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션에 대한 야심찬 열망 인디포럼 월례비행 <뿔을 가진 소년>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휘근 감독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김휘근 감독의 <뿔을 가진 소년> 속 등장인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의문스러운 질병에 걸린다.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모두 헛헛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전문 의학의 손길 바깥에서 ‘인간 녹용’이라는 도시 괴담의 진원지를 찾아 헤맨다는 형편을 공유한다. 추격전과 스릴러라는 야심찬 시도를 선보이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상징을 통해 소비자본주의가 만연한 세정을 다소 직설적으로 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도권 지역을 선회하는 2030세대의 고달픈 삶을 묘사해온 독립영화들의 경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다만 프로덕션의 전 과정을 홀로 작업하며 규모 있는 서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호기로운 감독의 행보에는 주목할만한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김휘근 감독,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그의 차기 행보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이하 정지혜) :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게 된 정지혜입니다. 지난해 부산독립영화제 대상수상작인 <뿔을 가진 소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휘근 감독 (이하 김휘근) : 안녕하세요. 김휘근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정지혜 : 이 영화는 편집과 촬영, 시나리오까지 많은 부분을 거의 다 감독님이 도맡아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고등학생 때부터 동아리를 만들어 영화 작업을 해왔고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면서 제도권 바깥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뿔을 가진 소년>은 굉장히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 느꼈는데요, 그 점에서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이 주로 다루는 소재와 다른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요약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휘근 :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부산에서 청소년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얀색은 더럽다>(2014)를 작업 했는데요, 군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편집을 하거나 배급을 하는 데 부담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대 안에 있던 2년 동안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감이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기에 틈틈이 작업을 했었습니다. 제대가 가까이 오면서부터 <뿔을 가진 소년>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정지혜 : 이야기는 건강원이라는 한국적인 보신 문화와 그를 둘러싼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이런 소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이전부터 뿔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싶기도 했고, 군대 안에서 자연이나 생로병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자신의 작업에 관한 생각이 굉장히 뚜렷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징이나 화법이 다소 직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는 창작자들이 종종 피해가려는 방식이기도 하기에 오히려 눈에 띄었습니다.
김휘근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소품이나 배경에 특정한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의 상징성이 서로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에너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 불상이 자주 나오는데, 제가 이전부터 종교적인 상징물에 관심이나 애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소들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상징을 벗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찍었을 때 어떤 방식의 결과물이 나올지에 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영화에서 스릴러와 같은 장르영화에 대한 열망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많은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참고하며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지레짐작을 해봤습니다.
김휘근 : 전 사실 영화를 많이 안 보는 편에 속합니다. 영화를 치열하게 보는 것보다는 다른 취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 분들은 앞으로 영화를 보고 많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전부터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보다는 뮤직비디오나 CF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가 촬영 로케이션도 많고 인물도 많습니다. 촬영 회차도 40회차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이 거대한 규모를 홀로 짊어지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작 여건이 영화의 내적 요소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나 스토리 보드 제작을 거의 하지 않고 현장의 즉각적인 기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과정이 부족해서 스스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어 이제 아카데미에서 프로덕션을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은 전쟁에 관한 영화인데, 전쟁영화의 규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거나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 속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편집을 통해 엮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원래 제가 이야기나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이 장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와야 박자에 맞을지, 혹은 박력이 있을지 고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은 6.25 전쟁 때 묻혀있던 폭탄이 새로 발굴된다는 내용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도 플롯이 세 가지로 갈라지고, 나뉜 플롯이 엔딩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방식의 작품일 것 같습니다.
관객 : 차기작인 <불발탄>을 위해 전쟁영화를 많이 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거의 모든 전쟁영화를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틈틈이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고요, 전쟁을 다루는 게임도 많이 플레이하고 있습니다.(웃음) 전쟁 속에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또 6.25와 관련된 사진들도 찾아봅니다. 전장을 촬영했던 기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을지 생각하면서요.
관객 : 영화의 결말부에서 해석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휘근 : 원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개인이 자본주의 안에서 겪을 수 있는 아픔, 그리고 그것이 계속 윤회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려고 했기에 마지막 장면도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의 결말에서 인물들이 한강에 결집한다는 게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한강은 그간 한국영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장소로 활용되어 왔어요.
김휘근 : 영화를 구상하면서 한강이라는 장소보다는 잠실에 있는 커다란 빌딩에 유념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항상 그런 커다란 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는데, 그 건물이 잘 보이는 장소가 잠실대교 남단 정도라고 생각을 해서 그 곳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정지혜 : 배우 분들과도 전작부터 계속 같이 작업을 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휘근 : 꾸준히 작업을 같이 해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 스태프가 적어서 고생을 했는데 그런 시기마다 배우 분들에게 의지한 점도 있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많이 와주셨는데 배우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유쾌한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영화 작업이 고된 만큼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저를 알고 있고 제 성장과정을 지켜본 배우 분들이 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신 관객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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