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물어 나가는 상상력이 이끄는 생경한 여행  〈려행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15일(목)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임흥순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 나가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임흥순 감독이 〈려행〉과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선언하는 듯한 강렬한 첫 장면에 이어지는 처연하고도 신비로운 여정은 장면마다 끊이지 않는 생경함을 낳았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예술의 형식으로써 경계를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을 비추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과 감상을 남겨주었다. 임흥순 감독이 참석하고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인디토크에서는 〈려행〉을 포함한 임흥순 감독의 여러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세요, 〈려행〉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과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하게 된 정성일입니다. 임흥순 감독은 영화감독이자 미술 작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임흥순 감독을 처음 만난 건 〈비념〉(2012)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 기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관찰자적이어야 하며,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그 대상 곁에 어떻게 동반해야 되는 지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 다큐멘터리는 대상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늘 따라붙었습니다. 〈비념〉부터 보신 분들이라면 그간 임흥순 감독의 영화에서, 그리고 오늘 〈려행〉에서 연출된 장면을 만났을 겁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재정해내는 작업을 보았습니다. 〈비념〉을 본 당시 이런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틀렸습니다. 2014년에 만든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은 하나의 정식화라고 할까요? 그것을 더 밀고 나간 작품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들이 소재로써 노동문제를 만나게 되면 관성적인 접근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공단〉은 그 방법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다가가는 방법 자체를 문제화하기까지 했습니다. 2015년에는 〈북한산〉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1층에 내려가시면 라운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보고 올라오신 분들도 있으실 터이고 놓치셨다면 내일 한 번 더 이 장소를 방문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2016년에 오늘 만난 〈려행〉을 완성했습니다. 2018년도에는 〈환생〉, 그리고 〈형제봉 가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 부지런한 연출자는 2019년에 〈교환 일기〉라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늘 본 〈려행〉은 10명의 탈북 여성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이지만 많은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종종 연출된 것은 단지 재연이 아니라 환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꿈결 같기도 하며 마치 우리들이 어떤 컨셉츄얼 아트워크(Conceptual Artwork)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재연의 시퀀스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열 명의 탈북 여성들은 차례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고백의 장면들과 재연의 장면들이 콜라주처럼 서로 이어지면서 우리들에게 방법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매우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흥순 감독께서도 여러분들의 질문이 많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임흥순 감독을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토크에 임하게 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흥순): 특별한 날에 함께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리고요. 그간 영화적인 문법이나 구성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요. 오늘은 영화적인 관점에서 〈려행〉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 〈려행〉이라는 작품을 마주하기 전에 우리가 임흥순 감독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 감독에게 북한은 어떤 대상입니까?

 

임흥순: 북한이나 분단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많이 질문을 받았는데요. 2015년도부터 김근태 의원님의 추모전시가 매년 진행되었고, 4주기에는 제가 소무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근태 의원님께서 추구했던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작업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도 일반적으로 북한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통일, 평화라는 것이 굉장히 거대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각엔 북한 자체보다는 분단이라는 원인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고, 그걸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풀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언젠가 작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게 시작점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산〉이라는 단편 영상을 만들었고요. 저도 북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삼대 세습이나 핵과 같은 흔하고 비슷한 것들이었는데요. 제가 많이 바뀌게 된 계기가, 2014년도에 〈환생〉이라는 작품을 베트남에서 촬영하기 위해서 갔던 적이 있어요. 베트남에서 북한 식당을 가서 북한 사람들을 처음 봤어요. 그때의 감정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어요.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2015년도에 제안이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시작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갑자기 떠오르거나 찍겠다고 결심하면 바로 작업할 수 있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려행〉은 임흥순 감독께서 찍고 싶다고 해서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의 교감의 시간이 없었다면 카메라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연기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려행〉이라는 영화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시간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고, 아마 꽤 긴 교감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물의 말이나 정보만 아니라 표정과 제스쳐를 지켜보고, 특히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때의 느낌들이나 감정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북한산〉을 제작할 때 기획자분께 북한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사셨던, 탈북을 하신 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세 분을 만나게 됐는데, 그 세 분 중에 한 분인 첫 장면에서 한복을 입고 나오셨던 김복주 씨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비념〉이나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촬영, 편집까지 한 삼 년 정도 가까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려행〉은 2016년도 2월 정도에 제안이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어떤 식으로 촬영을 할 지 구상을 하다가 첫 인터뷰를 6월부터 하게 된 거거든요. 6월부터 10월까지 한 5개월 정도 작업을 했고요. 관계 맺기가 굉장히 중요한데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할까 걱정했는데요. 저 스스로도 굉장히 궁금해요. 이전 작업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 작업에서는 제가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이분들이 캐치해주신 부분들도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면서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시기도 했어요. 관계에 있어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가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는데, 제가 고민스러워 보이거나 우물쭈물할 때 상대방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주시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관계를 맺기에 넉넉한 시간은 사실 아니었습니다.

 

정성일: 꼭 의식하지 않고 보더라도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 여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여성 등장인물들만 선택해서 결정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여자들만 찍으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작업을 쭉 해오는 과정 속에서 여자들만이 어떤 교집합으로써 화두를 껴안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결정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처음부터 여성분들만 촬영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업의 전 작품인 〈북한산〉을 작업할 때는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소개를 받은 탈북민 세 분을 만났는데 한 분은 남성이었고, 두 분은 여성이었습니다. 미팅을 하면서 마음이 가고 공감이 가고 이야기가 됐던 분이 김복주 씨였기 때문에 여성과 작업을 하게 됐고요. 김복주 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여성 분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우선은 북한이탈주민 중에 여성분들이 훨씬 더 많아서 그 이유가 궁금했고요. 그리고 북한에서 중국에서 넘어올 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여성 분들이 성매매나 인신매매 같은 굉장히 안 좋은 상황들에 많이 처하게 되거든요.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면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인터뷰를 해 주신 분들 중에 탈북 여성들의 처지가 중국에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검정 봉투와 비슷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려행〉을 보면서 두 번째로 든 인상은 등장인물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많은 영화감독들은 일단 맨 처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난 다음에 자신이 찍어야 할 대상을 계속 찾는 거죠. 어떤 사람을 찍을 지 결정이 되면 그 사람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택하기도 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킹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곤 하죠. 아마도 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 진행되는 걸 보셨을 겁니다. 〈려행〉은 두 가지 다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려행〉은 탈북이라는 것 말고는 이 사람들에게 교집합이 없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것도 아니고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넘어온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 넘어온 시기도 다 다른 사람들이고 탈북 여성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딱히 모일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려행〉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명백하게 시나리오를 쓴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장면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추론하면서 궁금해진 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 속에서 열 명의 탈북 여성들로 진행을 하겠다고 결정하신 건지, 아니면 열 명 정도의 사람을 결정한 다음에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루즈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신기한 방법으로 찍은 〈려행〉이라는 영화의 작업 과정과 등장인물 사이, 극영화로 따지자면 캐스팅과 시나리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일단 이전의 〈비념〉이나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인터뷰이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66명을 인터뷰해서 22분 정도를 선정해서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려행〉은 초반에 이야기 드렸듯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가 않았어요. 기한이나 예산 등에서 제한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을 활용해서 한 공간에서 촬영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출연해주신 분들이 자주 모일 수 있는 분들이 아니셔서 최소한의 기간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거거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려행〉 같은 경우는 딱 12분을 만났습니다. 그 중 두 분만 고사를 하셨고 나머지 열 분은 다 참여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서 한 사람을 뺀다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저희 작품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영화를 위해서 이 분들이 들어오기 보다는, 이 분들의 어떤 이야기나 삶을 위해서 저와 영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더 많이 했어요. 누구를 빼기 보다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려 드리는게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열 분을 모두 등장시켰고요. 그리고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른 배우가 재연을 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이야기하듯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재연했을 때 저에게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고, 그분들도 치유가 되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재연에 의미를 가지고 임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라는 건 사실은 없어요. 〈위로공단〉도 그렇고 〈려행〉도 저에게 시나리오라는 건 없었습니다. 물론 아주 헐렁한, 전체적인 구성안은 있죠. 그런 걸 써 놓더라도 그대로 진행이 되지만은 않아서 쓸모 없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초반에 만들어 놓은 것이 역할을 하고 기초가 되어 주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달라지기도 해서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이 분들의 말씀이나 표정들이 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이분들의 사건이나 꿈을 제가 먼저 한 번 재연해보고 이 분들께 이게 어떤 분위기를 가지게 될 지를 생각하면서 장면을 구성하고는 하죠. 그리고 두 분씩 등장하면서 참여하는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만 중간에 가수로 활동하시는 김복주 씨 같은 경우에는 배우도 하고 싶어하셔서 이 영화가 프로필 같은 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산을 올라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에서 본인이 했던 역할을 한 번 연기해보면 어떨지 제안을 하는 등 즉흥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편이었어요. 또는 우연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제사 장면 같은 경우도 김복주 씨와 김경주 씨 두 분이 자매이시거든요. 두 분이 남쪽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같이 등산을 하는데요. 정상에 가서 무얼 할 수 있을지를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답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산행을 하기 전에 두 자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산에 올라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여쭤봤는데, 아버지가 환갑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 제사를 지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스태프들을 시켜서 간단하게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소주나 안주를 가지고 와서 즉흥적으로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성일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종종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고는 합니다. 다 찍어 놓고 편집을 하는 감독도 있고 편집을 계속 해 나가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임흥순 감독께서는 어느 쪽이신가요?

 

임흥순: 다 찍고 편집을 하는 쪽입니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추가 촬영을 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 같은 경우는 3년 전 작업한 작품인데 당시에 찍지 못했던 컷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개봉에 맞춰서 드론 촬영을 한 번 더 해서 추가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 찍은 후에 편집을 했습니다.

 

정성일: 대부분 다큐멘터리는 노골적으로 영화를 찍는 쪽과 대상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를 드러내는데요. 〈려행〉은 재연의 장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임흥순 감독이 작업을 하고 있는 탈북 여성과의 거리, 관계에 대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예를 들면나는 이 사람들에게 이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혹은 이 사람들에게 여기까지는 더 밀고 들어간다와 같이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떤 원칙 같은 게 있으셨을 텐데요.

 

임흥순: 작업할 때 원칙 같은 건 두지 않고요.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요청을 받았을 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원칙이기 보다는 내가 만약에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그 사람의 상황이나 심정을 헤아려요. 그런데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다 보면 작업이라는 게 진전이 안 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럴 때는 다른 방법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이 부분은 너무 죄송한데 그래도 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어렵게 꺼내면 상대방이 캐치를 해 주시거든요. 예를 들어서 한영란 선생님이 밤마다 죽은 아기를 업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고민 끝에 꺼냈는데 괜찮으니 해보겠다고 하셨어요.

 

정성일: 임흥순 감독께서 12명을 만났는데 2명은 고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탈북 여성 열 명이라고 하셨지만 유심히 보신 분들은 인터뷰 영상은 아홉 명 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이향이라는 분이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아코디언을 연주하신 분이셨더라고요. 아마 이분이 어쩌면 인터뷰는 거절하고 아코디언 연주하는 대목에만 나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향이라는 분이 궁금해졌습니다.

 

임흥순: 〈북한산〉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코디언 연주자로 나오시는 분입니다. 이향 선생님은 김복주 씨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개를 받은 분이에요. 김복주 씨가 북한산 원효봉에서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서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모시게 되면서 알게 된 거죠. 이향 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시고 꺼리신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인터뷰 요청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려행〉을 만들 때 작품의 목적을 말씀드리고 인터뷰이보다는 연주자로 참여하시는 걸로 요청을 드렸고요. 그 이후에 두 개의 채널로 작업한 〈형제봉 가는 길〉에서도 연주를 하셨고요. 최근에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님께서도 이향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인터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나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연주하는 모습과 표정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인터뷰의 내용을 이향 선생님께도 보내 드렸더니 〈려행〉 작업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제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어서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조금 더 관계가 진전이 된다면 이후의 작업에서는 인터뷰 요청을 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께는 인터뷰를 요청 드리기가 쉬운데 어떤 분은 몇 년에 걸쳐도 어렵기도 하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인터뷰가 꼭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성일: 〈려행〉은 여러가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수였던 김복주 씨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 자막으로 나올 때 김복주 씨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김복주 씨가 산을 계속 올라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나의 리듬을 이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이런 표현이 오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가수였던 김복주 씨가 마치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김복주 씨를 중심으로 다들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김복주 씨가 이 영화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가 시작한 34분 후가 되어서야 이 분이 원래 가수였고, 성함은 김복주 씨라는 소개를 가장 마지막에 받게 되는데요. 그렇게 배치하고 구성한 이유와 김복주 씨를 쫓아서 산을 계속 올라가는 연출을 설명해주신다면 우리가 〈려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안내가 될 것 같은데요.

 

임흥순일단 김복주 씨를 가장 먼저 만났고, 직업적으로 예인이기도 하시고요. 북한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 넓게는 남북과 통일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가장 많이 하시는 분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여러 명을 인터뷰를 하면서 김복주 씨가 가장 편하기도 했고요. 또 한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으셨고요. 그래서 영화에서 비주얼적인 부분을 김복주 씨 중심으로 진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김미경 씨라고 마지막에 일장전기 시절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남북 분단 문제는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분이 언어나 오디오적인 부분을 맡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들께는 연기를 요청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복주 씨 같은 경우는 요청을 드리면 열정을 가지고 해 주셨어요. 사실 물 속에 들어가있는 오프닝 장면 같은 경우는 요청 드리기 힘든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김복주 씨는 해보겠다고 하셔서 전체 화면의 이미지를 끌고 가는 중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김복주 씨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기는 했어요. 이전 작업을 할 때도 인터뷰와 만남을 많이 가졌고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분의 꿈 이야기나 북한에서의 일상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서 구성을 했습니다.

 

정성일: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실 겁니다. 영화가 가수 김복주씨를 내려다보면서 시작을 하죠. 그리고는 그 장면에서 달을 바라보는데, 그 달이 두 개가 되죠. 이후의 장면들을 다 제외하고 선입견 없이 본다면, 이 장면은 마치 SF영화의 시작 같기도 하고 공포영화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다 알고 준비하고 본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그렇게 보지 마세요.’라고 선언하듯이 전적으로 연출자의 연출로 이루어진 장면인데요. 첫 장면을 그렇게 시작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 일단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만든 장면이고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 깊었던 점이 탈북 여성들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 처해있는 상황들과 문제들이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자연이라는 게 힐링과 여가, 시각적인 여유로움인 반면 이 분들에게는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이탈하신 분들에게 자연이란 생존의 대상이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죽음의 대상이었거든요. 우리와는 굉장히 다른 지점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고, 물이 가진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물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고 실질적이며 형식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작업들을 중심으로 했는데요. 십 년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비념〉으로 넘어오면서 무의식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고민을 많이 했을 때에 꿈을 꾸었어요. 잠을 자고 있는데 천장에서 점 하나가 쭉 떨어지더라고요. 사람 얼굴의 모양이었는데 딱 보니까 제 얼굴이더라고요. 그게 공포이면 공포일 수도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경험이었고요. 그런 연출이 제가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 또 다른 나와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정성일: 〈려행〉에서 제일 자주 마주치게 되는 장소는 숲의 모습입니다. 물론 북한산에서 대부분 촬영되었고, 북한산에서 북한이라는 방점이 일종의 철자 놀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계속 마주치는 숲은 종종 불가사의해지고,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거운 촬영 장비뿐만 아니라 조명을 설치했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장면으로 신비롭게 보이도록 촬영했습니다. 비평가로서 설명을 요구 받으면 여전히 이들은 남한에 넘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혹은 잠재의식 속에서 탈북 중인 상태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려행〉에서 탈북 여성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삶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하죠. 아마도 그건 숲 속을 계속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라고도 읽을 수 있겠죠. 그리고 여전히 숲에서 헤매는 듯한 삶을 영화의 장면이 하나의 알레고리처럼, 또는 상징처럼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의 임흥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가시적인 이 사람들의 마음의 풍경을 영화라는 매체를 동원해서 시각화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 설명하고 나서도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임흥순 감독이 숲의 이미지에 담고 싶었던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자연에 시선이 처음 갔던 건 〈비념〉을 만들 당시에 제주도의 숲과 나무의 풍경을 보았을 때입니다. 4·3항쟁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와 인터뷰, 자료를 보면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저 자신이 헤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숲과 나무를 많이 찾아 다니던 중에 어느 날은 다른 분들과 같이 다니다가 저 혼자서 간 적이 있는데 공포를 많이 느꼈거든요. ‘숲이라는 게 낮에도 혼자 있으면 무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산 같은 경우에는 삼성산이라는 곳이거든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상황을 활용을 하려고 했고, 산이 가지고 있는 느낌들을 많이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아프거나 무언가 버려야 될 때 저항을 하거나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곳인 상징적인 공간으로써 산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산 자체가 하나의 세트장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을 연결해주는 지점이기도 하고 시각적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영원한 매개물이나 타임머신 같은 역할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일: 임흥순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고 흥미진진하다고 느끼는 건,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떤 테마나 주제, 소주제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데, 임흥순 감독의 영화는 가끔 한 눈 팔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영화에서 산을 막 올라가는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을 쫓아 가다 말고 갑자기 바위 위에 있는 문양을 뜬금없이 바라보다가 산신령까지 등장하기도 하고요. 영화의 관심일 뿐 탈북 여성들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임흥순 감독 영화의 미학 중에 하나가 한 눈 팔기라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임흥순집중력이 강한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딴 생각을 많이 하고요. (웃음) 사회에서 요구되는 집중력이 많이 없는 편이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만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앞을 향해서 갈 때 뒤나 옆을 보면서 쓸모 없다고도 느낄 수 있는 작은 곤충들에 집중하기도 하고요. 삶과 역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파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미학적인 성취나 예술이 갖는 사회적인 역할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대중적이거나 공공적인 부분도 찾으려고 합니다.

 




관객: 영화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려행〉이 올해 한국 영화의 발견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목에 대한 의미를 한 번 여쭤보고 싶었고요. 이중적인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해서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극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 중반과 후반부에 촬영을 하고 계신 스태프 분들이 나오는 컷들이 있어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벗어난 컷들인 것 같은데 등장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흥순작품을 만들 때 북한 여행이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북한 여행이라고 하면 재미도 없고 책 제목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려행이라는 제목을 만들었고요. 그리고 탈북 여성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탈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흔히 알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보셨듯이 북한을 탈출한 경우이기 보다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잠깐 갔다가 돌아올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 대부분예요. 이분들은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 되었고, 이런 여정 자체가 여행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여행을 다양한 의미를 가진 탈북의 다른 이름으로 봐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분들이 한국에 오신 다음 정착해서 새로운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데,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을지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제가 그분들이었다면 저는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보복이 불안해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지, 태어나서 자라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돌아가고 싶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분들에게는 현재의 삶 자체도 끊이지 않는 여정이 될 것 같고, 크게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남북의 끊이지 않는 여정으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태프 분들이 나온 장면은 중반에서는 사실 촬영본이 안 좋아서요. 세 카메라로 촬영을 했는데도 촬영한 컷을 모두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활용을 할까 하다가 후반부에 스태프가 나오는 장면을 미리 조금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일: 첨언해서 질문 드리면 스태프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2번 나오는데 두 장면의 의도가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요. 한 번은 한밤중에 세트장에서 스태프들이 모두 등장한 컷이 있었고, 다른 한 번은 남천교에서 카메라가 귀신을 보여주다가 이동하면서 스태프들을 모두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하나는 처음부터 대놓고 보여주자고 작정한 장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맨 처음에는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더니 스태프로 이동하는 장면인데요. 두 장면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분리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첫 번째 야간에 촬영한 컷은 쓸 만한 컷이 없어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태프를 노출시켰고요. 뒤에 스태프들이 나오는 컷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한 번 보여드렸던 거예요. 두 번째로 스태프들이 나오는 컷에서는 관람하시는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 자체가 저와 여러분들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시나리오처럼 계획된 삶이 있고, 계획처럼 되지 않은 부분도 굉장히 많잖아요? 계획처럼 되지 않거나 실패한 삶, 숨기고 싶은 삶. 이런 부분이 다큐적인 부분과 극적인 부분으로 비교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삶의 어떤 형태가 영화 안에서도 형식적으로 활용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한국에서만 찍을 수 있는 로드 무비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감독님께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아까 정성일 평론가님께서 영화에서 여자 등장인물 위주로 등장한다고 하셨고, 〈위로공단〉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나오고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도 할머니들이 나오는데요. 작품에서 여성 분들을 많이 다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노란 풍선이 영화에 작정한 듯 나오는 것 같은데요. 남한 사람이 갖는 의미와 북한 사람이 갖는 의미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노란 풍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흥순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임대아파트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참여해주신 분들이 대부분 30대나 40대의 여성 주부들이었고요. 그분들과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결혼한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공감이 많이 됐어요. 기존에 남성들을 인터뷰할 때와는 다르게 사적이고 내밀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잘 해 주셨던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돌보며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지혜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남성들 같은 경우는 조금은 수직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여성들은 수평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자 하는 부분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수평적인 것이었고, 그런 방식을 선택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의 생각과 시선들을 미술의 형식으로, 혹은 영화적인 방식으로 끌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과 처해 있는 상황에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위로공단〉을 작업하면서도 저희 어머님이나 형수님, 여동생의 삶의 궤적들을 쭉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삶과 상황들을 조금 더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노란 풍선은 이 작업에 있어서 제사 장면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인 것 같아요. 그때가 휴일이었는데 산에 오르기 전에 입구 쪽에서 어르신 분들이 노래자랑 같은 걸 준비하시면서 풍선을 불고 계셨어요. 노란 풍선 하나가 우연히 저희 쪽으로 흘러왔거든요. 노란 풍선은 저에게 있어서는 세월호를 다루고 이야기하지 못한 미안함 같은 것으로 다가왔어요. 세월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두 분께 노란 풍선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자연스럽게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했어요. 거기서는 그냥 풍선이라고 말씀드리고 노랗다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분께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나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이건 한국사회에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맥락상 세월호 이야기를 갑자기 등장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미지로 배치를 했고요. 판문점 세트장에서 찍을 때는 탈북여성자립회 인터뷰를 해 주신 분께 노란색 의상을 요청해서 노란색이 주는 기억과 상처, 회복, 아시아의 근대성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말이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이미지나 특히 색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풍경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는데, 그 중에 노란색에는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관객: 인터뷰하신 분들 보면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이탈주민’으로 설명이 나오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탈출'하신 게 아니라 잠깐 나오셨다는 의미로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정부나 시기에 따라 명칭이 바뀌기는 하거든요. 이전에는탈북자’, ‘탈북민’,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지금은 통일부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이탈주민으로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탈북보다는 이 의미가 조금 더 맞는 것 같아서 사용했습니다.

 


정성일임흥순 감독의 한반도의 슬픈 역사에 관한 여행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귀한 대답해주신 임흥순 감독님께도 감사합니다. 11월달에 나오게 될 새 영화를 위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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