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거리를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월 3일(일) 오후 1시 20분 상영 후
참석 김영조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김영조 감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이다. 작품이 영도다리를 둘러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황과 그 상황에 연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담아낸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언뜻 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봤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결단의 숭고함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물들의 정념과 삶을 섣부르게 사건화하지 않으려 하는 어떤 완고함, 그리고 피사체와의 적정거리를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 그 태도로부터 산출된 뼈저린 침묵의 순간이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김영조 감독이 함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인디토크에서 또한 가장 많이 이야기된 소재는 촬영에서의 개입에 대한 화두였다. 사건이나 인물과의 거리조절에 종종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표하는 작품들이 맹렬하게 영화관의 얼굴을 장식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이 기록에서 새겨들을 전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지만 극중에서 드라마틱한 요소와 코믹한 요소가 많이 보이는 영화다. 오늘 상영에서도 관객 분들 모두 굉장히 즐겁게 감상하신 것 같다.
김영조 감독(이하 김): 상영을 할 때마다 보면 관객 분들께서 의외로 다들 재미있게 관람하시더라. 작업의 노고가 보상되는 것 같아 감사를 느낀다.
안: 영도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전작은 태백에서 촬영한 걸로 알고 있다. 태백이나 영도 같은 지역들은 이전부터 특수 노동자들, 중공업 종사자들이 많이 살았고 산업적 중흥기를 겪은 이후 관광지화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감독님은 태백과 영도의 어떤 면에 이끌렸는지?
김: 영도는 6.25가 발발한 이후 피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역사적인 내력이 깊은 장소이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영도에는 모종의 전설이 있는데 영도에서 살다가 떠난 후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삼신할머니께 예를 드려야 한다는 지역적인 전설이 그것이다. 실제로 극중에서 용접공이자 색소폰을 부는 인물로 출현하는 분도 영도를 떠난 뒤에 망해서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 술자리에서 이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된 이후 친분을 쌓고 이야기가 오가다 영도라는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다 촬영을 하게 된 것 같다. 태백에서 촬영한 전작 <태백, 잉걸의 땅>(2008)도 유사한 계기로 시작했다. 당시 태백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던 지인 감독 분을 응원하기 위해 탄광을 방문했다가 장소의 이질성에 묘한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광부들의 삶이 인상 깊었고 그 계기로 촬영을 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두 장소 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작업을 하게 된 공간이다.
안: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두드러진다. 씨네21 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영도의 삶을 체화했다 생각되는 인물들이다. 주인공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 3년 동안 영도에서 작업했다. 우선 영도라는 공간을 알게 된 계기는 앞서 말한 극중의 권민기 형 덕분이다. 해녀 할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반갑게 대해줬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영도에 들어서는 첫 관문인 영도다리 골목에서 점을 치는 분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점도 보고, 그렇게 알게 된 할머니 분들을 찍었다. 강아지와 사는 할머니는 우연히 만나 따라가서 촬영을 시작했다. 다들 우연히 만난 인연이지만 점점 친해지게 되면서 카메라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안: 작품을 보면서 카메라가 자신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카메라가 감독님인 것처럼 인물들이 대화를 하거나 시선을 교환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다. 카메라가 인물에게 다가갈 때 특별히 조심하고자 했던 순간이 있는지, 혹은 특별히 인물들과 더 편해진 순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 ‘소문난대구점집’의 배남식 할머니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모종의 어색함 때문에 점을 보지 않고는 촬영을 시작하지 않았다. 항상 점을 몇 번씩 보고 난 이후에야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밝히자면 그 장면들은 전부 다 편집과정에서 제외되었다. 친해진 이후에 찍은 장면들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마음에 들었다. 다른 분들의 경우도 서로가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만들어진 장면들이 결국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다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카메라와 시선과 말을 교환하게 되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분들에게 섣불리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점에 대해 죄송함이 항상 있었다. 그런데 시사회에 주인공 분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보여드렸을 때 즐겁게 감상하시는 걸 보고 실례를 범한 것이 조금은 갚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관객: 영화 안에서 감독님이 개입을 하고 싶었거나 의도적으로 개입한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주인공 분들이 영화를 본 이후 어떤 반응을 보였지도 궁금하다.
김: 개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침묵을 하려고 하더라도 시선이나 대화가 교환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위치가 극중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강아지 할머니와 점점 친해질수록 할머니가 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더라. 밥도 잘 못 먹고 카메라만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나 보다.(웃음) 만날 때마다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기에 같이 밥을 많이 먹었다. 내가 다 샀다.(웃음) 그러다가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할머니가 문득 불고기를 먹자고 말을 한 장면이 있다. 카메라가 너무 편해진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순간이었고 나는 웃으면서 화답을 했다. 자연스러운 교감의 과정이 편집과정에서 빼기 어려울 정도로 드러나서 오히려 개입에 대한 부담감이 덜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또 용접공으로 나오는 권민기 씨와의 여담이 있다. 2012년에 처음 만났고 자주 만났으니 이 분을 촬영한 클립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이 분이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는지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뜬금없이 폼을 잡았다.(웃음) 아쉽게도 많이 들어냈다. 나중에는 이렇게 자신감 있는 그 분의 모습이 성격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치채셨겠지만 몇몇 장면들이 영화에 삽입되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도 모종의 개입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좋은 장면이라 느껴졌지만 그걸 찍고만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 카메라를 끄고 할머니들을 도와드린 때도 있다. 나중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할머니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안: 수중장면에서도 시선 처리가 잘 되었다고 느꼈다. 수중촬영의 경우 육지와는 다른 번거로움이 있을 텐데 이런 장면들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일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 수중촬영은 비용이 많이 들기에 직접 자격증을 따서 촬영을 했다. 욕심을 내서 꽤 많은 장면들을 찍었다. 해녀 할머니의 폐활량을 따라가지를 못하니 한 번은 수중에서 쇼크로 둥둥 떠내려가게 된 위험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스태프들이 멀찌감치서 그냥 보기만 하는 거다. 나중에 화를 냈더니 도리어 당황하면서 “감독님이 너무 편안하게 있길래 그냥 멀어져 가면서 롱숏을 찍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웃음)
관객: 고향이 부산이다. 극중의 배남식 할머니로부터 몇 번 점 봤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들이 영화 촬영 이후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또 영화 속 이야기가 영화로만 끝날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관련된 의견도 궁금하다.
김: 김순덕 할머니는 앞이 안 보여서 거동이 힘들기 때문에 배남식 할머니와 함께 영도 안으로 들어갔다. 김순덕 할머니는 이제 점을 보지 않는데 배남식 할머니는 가끔 보기도 한다. 강아지 할머니는 삼척으로 옮겨가서 아드님과 함께 살고 있고 얼마 전에 한번 만났다. 요즘엔 돈 벌고 살고 있냐고 나한테 물어보더라.(웃음) 권민기 씨는 요즘 영도의 어떤 지역으로 옮겨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관객 분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시에 항의를 했다. 결국은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상황이 안 좋게 끝났다. 사실 GV때 시의 관련자들을 초청했는데 오지 않더라. 이야기가 확장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가 바깥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웠다.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더 많은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관객: 길게 찍거나 롱숏으로 촬영된 장면들이 많다고 느꼈다. 이러한 작업에 관한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 원래 풍경을 좋아하고 느린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출된 방식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다양한 양식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형식들이 분기하고 있는 것처럼, 나의 개인적인 선호도나 성격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앞서 말했듯이 개입에 대해서 항상 신중하려고 한다. 섣불리 개입하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서 사건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걸 관조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측면이 자연스럽게 롱숏으로 체화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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