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일인가 인디피크닉2018 <소성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4월 6일 오후 6시 상영 후
참석 박배일 감독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기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서울독립영화제)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 2018의 둘째 날 <소성리>가 상영되었다. 소성리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작은 시골 동네이다. 그러나 현재 그곳에는 한국 사회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사드가 배치되어 있으며 여전히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투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인 시골 마을에서 거대한 무기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직접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 들여왔다는 무기가 그곳 사람들의 평화를 깨고 있는 방식을 영화는 보여준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이하 김동현) : 영화에 어느 정도 설명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상과 투쟁의 과정을 함께 다루셨어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촬영을 했고 여기서 담아냈던 중요한 투쟁의 과정이 성주 투쟁에서 어떤 부분에 해당되는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배일 감독 (이하 박배일) :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제일 처음 나온 크레딧이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김천/성주’ 프로젝트예요. 저희한테 와 닿아야 하는데닿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현장을 찾아가서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저 같은 사람은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음악작업을 하고 글을 쓰시는 분들은 잡지를 만들거나 기사를 쓰는 식으로 1년에 한 번씩 현장을 돌아가면서 4박 5일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작년에는 성주의 사드 이야기를 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장편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프로젝트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대선이 끝나고 나서 댓글 중에 ‘소성리 주민들은 그렇게 사드를 반대하더니 투표는 전부 빨갛게 했네.’, ‘사드 안고 죽어버려라’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20%의 사람들을 보호해주거나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투표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사드의 이야기와 함께 장편으로 담아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사전에 몇 번 촬영을 하고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간 건 6월 말에 시작을 했습니다. 한 2개월 정도 촬영을 했어요. 여름이라 아침 7시부터 촬영을 하고 너무 더워서 10시부터는 촬영을 못했어요. 중간에 숙소에 들어가서 편집을 하고 한 3시쯤에 다시 나가서 촬영을 하고 또 들어와서 편집을 하면서 소성리에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촬영 기간은 2개월 정도이고편집까지 하면 3개월에서 4개월 정도 프로젝트가 진행됐어요.
왜 이런 투표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저의 잠정적 결론은, 전쟁의 경험을 겪고 빨갱이로 몰리면 죽임을 당하는 역사를 살아오신 분들이 스스로 숨거나 침묵하는 역사들이 반복되면서 보수화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전쟁의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사드의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었던 거 같아요.
김동현 : 공동의 프로젝트로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하셨어요. 성주의 작은 마을이고 연대 단위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조금 더 현장을 알려내는 방향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 작품은 평화로운 소성리 마을, 그리고 굉장히 일상적인 생활들을 해나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잖아요. 큰 틀을 잡을 때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그리고 감독님이 어떻게 방향을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배일 : 제가 만약에 투쟁현장을 처음 간 감독이라면 아마 저의 전작들처럼 이 투쟁을 잘 알리기 위한 논리적인 영화를 만들었을 거 같아요. 이 투쟁이 어떤 맥락이 있고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싸우는지 감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었을 거 같은데, 제가 그래도 투쟁 현장에 조금 오래 있었어요.(웃음) 밀양에도 3년 정도 있으면서 2편의 영화를 만들었어요. 또 부산에서도 계속 투쟁 현장에 있었는데 이분들이 결국 말씀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이대로 살고싶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와 같은 이야기예요. 늘 현장에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본질적인 이야기. 이분들이 구호로써 외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밀양 때는 언론 상황이 너무 안 좋고 제대로 밀양을 알리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 백과사전처럼 전체적인 투쟁과 논리와 의미를 다 섞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다행히 정권이 바뀌고 사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소성리>라는 작업 이전에 <파란나비효과>라는 작업이 있어요. 그 영화는 조금 더 논리적으로 이 투쟁을 알리는 영화거든요. 그 영화와 제가 했던 경험들이 있으니까 조금 더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보자고 생각했어요. ‘평화가 뭘까?’하고 물었을 때 할머니들은 일상을 지켜나가는 게 평화라고 얘기했거든요. 사드라는 건 일상을 파괴하는 굉장히 거대한 무기니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이분들이 살아가는 호흡으로 만들어가자는 생각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와 호흡을 이렇게 맞췄던거 같아요.
김동현 : 사드 배치를 둘러싼 극렬한 투쟁과 대비되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이 한 축이고, 해방 전후에 있었던 소성리의 일들을 기억하고 발언하면서 현재의 싸움과 연결되는 흐름이 다른 중요한 한 축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소성리에서 과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박배일 : 인터뷰는 한 분당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했던거 같고, 인터뷰에서 듣고 싶은 말들이 제 머릿속에 조금씩 있었던 거 같아요. 한 투쟁지역에 3년, 4년을 있다보니 사전조사도 하고 이분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조금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어느 순간에 조심스럽게 꺼내야지’ 생각하며 인터뷰를 준비했던 게 있어요. 소성리는 굉장히 작은 공간이고 6.25 때 의료 작업을 하던 곳이었어요. 전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공간이라기보다는 의료부대, 보급부대가 있었던 곳이죠. 워낙 산골짜기라서 북한군이 상주하면서 빵집도 만들고 의료 관련된 보급도 했던 공간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에서는 굳이 드러내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소성리가 아닌 다른 공간들은 전부 학살지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아실 수 없겠지만 공간을 배치할 때 저희 나름대로는 전쟁의 아픔이 있는 공간들을 배치하자고 했어요.
김동현 : 빵집이 있었다는 게 특이해요.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집에서 빵을 만들어 먹지는 않았잖아요. 어떤 배경이 있었던 건가요?
박배일 :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할머니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걔네들'은 자기들 땅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여유롭게 지냈고, 먹을 게 없는데 자기들끼리만 뭘 먹기는 뭐하니까 우리한테 나눠주면서 자신을 사람답게 대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 같아요.
관객 : 할머니들 근황을 알고 싶습니다.현재 사드가 들어서있는데 특히 영화에 많은 분량 등장하신 할머니가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박배일 : 사드가 추가 배치돼서 미군과 한국군이 상주를 하는데, 원래 군대가 아닌 골프장이 있던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이 굉장히 협소한 거예요. 그래서 최근까지도 계속 막사를 넓히고 있어요. 또 배관 시설이나 화장실 시설이 잘 안 되어있어서 얼마 전에 또 공사시설을 올렸어요. 문재인 정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또 다시 사드 들어갈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사 자재를 올리는데 할머니들은 공사를 하지 못하게 매일 새벽마다 올라가는 길목을 막고 있어요. 사드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많아요. 사드를 뺀다, 다시 공사를 한다, 여러 얘기가 많은데 다 확실한 건 아니라서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사드 배치에 대해 분노하며 그곳에서 매일매일 공사를 막고 있는 상태입니다.
관객 : 이전에 밀양에서 작업하실때 감독님이 느꼈던 밀양의 투쟁모습과 소성리의 투쟁모습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배일 : 투쟁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한 거 같고, 저 스스로의 차이가 있었어요. 밀양은 제가 3년을 현장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곳에 계신 분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농도가 조금 달랐던 거 같아요. 저는 밀양을 경험하고 밀양을 품고 있기 때문에 성주에 가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밀양분들이 겹쳐보이면서 소성리의 분들을 담게 된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아주 가볍게 얘기하면 밀양이 더 여성성이 풍부하고 즐겁고 활기찬 투쟁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소성리가 굉장히 과격하고 남성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두 개를 비교했을 때는 조금 더 그런 특색이 짙게 나타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동현 : 현장의 양상이 달랐던 거 같아요. 감독님이 밀양에서 작업하신 걸 봤을 땐 최소한 우익 단체들이 오고 바로 앞에서 위협을 가하는 충돌 양상은 없었거든요. 근데 소성리의 싸움은 미군이 개입되어 있고 국방부가 개입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또 보수정권 시기여서 그런지 그런 장면들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관객 : 대부분 모든 샷들이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할머니들의 행진을 담잖아요. 한 분 한 분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카메라가 따라가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고정시키고 촬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배일 : 일단 고백을 하자면, 저는 스스로를 촬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들고 찍기보단 놓고 찍자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제가 촬영을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관객들이 볼 때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싸움이 굉장히 격렬하게 일어나는 순간에도 웬만하면 고정시켜서 찍는 버릇을 들였거든요. <소성리> 같은 경우는 아예 촬영 콘셉트를 잡고 시작했던 경우예요. 중요한 콘셉트는 ‘우리가 시골 할머니를 대할 때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였어요. 할머니들이 전부 앉아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같은 위치에서 이분들의 활동을 보려고 했어요. 제가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다보니 단시간에 이 이야기를 속보성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촬영콘셉트를 잡고 시작했어요.
김동현 : 마치 어떤 유령들이 존재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연출한 장면도 있잖아요. 그걸 위해서 컬러효과도 주셨던데 야심차게 준비하고 진행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웃음)
박배일 :얼마 전에 영화를 다시 봤는데 제가 별짓을 다했더라고요.(웃음)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장면은 다른 이야기와 조금 다른 맥락이라고 판단했고 다르게 표현해야 할거 같았어요. 제가 이 공간을 혹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에 기대어서 그럼 ‘이렇게 해볼까?’하고 만들었더니 그렇게 이상하게 됐던 거 같아요. (웃음)
김동현 : 마지막 질문인데요. 감독님 목소리가 한번 나오잖아요.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굳이 감독님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로 결정한 그 샷을 편집할 때 어떤 생각으로 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관객 분들에게 지금 하시는 작업, 또 성주의 다음 투쟁일정이 있다면 그것까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배일 :몇 개를 질문하시는 거예요?(웃음) 먼저, 그 장면이 정말 튀는 장면이에요. 빼라고 욕을 정말 많이 먹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바로 뒤 컷이 그 어린 친구가 저한테 와서 뽀뽀를 하는 장면이에요. 이거까진 너무 오버여서 뺐어요.(웃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그게 표현이 잘 되었든 안 되었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음 작업은 부산의 공간인데요, 부산 국도예술관이라고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곳입니다. 그 공간의 마지막, 문을 닫는 모습을 2주간 촬영해서 지금 편집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어요. 또 제가 7-8년 전에 기획했던 영화가 있는데 저희 동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산업적으로 굉장히 활성화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낙후된 공간과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늙은 노동자, 그리고 그 공동체를 밀어버리는 국가권력을 이야기하면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상’이라는 작품을 내년에는 선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성주에서는 수요일마다 매일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를 해요. 김천도 사드랑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구역이거든요. 그래서 김천에서도 ‘국민대행동’이라고 하는 큰 일정이 있습니다.
일단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언론들이 평화가 오고 있다고 이야기 하잖아요. 봄이 온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평화가 오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 속에 빗겨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특히 지금 이 순간 성주 소성리라는 공간에는 평화에서 빗겨난 사람들이 있거든요. 평화라는 말을 계속 끄집어내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주체가 소성리 주민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분들은 평화롭지 못해요. 그 사실을 알고 소성리와 성주 투쟁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어떻게든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영화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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