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기획 영화를 말하다
2022년 8월 13일(토) 오후 2시
남다은이 <절해고도>를 말하다
"길 잃은 시간을 걷는 법"
조각가 윤철(박종환)은 지금은 인테리어 일만 한다. 한때는 촉망받는 젊은 미술학도였으나, 현재 그는 거친 현장에서 돈을 벌며 근근이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는 예술가의 길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기 마음의 별만 보고 길을 찾는 일이었다. 길을 잃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는 한때, 길 잃을 위험이 없는 스님이나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의 끼를 물려받아 그림을 잘 그리던 딸이 그처럼 방황하다가 그가 상상했던 미래를 선택한다. 딸은 절에 들어간다. 둘은 이제 서로를 “거사님”, “행자님”이라고 부른다.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워 각자의 절해고도(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의 외딴 섬)에 고립된 사람들. <절해고도>는 그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인물들이 회피한 ‘길 잃기’를 자신의 형식으로 감행해본다. 서사에 가해진 몇 번의 과감한 단절, 그 과정에서 대면해야 하는 이별과 재회, 그 변화를 극적 도약이 아닌 아주 조금 나아진 이행으로 대하는 태도, 흐르는 시간에 대한 존중, 예민하고 날카로운 꿈결 같은 상상력, 무엇보다 땅에 디딘 두 발의 튼튼함으로 이 영화는 길을 잃은 상태에서도 천천히 걸어본다. 그래서일까.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조차 대화 장면들은 신기하게도 평온히 빛나고 영화의 대담한 방향 전환은 물 흐르듯 무리 없이, 자연스럽다. 외롭게 홀로 싸우던 인물들 또한 어느새 자기만의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물론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길을 잃어야, 어떻게 그 순간을 마주해야 비로소 ‘절해고도’들을 잇는 선이 보일까. <절해고도>는 그 물음을 아름답고 성숙한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다.
남다은 평론가
<FILO> 편집장. 평론집 <감정과 욕망의 시간: 영화를 살다>(2015, 강)가 있음.
* 상영 후 강연이 진행됩니다.
* 행사 당일 온라인 예매 환불이 불가합니다. (현장에서만 가능)
<절해고도 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2021 | 김미영 | Fiction | 110분
윤철(박종환)은 조각가이지만 주로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그는 이혼한 아빠인데, 딸 지나(이연)는 아빠를 닮아 미술에 소질이 있지만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한 편 윤철은 영지(강경헌)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늦은 나이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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