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기획] 지금, 독립영화
오늘도 독립영화는 우리를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집에서, 때로는 우리가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는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독립영화와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지금을 생생히 경험하는, 인디스페이스의 관객기자단 인디즈 10기가 전해드립니다.
독립영화가 포착하는 시간들
*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영화와 시간은 동일한 선상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이는 영화와 시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미하며, 영화는 하나의 매체로서 시간을 포착하고, 영화가 포착한 시간은 미미할지라도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러한 영화의 힘을 아는 사회 역시, 통제의 수단으로 영화를 종속시키고자 한다. 보이지 않지만 영화와 사회는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영화가 시간을 포착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에 잠식된 스크린 시장은 소수의 영화 제작사에 좌지우지되고, 대형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에는 온갖 히어로와 로봇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외계 혹은 악당의 침입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영화들은 스펙터클의 연속으로서 오직 엔터테인먼트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세상의 시간을 포착하는 영화의 기능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미래의 영화를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오직 가상의 시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가 포착하는 시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밍량, 허우 샤오시엔과 같은 작가들은 여전히 영화로서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독립영화들 역시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에 밀려 뒷전이 된 국내의 독립영화들을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려한 어트랙션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지도 못하며, 관객들에게 이 영화들은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 허점투성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본래 영화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포착하는 것에 충실하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영화 속의 시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흘러갈 것만 같다. 이 살아있는 시간으로 인해, 관객들은 스크린 너머의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인식하며, 영화는 강력한 힘으로 관객에게 작용한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시간, 즉 독립 영화가 포착하는 실재의 시간과 그 시간을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작가의 시간
<초행>(2017), <수성못>(2017)
때때로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 흔적이란 작가의 삶과 감정이 녹아져 있는 것으로, 작가의 자기 투영 혹은 본인이 체험해온 시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대를 통해 관객들은 강력하게 영화 속에 동화되고, 그 영화는 관객에게 커다란 사적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어떤 관객은 <초행>의 결혼을 앞 둔 수현과 지영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위태로움에 유대할 것이며, 혹은 <수성못>에서 죽음의 충동이 맴돌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유대할 것이다. 이러한 유대를 통해 관객들은 강력하게 영화 속에 동화되고, 관객에게 커다란 사적 의미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위태로움, 불안감, 죽음의 충동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관객 자신, 혼자가 아니라, 작가 혹은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관객들도 느끼는 감정이라는 안도감일 것이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치유되며,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작가의 흔적들이 짙게 느껴질수록 스크린 너머의 시간은 가상의 시간이 아니라 실재의 시간에 가까워진다. 이는 작가 본인이 체험한 실재의 시간으로, 이 시간들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순간 작가와 관객이 공유하는 실재의 시간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위의 두 영화, <초행>과 <수성못>을 통해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작가의 흔적들이 짙은 이 두 영화는 작가가 느낀 감정과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 흔적들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지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풍기는 뉘앙스 혹은 작가의 인터뷰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는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하게 된다.
스크린 속 7년차 커플, 수현과 지영이 다가온 결혼에 대해 위태로움과 불안감을 느낄 때, 이 둘을 매개체로 작가와 관객이 각자의 삶에서 느끼는 위태로움이 조우한다. 10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이 커플이 직면한 문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 현재의 직장과 벌이에 대한 문제, 복잡한 가정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문제가 여전히 안개처럼 그들의 앞을 가리고 있다. 그 안개 속에서 방향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그냥 걸을 뿐이다. 이 조우는 관객 혹은 작가에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감정을 유대함으로써 우리의 앞에 닥친 시련을 극복할 동력을 얻는다.
<수성못>의 인물들이 느끼는 죽음의 충동 역시 관객과 조우한다. <수성못>의 인물들은 추구하는 무언가를 실패하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이 시련의 돌파구로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다. 하지만 죽음의 시도마저 실패하며, 죽음의 충동은 그들 곁에 맴돌기만 할 뿐이다.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의 무기력한 삶과 조우하지만, 이 서사는 관객에게 무기력 감정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죽음의 충동이 맴도는 것은 관객 혼자가 아니며, <수성못>의 인물들과 작가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에 이들은 유대한다. 이 유대를 통해 죽음의 충동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보편의 감정으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수성못>의 서사는 위로로 변하며, 관객들은 시련과 마주할 동력을 얻게 된다.
작가의 흔적, 즉 작가의 시간은 작가의 고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감정을 스크린에 고백함으로써, 작가와 관객은 유대한다. 이 유대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큰 사적 의미를 지니고,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작용한다.
# 추모와 연대로서의 시간
<공동정범>(2016), <눈꺼풀>(2016)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연대’는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아픔 혹은 고통의 시간을 함께함으로써, 그 감정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유의 과정을 통하여,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의 짐을 함께 부담하거나 위로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도 하나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즉, 누군가는 그들의 아픔 혹은 고통에 대해 목소리를 내거나 투쟁함으로써 연대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아픔 혹은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것 또한 하나의 연대인 것이다.
연대의 과정에서는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필요로 하며, 영화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국내의 독립 영화들에서 돋보인다. <공동정범>은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시간을 기록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눈꺼풀>은 하나의 시가 되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다. 이 영화들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스크린에 투사하고, 관객들이 그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이 마주함을 통하여, 관객들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 그리고 이 체험은 연대의 시작을 알린다.
우리는 10년 전 용산 참사의 비극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늘 그러하듯 이 비극은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공동정범>은 희미해진 이 비극을 환기시킨다. <공동정범>의 카메라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추적하고, 그들의 진술에 귀 기울인다. 카메라에 기록된 시간들은 극장의 스크린에 투영되고, 관객들은 잠시나마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살아온 아픔과 고통의 시간에 마주한다. 작은 범위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관객들은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크게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감정을 유지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리기 위해 힘을 쓴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에 대한 연대와, 그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매체이다.
<눈꺼풀>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작용한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실제 피해자들의 시간을 포착했다면, <눈꺼풀>은 가상의 시공간을 만들어 은유적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펼쳐지는 미륵도에서 서사는 진행되며, 망령들은 주변을 배회한다. 때때로 과도한 은유와 추상적 표현으로 인해 관객들이 극의 정확한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은 가슴 한 구석에 남는다. <눈꺼풀>이 투영되는 스크린은 <공동정범>처럼 직접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 받는 시간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 또한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간접적인 고통의 체험을 통해 피해자들과 작게나마 연대한다.
# 시대의 포착
<서산개척단>(2018), <5.18 힌츠페터 스토리 5.18>(2018), <해원>(2017)
지가 베르토프를 비롯한 다수의 소련 감독들이 과거에 영화를 혁명의 도구로 여겼듯이, 여전히 현재의 영화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비롯해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다수의 요인으로 인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영화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목소리 내고 있으며, 위의 영화들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영화들은 과거의 과오에 대해 추적하며, 이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한다.
한국사에서 20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불과 100년 사이에 일제강점기를 겪고 독립을 이뤘으며, 무수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다수의 사건을 겪었고, 큰 발전을 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다수의 사건들은 부작용을 일으켰고, 희생자들을 발생시켰다. 하지만 대의라는 명목 하에, 이 희생자들은 묵인되었다. 이 영화들은 이러한 과오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한다. <해원>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을,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벌어진 신군부의 학살을, <서산개척단>은 정부의 토지개발을 명목으로 일어난 사기극에 대해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과거를 추적하며, 포착된 시간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하지만 이 과오의 시간들을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또한 과거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이 영화들은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경우 힌츠페터가 카메라를 통해 기록한 진실의 역사들이 존재하기에, 나머지 두 영화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머지 두 영화의 경우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과거는 존재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피해자들의 진술과 문헌의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재현된 시간은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실재의 시간에 비해 불완전하며, 때때로 관객들에게 불신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불완전한 영화라고 판단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피해자들의 진술 혹은 문헌의 기록을 따라 과거의 시간을 재현하지만, 이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과거의 진실들을 포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포착된 시간이 극장의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 관객들은 그 시간과 마주하고, 과거의 과오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또한 어떤 관객들은 의문을 품는 것을 넘어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 희미해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오직 시간을 포착한다는 것만이 영화의 참된 가치는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최근 영화 시장에서 시간을 포착하는 영화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와 동시에 시간을 포착하는데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위의 영화들을 만났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기도 하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 영화들의 가치를 단순히 시간을 포착한다는 것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으며, 이와 동시에 각자 특별한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화려한 어트랙션 속에서 잠식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들의 그에 매료될 것이다. 하지만 건너편 작은 극장에서 시간을 포착하는 국내의 독립 영화들이 상영될 것이다. 또한 이 영화들은 빈자리가 듬성듬성 할 것이다. 이 현실에 대한 아쉬움에, 작게나마 국내의 독립영화들의 가치에 대해 서술했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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