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애도와 죄의식, 용서에 대한 신중한 고뇌와 통찰
주창민 | 깊은 애도의 우물, 거기서 건진 것은 무엇인가
승문보 | 섬세한 감정과 균형을 잃지 않는 인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윤리적인 고뇌
박마리솔 | 진짜 가혹한 것은 영화보다 가혹한 현실
권정민 | 가슴을 후벼 판다. 섬세하고 기민하게 인물 한명 한명을 담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윤영지 | 가라앉는 희망을 길어 올린다. 건져 올린다.
<살아남은 아이> 리뷰: 깊은 애도의 우물, 거기서 건진 것은 무엇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살아남은 아이가 있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존재와 부재의 공존을 다루고 있는 <살아남은 아이>는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 수상,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공식 초청 등 국내외 평단에서 호평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균형 감각, 깊은 감정의 골을 보여주는 훌륭한 배우들, 애도에 대한 감독의 진중한 태도 등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허나 벗어날 수 없는 기시감은 무엇일까. 기본적인 서사와 연출방식은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과 파생적으로 연상되는 일련의 작품들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이러한 기시감은 비단 작품의 유사성에만 있지 않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우려되는 한 현상, 부모의 부재, 가난한 환경, 학교 폭력 등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캐릭터들의 연속된 등장도 존재한다. <살아남은 아이>의 기현도 이러한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영화 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앞서 말한 기시감으로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살아남은 아이>만이 지닌 결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의 카메라는 그 동안 무기력하게 덩그러니 놓여오던 카메라와는 달리 섣불리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듯 작중 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따라가듯 움직인다. 영화는 사려 깊은 거리감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완전한 애도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애도와 용서에 관한 질문들 속에 각자의 상실 공간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위치시키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의 골을 균형 있고 짜임새 있게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태도를 거부하려 노력한다. 태도와 윤리에 대한 고민,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애도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지켜보고 이러한 강점들과는 반대로 마지막 장면에서 느낀 당혹감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애도 :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
헌 벽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벽지로 도배하는 행위. 찢어지고 상처 난 자리를 하얀색 벽지로 덮는 이 행위는 애도와 많이 닮았다. 상흔을 무언가로 덧대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기현에게는 죄책감이나 그동안의 상처들을 씻겨내고 깨끗한 천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도배 행위 자체는 기현에게 있어 생계 수단이다. 앞으로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울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기현은 앞으로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비밀을 숨기고 버티고 또 버틴다.
애도란 상실감을 느끼고, 도배작업처럼 그것을 메우고 정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들의 죽음은 마음 한 공간에 상실이라는 부재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공간에 위치한 깊은 감정의 우물은 고뇌와 상실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 상실의 공간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따라 애도의 방식이 달라진다. 미숙은 이 상실의 공간을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려고 한다. 또한 아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상실감을 나누려고 한다. 반면 성철은 아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고자 하고 그를 통해 상실에서 오는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다. 카메라는 서로 다른 애도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공감 없이 위로를 행하는 사람들, 타인의 죽음을 포장하려는 사람들을 보여줄 때는 경계하듯 새로운 거리감을 부여하고 너무 쉽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역으로 상기시킨다.
영화는 섬세하게 성철과 미숙의 애도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균형감각 있게 기현의 위치와 상황을 그려낸다. 어느 순간 기현은 성철과 미숙의 애도 공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기현은 비밀을 간직한 채 분명하게 그 상실의 자리에 들어온다. 기현은 기술을 다 배우고 성철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단순히 제자가 아니라 성철의 모습을 모방하고 미숙과 성철의 생일을 챙겨주는 자식의 모습으로 남고 싶어 한다. 기현은 성철과 미숙의 상실의 공간 일부분을 차지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주변 생활환경에는 시비와 의심이 도사리고 있고, 편안해야 할 공간에는 살기가 있는 폭력이 꿈틀대고 있다. 기현의 공간은 불안정하고 주변에 의해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공간이다. 기현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성철과 미숙의 상실은 아이러니하게 기현의 부재를 채운다.
죽음의 자리가 타자에 의해 대체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기현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상실감의 밀도는 조금이나마 희석된다. 그럴수록 기현의 죄책감은 더욱 커지고 기현을 흔들기 시작한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성철과의 약속, 죄책감의 무게감, 공모자들의 폭력 등 모든 것이 그의 존재 자체를 짓누른다. 기현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과거의 죄악들은 하얀색 벽지로 덮였었지만 얼룩이 생기고 찢겨진다. 다시 덮어낼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들어내고 새로 시작할 것인가. 기현은 후자를 선택한다.
기현의 고백으로 성철과 미숙의 용서와 윤리에 대한 고뇌는 더욱 커진다. 의사자는 피해자로, 살아난 아이는 가해자로, 친구들은 공범으로 변모하면서 모든 공간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성철과 미숙의 공간은 일그러지고 더 이상 그들의 공간에서는 애도행위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기현과 함께 영화 내내 바깥에 있던 환상의 영역(강가)으로 떠밀린다. 솔직하지 못한 공모자들의 모든 책임은 속죄하려던 기현에게 돌아간다.
성철은 현현해진 상실의 공간에서 인과응보를 실천하려 한다. 아들은 죽인 가해자를 벌하는 것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정한 애도의 방식인가, 아니면 가해자를 용서하고 구원해야 하는가. 그 고뇌의 끝은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진정한 애도도 완전한 용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과정만을 지켜볼 뿐이다. 그 속에 겹겹이 쌓여있는 감정들, 강가에 누워있는 기현을 바라보는 미숙의 눈에는 처음 성철이 기현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감정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그런데 기현은 왜 이곳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기현이 한 행동은 씻을 수 없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절박한 환경에 던져진 기현만이 모든 죗값을 부여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기현이 지르는 고성과 강으로 던져지는 돌멩이들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환경에 대한 분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약자는 약자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은찬에게 던져졌던 돌멩이들은 자신에게 돌아와 물속으로 가라앉힌다.
기현에게 스스로 속죄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이 아이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고 다시 구원받아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기현이 살아남은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상실의 깊은 우물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구원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성철과 미숙이 구원자가 되어야 끝나는 이야기. 차분하고 깊게 유지해오던 톤은 어긋나고, 줄곧 사려 깊다고 생각되던 거리감은 오히려 무심하고 힘없이 느껴진다. 마지막에 다다르자 작위적인 흔들림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노력하던 움직임마저 사라져버렸다. 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를 원했던 것일까. 개인적인 연민인지 아니면 가혹한 환경에 계속해서 던져지는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지만, 이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우리는 영화가 끝난 후에 강물 밖으로 건져 나온 기현에게 ‘너는 살아남은 아이야.’라고 단언하고 안도할 수 있을까. 미숙의 시선 끝에 불안하고 어정쩡한 감정이 서려 있는 기현의 초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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