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지금 해야 하는 가족 이야기 '인디포럼 월례비행' 〈이장〉 대담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9. 8. 22.




지금 해야 하는 가족 이야기  인디포럼 월례비행 〈이장   기록


일시 2019년 7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정승오 감독|배우 이선희, 공민정, 곽민규, 송희준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가부장제 안에서 누군가는 권력을 누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안주하려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삶을 통째로 희생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가부장제 안으로 걸어들어온 사람은 없다. 영화 이장은 한편에선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하고 다른 한편에선 아직까지도 가부장제가 죽지 않은 바로 지금 해야 하는 가족 이야기이다. 정승오 감독은 가족적 봉합 보다는 서로 어떻게든 공존하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송효정 평론가(이하 송효정): 관객분들이 객석을 꽉 채워주셨는데요, 참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인물들을 다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장의 정승오 감독님과 배우분들 모셨는데요, 간단한 인사 듣고 관객과의 대화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승오 감독(이하 정승오): 안녕하세요. 이장을 연출한 정승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궂은날씨에도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희 배우(이하 이선희): 안녕하세요. 저는 둘째 금옥 역을 맡은 배우 이선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공민정 배우(이하 공민정): 안녕하세요. 저는 셋째 금희 역할을 맡은 공민정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곽민규 배우(이하 곽민규): 안녕하세요. 저는 승락이 역할을 맡은 곽민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송희준 배우(이하 송희준): 안녕하세요. 저는 윤화 역할을 맡은 송희준입니다.반갑습니다.



 


송효정: 이장이라는 영화는 가족들이 아버지 묘지를 옮기기 위해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일단 정승오 감독님은 인천 기반으로 독립영화 활동을 해오셨고, 단편영화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 순환소수(2017), 오래달리기(2018)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셨어요. 이번 영화가 첫 번째 장편영화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많은 관객분들이 첫 장편영화 이장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거든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승오: 단편영화들을 몇 개 작업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항상 가족드라마가 되더라구요. 항상 가족드라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진 않았는데 이번 작품도 쓰다보니까 오 남매 이야기가 되었어요. 계기 중 하나는, 제가 20대 중반에 할머니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데 공동묘지 터가 아파트 건설 때문에 모두 밀리게 생긴 상황을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는데, 뭐랄까요, 아파트 건설 때문에 죽은 사람들까지 끄집어내서 강제로 철거하는 듯 했고, 그 폭력적인 느낌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또 제가 밀착해서 관찰을 할 수 있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이 실제로 오 남매였고, 그 가족도 막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가 굉장히 가부장적인 지점이 있었어요. 아버지의 말 한마디, 제스쳐 하나에 여성 가족원들이 순응하고 따르는 모습들을 보는데 외아들인 저에게 그 풍경이 이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강제 이장과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단편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네 자매가 나오잖아요. 이 작품은 막내아들까지 들어가 다섯 남매가 된 것인데, 그런 설정의 변화가 어떤 이유로 필요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사실 단편을 확장시켜서 오 남매 이야기가 되었다기 보다는, 제가 밀착해서 바라본 가족의 풍경에서 막내아들을 보면서 한 번 상상을 해봤어요. 굉장히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남겨진 형제자매의 모습은 어떨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자녀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연락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막내아들은 잠수를 타고 사라지고 억압과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이 아버지를 이장해야 한다는 상황이 겹치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다가 만들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가 배우들을 보는 것이에요. 네 자매와 막내아들, 큰아버지 부부. 모든 인물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사실적이었는데요, 어떻게 이런 배우분들을 만나게 된 것인지 궁금해요. 대사를 듣다보면 그 배우의 개성과 너무 잘 맞아서 감독님께 먼저 시나리오를 쓰실 때 특정배우를 상정하고 쓰신 것인지, 아니면 캐스팅을 한 후에 배우분들을 영화에 맞추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프리 프로덕션이 조금 빠듯하게 진행됐어요. 애초에 시나리오를 쓸 때 첫째 장리우 배우님과 막내 곽민규 배우님은 염두에 두고 썼고, 캐스팅 과정에서 곽민규 배우님께서 공민정 배우님을 추천해주시고 장리우 배우님께서 이선희 배우님을 추천해주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아는 PD님이 송희준 배우님을 추천해주셨어요. 서로 관계가 있고 친밀감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잘 녹아든 것 같아요. 배우들께서 잘해주셔서 제가 거의 숟가락을 얹었죠.

 




송효정대사들이 각 배우의 이미지에 착착 붙어서 환상의 팀워크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분들께도 질문을 드릴게요. 맏딸 혜영을 맡으신 장리우 배우님께선 참석예정이셨으나 몸이 안 좋아지셔서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하셨어요. 둘째 이선희 배우님부터 질문 드릴게요. 영화를 통해 이 자리에 와계시지만 연극도 하고 계셔요. 주로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그리고 이번 영화 촬영 때는 어떠셨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선희: 저는 원래 연극을 주로 했어요. 단편영화로 처음 인사를 드렸던 것이 상콤한 그녀의 참신한 오후(2007)라는 영화였는데, 거기서 커피를 정말 못 만들고 배달가면 욕을 먹는 다방 커피배달원 역을 했어요. 아무래도 주로 연극을 하다보니 영화는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변호인(2013)이라는 작품에 짧게 출연하면서 장리우 배우와 친해졌어요. 그래서 이 작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소개를 받아서 미팅을 했는데 대본을 집에 가서 읽어보겠다고 하고는 한 시간도 안돼서 바로 하겠다고 전화를 한 것 같아요. 대본을 너무 착착 붙게 써놓으셔서 에드리브도 사실 거의 없고요. 그냥 대본에 써있는 대사 그대로 했어요.

 

송효정: 다음으로 공민정 배우님, 최근 홍상수 감독 영화를 비롯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촬영하는 동안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민정: 저도 마찬가지로 감독님께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도 시나리오 보고 그날 밤에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제 역할이 무엇인지 말씀 안 해주셔서 몰랐거든요. 그렇지만 바로 들어간 작품이고 둘째 언니(이선희 배우)가 말씀하신 것처럼 대본이 너무 잘 써져있어서 딱히 더 뭘 할 것이 없었어요. 리허설도 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가족간의 온도를 잘 형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첫 리허설 리딩 때 참고로 봤던 한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오묘하게 배우들과 닮아있어서 재밌었어요. 촬영하면서는 언니들이 너무 잘해주셨고, 워낙 잘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니 저는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송효정곽민규 배우님은 지난 달 월례비행에 이어 또 방문해주셨어요. 거의 월간 곽민규로 매달 찾아주시는 것 같은데요.(웃음) 이 영화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잖아요. 아주 고난이도의 연기를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됩니다.

 

곽민규: 저도 정승오 감독님께서 막내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이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대사가 별로 없죠. 없을 수밖에 없죠. 죄책감이나 말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대사가 많진 않았고요. 그냥 그 답답한 공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습니다.

 

송효정: 다음 배우분은 막내의 헤어진 여자친구, 윤화 역의 송희준 배우님인데요. 듣기로는 모델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고 어떠셨는지 소감 부탁드릴게요.

 

송희준: 저의 전공은 미술이어서 원래 그림을 그렸어요. 히스테리아〉(2018)라는 단편영화에 참여한 적이 있고요. 정승오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하셔서 시나리오를 읽고 고민을 하다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영화에서처럼 자매 언니들과 너무 재미있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같이 하는 곽민규 배우님이 제가 경험이 없어서 어색할 때에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즐겁게 했습니다.

 




송효정: 제가 감독님 이전의 단편들을 쭉 봤는데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도 그렇고 이장도 그렇고 비가 내리는 장면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같은 경우는 비가 내리고 가족들이 바로 흩어지고, 이장에서는 비가 내리니까 가족들이 처마로 나오는 아주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는데요. 특별하게 날씨라든지 계절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하고요. 감독님 영화의 특징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설득한 다음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그 의미를 생각하게끔 하시는데, 동백꽃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정승오: 일단 장면 안에 자연 현상이 들어가면 그 장면이 주는 정서가 좀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비가 와서 어디로 가지 못하는 어떤 상황에서 여섯 명이 각자의 고민을 한 공간에서 떠올리고,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몸짓으로 나타나는 순간들이 카메라에 담기길 바랐어요.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게 아니더라도 이 순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비가 내리지만 온기가 느껴지게 하고 싶었어요. 동백꽃 같은 경우에는 죽은 아버지가 딸들에게 보내려고 했다가 보내지 못했던 메시지에 사진으로도 등장하는데요, 이것을 딸들에게만 보냈을 때 자기 스스로 가장으로서의 위신과 권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끼고 검열을 했기 때문에 보내지 못한 거잖아요. 그런 마음과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존하지만 결국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는데, 셋째 딸이 그걸 발견하고 간직하는 것이죠. 가부장으로의 존재와 아버지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때 동백꽃으로 아버지의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송효정: 그렇다면 동민이 잠시 들어갔던 빈 집이 과거에 부모님이 살고 계셨던 곳인 거죠?

 

정승오: 그렇게 의도했는데, 캐치해주셨다면 너무 감사하죠.

 

송효정: 조금 전에 영화에 자연 현상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갈 때 반달이 등장하고 중간에도 몇 번 달이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반달이나 낮달을 영화에 넣으신 의도도 궁금해요.

 

정승오: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막연하게 삼대(三代)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 나이대로 삼은 오 남매를 중간 세대로 두고 그 위아래 세대를 두어 삼대를 조망하고 싶었는데요. 윗사람인 큰아버지, 큰어머니로 상징되는 세대는 어떻게보면 가부장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떤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잖아요. 저희 세대로 표현되는 중간 세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요. 그 아래 세대인 동민이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가장으로 성장하기보다는 괜찮은 남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가 있어요. 이 삼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겐 동생이고, 누군가에겐 아버지이며 누군가에겐 할아버지인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표현 중 몇 가지가 달과 동백꽃,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중년 남자입니다.

 




송효정: 그 중년 남성분은 어딜 가나 나오시더라구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으신 배우분이시죠?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보면 모든 십계시리즈에 한 번씩 지나가시는 분이 있는데 약간 그런 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와 같이 부재하는 존재에 대한 상징으로 보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배우분들을 통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먼저 첫째 딸은 이혼을 한 것인지 사별을 한 것인지 그런 부분이 궁금했는데 장리우 배우님이 안 계시니 이선희 배우님이 함께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째 딸 같은 경우에는 다 말해주지는 않지만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딸이 하나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의 바람을 목격했을 때 그 집 아이가 남자아이라는 걸 유심히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두 자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선희첫째딸은 시종일관 짜증을 많이 내고 있긴 한데 어려서부터 책임감을 가져야 했고 장녀라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남편은 사별이라는 설정이고 남편의 죽음을 아직 아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태예요. 어수선한 아이를 보면서 남편의 부재를 더 강하게 느끼는 인물인 것 같아요. 둘째라는 인물은, 제가 실제로 결혼을 한 지 3년밖에 안됐어요. 저는 아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요.(웃음) 다른 GV에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끝나지 않는 일을 계속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둘째는 그 와중에 딸을 하나 가지고 있고,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가족도 있잖아요. 이에 대한 자괴감도 있는데다가 남편이랑 관계도 틀어졌는데 저는 되게 불쌍한 여자 같거든요. 감독님과 이야기 할 때 둘째는 철두철미하고 나에게 떨어질 잇속을 항상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인물이 볼수록 너무 불쌍한 거예요. 과연 이 여자가 이혼을 할까 생각해보면 절대 못 할 것 같고. 그냥 이렇게 살 것 같은 거예요. 아까 제가 힘들다고 한 건 물리적으로 힘든 거지만, 둘째는 육아나 가사에 지쳐있어요. 큰아버지가 여자가 집구석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고 하니까 눈이 확 돌아가잖아요. 농담도 치고 실없는 소리도 하고 목소리도 크고 떼도 쓰지만 둘째라서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는 역할이라서 저는 힘없고 간이 콩알만 하다는, 안쓰러운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송효정: 첫째와 셋째는 둘 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잖아요. 그런데 서로 다른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셋째가 화상통화하는 남자친구 역은 실제로는 영화감독님이시던데요. 공민정 배우님께서 셋째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셋째가 생각하는 결혼관에 대해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공민정: 먼저 셋째와 곧 결혼을 하려고 준비 중인 남자친구로 나온 분은 엄태화 감독님이에요. 엄태화 감독님이 영상을 여러 개 찍어서 보내주셨고 저는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너무 잘해주신 거예요. 너무 실감나게 찌질한 남자친구 역을 해주셔서 저도 너무 편하게 했어요. 금희는 셋째잖아요. 가운데에 있는 인물이고 현실주의자이면서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정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지만 건들면 안 되는 선을 넘으면 밀고 나가는 인물인데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엄마, 아빠, 승락이, 언니들 비위를 가장 많이 맞추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알게 모르게 다섯 명을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잘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던 인물이고요. 그래서 승락이도 셋째 누나에게 가장 연락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어요. 금희는 이 가족의 가운데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에요. 금희가 생각하는 결혼은 현실이고, 최소한의 것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상대방이 제시하니 답답하죠.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500만원이 굉장히 중요했고, 언니들이 양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또 당연히 결혼을 하니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누군가 그 마음을 건드리고 뜻대로 안되니까 돈도 돈이지만 빈정이 상한 것 같아요. 그동안 자신이 해온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싶고요. 결혼에 있어서도 현실적이고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송효정: “그 돈 나 줘.”라고 하지 않고 나 주면 어때?”라고 하면서 미안해하는 성격에서 셋째의 성격이 잘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곽민규 배우님께서 맡으신 막내인데요. 사실 저희는 다섯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직장을 관두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컴퓨터 옆에는 백일장 사진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인물은 어떤 인물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곽민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설명해주셨던 것이 기억이 나요. 승락이는 가부장제를 이어받고 싶어서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물이 들어서 누나들과 다툼이 생기는 인물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직업 설정은 글을 쓰는 작가지망생이었고 누나들과는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상태예요. 그나마 금희 누나한테만 가끔 연락을 해서 용돈을 받고 하는 인물이에요.


송효정: 마지막으로 송희준 배우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이 여성의 캐릭터는 흔한 듯 하면서도 흔하지 않거든요. 승락에게 돈을 요구하고 그것을 계기로 남자의 가족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는 여성이에요. 이 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요, 500만원은 아버지의 이장 보상금으로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아이를 어떻게 할 지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이에요. 이 여정이 끝난 이후 그 사이의 조화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을 감독님은 주지 않으시거든요.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송희준: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함께 하기로 했을 때 윤화라는 인물이 어떤 마음일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가 가장 걱정이 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보는 관객분들로 하여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송효정: 사실 굉장히 부담되는 상황이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할머니는 태몽을 꿨다고도 하고 눈앞에 어린 꼬마가 나타나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상황도 있고요.

 

송희준: 영화에서 승락이와 윤화의 연애가 어땠는지 심도있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굉장히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울컥할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너무 아쉽다거나 이 연애가 그립다는 마음인지는 고민이 되었어요. 단편적으로 보여지기에는 윤화는 영악하기도 하고 심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시간들에 쌓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관객: 전주국제영화제에서부터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기대를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캐릭터도 정말 좋고, 가족을 다룰 때에 버거울 수 있는 부분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서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 남자는 사실 셋 밖에 안 나오잖아요. 넷째도 여성주의 활동을 하고 한편으로 남자들은 무능력하고 찌질한 껍데기처럼 보여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설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고민되는 지점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송희준 배우님은 다른 가족들을 따라서 끝까지 간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가부장제가 죽어가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윗세대는 이를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굉장히 단단한 껍데기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알고 보면 깨부술 수 있는 껍데기라고 생각해요. 이것을 다섯째인 승락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승락은 이 껍데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동민이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로워 보이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여기에 나오는 남성들이 찌질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답답하고 이상한 가족제도 안에 있는 여성들이 껍데기를 부수면서 서사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기를 바랐어요. 또 가족 안에 남성과 여성이 있잖아요.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면 이 둘의 존재를 가부장제가 갈라놓기 보다는 같이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아버지, 승락이, 동민이 모두 미약하게나마 따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통해 조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런 엔딩을 만들었습니다. 가족적 봉합 보다는 서로 어떻게든 공존하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점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송효정: 그것이 감독님의 영화적 입장인 거죠. 또 윤화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가족 바깥의 인물이잖아요. 여행까지 함께 가는 설정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정승오: 처음부터 따라가는 설정은 아니었어요. 수정을 거치고 스텝분들과 배우분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따라간다기보다는 같이 가겠다는 결정을 윤화가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 읽히길 바랐어요윤화의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내성적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필요한 순간에는 할 말을 다 하는 인물로 보여졌으면 했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힘들고 코너에 몰려있는 인물이 윤화라고 생각했고 저도 윤화의 선택 과정과 변화에 대해 좀 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담고 싶었어요윤화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잘 표현되는 것에 포커싱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를 이번에 세 번째로 관람했습니다. 볼 때마다 마지막에 다시 떠나기 전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울컥하는데요.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큰어머니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들은 후에 돌아가는 차안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각각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배우분들게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송희준: 윤화'이게 끝일까? 이제 정말 끝인 건가?'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승락의 몰랐던 가족사와 새로운 경험들, 또 자신의 선택에 대해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단 단정한 감상을 떠올렸을 것 같아요.

 

곽민규: 한 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잖아요. 벌에 쏘이기까지 하고 병원에도 다녀오고, 병원에서 윤화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도 하고요. 그 후 돌아와서 촬영할 때 느꼈던 건데, 제가 앞좌석에 앉잖아요. 이건 누나들의 결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승락이에게 엄청나게 큰 의미로 와닿진 않았겠지만, 그동안 누나들에게 연락도 안하고 도망쳐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겪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들이 엉켰을 것 같아요.

 

송효정: 또 궁금한 것이, 문자를 셋째가 혼자 보잖아요. 가족들에게 보여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혼자서만 봤을까요? 공민정 배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요.

 

공민정: 그게 아빠가 보내려고 했던 문자였잖아요. 항상 잘해줘서 고맙다, 자랑스럽다 이런 내용인데요. 그 때 셋째의 마음은 아빠, 그래도 우리 잘했지?”하는 마음이었어요. 아빠가 보고싶다는 마음, “우리 그냥 이렇게 같이 잘 살고 있어라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딱히 보여준다, 숨긴다의 차원보다는, 유품을 셋째가 가지고 있었지만 딱히 그것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아마 서울에 올라가서 보여줬을 것 같아요.

 

송효정: 둘째는 큰 짐을 싸들고 나왔는데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선희: 내려올 때는 집안에 큰 행사를 치르는 느낌으로 왔을 것 같고요. 올라갈 때는 생각이 좀 복잡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계속 문자들이 오고, 집에서 항아리도 깼고, 본의 아니게 자매들끼리 마음도 확인했고요. 단순하게 내려왔다가 마음이 많이 복잡해졌을 것 같은데, 저는 그 순간에는 사실 아빠를 생각했어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금옥이의 가부장적이던 아버지와 실제 저의 아버지 생각이 좀 많이 났어요.

 


관객: 윤화는 동민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배우님께 들어보고 싶어요.

 

송희준동민이를 보면서는 물론 뱃속의 생명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그때 촬영하면서 모순적인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예쁘고 슬프고 귀엽고 미안하고. 나의 시간들은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렇지만 많이 단단해져 있는 상태고, 잘 견디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송효정: 어려운 문제네요윤화가 동민이나 강아지와 있을 때 죄책감을 느끼거나 슬프거나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배우분도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말씀해주셨네요.

 

송희준: 그리고 윤화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나 가족들 틈에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가족들 틈안에서 느끼는 것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많이 외로웠을 친구라서요.

 




송효정: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배우분들에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지금 하시고 계신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끝내겠습니다. 15년 정도 전에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는, 가족이 해체되거나 새로이 탄생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장과 같은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하지 않고 특이한 지점에서 가족을 다시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승오 감독님께서는 이장을 촬영하면서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정승오: 한 가족의 군상을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가부장제 안에 누구도 개인의 의지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대안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변곡점의 시기에 평생을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선희연극은 쉬고 있어요.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하반기에 나올 것 같고요, 집중해서 찾아봐야 저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결혼을 하면서 오히려 남편을 더 자주 못 만나고 있는 현실이나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요. 그리고 저희 모두 정말 가족처럼 느껴졌고, 모두가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정서가 많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습한 날씨에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어머니 아버지한테 전화하세요.(웃음)

 

공민정: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랑 옆의 곽민규 배우가 출연한 한낮의 피크닉이 지금 상영중이에요. 아직 못보신 분들은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곽민규: 이 영화는 저도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예요.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거든요. 저는 가족에 대해 그렇게 생각이 많았던 사람은 아닌데 최근 가족에 관련된 작품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을 보니까 이제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한테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가족 문제가 다들 있을 테고,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이장개봉하면 입소문 많이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송희준: 이렇게 궂은 날씨에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열심히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요. 내년 이맘때쯤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이전에 출연했던 단편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말복이 다가오는데 백숙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고요, 늘 건강하시고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송효정: 감사합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들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관객과의 대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