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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엄마의 왕국〉: 가족의 굴레

by indiespace_가람 2024. 8. 5.

〈엄마의 왕국〉리뷰: 가족의 굴레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실의 힘』이라는 책을 출판한 후 인정받는 자기계발서 작가가 된 ‘기욱(한기장 역)’과 왕국 미용실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진 ‘경희(남기애 역)’는 아들이 성인기에 접어들며 급격히 데면데면 해지는 일반적인 모자 관계들 보다 사이가 각별하다. 경희가 낮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왕국 미용실이나, 지욱이 퇴근 후 돌아가는 집의 인테리어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생활은 특별한 이주나 변화 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 〈엄마의 왕국〉 스틸컷


 양육자로서 아버지의 역할이 부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기욱과 경희가 보여주는 가족 형태는 다른 어떠한 가족 보다 강한 유대와 결속의 형태를 갖는다. 다만 기욱을 향한 경희의 불안과 걱정은 종종 미묘하게 강박적인 형태를 띈다. 경희는 기욱의 생일을 맞아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시 뺏어 신경질적으로 버리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속적인 악몽을 꾸고 일어났을 땐 “행복해, 우린 행복해” 라고 주문을 외우라고 하는 등 서른이 넘은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맞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호자로서 피보호자를 대하는 태도로 보기엔 단순히 염려와 걱정보단 경희가 운영하는 미용실 이름처럼 왕국의 질서처럼 강박적인 성격을 띈다.


 강력하고 암묵적인 질서로 유지되는 왕국의 평화도 잠시, 경희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약속했던 일들을 종종 까먹고 빨래나 식사를 강박적으로 수행하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한편, 오래전 실종됐던 남편의 동생인 ‘중명(유성주 역)’이 형이 어디있는지 이제는 알아야겠다며 경희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중명은 경희와 기욱의 모자 가족 체제에 아버지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두 모자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가족 체제의 믿음 구조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인식의 강한 제어 속에서 경희는 남편이라는, 지욱은 아버지라는 금기의 영역을 공유해왔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이 경희는 마침내 “내가 네 아빠를 죽였어. 잊지 마. 이게 사실이니까.”라며 자신이 공고하게 유지해온 가족의 금기를 자발적으로 넘으며 지욱에게도 큰 혼란을 가져온다. 

 

영화 〈엄마의 왕국〉 스틸컷


 기욱은 경희의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 전달되는 사실과 있는 그대로의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불안에 휩싸인 기욱은 마침내 중명이 발견해낸 단서와 엄마의 무의식에 기반한 발언을 통해 사실의 영역에 이른다. 그리고 잊어왔던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마침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을 앞에 두고 지욱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것을 택한다. 그리곤 경희가 그러했듯 기욱 역시 강력한 거짓 속에서 마침내 엄마의 왕국을 답습하는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뒤바뀌는 순간, 왕국의 주인이 바뀌고 새로운 질서가 설립되는 순간에도 가족이라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형태를 바꾼 거짓과 분명한 진실만은 두 사람을 통해 계승된다. 행복의 신화 속에서 거짓의 역설은 기욱과 경희가 마주보며 대담할 모든 순간에 말할 수 없는 진실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가족일 수 있다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며 두 사람을 영원히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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