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한줄 관람평
이지윤 | 모금산 씨의 영화로운 순간들
박범수 | 결국 영화란 사람을 모으고 이어주는 것
조휴연 | 따뜻한 합의점이 만들어지다
최대한 | 통기타의 선율과 미스터 모의 일탈이 60년대 청년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새로움.
이가영 | 선하고 유익하고 따뜻하다.
김신 | 인간과 영화, 사물과 고요를 사랑한 이가 20세기의 공동체에 보내는 아련한 고별사
남선우 | 조금만 더 버티자. 우리에겐 이런 영화가 있잖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리뷰: 모금산 씨의 영화로운 순간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모금산 씨의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면도를 하고, 작은 이발소에서 일을 하고, 수영장에 가고, 호프집에서 벽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강냉이를 집어먹으며 TV를 보고, 일기를 쓴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모습으로.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보건소의 의사로부터 위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큰 병원을 가봐야 한다는 말에도 모금산 씨는 덤덤한 표정이다. 그리고 또 다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암이 의심 되는 상황에서도 영화는 극적인 흐름을 타지 않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작품은 감정의 과잉을 피하며 인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러한 거리는 인물들을 보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다. 비극성이 도드라질 법한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때 카메라는 형상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들을 비춘다. 이런 관조적인 카메라의 시선에 적당한 기분을 지닌 음악이 더해진다. 침묵이 주를 이루는 영화에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기타 선율은 작품이 어떤 감정으로도 치우치지 않게끔 돕는다. 카메라의 시선과 음악, 인물들의 침묵, 빛 바랜 흑백 영상은 계획적이고 짜임새 있게 결합하며 감정을 덜어낸다. 이 때문에 사람이 없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무감정으로 애써 무장한 듯한, 그러면서도 적당한 유머를 잃지 않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주인공인 모금산 씨처럼 공허하고 외로워 보인다.
이런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바로 '영화'다. 암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모금산 씨는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한때 영화를 찍었던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을 금산으로 불러 도움을 요청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한 스데반은 “아버지가 무슨 영화”냐며 대놓고 툴툴거린다. 반면 예원은 모금산 씨의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 예원의 질문에 수많은 고전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이 꺼내놓는다. 모금산 씨가 가장 말을 길게 쏟아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에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준비할 때도 모금산 씨는 묘하게 가뿐해 보인다. 가뿐해 보이는 그의 움직임에서 그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해왔는지, 그리고 그 동안 영화가 어떻게 그에게 위안이 되어왔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게 완성된 모금산 씨의 영화가 크리스마스 당일 상영된다. 조촐한 상영회에 그의 지인들이 찾아왔다. 어색하게 떨어져 앉은 관객들을 앞에 두고 어색한 스데반의 인사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무성 영화다. 제법 능글맞은 모금산 씨의 연기와 그의 일상들이 어우러지며 영화는 스크린 안팎의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안긴다. 관객들의 입가에 잔잔하게 번지는 미소는 어쩌면 그가 영화로부터 받았던 소소한 기쁨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작은 기쁨과 위안이 될 수 있기에, 모금산 씨의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 영화(映畵)롭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에서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그의 반복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금산 씨는 상영회에 자리하지 못했다. 차가워 보이는 다인실 병동에서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커다란 창문을 등진 그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허하고 쓸쓸해 보인다. 가만히 앉아있던 모금산 씨는 소품으로 쓰였던 사제 폭탄의 리모컨을 쥐고, 버튼을 무심히 툭 누른다.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 밖에서 불꽃이 터진다. 반짝이는 밤하늘의 불꽃은 그의 얼굴 위로 아름답게 흩어진다. 이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가장 영화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이다. 건조하고 빛이 바랜 일상 속에 영화가 선물한 이런 환상성은 모금산 씨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위안을 안긴다.
모금산 씨는 스스로가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이면서도 타인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위로가 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없이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어준다. 혼자 술을 마시지 말라고 손가락으로 잔을 붙잡아주고, 뜬금없이 로봇 춤을 추기도 하고, “자영 씨, 잘 자영”이라는 썰렁한 농담으로 사람을 웃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기타 선율의 캐롤을 들으며, 어쩌면 모든 영화들이 모금산 씨와 닮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빛 바랜 일상에서 그 자체만으로 소소한 기쁨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처럼 외로운 누군가의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그렇기에 모금산 씨의 삶, 그리고 공허함을 마음 속 한 귀퉁이에 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은 영화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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