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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69세〉: 69세를 마주한 당신에게

by indiespace_한솔 2020. 9. 9.






 〈69세〉  리뷰: 69세를 마주한 당신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지만 너무 힘든 장면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지는 당신을 위해 미리 말해둔다. 이 영화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결말로 당신을 맥 빠지게 만들지도 않으며, 현실만으로도 이미 가뜩이나 부담스럽고 피로한 당신을 절망에 몰아넣지도 않는다. 선정적이지도, 함부로 목소리 높이지도 않는 이 영화는 단지 맑은 거울처럼 고요하게 당신을 비춰낼 것이다.


영화 〈69세〉는 병원을 찾은 노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젊은 간호조무사의 성폭행과 그에 맞선 여성의 투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안고 우리를 찾아왔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의문의 평점 테러를 받았다는 소식으로 〈69세를 처음 만났을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기이하리만큼 집요하게 깎아내리는 손은 누구의 손일까. 그들은 이 거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영화 주인공 효정(예수정)은 올해 69.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스물아홉의 남성 간호조무사의 성폭력에 상처 입었다. 삶의 주요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있는 상대 동인(기주봉)에게 이 사실을 어렵게 밝히고, 두 사람은 경찰서를 찾는다. 그 후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듣게 되는지, 어떤 현실에 맞부딪히게 되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간호조무사는 말간 얼굴로 범행을 부인하고, 경찰은 효정이 치매가 아닌지 먼저 의심하고, 구속 영장은 기각된다.


다양한 사람이 효정의 세상을 스쳐가지만 든든한 도움의 손길은 없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동력이 점점 떨어져가는 두 노인만이 싸움의 전선에 서 있을 뿐이다. 약자와 약자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물처럼 담담하게 흐르는 감정과 생각은 나직한 힘을 갖고 있다.





그렇게 영화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노년층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이중 층위를 세심하게 담고, 그러한 폭력에 가려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강인함까지 비춘다. 예고편 영상에도 나오는 인생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라는 일갈은, 69세까지 자신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온 효정이기에 할 수 있는 단단한 말이다.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69. 69세가 된 효정 안에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순간이 나이테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행간마다 효정이 봄볕에 눈물도 반짝이는 삶을 살아왔음을 가늠하게 해주는 전사가 녹아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비춰낸 것은 효정이라는 한 인간,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 비틀대면서도 맞서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일 것이다.





제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자박자박 적어보면서, 효정은 멍들었던 손목과 손가락을 다시 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진흙탕 같은 현실과 함께 이러한 용기, 그리고 연대의 힘도 보았다. 그래서 영화관에 들어갈 때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새로운 힘을 받아 나올 수 있었다. 당신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나는 당신의 거울에 어떤 생각과 마음이 비춰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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