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납작 엎드릴게요〉리뷰: 세상이 우리를 납작 누르더라도.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 텍스트로만 보아도 느릿하고 평화로운 절이 떠오르며 귓가에는 목탁이 울리는 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각자의 종교와는 관계없이 절은 우리에게 평안한 마음을 선사해준다. 사람들이 속세(俗世)에서 마음이 혼잡 해질 때, 절을 찾는 이유이다.
출판사 막내 직원 혜인은 여느 때나 몸과 마음이 절에 가있다. 사찰 출판사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정글 같은 현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안녕을 바라며 절에 올 때, 절이 직장인 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는 평안을 찾을 수 없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혜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먹는 콩나물밥에서 지겨움이 솟는다. 저장 못하고 꺼진 컴퓨터에서 서러움이 밀려온다. 쌓여있는 일에 눌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다. 혜인의 발목에 묶여있는 모래주머니들이 그의 입에서 ‘넵!’을 부른다.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영화 속 혜인은, 언제나 더 납작 엎드려야 하는 막내 직원이다.
영화는 총 5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전체적인 혜인의 사찰 라이프를 그려내며 이어지며, 불교적 용어를 사용한 소제목들(정글, 아니 사찰 라이프 / 번뇌의 시그널 / 달마가 내게 온 까닭 등)이 혜인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해준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 속 모습들이 장소만 사찰에서 전환되며 펼쳐진다. 쌓여있는 문서들과 상사의 지시, 여기저기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혜인을 이레 찔러댄다. 바쁠수록 그렇듯, 여러 장애물들이 혜인의 길을 막아 대고는 한다. 매일 콩나물이 주재료인 사찰 밥을 우물대며 반복되는 일상 속의 무료함을 곱씹는다.
혜인은 여느 직장인과 같은 고민을 보여주기도 한다. 너무나도 열심히 사는 현재의 직장인들은, 종일 업무를 끝내고도 본인의 취미와 이상향을 찾아 그 또한 적극적으로 이행한다. 혜인의 주변인 팀장 진희와 대리 태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혜인에게 그의 취미인 글 쓰기의 현황을 물었을 때, 혜인은 대답을 미룬다. 그의 조각난 마음과는 대비되는 동그란 그릇에 놓인 원형 쌀과자를 씹으며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온다. 분명 하루 종일 성실하게 일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기분. 이 무기력함을 지우고 자부심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려 카페로 향하지만 피로감에 졸다 손에 쥔 볼펜이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진다. 처량한 처지의 볼펜이 혜인과 닮아있다. 울상 짓는 혜인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이러한 불편한 매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상인 모습 직후 카메라가 비춘 부처는 늘 인자한 웃음을 보인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맘과는 달리 너무나도 평화로운 사찰의 곳곳을 비추기도 한다. 또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인 업무 중 예불, 그림 속 달마의 등장 등을 보여줌으로써 중간중간 웃음을 선사한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입에서 빠져나와 제 3자의 눈으로 영화 속 혜인의 모습을 관망하게 된다. 이러한 시퀀스의 연속이 불편한 듯 불편하지 않게 관객이 〈더 납작 엎드릴게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일상의 직장 생활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자연히 공감 시키고, 이색적인 공간과 엉뚱한 사건들로 관객과의 적정선의 거리를 유지한다. 또 결말의 에피소드인 “더 납작 엎드릴게요”에서는 때로 빌런의 역할이었던 진희와 태미가 혜인을 일으켜주며, 그의 힘이 되어준다. 우리 마음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를 지키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소 예상 가능하고 직설적인 해피엔딩이지만, 이 익숙한 결론이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며 영화를 떠나는 관객의 발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차고 딱딱한 현실이지만, 끝만 가볍게 눌러 버튼이 납작해지면 다시 잉크가 나올 수 있는 볼펜처럼, 자그마한 힘으로도 다시 삶을 써내려 갈 수 있다고 영화는 관객을 지그시 눌러준다. 난 영화의 재미있는 태도에 기쁘게 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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