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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와 〈쿠키 커피 도시락〉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때 읽던 동화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본 드라마 주인공들은 항상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소망에 대해, 혹은 열렬히 간직해왔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꿈을 꾸는 사람들과 무수한 소망들이 치열하게 얽히며 마침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동화와 드라마는 막을 내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지난한 과정들은 주인공들이 완벽하게 닫힌 해피엔딩을 마주하는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이 끝이 난 후엔 파도처럼 흩어진다. 그런데 가끔은 영원한 행복 속에 묻어두고 온 그들의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나고 어느 날엔 궁금했다. 주인공들은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혜인(김연교 역)’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법당 옆 출판사에서 교정과 교열 업무를 담당하는 5년 차 출판 편집자이다. 당찬 입사 포부와 함께 눈을 반짝이던 신입시절과 다르게 논리가 통하지 않는 진상 고객을 응대하고, 길에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직장 상사와 어쩔 수 없이 겸상을 하고, 주지 스님의 등쌀에 밀려 내키지 않는 경품을 선택하는 등, 업무의 연장선을 거치며 혜인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그럴 때마다 혜인은 특별한 직책 없이 이름 뒤에 붙는 ‘보살’이라는 호칭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누르며 그저 더 납작 엎드리기를 선택한다.
결승선을 지나는 날을 매 순간 꿈꿔왔지만 머무르는 기쁨이 크게 남지 않음을 확인할 때, 눈부시게 반짝이던 결승선은 또다시 어딘가로 나아가야 한다며 어느새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등을 떠민다. 그렇게 과정에는 가슴 설레는 엄청난 모험과 격정적인 기쁨이나 심지어 분노와 슬픔조차 미비하다는 걸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날이 있다. 혜인은 눈앞에 친히 찾아온 진상을 마주하는 순간, 상상 속에선 흔히 말하는 사이다식 전개를 꿈꿔도 현실의 무게에 눌려 고개 숙이는 것이 누구도 피로하지 않은 최선의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익혔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실망하는 씁쓸한 패배의 순간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나 이미 존재해 왔다. 다만, 스트레스받은 날 사찰을 산책하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나 숙인 허리를 일으켜주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직장 동료들의 말들, 비록 결과물은 없더라도 마음속에 간직한 꿈과 새벽을 가로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삶의 어느 날엔 미비하고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반짝이는 승리와 성공의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혜인이 보여주는 삶은 영화보단 녹록지 않은 체험 삶의 현장에 더 가깝지만 꿈에 그린 행복을 거머쥔 사람들이 그 이후에 매일을 성공하고 매일을 실패하는 날들, 생동감 넘치는 날의 가능성을 비춘다.
혜인의 직장생활은 〈쿠키 커피 도시락〉의 네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어딘가 씁쓸하고 또 경쾌하다. 정답이 없는 인생 고민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대화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들을 특별한 위로의 방식으로 감싸고 이어준다. 혜인과 네 친구들을 포함해 확신 없는 날들에 불안과 권태를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쿠키 커피 도시락〉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그리는 삶을 꿈꾸며 당차게 살다 보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거대하고 지속적인 행복도 물론 좋지만 매일을 성공하고 매일을 실패하는 날들 사이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쿠키와 커피와 도시락을 나눠먹을 수 있는 그런 사소한 찰나의 행복 역시 가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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