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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이도 자애(自愛)를
〈잠자리 구하기〉와 〈성적표의 김민영〉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입시는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과정이지만 누구에게도 가뿐한 일은 아니다. 그때까지 이어져 온 고민, 노력, 취향을 꼭꼭 눌러 담아 가슴에 품은 채 우리는 납작해져야 한다. 성적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는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분류되고 그동안 다채롭게 살아 있던 정체성이 천천히 짓눌려 죽어간다. 〈잠자리 구하기〉와 〈성적표의 김민영〉은 죽어간 자신에 대해 함구하지 않으려는 시도이며 나아가 서로가 펴질 때까지 곁에 있겠다는 선언이다.
〈잠자리 구하기〉는 정석적인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즉각적이고 일상적인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감독과 친구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브이로그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학생, 입시라는 소재와 더불어 이러한 형식은 영화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그래서 ‘나는 살 가치가 없어’, ‘죽고 싶다’ 등의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숫자로 판단 당하고 판단해야 하는 슬픔과 괴로움, 부끄러움이 더욱 여실히 느껴진다. 감독은 부모님과 주변 학우들에게 비난받으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그것은 이 단계를 뛰어넘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시기를 미화시켜 버릴 자신과 어른들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더없이 자애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위한 몸부림이다. 좋은 대학을 갈 때까지, 좋은 성적을 얻을 때까지 행복을 보류해야 한다고 세상은 말한다. 하지만 그걸 얻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곧바로 바로잡히진 않는다. 억눌린 것을 펴는 것은 결국 우리 몫이다. 감독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당신의 곁에 끝까지 있고 싶다고 고백한다.
반면 〈성적표의 김민영〉의 정희는 제도에서 비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입시를 앞두고 정희와 민영, 수산나는 삼행시 클럽을 마무리한다. 가끔 왜 해야 하는지, 열심히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과정을 겪으며 그들의 다채로움은 빛을 잃어간다. 그 결과를 맞이하는 날, 정희는 남에게 시계를 빌려주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정희의 세상은 숫자가 아닌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눌러 담았던 것들이 막을 수도 없이 새어 나온다. 그 빛이 정일과 민영을 서서히 물들인다. 정희의 상상력은 숫자로 된 성적표 대신 다른 것을 제시한다. 마음과 패션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은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려 시도한다. 그리고 혼혈이 될 친구에게 언젠가 찾아가겠다고, 네가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을 때까지 곁에 있겠다고 말한다.
한번 눌려버린 것들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 구김살이 진 얼굴에 다시 웃음이 들 때까지, 그 과정을 서로 오래 기다려줄 수 있기를. 한 명의 여고생이자 입시생인 시절을 지난 사람으로서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작품 보러 가기: 〈성적표의 김민영〉(이재은, 임지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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