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기획] 지금, 독립영화
오늘도 독립영화는 우리를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집에서, 때로는 우리가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는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독립영화와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지금을 생생히 경험하는, 인디스페이스의 관객기자단 인디즈 10기가 전해드립니다.
내일의 영화에 대하여,
이길보라 감독 인터뷰
* 관객기자단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독립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몇몇 독립영화관은 문을 닫아야 했고, 많은 독립영화가 국가의 탄압과 검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2월에는 박근혜 정권 시기 독립영화가 ‘문제영화’로 분류되어 국가와 정부에 의해 제어되고 관리되었음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한편 지난 몇 년간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는 페미니즘 이슈가 있었다. 기존 영화의 여성 재현 방식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함께 남성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영화계 내 여성혐오와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폭력의 공론화는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독립영화는 많은 상처와 과제를 짊어지고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 길 위에서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이길보라 감독은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다큐멘터리를 공부했고 2015년에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개봉을 통해 많은 관객을 만났다. 그는 여성감독이자 독립영화감독으로서 앞서 언급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현재 그는 한국을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인디즈 기획에서는 이길보라 감독에게 한국의 바깥에서 보이는 한국 사회는 어떠한지, 내일의 한국 독립영화는 어떤 모습을 가지려 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 수업 현장 (이길보라 감독 제공)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무사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 석사 과정에서 영화 전공하고 있고요, 학부 생활보다 더 바쁘고 밀도 있는 워크샵들을 거치면서 정신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계속 한국어로 글도 쓰고 신문에 칼럼도 싣는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몸이 두 개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생각합니다. 하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이하 ‘영상원’)을 졸업하셨는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영화학교로 유학을 결정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로 오게 된 건 굉장한 우연 혹은 운명이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작업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영상원 학부 졸업하고,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며 관객들을 만나고, 해외 영화제에서 다양한 나라의 프로듀서, 감독들을 만나고,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출판하는 일도 해보고 나니 그 다음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술가로서의 작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랄까요. 물론 외국이라고 예술가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만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진 않겠지만, 한국에서의 나의 경험과 다른 나라 예술가로서의 경험은 어떻게 다를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것일까,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음 작업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곳 저곳 둘러봤는데 예상 외로 네덜란드가 너무 좋았던 거죠. 사실 여행한 국가들 중에 커피가 제일 맛있었는데 그것도 큰 몫을 했고요. 하하. 네덜란드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어요. 영어도 가장 잘 통하는 국가였고요.
그렇게 암스테르담에서 자유로운 나날들을 보내다 숙소 근처의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에 놀러 가게 되었어요. 보통은 약속 잡고 가지 않으면 들여보내주지 않는데, 마침 그날 학교에 석사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학장 ‘Mieke’가 있었어요. Mieke가 저를 굉장히 신기해하면서 학교를 구경시켜줬고 석사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얼떨결에 입학상담 같은 것을 받게 되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이 코스가 굉장히 좋은 코스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전통적인 영화수업이라기보다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는 코스에요. 그래서 졸업 작품을 꼭 완성할 필요는 없어요. 이 학교에서는 각 연구원(이 과정에서는 '학생'보다 '연구원'이나 '리서처Researcher'로 부르길 선호해요)들이 그룹, 멘토와 함께 어떻게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키고 성장시켜 나가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다큐멘터리를 주로 하니까 장편 다큐의 기획안과 트레일러 정도를 만드는 게 졸업 작품이 될 수 있어요. 이 학교는 유럽의 네덜란드에 위치해 있다는 이점을 백분 활용해서 졸업 이후 각자가 자신의 네트워크와 자신이 발전시킨 아이템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해나가길 바라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꿈같은 거죠. 게다가 너무나 사려 깊은 학장 Mieke는 매우 똑똑하고 섬세한 여성이에요. 그것도 꿈같았어요. 그때 Mieke도 참 재미있었을 거예요. 여행자 차림의 어떤 아시아 여자애 하나가 대뜸 약속 없이 찾아와서는 학교 구경 시켜달라고 하고, 갑자기 입학상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도 학교 안에 작은 테라스랄까, 정원 같은 곳이었거든요. 그냥 걸터앉아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아, 이 학교 와야겠다. 정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국에 돌아와 입학을 준비했어요. 사실 여행하기 전에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영화학교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뜬금없이 이 학교에 꽂힌 거죠.
이제 막 2학기를 시작했는데요, 일단 제가 한국에서 영상원 석사를 하지 않아서 무엇이 같고 다른지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이 곳의 석사과정은 10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그룹 중심으로 매번 다른 워크샵을 해나가며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과정이에요. 수강신청을 하는 게 아니라 매 학기마다 워크샵 일정표를 받아요. 예를 들어 첫 학기는 ‘주관성’이 주제였는데요,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있고, 어떤 작업을 해왔고, 동시에 나의 그룹은 어디에 위치해 있고, 나는 내가 속한 위치에서 어떤 것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것을 해나가고 싶은지 탐색하는 학기에요. 그에 따라 이론중심 워크샵과 실기중심 워크샵이 배치되는데, 10명이 매번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구성원끼리 서로 신뢰하는 걸 매우 중요시해요. 2학기 주제는 ‘방법/방법론’인데, 자신의 주관성을 알고 자신의 연구 주제를 알았으면 그 이후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탐색하는 학기죠. 사실 저는 이번이 첫 유학이라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공부하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의 친구들이나 교수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이 학교의 코스가 네덜란드 내에서도 특별한 경우라고 해요.
감독님은 2015년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개봉을 통해 많은 관객을 만났어요. 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일본에서 개봉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았을 때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국내외 개봉은 감독님에게 어떠한 변화를 주었나요?
영화와 함께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2012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2014년에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고, 이후 2015년에 국내 개봉, 2017년에는 일본 개봉을 하면서 관객들을 만났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와 5년 정도 함께 성장한 셈인데요,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고, 배급하는 과정을 통해 다큐멘터리 작업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영화가 농인(청각장애인) 이슈를 다루고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작업해나가면서 제 정체성을 더욱 자각하기도 했어요. 내가 어디 서 있고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면서 그것들이 더 확고해졌고요.
한국에서 영화 개봉하면서 저에게 코다 감독이라는 정체성, 청각장애인 이슈를 다루는 영화감독이라는 정체성이 생겨 일어난 일인데, 최근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일본 소설 『데프 보이스』를 출간할 때 제게 해설을 부탁하셨어요. 코다인 주인공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인데 코다의 입장에서 정말 잘 쓴 소설이에요.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일본에서는 코다를 주인공으로 이런 콘텐츠도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한국은 아직 농인을 그저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으로 분류하고 아주 기능적으로 캐릭터를 소모하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놀라운 농세계, 코다의 세계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어서 작가인 마루야마 마사키가 코다일 거라 확신했는데 청인이더라고요. 그것 또한 너무나 놀라웠어요.
작가 마루야마 마사키씨를 일본에서 영화 개봉할 때 만나게 되었어요. 마루야마씨는 시사회에도 오고 아내와 같이 영화관에도 오셨어요. 따로 술도 몇 번 마시고요. 마루야마씨가 제가 한글로 쓴 해설 글을 보고 우셨대요. 저도 소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었거든요. 그 때 마루야마씨는 소설 『데프 보이스 2』를 집필 중이었는데, 일본에서 영화 상영 후 진행한 GV때 제가 말했던 엄마와의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대요. 그래서 그걸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에피소드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묻더라고요. 당연히 된다고 했고 얼마 전에 일본에서 그 책이 나왔어요.
마루야마씨가 책을 일본에서 보내줘서 며칠 전에 받았는데요,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사실 어디에 어떻게 제 에피소드가 들어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굉장히 많은 부분이 확장되는 기분이랄까요. 내 작업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는 다른 작업으로 이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그걸 보고 또 다른 작업을 해나가고. 작업자로서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국경과 언어와 문화를 넘어 서로의 작업을 성장시키고 지지하고 연대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 스틸컷
사회적, 시대적 맥락을 조금 이야기해보면, 감독님의 몇 년간의 삶은 시기적으로 한국 사회와 한국 독립영화계가 겪은 큰 변화의 흐름을 관통하고 있어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위태로운 방식으로 과거로 회귀했고 한국 독립영화계는 노골적인 국가의 탄압과 검열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중심에는 페미니즘 이슈가 있습니다. 영화 분야의 경우, 기존 작품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함께 수많은 영화계 내 여성혐오와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여성감독이자 독립영화감독의 눈으로 보았을 때 한국 사회는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나요? 최근 감독님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최근 키워드는 역시 ‘미투 운동’인데요. 관련해서 이번에 한겨레 칼럼을 통해 저도 미투 운동에 합류 혹은 ‘위드 유’로 지지하는 마음을 담았어요(이길보라, “[삶의 창] 당신을 이어 말한다,” 한겨레, 2018.03.02.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4413.html. 참고). 사실 네덜란드로 유학을 오게 된 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탄압과 검열, 그 어두운 시기 때문이었던 부분도 커요. 제 20대가 이명박, 박근혜 시대였거든요. 그 시기에 어떻게 글을 쓰고 다큐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 이슈 또한 그랬고요. 촛불집회 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권이 바뀌어도 나의 작업 조건,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20대 여성인 제 일상은 어차피 비슷할 것 같은 거예요. 예를 들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지상파 3사 모두 수화통역 방송을 제공하지 않았죠. 정권이 바뀌어서 조금 더 속이 편해지고 살기 좋아졌지만 사실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개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가 만연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헬조선’이라고 했던 것이고요. 정권이 바뀌면서 조금 더 상식에 가까워졌겠지만 동시에 지금의 페미니즘 이슈,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절망적인 일일 거예요. 언젠가 정희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그 절반이 ‘평등’, ‘페미니즘’을 외치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LGBT, 장애인, 노인, 어린이 이슈 등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못할 거라고 말이에요. 페미니즘은 사실 인구의 절반을 인정하는 거예요. 모두를 위한 거고요. 생물학적인 성으로 단순히 여성과 남성을 나눌 수 없듯이 말이에요.
현재 반 년 가까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감독님은 로드스쿨러의 정체성을 가지고 오랜 시간 국가의 경계를 넘으며 사회에 대해 고민해왔어요. 한국의 바깥에서 보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유학 이전에 보았던 것과 차이가 있던가요?
음, 보다 전체주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최근에 평창동계올림픽 관련해서 독일의 한 회사가 마케팅 차원으로 한국의 국민체조를 따라하는 영상을 제작해 올렸어요. 엄청 어설프게 국민체조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갑자기 제가 국민체조를 너무 잘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국민체조를 하는 영상을 과제로 찍고, 그걸 유튜브에 있는 여러 국민체조 영상들과 합쳐서 편집했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국기에 대한 경례도요. 제가 영상원을 졸업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거든요. 그때 상을 받아서 맨 앞줄에 앉아 있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 순서가 있었어요. ‘아니 무슨 예술학교 졸업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하며 뜨악했는데 다들 너무 의심 없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거죠. 저는 너무 놀라서 하지 않았어요. 전체주의잖아요. 이 나라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놀라운 발상이죠. 그때 졸업생과 학부모, 교수들 모두 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억을 모티브로 해서 짧은 영상들을 만들었어요. 석사 과정 리서처들, 교수들과 같이 노래를 틀어놓고 국민체조를 하면서 그걸 찍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다시 바라보고 또 여기서 함께 공부하는 리서처들의 시선에서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전체주의적이고 이른바 ‘파이팅’하는 사회인 거죠. 저는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관심 끄고 퇴근 일찍 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건강을 챙기는 사회. 사실 그러면 주변에 더 관심을 갖게 돼요. 시간과 여유가 생기거든요.
영화 분야로 들어가,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드리면, 네덜란드의 독립예술영화 문화와 한국의 독립영화 문화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단 독립영화 문화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관람객으로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요, 암스테르담은 굉장히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이 굉장히 많아요. 또 ‘Cineville 멤버쉽’이라는 네덜란드 내의 42개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무제한으로 관람할 수 있는 멤버십 제도가 있어요. 한 달에 19.95유로로요. 이 기금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화 제작자들을 위해 쓰여요. 놀랍죠. 영화 한 편 보는데 10-11유로 정도니까요. 그리고 극장마다 모두 다른 영화를 틀어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암스테르담은 축제도 많이 열리고 크고 작은 영화제도 많이 열려서 다양한 영화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에요. 네덜란드에서 아직 한국 영화를 관람한 적은 없어요. 3월 6일부터 암스테르담에서 ‘CinemAsia’라는 아시아 영화제가 열리는데(인터뷰 3월 5일 진행) 그 중 한국 상영작이 몇 개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 관심 있는 영화가 있나요? 관심이 가는 이유, 감독님에게 어떤 영감이나 자극을 주는지도 함께 알려주세요.
현재 한국에서 상영중인 <공동정범>과 <피의 연대기>에 많은 관심이 갑니다. <공동정범>은 작년에 한국에서 봤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봤어요. 리스펙트! 영화 주인공들을 비롯해 제작자들 모두에게 리스펙트를 보냅니다. 너무 훌륭하고 잘 만든 다큐멘터리라 다시 보고 싶어요. 그리고 <피의 연대기>는 제작 중에 피칭도 함께 하고 부산국제영화제 AND펀드도 함께 받았던 작업인데, 개봉하고 나서 영화를 못 봐서 너무 궁금해요. 최근 한국에서 페미니즘 이슈와 맞물려 개봉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해서 더욱 궁금하기도 하고요.
영화 <로드스쿨러> 스틸컷
감독님은 긴 시간 영화감독, 작가, 스토리텔러의 삶을 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창작자의 삶을 살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계유지라는, 경제적 문제와 지속성의 문제가 가장 크게 다가오죠. 이 문제들에 대해서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함께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영화학교 동료들의 생각은 어떤지도 전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창작자, 작업자로서의 지속가능성이 여전히 화두에요. 여기서 새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 새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까, 비자는 어떻게 할까, 졸업하고 나서 여기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여전히 저도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현재 동기 중에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면서 석사 과정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역시 여기서도 다큐 영화 제작자로 사는 건 만만찮은 일이라고 말해요. 그렇지만 이 곳의 제작 예산을 들어보면 인건비가 상당히 높고 현실적이거든요. 그 돈을 어떻게 다 펀딩해서 모으나 싶기도 한데, 또 친구를 보면 학기 중에도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동기가 저한테 졸업하고 나서의 계획이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음, 내가 여기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했는데 2년 동안 네트워크를 탄탄히 쌓고 졸업 작품 전시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면 그것대로 굴러갈 거라 하더라고요. 지금 여기서 석사 과정을 하고 있듯 졸업 이후의 삶도 가만히 지켜보면 또 그것대로 나아갈 거라고요. 물론 여기도 취업난이 심각해진다 해도 아예 길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직 유학 반 년차라 잘 모르겠지만 이곳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의 감독님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의 영화, 다시 말해 ‘내일의 영화’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준비하거나 진행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현재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여성, 3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후반작업을 하고 있고요, 올해 혹은 내년에는 관객을 만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혹은 생존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에는 책을 통해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에 칼럼도 계속 쓰고 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아직 생초보라 자전거 타다 넘어지고 카메라 싣고 옮기고 하면서 이곳에서의 작업 터전을 다지고 있습니다. 나름 '수줍은 코리안 여성’ 역할을 맡고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면 이곳에서도 관객과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라고 하니 무슨 아이돌이 된 기분이지만, 안녕하세요. 인디스페이스에 매우 가고 싶은 인디스페이스 정기후원회원 이길보라입니다. 하하. 네덜란드에서 영화를 배우고 작업하면서 동시대의 한국의 독립영화를 떠올리곤 해요. 아직은 이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많이 들이고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독립영화와 한국의 독립영화를 서로 소개하는 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고요. 많이 그리운 것은 한국의 독립영화계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들과 독립영화 관객들입니다. ‘헬조선’이라 하면서도 동시에 놓을 수 없는 애증이랄까요. 여기서 많이 생각하고 있는 건 역시 ‘국가’과 ‘국민,’ ‘내셔널리티,’ 그리고 ‘정체성’이에요. 그래서 더더욱 이곳에서 그곳을 많이 생각하게 되나 봅니다. 그럼 또 다른 작업으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것에서 어떤 선명한 대답을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말에는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얽혀있다. 이 상태는 어쩌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시간 속에서 이십 대를 보낸 신진 영화감독의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질문들은 우연히, 때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달려 들어간다. 그렇게 그는 국가, 언어,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고 수많은 타자들과 대화하며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립영화의 내일의 일부를 그에게 맡겨 보아도 좋지 않을까.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과 태도를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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