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타나의 꿈〉리뷰: 깨기 위해 꾸는 꿈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유토피아를 그린 작품은 늘 비릿한 느낌을 준다. 행복한 꿈을 꾸다가 깼을 때의 그 허무함. 다시 잠들려고 해도 이미 현실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기다린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눈을 감고 잠든 척하거나, 눈을 뜨고 현실을 맞이하거나.

애니메이션 〈술타나의 꿈〉은 우리를 유독 긴 꿈으로 데려간다. 주인공 ‘이네스’는 인도 여행 중에 동명의 페미니즘 소설 〈술타나의 꿈〉을 읽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여성이 지배하는 유토피아 ‘레이디랜드’에 빠져든 이네스는 작가 ‘로케야’의 여정을 직접 따라가 보기로 결심한다. 로케야가 싸워온 흔적과 인도 여성들의 현재, 레이디랜드 이야기, 그리고 이네스의 삶이 마구 뒤섞인다. 여러 시간대와 다양한 기법을 오가며 모호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말 그대로 꿈속 같지만 한 가지만은 선명하게 현실이다.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여성이라면 모두 어떤 형태의 혐오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 이네스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은 얼굴이다. 몽롱하고 은은한 억압을 모르는 체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를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것이 희망을 약속해 주진 않는다. 레이디랜드는 꿈과 소설에나 존재하고, 원숭이는 언제든 우리를 습격할 수 있다. 이네스의 내면이 변했다고 해서 풀숲에 무방비로 누워 잠든 그가 안전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담. 엔딩마저 애매한 영화를 두고 역시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씁쓸한 현실 앞에서 도망치거나, 그래도 현실과 싸워보기로 하는 것.

이 영화를 완성하는 건, 이네스와 같은 꿈을 꾸고 상영관에 남겨진 우리의 몫인 셈이다. 레이디랜드의 환상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너무 다를지라도, 100년 전의 세상으로부터 지금의 세상이 여전한 구석이 있대도, 아주 천천히 깨어날지언정 오늘을 모르는 척하진 않는 것. 그러다 보면 100년 후의 여성은 우리의 삶을 소설 삼아 새로운 여행을 꿈꿔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낙관 역시 무의미한 꿈 같은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꿈꾸지 않는 한, 새로운 세상이 깨어나는 일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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