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기획] 지금, 독립영화
오늘도 독립영화는 우리를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집에서, 때로는 우리가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는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독립영화와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지금을 생생히 경험하는, 인디스페이스의 관객기자단 인디즈 10기가 전해드립니다.
지금, 여기의 소외된 목소리와 함께
영화 <공동정범>, <피의 연대기>, <환절기>가 겨울을 지나는 방식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예술, 교육, 정치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미투 운동의 바람이 거세다. ‘Me Too’. 단순히 말하자면 ‘나도 그렇다’고 선언하는 행위이다. 이는 지나치고 침묵으로 일관해 온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수자는 힘이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더 큰 목소리 앞에서 희석된다. “나도.” 그렇기에 피해자들의 발화는 고백의 주체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점,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의 의사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겨울을 맞이하며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개봉했다.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 <공동정범>의 경우 용산 참사의 피해자,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중심으로 여성들을, 마지막으로 <환절기>에서는 동성애자와 그를 바라보는 중년 여성의 시선을 재현해 내고 있다. 재현의 대상은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지니지 못한 소수자이다. 세 영화는 대부분이 쉽게 목도하고 간과한 채로 넘어간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 속의 인물들은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들은 모두 상처받았노라고 고백하며, 이러한 자기 고백의 서술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왜곡 없는 카메라는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영화는 각자가 묘사하는 인물에 대한 충실한 책임감 혹은 윤리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작은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열렬히 노력하는 지금, 여기 겨울을 보낸 소중한 독립영화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우리’ 앞에 ‘내’가 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주된 기제는 바로 대의명분이다. 어떠한 목적성이 그들의 요구와 감정 해소를 가로막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개인이 갖는 감정은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어느 해결도 보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목소리는 방황하게 된다. 한 사람의 감정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여상히 믿는 사회에서는 쉬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책망의 여론이 튀어나오곤 한다. 또한 소수자와 피해자라는 전형적인 이름표는 그들에게 위압적인 존재로 체감된다. 그러나 소수라는, 중요치 않다는 이유로 그들의 욕구를 묵인하는 행위엔 어떤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리기에 급급했던 상처와 불만은 언젠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한 명의 인간이며 그들 삶의 주체이다. <공동정범>, <피의 연대기>, 그리고 <환절기>는 이처럼 갈 길 잃은 목소리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개개인에 천착하기, 곧 집단과 명분에 가려진 생채기를 훑어가는 과정이다.
우선 세 영화는 재구성의 중심축을 개인에게 둔다. <공동정범>은 특히나 용산참사를 다루는 입장에서 집단, 국가가 아닌 피해자 한 명의 진술을 용감하게 취한다. 엄밀히 말하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라는 당위적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오히려 방향성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감정들을 한 곳에 모아 분출시킨다. 감정의 표출이 우선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의 진술은 각기 다른 언어로 발화된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순간들을 상기해 내며, 타 피해자를 힐난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한 데 합쳐지는 것이 문제 상황이 아니라 ‘상황 속에 가리어진 상흔의 궤적들’이라는 점이다. 약자를 향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에 익숙해진 관객은 피해자 간의 다툼을 불쾌히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윤리적 잣대와 비난은 그들의 목소리를 강압하는 주된 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지적함으로써 <공동정범>은 개인과 더 나아가 개인의 감정에 대해 갖는 신뢰를 여실히 현시해 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공동정범> 스틸컷
<환절기> 또한 개인에 집중하기 위해 인물들이 맺어가는 관계를 부각한다. 관계의 중심축은 동성연인인 ‘수현’과 ‘용준’이다. 영화는 여기에 수현의 엄마인 ‘미경’의 시선을 덧붙이며 관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시간의 일방향적인 흐름과 함께 그들의 관계는 변모한다. 초점은 변해가는 관계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시간을 맞이하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이다. 때로는 관계에 의해 침묵을 요하는 감정들이 있다. 내가 아닌 너, 상대방을 위해 묵과되곤 하는 감정들이 있다. 환절기는 관계만을 제시하기보단 관계 속에 숨겨지곤 했던 ‘나’의 내면을 비추고자 한다. 영화는 용준과 수현이 동성애자임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며 동시에 수현의 엄마이자 중년의 여성일 ‘미경’에게 무조건적인 모성애와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명명하지 않으며 <환절기>는 세 사람을 오로지 한 명의 개인으로 바라볼 것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공동정범>과 <환절기>가 기억의 어두운 단면을 제시했다면 <피의 연대기>는 그 반대의 지점을 묘사하고자 한다. <피의 연대기>는 고등학생, 대학생, 중년의 여성, 노년의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행한다. 영화의 탁월함은 여성들에 대한 신중한 태도에서 기한다. 개인의 합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되, 한 명 한 명의 고백을 절대 경시하지 않는다.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여경주 할머니에 ‘가사노동 은퇴자’라는 자막을 다는 것처럼.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임을 잘 아는 영화는 경쾌한 리듬으로 개인의 발화를 담아내기 위해 인터뷰 외에도 내레이션과 애니메이션, 밝은 색감의 보정 등의 연출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나도 생리해, 나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라고 본인의 경험을 꺼내는 여성들은 당당하고 유쾌하다. 약자는 언제나 위축된 존재가 아니다. 움츠러든 약자와 소수자의 상식을 깨기. 깨고 삶의 주체로 당당하게 욕망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기. 바로 <피의 연대기>가 목표로 하는 바이다.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나와 나가 합쳐, ‘우리’
세 영화의 가능성은 소수자의 프레임을 함부로 개인에게 가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영화 안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유별나지 않으며 그러한 인식이 있기에 개인의 자유로운 고백, 진술, 진솔한 발화가 가능한 것이다. <공동정범>, <피의 연대기>, <환절기>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 영화는 개인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연대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인물 간의 연대이든, 스크린을 넘어선 관객과의 연대이든. 영화의 진술은 다수의 진술을 골간으로 이뤄진다. 나와 너, 너와 또 다른 나, 여러 개의 목소리를 합해 더 큰 하나의 목소리를 만든다. 제목이 ‘공동’정범이며, 피의 ‘연대’기이고, 환절기를 겪는 이가 ‘세’사람인 이유다.
인물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은 결말부에 가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머문다. 참사가 훑고 지나간 용산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꾸준히 건설되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어느 폭력도 인정받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리는 여성의 문제는 인구의 절반이 해당됨에도 아직도 여성만의 것으로 국한된다.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생리를 보다 복지적인 것,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하다. 계절이 지나감에 따라 해결되는 듯했던 세 사람의 관계는 그들에게 여전히 지치고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다. 여과는 되었지만 잔여물은 그들의 관계 속을 떠다닌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이들의 극복되지 못한 현실을 응시하며, 관객의 역할을 서서히 관조자에서 동조자로 전환시킨다. 거대한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힘을 미약하게 만드는지, 그에 대해 개인은 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를 지켜보게 하면서. 깨달음이 연쇄적으로 파생해 낼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며 세 영화는 끝을 맺는다.
어찌 보면 해결을 제시하지 않으며 연대의 가능성을 미약하게 열어두는 세 영화의 태도는 냉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해결을 강구하는 대신 대부분이 지나친 그들의 환부를 주시한다. 세 영화는 고백의 과정을 단지 지켜봄으로써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추진력을 불어 넣는다.
영화 <환절기> 스틸컷
소수자를 다루는 대부분의 재현은 ‘소수자’의 프레임에 갇혀 차이점을 과도하게 부각한 나머지 그들이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묘사될 여지가 존재한다. 동시에 소수자임을 은닉하는 행위는 관객에게 시혜적인 시선을 바라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소수자는 동정의 대상도 이해의 대상도 아니다. 그들의 다름은 당위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세 영화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오판의 가능성에서 빗겨나간 채로 재현을 성공해 낸다.
모든 시작은 ‘나’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나로 귀결되는 나‘도’라는 동조의 표현은 변화의 시발점이다. 개인과 연대의 힘을 신뢰하기, 세 영화의 가능성은 이로부터 출발한다. 지금, 여기에 소외된 목소리와 함께. 이는 겨울의 냉혹함을 그대로 비추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더 따듯한 계절을 향한 열망이기도 하다.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봄이라는 또 하나의 계절을 위해 <공동정범>, <피의 연대기>, <환절기>는 인간 개인과 그들 간의 연대라는 씨앗을 조심스레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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