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초행>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2월 8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대환 감독
진행 봉준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초행>은 사회초년생, 오래된 연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 어리숙한 '수현'과 '지영'을 질책하지 않고, 선택의 결과를 운운하기 보단 경험을 응원하는 영화적 시선은 곧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진행으로 김대환 감독이 함께 한 인디토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 김대환 감독의 전작 <철원기행>을 보신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과반수가 보셨군요. 오늘은 <철원기행>을 봤다는 전제하에 GV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초행>은 섬세하고 한국적인 디테일이 충만한 영화이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보편적인 영화에요. <철원기행>도 마찬가지고요. 외국인이 봐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해외 영화제 수상 이력이 이런 부분을 입증해주고 있고요. 가장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초행>에 감독 본인의 얘기가 얼마나 투영 됐나요?
김대환 감독(이하 김): 영화와 저의 실제 모습이 닮아 있는 부분은 연애를 7년 동안 했다는 점과 인천이 배우자의 친가라는 점, 실제로 학원 미술 강사 경력이 있다는 사실 정도에요. 그 외에 인물의 성격 이라든지 가족 관계 등 세세한 부분은 모두 창작해낸 것입니다. 실제로 저의 양가 부모님은 화목하고 사이 좋습니다.(웃음)
봉: 시나리오를 처음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철원기행>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 마치 <초행>의 '수현' 같았어요. 결혼을 전제로 고민하는 불안정한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철원기행>과 연관시켜 설명해주시죠.
김: <철원기행> 편집을 하면서 '수현'의 다음 상황이 궁금해졌어요. 실제로 7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었고, 스스로 돌이켜봤을 때 '수현'보다 제가 더 불안한 감정이었어요. 영화를 한 편 찍었지만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혼함으로써 생기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근데 저 뿐만 아니라 제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고민들을 듣는 순간 결혼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결심을 하고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데, 당시 저는 결혼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시나리오에 제시된 큰 줄거리 안에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합이 중요했습니다.
봉: 소재와 줄거리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보였어요. 김대환 감독의 경우 재료를 손질할 연장을 고르기 전까지 재료 자체를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그런 섬세함이 영화에서도 나타나요. 극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구조화되어 있고 상당히 정제되어 있어요. 현장에서 연출 방식은 어땠나요?
김: 개인적으로 영화에 다큐멘터리 느낌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연출적 지향이 있었어요. 스토리 안에서 국면이 전환되는 지점만 정해놓고 그 외에는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테이크를 반복하며 찍어 나갔어요. 처음 가족의 식사 장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머니가 하는 대사들은 제가 아무리 고민해도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있거든요. 정말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대사예요. 이런 장면들은 첫 테이크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식사 장면의 첫 테이크만 45분을 촬영했어요. 여러 번 반복했고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가며 가장 좋았던 것을 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봉: 촬영 도중에 씬 자체가 새로 추가되거나 연기를 통해 즉흥적으로 표현된 것이 있나요?
김: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일출 장면이었는데, 원래 그 장소에서 일출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고 두 컷으로 나누어 찍으려고 했어요. 일출 촬영을 새벽 3시부터 준비했는데, 계속 촬영하던 중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과정이 우연히 한 테이크에 담기게 되었어요. 일출의 과정이 한 번에 담겼다면 그 다음 장면을 굳이 넣지 않아도 되겠구나 판단했어요. 최종적으로는 너무 마음에 드는 장면입니다.
봉: 하루 중 일출과 일몰은 딱 한번의 기회인데, 롱테이크를 앞두고 배우들이 많이 초조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김새벽 배우가 "무서워"라고 외치는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표현된 대사였나요?
김: 처음에 그런 액션과 대사는 전혀 없었어요. 촬영 중간 30분쯤 쉬는 시간을 가지며 얘기를 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딱 한 번뿐인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김새벽 배우가 더욱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의 자유의지가 절실했던 부분이기도 했고 동선 또한 전혀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저도 그 당시에 김새벽 배우의 즉흥적인 액션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해가 점점 뜨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지영이 차에서 나갔고 그런 대사를 내뱉은 것 자체도 굉장히 놀라웠어요.
봉: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사전에 김새벽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신 건가요?
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김새벽 배우와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바로 전달해 드렸습니다. 김새벽 배우는 해외 영화제에서 처음 만나 우연히 대화를 나누었는데, 많은 전작에서 굉장히 착하고 지켜주고 싶은 여성으로 출연하잖아요. 실제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어요. 그렇지만 김새벽 배우에게도 분명히 극단적인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이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캐스팅을 결정했어요. 또 가장 영화적으로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목소리였어요.
봉: 엄마와의 대화 장면에서 보면 암전 상태에서 스위치가 켜지고 '지영'이 한 덩어리처럼 누워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런 액팅 지시를 따로 했나요?
김: 최대한 엄마와 엮이고 싶지 않고 대화를 하기 싫다는 모습으로 자고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길 부탁 드렸어요. 사실 그 앞의 숏이 굉장히 길어요. 편집 할 때 보니 김새벽 배우가 어둠 속에서도 계속 뒤척거리면서 움직이고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초반엔 지금 영화 속의 카메라 워킹을 생각하지 않았고 엄마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워킹으로 장면을 구성했어요. 하지만 '지영'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지금처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테이크를 몇 번 찍었어요. 빛이 변화하는 순간,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좋더라고요.
봉: 조용한 가운데 흐르는 긴장감이 정말 강해요. 수현 역의 조현철 배우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김: 조현철 배우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개인적인 호기심이 들었고 전작들을 봤을 때 캐릭터 설정인지 본인 자체인지 헷갈릴 정도로 굉장히 개성 강한 연기를 하더라고요. 연출도 영민하게 하고 실제로 만났을 때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봉: 실제 모습도 '수현'과 비슷한가요?
김: '수현'과 평소 말투는 비슷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수현'보다 훨씬 말수가 적어요. 연기 디렉팅을 할 때도 제가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 정도로 조용한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봉: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컨셉 내지는 연기 디렉팅 같은 경우는 배우들과 어떻게 맞춰 나간 건가요?
김: 촬영 전에 대화의 시간을 굉장히 많이 가졌어요. ‘수현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로 대안을 모색해 나가기도 했어요. 결론적으로는 영화 속 '수현'이 시나리오 상의 '수현'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고 귀여워졌어요. 그런 부분은 제가 생각해낸 것 보단 조현철 배우가 능동적으로 표현한 부분이었죠.
봉: 임신테스트기에 대해 방 안에서 두 모녀가 얘기하는 장면이 참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순간을 두고 어떤 의논을 했나요?
김: 그 어떤 장면보다 얘기를 많이 나눈 순간이었고, 실제 테이크도 가장 많이 갔어요. 사실 두 모녀의 대화 내용과 '수현'과 '지영'이 어떻게 집을 박차고 나갈 것인지 모두 정해져 있었어요. 하지만 임신테스트기에 대한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꺼낼 것인가가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잘못하면 상투적인 분위기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었거든요.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문득 조경순 배우님(지영 어머니 역)께서 '팔순 잔치에 수현이 데려 오지마'라는 대사를 하셨어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였지만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제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걸 상상하니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이 씬의 목표 지점이 명확해졌어요. 한편으론 기분이 좋더라고요.
봉: 우리의 대배우 기주봉 선배님도 나오는데, 그네에서는 어떻게 넘어진 거예요? 이걸 슬랩스틱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혹시 지시한 건가요?(일동 웃음)
김: 이 장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조경숙 배우님이 그네 씬을 촬영할 때 꼭 보러 오겠다고 하셨거든요. '지영'과 엄마의 대화 장면을 7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기주봉 배우님도 그렇게 힘겹게 촬영하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신도 언젠가 한번 당하는 꼴을 보겠다’라고요.(웃음) 실제로 촬영 현장에 찾아오셨어요. 아무튼 원래 제 계획은 그네를 타다 장인의 신발이 벗겨지고 그 신발을 다시 신겨주려는 어색한 사위의 모습이었어요. 엉거주춤하는 '수현'의 모습을 설정하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기주봉 배우님께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신발이 벗겨지게 할까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실수로 넘어진 거죠. 모든 스태프들이 놀라서 뛰쳐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저와 피디가 막아 섰고, '수현'이 자연스레 대처하면서 결국엔 모든 촬영 통틀어서 가장 빨리 끝난 장면이 되었습니다.(일동 웃음)
봉: 그런 상황은 반복하면 진짜 즐거움이 안 나오잖아요. 보면서도 저거 왠지 실제 상황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극영화 속에 숨겨진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이죠. 상대 배우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 조현철 배우가 굉장히 영민하다고 느낀 적은 그 전부터 굉장히 많았지만, 한번 더 놀란 순간이었어요. 실제 상황에서도 프레임 밖을 안 벗어나고 집중해서 연기를 이어 나가길래 나중에 슬쩍 물어 봤거든요. 본인은 비상 상황을 항상 생각하고 준비한다고 답하더라고요. 사실 그네 장면 외에도 그런 순간이 한 번 더 있었어요. 차를 타고 삼척으로 넘어가면서 '수현'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데, 딱 그 타이밍에 시커먼 까마귀 떼들이 날라 가잖아요. 그 장면도 우연이었어요. 삼척과 인천을 오가는 장면은 실제로 그 거리를 운전해 가면서 촬영했기에 촬영 분량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까마귀 떼를 목격하는 순간은 앞 뒤 컷에 상관없이 이 부분은 꼭 써야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봉: <철원기행>의 카메라가 고정적이고 프레임도 안정적인 반면 <초행>은 대부분의 장면이 핸드헬드로 촬영됐어요. 그래서 아까 <초행>의 8분짜리 일출 장면이 이질적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씬 외에는 모두 핸드헬드인거죠? 왜 핸드헬드 기법을 선호했는지 궁금해요.
김: 사실 8분의 일출 장면도 핸드헬드였어요. 다만 잘 버티고 있어서 흔들림이 적었던 거죠.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촬영감독님과 계속해서 영화 컨셉에 대해 의논했어요. 제 의견은 스토리보드를 전혀 짜지 말고 촬영에 들어가자는 것이었고, 배우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동선을 그리는지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았으니 열심히 콘티를 짜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때문에 트라이포드를 아예 안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핸드헬드를 통해서 두 사람의 불안감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봉: <철원기행>을 보면 고정된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어떤 조형미를 강조하려고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묘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주거든요.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눈 올 때 담배를 피우는 시퀀스의 미장센을 보면 가히 백미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감독님께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배우에게 맡긴다, 뭐 이런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환 감독 본인이 가진 조형적인 욕구나 연출적 지향이 있잖아요. 그런 욕구들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 어떻게 억누르는지, 혹은 욕심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 개인적으로 담고 싶었던 미학은 ‘빛’이었어요. 어떤 서사를 완성하고 연출하든 간에 일몰과 일출의 장면을 꼭 넣고 싶었고요. 처음 시나리오를 기획했을 당시에도 그 지점과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순간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봉: 감독님께서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잘 드러나요. 철원과 삼척은 감독님께 어떤 장소인가요?
김: 철원은 어머니께서 잠깐 근무하셨던 곳인데, 제대하고 나서 가족끼리 하루 동안 한겨울에 관사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영화를 하며 자연스레 떠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삼척은 외가입니다.
봉: 강원도만큼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없을 것 같아요. 다음 작품들도 계속 강원도에서 촬영할 건가요?
김: 다음 작품을 1월달에 춘천의 산속에서 촬영할 계획이 있고요. 내후년 봄에는 또 춘천을 배경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관객: 주인공이 각자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과정이 험난하잖아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험난함도 느낄 수 있어서 그 과정들이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힘든 과정을 상징적 의도로 설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은 김새벽 배우가 극중에서 "같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 질문하는 부분이 있는데, 답을 듣지 못한 채 영화가 지나 가잖아요. 질문에 대한 감독님의 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시나리오 상에서도 그렇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두 인물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이 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비록 삼박 사일 동안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결혼을 마음먹고 현실에 부딪히게 됐을 때 또 하나의 산을 만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결혼한지 50일밖에 안 됐고 깨가 쏟아지는 중이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확히 할 수는 없어요.(웃음) 다만 제 경험을 토대로 답변 드리자면 저는 한번도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계속해서 도망치고 회피한다는 걸 느꼈고, 결혼에 대해서는 스스로 직면하고 싶었던 감정도 있었거든요. 고민 끝에 <초행>을 시작했고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보니까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봉: 삶과 영화를 일치시켜서 큰 무언가를 극복 해냈군요. 정말 멋지네요.
관객: 제 또래 청년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테이크를 많이 나누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앞서 답변하셨듯이 다큐멘터리 느낌을 내기 위해 그런 방식을 택한 건지, 혹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 이 영화를 시작할 때 배우 분들에게 ‘즉흥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이고 매 순간 드는 궁금증은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어쨌든 컷을 나누면 배우들은 반복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해서 그런 연출을 택했는데, 컷을 나누고 반복연기를 시킨다는 것을 제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좋은 카메라 위치 또한 사전에 정해놓지 않아도 촬영을 진행하며 찾아낼 수 있으니까 한 테이크로 가자고 정했습니다.
봉: 그렇게 작업했을 때 편집 과정에서 따라오는 어려움도 있잖아요. 편집에 있어 여러 가지 제약들이 생길 수 있는데, 편집 과정은 어땠나요?
김: 빼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어요. 좀 더 결단력 있고 과감해야 하는데, 이건 좋고 저건 아깝다는 제 사적인 감정들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일 먼저 선보여야 했는데, 출품 일주일 전까지도 편집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관객: 탕수육과 짬뽕을 먹는 씬의 마지막 부분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려요. 그 장면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김: 그 장면은 제가 꿈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씬입니다. 부동산 문제로 많은 분들이 2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니잖아요. 서울 인근에 방을 잡아도 시간이 지나면 방값이 올라가고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죠. 그 상황이 수현과 지영에게는 미래가 될 수도 있고 현재 혹은 과거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쨌거나 익숙해 지기도 전에 떠나야 한다는 패턴이 반복되고, 이에 대한 서운함의 감정이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두 사람 중 누구의 꿈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꿈에 투영되는 상황을 아기 울음소리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관객: 후반부 광화문 시퀀스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카메라가 있으면 쳐다보기 마련인데 렌즈를 응시하는 분은 많지 않아 보였어요. 어떻게 눈에 안 띄게 촬영했는지 궁금해요.
김: 저와 촬영감독, 사운드감독만 촬영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광장 주변에 카메라가 굉장히 많았잖아요. 영화 촬영에 쓰이는 덩치가 큰 카메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그 누구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더라고요. 방송국에서 흔히 쓰는 카메라이기도 했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극중 수현과 지영은 시종일관 길을 잃고 헤맨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다급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서로의 존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방황할 땐 다른 한 사람이 방향을 일러주고 마음을 잡아주기도 하며 삶이란 초행길을 걸어간다. 사회초년생 예비 부부, 사회가 이름 붙인 그들의 신분은 마냥 불안정해 보이지만, <초행> 속 수현과 지영은 둘이어서 온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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