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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벌새〉 : 소음 속에서 성장하기

by indiespace_한솔 2019. 9. 13.







 〈벌새  한줄 관람평


승문보 삶과 감정의 무게를 응축한 날갯짓

임종우 잘 지내시나요, 당신들의 오늘이 궁금합니다

송은지 각자의 은희를 살았던,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김혜림 소음 속에서 성장하기

현준 불확실한 세상의 중심에서 나 홀로 날갯짓 하기 바빴던 그 시절 은희들에게 전하는 위로

김정은 여전히 부단한 날갯짓으로 신비롭고 생경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은희에게






 〈벌새  리뷰: 소음 속에서 성장하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벌새'를 영어로 부르면 'hummingbird', 그대로 직역하면 ‘콧노래 부르는’, 혹은 ‘윙윙거리는’ 새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은희를 벌새라고 볼 수 있을까? 은희는 가끔씩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지만 왜인지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것은 은희의 소리높은 침묵이다. 은희는 영화의 대부분 힘이 없고 말할 수 없다. 그에게는 듣는다는 행위가 지나치게 많이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이 영화에 ‘보편성’이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벌새〉는 은희를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과 말들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그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운드는 의도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은희는 침묵을 지킨다. 그때마다 은희는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얼굴을 보이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눈을 피하거나 커튼을 쳐버린다. 매일 반복되는 저녁식사 자리는 식기들의 소음과 가족들의 기대와 실망, 오고가는 불편한 감정과 말들이 뒤섞여있고 학교는 지나치게 잘 들리는 친구들의 귓속말과 의미 없는 구호들로 시끄럽다. 그런 상황에서 은희에게 안심이 되는 상황과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때, 그리고 그때를 함께하는 그 사람이다.

 




은희를 스쳐지나가는 ‘들어주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 영화는 놀랍도록 조용해진다. 마치 진공상태에 있는 듯이 영화는 은희와 상대방 두 명만을 남겨둔다. 그것은 영화에서 영지를 만날 때 가장 극대화되지만, 남자친구 지완이라든지 후배인 유리를 만날 때도 그러하다. 영화는 이때 상대방과 은희의 소리만을 남겨두고 다른 소리를 모두 의도적으로 배제시킨다. 이 상황에서 은희는 편안하게 말을 시작한다.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묻고, 무언가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소음 이외의 것들, 은희의 작은 눈동자 움직임이라든지 머리카락의 흩날림 등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영지가 자신이 무력해졌다고 느꼈을 때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섬세함의 세계는 영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조된다. 영지는 향을 피우고 차를 따르며 은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때에서야 은희는 소음이 아닌 다른 소리를 듣는다. ‘얼굴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혹은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진공 상태의 그 세계를 진동시킨다. 이 진동은 영지가 소리 없이 학원을 그만둬버린 시점에서 잠시 멈춘다. 그 진동이 멎었을 때, 은희에게는 이명이 찾아오지만 혹처럼 답답하게 자신을 누르고 있었던 입을 온전하게 열어버린다. 이상하도록 담담하고 눈물 흘리지 않던 은희가 무참하게 부서진 세계를 보고 작은 눈물을 흘린다. 영지는 은희에게 말한다. “누구라도 너를 때리면 어떻게든 끝까지 맞서 싸우라”고. 자신의 진동을 멈춘 것들에게 은희는 자신의 방식으로 맞서 싸운다.

 




영화의 첫 장면, 아무도 없는 집을 자신의 집으로 착각한 은희는 엄마를 소리높여 찾는다. “엄마, 나 왔다고”를 반복하여 외친다. 은희는 자신이 두드리던 집이 902호인 것을 확인하고는 1002호로 올라가 집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줌아웃된다. 902호의 명패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빛이 심하게 바래있다. 사실 902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은희는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애타게 엄마를 찾았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 은희는 수학여행을 가는 같은 학교 학생들을 응시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응시하는 것. 아무것도 들리지 않음에서 너무 많은 것이 들리는 세상으로의 변화. 은희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소음의 세상으로 나왔다. 다만 자신의 소리를 듣고, 홀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고, 혹을 벗어던지고 나왔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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