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월례비행 11월: 사라진 시간의 빛 <야광>
글: 유운성 영화평론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관객은 무지한 관객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 대한 어떤 사소한 정보도 미리 알지 못한 채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스크린과 대면하게 되어버린 그런 관객 말이다. 이는 ‘스포일러’라면 질색하는 과민한 관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영화의 줄거리나 반전에 대한 정보가 관람의 재미를 반감시킬 것이라는 예비적 앎으로 누구보다 단단히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스포일러’를 강박적으로 피하는 일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극장의 어둠 속에 파묻혀 버렸다가 이미지와 사운드의 느닷없는 급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버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늘날 이런 무방비의 영화 경험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야광>은 이러한 경험에 열려 있는 무지한 관객을 간절히 요청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야광>은 정작 영화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런저런 정보들이 (때로는 연출자인 임철민 자신에 의해 직접) 제공되면서 그러한 경험의 불가능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맥락화되어 왔다. ‘야광’이란 제목을 불현듯 야릇한 것으로 만드는 ‘Glow Job’이라는 영어 제목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가 2017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무대에 올려진 동명의 공연을 포함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라는 것을 몰랐더라면,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임철민의 카메라가 응시하고 있는 공간들이 한때 게이들의 주요 ‘크루징 스팟(cruising spot)’으로 활용된 곳이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외화면 사운드가 게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그라인더’)의 알림음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그때 <야광>은 어떤 영화로 다가왔을지를 지금에 와서 상상해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위에서 기술한 내용들의 적극적인 ‘정보 제공자’가 다름 아닌 임철민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것들이 게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음직한 기호들이며 따라서 <야광>은 무엇보다 소수자들의 정체성에 호소하는 영화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지한 관객에게 이상적인 영화처럼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진술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된다. 오히려 얼마간 특권적인 지식을 지닌 관객(이 영화에 나오는 크루징 스팟들과 관련된 개인적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게이)에게 <야광>은 경험의 고유성을 배반하는 영화처럼 비칠 수도 있다. 게이 정체성과 관련된 기호들에 대한 언어적 코멘트가 왜 작품 바깥(과 엔딩 크레딧)에서만 주어지는가 하는 물음은 <야광>과 관련해 결코 사소한 물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임철민의 관심은 어떤 장소(영화관)나 과정(영화제작과 영화관람)을 그토록 특권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비언어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음향, 파편화된 음성 및 음악)만으로 과연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야광이란 한때 그것을 ‘들뜨게(excited)’ 만들었던 빛의 기억을 간직한 전자(electron)가 자신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면서 내뿜는 사라진 시간의 빛이다. 가상의 무지한 관객에게, <야광>이 보여주는 낡은 영화관의 풍경은 (이제는 사뭇 미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폐허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 공간은 어떠한 들뜬 기억의 빛도 발하지 않는다. 가상의 무지한 관객에게, <야광>이 보여주는 촬영 현장이나 녹음 현장의 풍경 및 그와 결부된 이미지와 사운드 들은 언제라도 조작 가능한 데이터로 특징지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익숙한 잔해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프리즈마>(2013)와 마찬가지로 <야광>은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영화 같은 것’이 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로서 존재한다. 가상의 무지한 관객은 <야광>이 이러한 시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혼란을 동반한 나른함 속에서 과연 이 시도가 성공할 것인지 아닌지를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야광>의 후반부에서, 임철민은 (영화 속의 영화라기보다는) 시도 속의 시도라 할 만한 것을 시도한다. 크루징 스팟으로 활용된 낡은 영화관들과는 선명히 대조를 이루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홀로 ‘영화 같은 것’을 보고 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은 산천초목의 풍경이 담긴 다소 조악한 CGI 애니메이션인데, 이따금 이 풍경은 비현실적인 형광빛으로 변조되어 보인다. 말 그대로 ‘야광(夜光)’을 내는 ‘야광(野光)’, 즉 컴퓨터로 만들어낸 야외의 풍경이 발하는 빛인 셈이다. 관건은 이것이 야스러운 에로스의 빛, 즉 ‘야광(冶光)’으로서 저 무지한 관객으로서의 여성을 들뜨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연출자로서의 임철민이 <야광>이라는 ‘영화 같은 시도’를 통해 뛰어든 내기의 막판 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만들고 본다는 것은 여전히 야스럽게 빛나는 에로스의 작업, 즉 ‘Glow Job’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얼마 후, 우리는 무표정하게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눈을 감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녀가 눈을 감는 것은 오직 다시 뜨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눈을 감은 사이에, 가상의 무지한 관객은 일련의 낡은 공간을 형광빛으로 물들고 텍스처가 변조된 모습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곳이 한때 크루징 스팟이었음을 모르는 그녀 혹은 그에게도 이것이 ‘야광(冶光)’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앎의 저주에 시달리는 나와는 달리 다행히도 당신이 저 무지한 관객이라면 시험/시도해 볼 수 있으리라. 그녀가 다시 눈뜰 때 디지털 줌으로 포착된 그녀의 눈동자가 어떻게 빛나는지, 그리고 그 빛의 의미는 무엇인지는 무지의 행복을 누리는 당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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