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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안녕 히어로>: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by indiespace_은 2017. 9. 18.




 <안녕 히어로한줄 관람평


이지윤 |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박범수 | 지친 아버지를 말없이 보듬는 가족이라는 이름

조휴연 | 7년이 지나고 나서 아이는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게 됐다. 아이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최대한 | 너무나도 이르게 '현우'를 어른으로 만든 세상이 밉다

김신 | 투쟁의 현장 이면에서 발견한 사려깊은 시선

남선우 | 소년, 세상의 '어른'(들)을 만나다






 <안녕 히어로> 리뷰: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학교에서 채워오라고 한 생활기록부 조사용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아빠의 직업을 적는 칸 앞에서 고민한다. 사회운동가, 해고자, 노동운동가. 몇 가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딱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한다. 아빠는 결국 스스로의 직업을 ‘노동운동가’라 적는다. 장래희망에 대해 적는 칸 앞에서도 고민한다. 지도자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아빠는 지도자라는 단어가 너무 포괄적이라 말한다. 고민 끝에 현우는 조사용지에 ‘CEO’라는 단어를 연필로 꾹꾹 눌러 적는다.





<안녕 히어로>는 2009년 진행되었던 정리해고에 맞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노동운동을 이어온 김정운 씨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다. 작품은 김정운 씨가 아닌 아들 현우의 시선으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노동과 해고, 투쟁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릴 적부터 목격한 복직 투쟁의 현장. 아버지의 징계구속으로 인해 주눅이 들어있었던 사춘기. “아빠가 해낼 줄 알았어”라 말하며 아빠를 이해하게 된 순간까지. 주변부에 서있는 노동자 가족의 시선으로 긴 시간의 흐름이 차곡차곡 정리된 작품은 노동 투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특히 그 시선이 아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드러나는 성장의 흔적은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려 깊은 카메라의 시선이다. 현우는 아빠의 상황을 지켜보는 자신의 이해와 감정을 담담하게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때로 현우는 길게 침묵하기도 하고 어딘가를 조용히 응시하며 눈을 깜빡이기도 한다. 카메라는 현우의 그런 침묵을 방해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현우를 고요히 바라보는 카메라는 현우가 지닌 공기와 표정 속에 담긴 정서를 작품 속으로 흡수시킨다.





그런 카메라의 시선은 아빠 김정운 씨와 현우의 관계와도 닮아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밝히기 위한 5년간의 법정 싸움에서 패소한 날, 현우와 동생은 TV를 통해 재판이 끝난 현장을 지켜본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아빠는 쓰라린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족발과 카스테라를 들고 온다. 현우와 동생은 아빠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대신 ‘아빠 TV 나온 거 봤어’라 말하며 히히 웃는다. 아빠도 아이들의 장난에 웃음기 띤 몇 마디의 말을 건넨다. 엄마와 함께 아빠의 연설을 들으러 갔을 때도 그렇다. 현우는 아빠에게 다가가는 대신 휴대폰으로 연설 중인 아빠의 모습을 오래도록 찍고 미소를 띤 얼굴로 아빠를 바라본다. 연설이 끝난 후 현우는 아빠에게 다가가 ‘아빠 마이크 드니까 목소리가 왜 그렇게 바뀌었어?’라며 장난을 친다. 또 다시 장난스러운 몇 마디가 오간다. 이처럼 현우와 아빠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로의 언어를 건네기 보단 시선으로 위로를 하고 분위기로 대화를 나눈다. 마치 그런 그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말이다.



현우는 아빠의 세상을 이해한다. 눈에 띄는 당장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긴 시간동안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말한다. 그런 아빠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현우에게 찾아든 것은 바로 세상이 가진 경사에 대한 자각이었다. 현우는 세상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너무도 일찍 깨달아버렸다. 조사용지에 적힌 ‘CEO’라는 글씨와 높은 사람에게 붙어있는 처세가 필요한 세상임을 알았다는 목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먹먹함이 들게끔 만든다.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투쟁이 현재진행형의 것임을 드러내며 마무리된다. 아직 130명의 복직 대기자들이 남아있다. 끝나지 않은 투쟁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동시에 <안녕 히어로>가 드러내는 것은 현장에서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다. 작품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보단 분위기로 감정을 주고받는 것,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이 연대와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녕 히어로>가 보여주는 이런 자세는 어쩌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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