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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먼 존재에게 다가서기
〈공작새〉와 〈굿〉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당신’의 마음은 너무도 모호해 잡히지 않고 ‘나’의 말은 ‘당신’에게 닿지 못한 채 공중에 떠도는 것 같다. 너무도 먼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때로는 춤을 통해, 때로는 록밴드를 통해 경계를 흩트려 아득히 먼 존재에게 다가가는 두 편의 영화, 〈공작새〉와 〈굿〉(2022)을 소개한다.
〈공작새〉는 아들 ‘신명’과 아버지 ‘덕길’의 이야기이다. 왁킹 댄서인 트랜스젠더 ‘신명’과 호창농악 전수자인 ‘덕길’은 한때 같은 가락에 맞춰 춤을 췄다. ‘명’은 고향마을 호창에서 농악을 배우며 자랐지만, 지금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를 떠나 서울에서 왁킹 댄서로 살아간다. ‘명’에게 아버지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같다. 손등에 남은 흉터는 공작새 문신으로 덮었지만, 마음의 생채기는 시퍼런 흉터가 되어 그 자리에 남아있다.
‘명’은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고향을 찾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고향마을이 그를 반길 리 없다. ‘명’은 마을 사람들의 냉대 속에 ‘우기’로부터 농악 추모굿을 올리면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해 듣는다. 수술비용이 절실했던 ‘명’은 아버지의 추모굿을 준비하지만, 아버지를 위한 추모굿을 할 생각은 없다.
한편, 70년대 록밴드 ‘헤드라이너’를 추종하는 〈굿〉(2022)의 보나는 무속인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보나에게 할머니는 무속신앙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체 만 체 하는” 존재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자신을 구속하기만 하는 할머니를 향한 설움을 쌓여가고 보나는 할머니의 부적을 모두 태워버리기에 이른다.
〈공작새〉와 〈굿〉은 무형의 퍼포먼스를 통해 이해의 자리를 마련한다. 〈공작새〉의 ‘명’은 추모굿을 준비하며, 점차 아버지의 마음에 다가선다. 여전히 그를 긍정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지워낸 자리에 조금씩 자신만의 색을 채워 넣는다. 그렇게, 49재가 다가오고 명은 형형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추모굿을 시작한다. 굿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명’의 춤사위는 굿에서 왁킹으로 연결된다. ‘명’은 농악과 왁킹 사이에서 온몸으로 춤을 춘다. 절대 가닿지 않을 것 같던 농악과 왁킹은 ‘명’의 춤사위 안에서 겹친다.
〈굿〉의 보나는 할머니의 부적을 태워버리다 불의의 사고로 멤버 전원이 세상을 떠난 70년대 록 밴드 ‘헤드라이너’를 소환한다. 졸지에 록밴드 귀신을 불러버린 보나는 이들을 할머니의 병실로 데려가 해가 뜨기 전까지 미발매 곡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드럼은 할머니가 굿판에서 사용하는 장구로 대신한다. ‘헤드라이너’의 연주를 들으며 보나는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헤드라이너’가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록밴드임을 알게 된다. 할머니와 보나가 함께 들은 하룻밤의 연주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듯 보였던 무속신앙과 굿, 장구와 드럼 사이의 경계를 신명 나게 흔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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