은 없었는데도, 이렇게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셀럽 맷: 앞으로 GV가 되게 많이 있을 예정이에요. 그래서 오늘 재밌게 보신 분들은 꼭 친구분들한테 영업해 주셔서 많이들 극장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주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웃음) 이제 두 분께 궁금한 것은 주변 분들 중에 영화 보신 분들 있으신지, 보신 분들 반응이 어떠셨는지 좀 궁금해요.
전해성: 제가 몇 명한테 물어봤는데요… 감독님, 혹시 제가 오늘 늦게 오는 바람에 앞부분을 놓쳤거든요. 혹시 제가 춤추는 장면이 나왔나요?
권아람: 네.
전해성: 행사 때 가발 쓰고 노래 불렀던 게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가장 인상이 깊었다는 피드백을 받았고요. 그 다음에는 레스보스 초창기 때 모습이 궁금해서 기대하고 봤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지금은 물리적 공간이나 인터넷 공간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로터스: 레즈비언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어왔었는데, 주변 분들이 〈홈그라운드〉를 보고 되게 감명 깊어 하더라고요.
셀럽 맷: 맞아요. 저도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거든요. 샤넬다방부터 시작해서 신촌공원, 레스보스까지.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잘 모르셨던 분들도 알아가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은 이런 장소 선정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권아람: 제가 이전에 〈퀴어의 방〉이라는 단편을 만들었는데, 방 안에서 퀴어들이 어떤 관계망을 만들고 살아가려고 하는지 담은 영화였어요. 그 작업을 하고 나서 방 바깥에는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를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샤넬 다방, 신촌공원, 레스보스 모두 레즈비언 공간사에서 전설적인 공간으로, 저도 이름만 알고 있는 곳들이었거든요. 그렇게 찾다 보니 중심 인물인 명우 형과 이 시기를 보냈던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서울에 국한된 장소들만 나오는데 처음에는 지역의 장소들도 같이 담고 싶어서 리서치를 했어요. 그리고 신촌공원이 있을 당시에 '산타페'라는 카페가 근처에 있었다고 해서, 그 공간에 대한 얘기도 다 함께 다루고 싶었고요.
셀럽 맷: 전해성님께서는 레스보스 창립 초창기 멤버시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같이 보면서 명우 형과 더불어서 가장 할 이야기가 많으실 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레스보스가) 96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잖아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전해성님께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전해성: 96년도 우리나라 최초의 레즈비언 모임 ‘끼리끼리’를 만들고 나서, 우리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아졌어요. 근데 저희 회원 중 한 분의 어머니가 지하에 카페를 하고 있으시다는 거예요. 회원 분이 엄마께 그 카페를 인수 해서 그 공간 주변을 마을처럼 만들어보자고 계획이 세워졌죠. 어차피 보증금과 같은 다른 돈들이 이미 카페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니까. 뭐, 오픈 때 돈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끼리끼리 회원들이 손수 인테리어를 다시 했어요. 인테리어 전공하시는 분들도 오셔서 봐주시고요. 처음에는 끼리끼리 회원들 위주로 사용했지만, 당시 유일한 레즈비언 바였기 때문에 소문이 났어요. 결정적으로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레스보스 간판이 1~2초 정도 살짝 비추고 지나갔어요. 근데 레즈비언들이 그 1, 2초를 놓치지 않고 간판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를 다 외우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레스보스 전화기에 불이 났고 또 막 방송국 전화에도 불이 났대요.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그다음 날부터 전국에서 레즈비언들이 다 몰려오셨던...
셀럽 맷: 그 정도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던 거네요.
전해성: 그렇죠, 그때는 레스보스 이외 그런 공간이 없었으니까요. 끼리끼리 사무실은 운동을 위한 사무적인 공간이라면은 레스보스 같은 경우 마음 놓고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또 술도 마시고 또 재수가 좋으면 애인도 만날 수 있고 그런 공간이었죠.
셀럽 맷: 그러면 해성님도 그 시절에 샤넬 다방 같은 데 많이 가보셨었나요?
전해성: 저에게 샤넬 다방은 사실 선배 세대에요. 50~60대 선배님들이 저희 끼리끼리를 찾아주셨을 때 샤넬 다방 얘기를 해 주셨고요. 또 여운회 얘기해 주시고. 여운회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자 운전자 모임이에요. 거기에서도 바지씨 치마씨, 그때 전 처음 들었거든요. 한 번 갔다 온 사람은 치마바지씨.. (웃음) 그 얘기를 듣고 신선하고 재밌었죠.
셀럽 맷: 어떻게 보면 레즈비언이 모여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해성님과 동료분들의 손에 의해서 탄생을 한 거잖아요. 어떤 느낌이셨나요?
전해성: 감격스럽죠. 레스보스도 생겼고, 레즈비언들이 마음 놓고 이 공간에서 나 혼자만 고립된 상황이 아닐 수 있어서 뜻깊은 것 같아요.
셀럽 맷: 해성님께 레스보스가 그런 의미라면 로터스님께는 루땐이 아마 비슷한 공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에서 루땐을 운영하시는 루시아 님께서 “레스보스라는 공간을 유지해 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저도 제 역사를 쓸 수 있었다”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그 비슷한 고난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로터스: 루땐 같은 경우, 저한테는 거의 제3의 고향 이런 느낌이거든요. 저는 먼저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제 정체성을 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루땐이라는 곳에서, 제 몸이나 타인 몸의 움직임을 싫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셀럽 맷: 감독님께서는 〈홈그라운드〉라는 작품을 만드는데 5년이라는 시간을 다 쏟아부으셨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분들한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권아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사실 영화 찍는 도중에 코로나도 있었고 그리고 코로나 시기 동안에 퀴어 커뮤니티 속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는 게 힘들고 퀴어로 사는 것은 더 힘든데 (우리에겐) 과거부터 이렇게 멋있는 선배분들도 있었고, 이렇게 모여서 재미나게 놀면서 또 하나의 동화를 만들어 왔었던 이런 역사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 나가면 반갑게 나를 맞아줄 수 있는 모임이라든지 친구들을 찾을 수 있으니까 혼자 너무 외롭게 지내지 말고 좀 나와서 힘내서 살아보자 싶었고요. 그리고 힘들수록.. 명우 형도 힘든 순간도 많고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드러나잖아요, 너무 힘들면 막 욕도 하고 어떨 때는 울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시는 게 저는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힘들어도 어떨 때는 농담하면서 좀 넘기기고, 춤추면서 또 이겨내기도 하고. 그렇게 계속 살자, 혼자 있지 말고 같이 있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셀럽 맷: 이제 두 분께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려볼게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무슨 장면일까요?
로터스: 저는 맨 마지막에 레스보스에서 다 같이 웃고 있는 장면들이 있는데요. 저 때가 코로나여서 퀴어 퍼레이드가 온라인으로 진행될 때 틀어놓고 다 같이 레스보스에서 술 마시고 즐겼던 순간이었어요. 제가 너무 즐거워서 진상을 좀 부리긴 했지만 나오지 않았고 (일동 웃음) 예쁘게 웃는 모습만 딱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단절돼 있는 순간들에도 모일 수 있다는 게 되게 행복하더라고요. 거의 10년 넘게 퀴어 퍼레이드를 다녔는데, 가장 행복했던 퀴어 퍼레이드 중 하나였지 않나 싶었어요.
셀럽 맷: 그 순간에 또 레스 보스에 함께 있었네요.
로터스: 네, 같이 있으면서 또 루땐 영상도 보고..
전해성: 저는 명우 선배님이 인터뷰하면서 눈물 짓는 모습을 보고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선생님은 그냥 그 자리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스보스를 지키고 이어 나가기 위해 그런 고충들이 있었구나, 저는 생각 못 하고 있었고, 형님에 대해 고개 숙여지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다시 생기게 됐던 계기였죠.
셀럽 맷: 영화를 본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분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있으실까요?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시면서 어떤 것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촬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단순 아카이브였는지 아니면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따로 있으셨던 건지요.
권아람: 우선은 아카이브 자료가 대중에 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카이브 자료들과 촬영한 재연 장면을 통해 그 당시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처음에는 단순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이 됐죠. 이 공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분위기였을까. 근데 공간을 탐구하다 보니까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이 공간사를 그림과 동시에 그 공간을 오픈하고 또 오랫동안 지키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 싶었거든요. 말씀해 주신 그 두 가지가 다 목적이었던 같습니다.
셀럽 맷: 저는 해성 님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새롭게 나오는 용어들이나 개념들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고 고통받으시는 부분들이 나오잖아요. 선생님도 이제 후배분들이 이렇게 막 활동하시고 하는 거 보면서 ‘저 단어는 표현 잘했다.’ 이런 거를 체감하실 때가 언제인지 좀 궁금하더라고요.
전해성: 사실 저는 90년대에 활동을 하고 제 개인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떠나 있다 보니까 많은 활동을 못 했어요. 후배들하고 관계가 많이 단절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선배 분들의 치마 바지씨, 저희 세대의 부치팸으로 끝이에요. 없어요. 그 다음에 어떤 용어들이 나왔는지 잘 모르고, 공부를 하려고 책도 사놓고 했는데 요즘 후배 분들은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굉장히 섬세하고 다양하더라고요. 그런 것들도 참 생소하게 느껴지고… 저희 같은 50대 커뮤니티를 많이 찾아봤는데 많이는 없더라고요. 찾아보면 이제 20대에서 대부분 30~40대가 많고 그래서 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로터스: 역시 루땐에 가시는 방법밖엔..
셀럽 맷: 근데 퀴어 퍼레이드하면 사람들이 막 북적대잖아요. 그런 거를 볼 때도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밖으로 나와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90년대랑 비교를 하면 많이 달라진 부분일 것 같아요. 그때는 어땠나요?
전해성: 제가 처음 1회 때 참여했었거든요. 처음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요. 그리고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많이 오픈 돼있어요. 저희가 활동하던 시기에서는 커밍아웃 하나만으로도 절체절명의 과제였었거든요. 지금은 커밍아웃한 분들도 많이 생겨나셨고 받아 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우리 때보다는 관대해진 측면도 보이는 것 같고. 아직 멀긴 했지만, 유튜브나 미디어 보면 자기를 다 드러내놓고 진행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사람들이 개방적이고, 자기를 많이 표현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때보다는 받아 들이는 그런 분위기가 생겼다는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셀럽 맷: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영화에 얼굴을 내비치는 거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 얼굴과 목소리와 이런 것들이 닿는 거니까 처음에 섭외가 왔을 때 혹시 인터뷰하는데 좀 두렵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로터스: 저는 감독님이 5년간 진행하시는 걸 옆에서 같이 지켜봤어요. 저는 재미있었어요. 여기 계신 분들의 나이대를 잘 모르겠지만 저는 30대인데요, 저는 10대 때는 '20살에 레즈비언이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사회에 나가서도 레즈비언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셀럽 맷: 레즈비언을 한다, 그러니까 활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느낌이 있어 보여요.
로터스: 그래서 인터뷰 섭외 받고 느꼈던 건, ‘그래 알 사람은 알고 잘리면 노무사한테 물어보자’ 이런 각오였어요. “잘라봐, 그럼 민주노총으로 갈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사실 알아주면 저는 말하기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한 번에 커밍아웃하는 거죠. 지금도 회사나 다른 곳에서 숨기고 있지 않아요. 다만 예쁘게 나올지가 제일 걱정이었죠. 그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개봉해서 전국에 걸려버리면 솔로 탈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조금 했고… 다행히 지금 탈출해서 큰 문제는 없고요. 마음도 편해지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권아람: 얼굴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가진 부담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을 인터뷰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제가 레스보스라는 공간에 대해 찾다 보니까 ‘끼리끼리’라는 단체를 이제 알게 됐고, ‘끼리끼리’ 관련한 것들을 찾다 보니까 아까 해성 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던 ‘송지나의 취재 파일’이라는 그 영상을 이제 보게 된 거예요. 그게 1996년도 영상인데 2020년대에 보고 진짜 충격받았어요. 이 시기에 이렇게 얼굴을 보이면서 커밍아웃한 선배들이 있었다니 정말 많이 놀랐고 감동했어요. 그래서 여기 나오는 이 선배님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그리고 그 얘기를 좀 꼭 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인맥을 수소문해서 걸치고 걸쳐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었고… 사실 말씀하셨다시피 2000년도 이후에는 활동을 안 하셨기 때문에 인터뷰를 안 해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었죠. 진짜 레전더리한 그런.. 역사의 산증인이시라고 생각하거든요.
셀럽 맷: 출연 섭외가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전해성: 저는 출연 섭외가 왔을 때 출연할지 안 할지 고민이 없었고요. 당연히 한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제가 레즈비언 운동 초창기 멤버이고 활동한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물어보면 얘기 해줘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있어요. 그때 당시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놓지 못한 게 지금 와서는 가장 아쉬운 부분들인데 그런 기억들이 이제 제 머릿속에 기억들로만 남아 있고 그러다 보니까는 소실된 것들도 많고 또 왜곡된 부분도 많을 거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정확한 사실이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그런 걱정은 많이 있습니다.
셀럽 맷: 감독님께서 너무 좋으신 분을 찾으셨네요.
권아람: 너무 감사했죠. 로터스 님의 경우에도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어요. 그때부터 저한테 루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었죠. “춤을 추러 와라, 춤을 추면 굉장히 행복하다.” 영업하셨죠. 저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어서 그냥 구경하다가 루땐의 에너지가 좋아서 공간에 관심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하고 촬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결국 춤을 배우러 한 번 갔었어요. 사실은 목적이 달랐죠. 춤보다 춤추는 멋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고 촬영하고 싶었던 거기 때문에… 로터스님이 춤을 추면서 얻는 그 에너지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고 루땐에 가서 많은 분을 만나다 보니까 다들 귀여우시고 같이 만들어가는 공간의 분위기가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루땐에 대해서도 다양한 부분을 촬영하기는 했지만 코로나 시기여서 계획했던 촬영을 많이 못하게 되면서 분량 자체는 좀 적어지는게 많이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촬영 다니면서 봤던 것들이 되게 소중하고 그렇게 남아 있네요.
관객: 선배님들에 대한 얘기가 너무 이제 인상 깊었습니다. 근데 하나 아쉬웠던 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나온 것 같아서, 혹시 〈홈그라운드 2〉처럼 영화를 더 만드실 계획이 있으신지 해서 여쭤봅니다.
권아람: 사실 저도 젊은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신촌공원에 갔던 그 당시의 10대들이 지금 2023년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공간들을 만들어 가면서 살고 있을지를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근데 루땐이라는 젊은 분들이 모이는 공간을 통해서 그 부분이 조금 소개가 되었는데, 많은 세대와 여러 장소들을 한 영화에 담다 보니 그 부분에 있어 조금 아쉬움으로 남아요. 명우형께서도 저한테 70대가 돼서는 또 속편을 찍어야 되지 않느냐라는 얘기를 하셔서… 잘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셀럽 맷: 여러분들 여기서 유념하셔야 될 거는 〈홈그라운드〉가 잘 돼야 나올 수 있는 거에요. (일동 웃음) 주변 분들한테 많이 추천을 해주셔서 〈홈그라운드 2〉가 나올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을 해 주시면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아쉽지만 관객 분들께 마지막으로 인사 한마디씩 하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권아람: 목요일 저녁에 와주셔서 너무 반갑고요. 영화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 보니까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해서 아쉬움으로 남았었거든요. 전해성 선배님도 그렇고 로터스님도 그렇고 오늘 같이 모여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전해성: 되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귀한 시간에 제가 귀한 분들 사이에서 같이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로터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저를 영화에 찍어주셔서 감독님께 감사드리고요. 또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여러분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홈그라운드〉 많이 홍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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