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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디돌잔치 〈절해고도〉 인디토크 기록: 멀리서 바라보면

by indiespace_가람 2024. 10. 8.

멀리서 바라보면

 인디돌잔치〈절해고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9월 24일(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김미영 감독, 박종환 배우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기록입니다.

 


과거의 일을 바라볼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와 시선은 무엇일까?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라는 듯 시점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절해고도〉의 시공간적 감각을 따라 일년 전과 오늘의 지금을 바라본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명현): 9월의 인디돌잔치는 작년 23년 9월에 개봉했던 〈절해고도〉로 선정됐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시작 전에 감독님과 배우분 각자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감독(이하 김미영): 〈절해고도〉가 인디돌잔치를 통해 1주년 생일잔치를 할 수 있게 여러분이 기회를 주셔서 정말 뜻밖의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영화 다시 보시면서 어떻게 보셨는지 얘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 갖겠습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안녕하세요. 저 역시 인디돌잔치를 통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과 영화 본 소감과 촬영했을 때 소회를 나눌 수 있어서 기분이 좋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유익한 대화 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진명현: 작년 개봉 당시에 인디스페이스에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장기 상영까지 해주셔서 겨울 직전까지도 극장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절해고도〉를 선보여드릴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 말씀드립니다. 특히 인디돌잔치를 통해 작년 개봉작을 올해 다시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어서 뜻깊은 자리인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박종환 배우가 촛불이 꽂혀있는 케이크를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어떤 분들께는 여운을 굉장히 오래 가져가게 될 이미지일 텐데 오늘의 이 좋은 순간을 간직하셔서 훗날 영화를 다시 꺼내보실 때 오늘을 같이 기억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해고도〉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텐데 3년 가까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가 작년 9월에 극장 개봉을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김미영 감독님께는 정식적인 첫 개봉작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개봉 당시 관객분들의 반응들이 굉장히 좋았고 기쁘게도 작년 연말에 많은 상을 수상하셨어요. 들꽃영화상 대상도 수상하셨고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하셨죠. 종환 배우님, 개봉 시점에서 1년이 지났는데 〈절해고도〉가 배우님과 감독님께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으신가요?

 

박종환: 영화 개봉 이후로 1년이 지났는데 그 기간 안에서 띄엄띄엄 〈절해고도〉를 통해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배우 활동하면서 출연한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상영이 이어진 경우는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절해고도〉 개봉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지금까지 배우 활동을 많이 안 했는데 그 덕분에 GV마다 참석해서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절해고도〉라는 영화와 함께 1년간 어떻게 지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여러분들을 만나 관심이나 응원을 보내주시는 느낌을 받아서 1년간 '내가 참 잘 지내고 있구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마음 충만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김미영: 매번 영화 작업을 할 때마다 작품의 결과도 정말 중요하지만, 작업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사실은 더 중요하다, 그런 걸 좀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해고도〉를 하면서 물론 그 과정에서 제가 잘못한 일도 많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작업한 분들과 함께 연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너무 감사드려요. 특히 박종환 배우가 GV에 참여하는 것도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계속 함께 와주시고 이야기해 주셔서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영화를 여러 번 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매번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영화라서 오늘 느낀 감정도 이전과는 다르셨을 것 같고, 처음 보신 분들도 느끼는 점이나 영화에 대한 궁금한 것들도 있으실 것 같아서 이제 여러분들과 편하게 질문과 소감 나누면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관객: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장면을 전환하는 템포가 약간 빠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영화에서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 장소가 절이기도 하고 소재 자체는 정적인 느낌이 많았는데 편집에 있어서 장면 전환을 빠르게 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미영: 시간을 큰 단위로 러프하게 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많은데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지점이었어요. 종환 배우님도 그 지점에 대해 언급해 주셨는데, 저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을 발생시킨 정확한 원인을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장면에도 그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로 이 영화를 편집했을 때는,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 중에 플래시백처럼 보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사실 그것도 진짜 플래시백은 아니고 과거를 짚기보다는 그냥 계속 진행되는 영화라서 인물이 뒤끝을 안 남기는 느낌,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지금 뒤돌아보지 않는 느낌으로 지속되길 바랐어요. 왜냐하면 인물이 결국 끝에 가서는 뒤를 돌아보거든요. 화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하는 작업이 그렇게 되는데 영화는 인물이 하려는 거랑 반대 방향으로 진행을 하려고 했던 경향이 있습니다.


관객: 지금 말씀 주신 부분이 〈절해고도〉의 굉장히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인데 저도 처음 봤을 때 영화가 앞으로 달려 나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어요. 다시 보니까 방금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너무 이해가 가더라고요. 원인이라던가 부수적인 것들을 설명하고 굳이 파헤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약간 영화의 태도라는 생각도 들어서 〈절해고도〉는 곱씹을수록 좋아지는 영화예요.

 

박종환: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영화가 갖고 있는 고유한 시간 감각도 좋았고 시나리오 자체가 문학적인 느낌으로도 너무나 좋아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명현: 많은 분들이 각본집 갖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작년에 이 작품 개봉하면서 영화에 참여해 주신 분들과 현재 활동하고 계신 작가님들과 동명의 시집을 하나 만들었어요. 감독님, 시집과는 별개로 각본집 출판 계획이 있으실까요?

 

김미영: 각본집은 예정이 없습니다. 저는 시집도 책 자체로 재밌고 너무 좋아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관객: 저는 두 번째 보는데 처음 볼 때도 그렇고 카메라 워킹이 보통 이런 정적인 영화일 때는 픽스샷이 다수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무빙을 굉장히 섬세하게 사용하는 느낌이 들어서 장면을 볼 때마다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서는 연출적으로 특히 촬영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두고 이 영화를 좀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카메라 무빙이 있으면 배우님 같은 경우에도 움직이는 연기를 할 때 움직임의 제약 또는 반대로 어떤 부분에선 자유로움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점에서도 박종환 배우님께서는 연기하실 때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진명현: 두 분 대답 주시기 전에 저희 촬영 관련해서 소개드릴 분이 와 계셔서 알려드릴게요. 지금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촬영 감독이자 〈절해고도〉 촬영 감독이신 이진근 촬영 감독님이 관객석에 와계십니다. 아름다운 촬영을 담당해 주신 이진근 촬영 감독님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처음에 이진근 촬영 감독님과 이야기한 것은 이 영화가 어떤 방식의 제안을 가지고 갈 것인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작업을 할 때 어떤 포부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한 씬을 가능한 만큼 붙여서 가보자, 그런 포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과정에서 이런 다짐을 장면에 반영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물론 전체 장면을 그렇게 진행할 수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있거든요. 특히 해가 지는 섬을 바라보다 바깥으로 나오는 장면들은 일부러 해가 지는 타임을 맞춰서 찍은 건 맞지만 사실 공이 많이 들어갔어요. 오후 내내 그 장면을 촬영 감독님이 연습하시고 영화에서 쓰는 테이크는 해가 섬 사이에 걸려 있는 어찌 보면 찰나 같은 장면이었는데 15번 정도 같은 장면을 찍었어요. 심지어 해가 떨어진 뒤에도 찍고 계속 찍고요. 근데 이런 장면이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종환 배우가 차에서 쓰러졌을 때도 마찬가지고 촬영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이 고심을 많이 하시고 실제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많이 애써주셨죠. 그런 점에서 영화 촬영이 저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환: 연기를 책임지는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대사를 잘 해야 하고 연기를 준비하면서, 혹은 하는 도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것들을 연기하는데 반영하거나 스태프분들과 맞춰서 시연을 해보는 것들을 포함한 많은 행동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감독님이 저에게 제안을 주신 게 먼저 편하게 움직여 보고 그 후에 앵글을 정해도 괜찮을 것 같다. 카메라를 그때 설치해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실제로 카메라가 없는 상태에서 제가 일단 움직여보고 느껴지는 것들을 말씀드렸는데 감독으로서 배우의 연기를 책임지는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촬영 감독님도 제 의견을 반영해 주셨고 움직임과 모양,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느낌 같은 것들을 장면에 담아주시려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다고 느껴요. 한 편으로는 연기적인 부분이나 장면의 움직임 같은 것들은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카메라의 무빙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잘 움직여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연기에 집중하는 것이 희미해지고 카메라와 잘 맞춰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뭐가 더 좋을지 계속 고민하는 순간들이 이어졌어요. 여러 부분에서 고려하고 생각할 것들이 많았는데 다른 것에 제약받지 않고 내키는 대로 시도해도 좋다고 기다려주셨던 말들이 기억이 납니다.


진명현: 영화 촬영 현장을 직접 보면 배우랑 카메라가 정교한 안무를 함께 맞추는 커플 댄스 같기도 하거든요. 느낌이 되게 신기하고 후에 완성이 돼서 그 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것들이 영화 화면에 담겼을 때 영화는 참 무용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종환 배우님이 방금 말씀해 주신 것들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이 작품은 박종환 배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작품들을 해오셨지만 이 영화 속에서 종환 배우님이 그려내는 모습들은 아주 일상적인 동시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화적인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부분이 고전 문학적인 정취를 더해주는 느낌이 있는데 촬영 감독님의 노력도 있을 것 같고,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거쳐온 캐릭터가 연기 속에 녹아들어서 어떤 장면을 봐도 얼굴이 다 다르고 모두 신경이 쓰여요. 그래서 저는 어떤 장면들에선 박종환 배우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느꼈던 다른 감상이 있으시면 추가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미영: 배우가 연기 하는 걸 따라가려고 했던 건데 사실 그 점에선 촬영 감독님이 제일 고생하셨어요. 어떻게 움직여도 그 동작들을 잡을 수 있어야 하니 많이 힘드셨을 것 같고, 사실 연기에 대해서 제가 많이 아는 것들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오히려 많이 배웠어요. 좋은 영화가 완성이 되려면 영화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박종환: 제가 했던 과거에 했던 연기들을 다시 감상하면 내가 저 역할을 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억이 조금 흐릿한 경우도 있거든요. 같은 의미에서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절해고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다르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도하기 어렵지 않고 촬영 마칠 때쯤에는 촬영이 끝나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절해고도〉는 어떤 의미에선 내가 한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이 크진 않지만 또 다시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작품이예요.

 

 

관객: 저는 〈절해고도〉를 10번 이상 봤는데도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져요. 다른 GV에서 윤철이 도맹에게 밤을 주는 장면이 애드리브였다는 걸 들은 이후로는 밤만 보면 항상 이 영화가 생각이 났어요.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밤만 보면 영화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어서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에피소드나 추가적인 애드리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미영: 대본 자체는 사전에 배우분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고 고친 거거든요. 배우분들이 의견을 주신 것들 중에 좋은 게 너무 많았고 실제 현장에 들어갔을 때는 저희가 리허설 없이 촬영 수순을 밟기 때문에 애드리브라는 표현이 맞는지 조금 모호하긴 해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밤 주는 장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태프들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었어요. 그 상황을 누군가는 실수로 컷 사인을 할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장면을 바라보는 스태프들 입장에선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상황들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켜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모두가 모르는 상황에서 촬영을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밤 씬과 관련해서 수많은 대답을 하셨겠지만 오늘 처음 보신 분들도 많으시니 종환 배우님, 밤 씬에 대해서 얘기 조금 더 해주시죠.


박종환: 언급해 주신 밤 씬은 영화에서 윤철이 자신의 딸인 지나이자 도맹 행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를 타고 수행 센터를 나서는 장면이에요. 윤철이 차를 타고 수행 센터를 나가는 장면이 끝이 나려면 카메라 밖으로 크게 유턴하고 화면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한 세 번 정도 테이크를 간 것 같아요. 버전이 조금씩 달랐는데 지점을 벗어나기도 했고 회차를 하고 내려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김미영: 세 번째 테이크 원래는 차가 그냥 쭉 가는 거였어요. 도맹이 아빠 가세요, 하고 서로 멀어지고 길에 혼자 남겨지는 장면으로 남겨놓으려고 했는데 세 번째 테이크가 갑자기 차가 쭉 가야 되는데 멈추는 거 있죠?

 

박종환: 그때 손에 있는 밤을 쥐여주고 가게 된 건데 두 번째 촬영을 하고 무전기로 촬영을 더 하는지, 이 장면 이대로 괜찮은지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제작 부장님께서 근처에 있는 밤을 따서 스태프들에게 계속 나눠주셨어요. 촬영하던 시기가 시기적으로 밤이 제철이었는데 그 주변에 특히 밤나무들이 많이 있었어요. 가지고 있는 걸 다 나눠주시면 또 나무 타고 오르고 내려와서 나눠주셨는데 그때 마침 차가 회차하는 지점에서 창문을 똑똑 두드리시더니 제 손에 밤을 갑자기 쥐여주시는 거예요. 잘 갖고 있다가 촬영 끝나고 먹어야겠다 생각하는데 장면을 다시 촬영하게 되느라 원점으로 가서 똑같은 연기를 하는데 유턴하는 지점에서 손에 밤을 쥐고 있으니까 운전대 잡는 게 곤란해진 거죠. 그래서 사전에 대본엔 없었지만 창문을 열고 도맹에게 밤을 건네줬던 것 같아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NG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고 오히려 차가 못 나가는 상황이 NG처럼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미영: 저희도 차가 갑자기 멈춘 이유가 뭔지 몰라서 조치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바라보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차가 멈췄는데 뭘 주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이야, 저거 뭐지, 도토리인가? 카메라 뒤에서 대체 뭐 하는 거지? 계속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 되었든 상황 자체는 도맹이 스님이 됐고 미련이나 여운 없이 쿨하게 아빠 잘 가,하고 수행 센터로 돌아오는 거였는데 이연 배우가 돌아서서 눈물이 핑 도니까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관객: 저는 처음 본 영화였는데 주변에 추천을 많이 받아서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어요. 좋은 영화 보게 돼서 오늘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많이 사용하신 이유와 많은 이름 중에 도맹이라는 이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미영: 길 도자와 싹틀 맹자를 써서 길이 싹튼다는 의미입니다. 내레이션은 윤철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속마음을 말하는데 완전히 톤이 바뀌는 두 지점이 있어요. 앞 지점은 딸이 내 인생을 훔쳐 간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고 다음 지점은 나중에 이르러 나도 내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말하는 지점이에요. 두 가지 축이 있는데 어쨌든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을 해야 돼서 그걸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다른 목소리로 조금씩 더 채울 수 있게 설정했습니다.


진명현: 혹시 종환 배우님은 아직도 기억하는 영화 속 대사가 있으신가요?

 

박종환: '볼 수 있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함께 산에 올랐다가 내려온 것으로 그날이 기억되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관객: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장소를 어떻게 고르시는 건가요? 연장선상에서 배우님께는 촬영 장소 중에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미영: 영화에 참여해 주신 미술 감독님이 창원에서 활동하시는 실제 미술 작가님이시고 저랑은 10년 친구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상업영화에서 만나서 제가 연출부였고 미술 감독님은 미술팀 소속이었는데 그 당시에, 그러니까 10년 전에 미술 감독님이 서울에서 전시를 했는데 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을 창원으로 다시 실어 내려갈 때 같이 동행을 했어요. 그때 그 창원을 많이 접했고 당시에 촬영하던 영화가 끝나고 연출부와 미술팀이 MT를 같은 지역으로 갔었거든요. 윤철이 영화에서 예전에는 이 앞이 다 바다였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걸 실제로 본 거예요. 그 앞이 모두 바다였던 시절을. 그리고 10년이 지나서 이 영화를 찍는데 미술 감독님과 둘이 6개월 정도 창원을 다시 돌면서 예전 기억 속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장소들을 다시 보게 됐어요. 미술 감독님은 낚시를 특히 좋아하셔서 아름다운 바다 포인트들을 이미 잘 알고 있으셨고 많이 보고 많이 가봐서 영화에 맞는 아름다운 장소를 고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종환: 사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소들을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장소 뽑기가 참 어려워요. 어떤 장소들은 윤철만 가게 된 장소고 그래서 이 장소들을 모아놨을 때 윤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연기에도 좋은 힌트가 됐어요. 윤철이 장소로부터 영향을 받았듯 그 모든 장소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관객: 작년 12월 말에 굿바이 상영 이후로 스크린에서는 오랜만에 보는데, 제가 궁금했던 건 중간에 도맹이 만들어준 두부전을 먹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사실 그전에도 도맹이 했던 두부전을 먹었었는데 윤철이 약간 울컥한 듯 보였는데 실제로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하고 배우님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을지도 궁금합니다.


박종환: 그 장면 촬영할 때 기억이 좀 생생하게 나는 것 같아요. 저는 손맛은 유전이라고 하면서 부엌 들어가기 전의 상황과 부엌에 들어가서 두부를 굽고 있는 딸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의 동요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낯선 모습도 보게 되고 어느 순간에 자라서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해준다는 점이 너무 감탄스러울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 그 두부를 먹는 장면에서는 먹길 기다리는 장면보다 많은 의미를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던가 그렇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표면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고 구체적으로 연상하기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이 연기에 반영이 됐었는지 감독님이 제스처나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 디렉팅을 해주셨고 음식 준비하는 것을 보고 먹는 것이 맥락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소를 바꾸면서 두 행위가 분리된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 과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편이에요.


김미영: 원래 그 장면의 핵심은 '바람 부는 바깥에서 두부를 먹는다'였는데 촬영할 때는 막상 바람이 많이 안 불었어요. 바람이 불면 눈에 뭐가 들어간다든지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기대했던 것 같아요.


진명현: 두부를 그렇게 예쁘게 굽는 게 사실 생각하는 만큼 쉽지 않아서 종환 배우님 말씀처럼 두부를 기다리는 것과 먹는 것은 또 다른 뉘앙스라는 게 한편으론 이해가 돼요.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정성껏 움직이던 도맹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관객: 저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보게 됐는데 남자 주인공 배우가 무해하고 귀여운 동물처럼 표현이 돼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보통은 주인공이 있으면 상대 배우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절해고도〉에서는 주인공 외에 다른 배우들에게도 시선이 머물 때가 많았어요. 주인공 못지않은 크기로 그들의 시선들이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응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감독님은 누구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되는지, 윤철을 제외하고 어느 배역과 서신이 맞닿아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김미영: 기본적으론 제가 N분의 1로 쪼개져져서 모든 부분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보태서 배우님들, 그분들의 개성 자체가 캐릭터가 일부 영화에 들어와서 훨씬 살아있는 작품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명현: 오늘 〈절해고도〉 개봉 1주년을 맞이해서 좋은 상영 기회 내어주신 인디스페이스에 감사 인사드리면서 마지막으로 박종환 배우님과 김미영 감독님의 소감 들으며 행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종환: 가을이 금방 지나갈 것 같아서 가을을 많이 만끽하셨으면 좋겠고 더위 때문에 애 먹었던 시간이 있으시니 선선한 공기 많이 드시고 혹시나 그런 나날 중에 등산하시게 되면 산에서 우연히 뵀으면 좋겠습니다.


김미영: 인디스페이스 너무나 감사드리고 진행해 주신 진명현 대표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신 저희 스태프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찾아와주신 여러분들 정말 감사드리고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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