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동자들, 그 투쟁의 기록 FoFF 2017 <가현이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28일(화) 오후 5시 10분 상영 후
참석 윤가현 감독 |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이가현(불꽃페미액션)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청년’하면 떠오르는 암울한 분위기들. ‘노동조합’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들. 이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어떤 다큐멘터리가 등장하는 걸까. <가현이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의 청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기존의 노동영화와는 달리 무겁지만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청년의 삶에 있어 우울한 단면뿐만 아니라 정력적이고 유쾌한 모습 또한 조화롭게 보여주었다. <가현이들>의 히로인, 세 명의 ‘가현이들’과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했다.
진행(석자은 관객 모더레이터): 안녕하세요. 인사 말씀과 근황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현입니다.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맥도날드에서 일을 했던 이가현이고요, 지금은 알바노조의 위원장으로 있습니다.
윤가현 감독: 시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만든 윤가현 입니다.
진행: 저는 노동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이에요. 기존의 노동영화는 항상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이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보기 편하면서도 주제에 대해 심도 있고 조화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되었나요?
윤가현 감독: 저도 노동영화를 많이 보았는데요, 다큐멘터리 노동영화를 보면 힘들더라고요. 슬프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고요. 이 영화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 노동영화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를 무겁지만은 않게 가져가야 했어요. 미디어에서 비추는 청년의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힘든 사람이 아니고, 그런 단면들만 보여주는 것이 청년들을 설명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불쌍한, 애처로운 대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찍은 이유도 있습니다.
진행: 알바노조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노동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불쌍한 존재로만 소비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행동을 통해 조금씩 상황을 변화시켜나가면서 ‘우리가 이런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느끼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어요. 또 앞으로 얼마간 이것이 알바노조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 여성이 찍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가 더 좋았어요. 그래서 이와 관련해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같은 세대의 남성 알바노동자보다 여성 알바노동자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요. 복장과 화장 문제, 성범죄 노출 등의 문제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작년에 알바노조에서 제기했던 여성 노동자 이슈 중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관 알바노동자들의 꾸미기 노동과 쥬씨의 외모차별공고입니다. 영화관 같은 경우 업무와 관련 없는 타이트한 치마와 구두를 착용해야하고 시선을 끌기 위해 빨간 립스틱을 발라야 해요. 남성보다도 특히 여성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여성들이 업무와 관련 없이, 사업장의 도움이 되어야하는 성적인 객체로 다루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꾸미기 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꾸미기 노동 시간에 대한 임금을 요구해야 할지, 아니면 꾸미기 노동을 아예 반대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에요. 사회적 시선과 억압 때문에 꾸미는 분들도 있지만, 개인의 만족과 예술성의 표현으로 자발적으로 꾸미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 ‘자발적’이라는 경계가 굉장히 모호한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진행: 저도 얼마 전에 알바를 구하려고 찾아봤는데, 성별 표시, 사진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의 성별이 해야 하는 일에 영향이 있느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은 답변을 하지 않거나 편의상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답을 하더라고요.
관객: 과거에 제대로 알바 임금을 받지 못한 적이 있고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을 받기도 했어요. 혹시 알바노조 위원장님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저의 예를 들어볼게요. 저도 만약 혼자였다면 맥도날드에서 해고당했을 때 기분은 나빴겠지만 그냥 바로 다른 일을 구했을 것 같아요. 알바노동자들이 주휴수당 같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의 용기 문제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맥도날드에서 해고됐을 때 알바노조의 어느 분이 ‘이곳부터 바뀌어야 네가 다른 알바를 구할 때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느냐’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제 주변부터 조금씩 바꿔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가현 감독: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구두로 약속한 시급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알바노조에서 상근할 때 돈을 받지 못 했다는 상담전화가 정말 많이 왔어요. 그런 경우 알바노조에서 함께 임금을 받는 것을 돕거든요. 이렇게 떼인 임금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금을 자꾸 떼이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일이 반복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부정적인 것들이 누적되거든요.
관객: 알바노동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이전의 노동영화들을 보면 직업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알바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 공간에 꼭 남아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사장과 싸울 상황이 되면 차라리 다른 알바로 옮기는 것이 편한 거죠. 안타깝게도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바를 하는 시대가 왔어요. 안정성을 알바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정규직 또한 알바의 범주로 포함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해고되면 누구나 알바노동자가 될 수 있고요.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알바노동자들이고, 나도 알바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점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이야기가 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노조가 인권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잘 통하지 않으니까, 현재는 ‘법을 지켜라’ 쪽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언론에서도 임금 자체의 변화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법을 지켜야한다는 쪽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저희의 언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핀잔을 조금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가령, 알바천국에서 ‘주휴수당 주는 착한 사장님’이라는 광고를 했어요. 주휴수당은 당연한 거거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를 하고 계속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관객: 여성 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주변에서도 여성 감독이 두 번째 영화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서 빨리 하라고 해요. 사실 저는 이번 작품이 제 유작이 될 줄 알았어요.(웃음) 너무 힘들어서요. 하나하나 모두 힘들더라고요.(웃음) 제작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받은 금액의 세 배정도를 직접 투자했어요. 그런데 관객 분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지금껏 제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쯤 더 해볼까 마음먹게 되었고 이왕 하는 거라면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작업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갑니다. 하나는 여성의 꾸미기 노동이에요. 알바를 알바노동자라고 하지 않죠. 그래서 꾸미기를 꾸미기 노동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부터 출발합니다. 또 하나는 고졸 분들 같이 미디어나 정책에서 이야기하는 청년에 포함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요즘 영화계 내 성폭력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저도 다큐멘터리 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포럼을 준비하고 있어요.
관객: 영화에서 등장하는 ‘꺾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최저 임금 만원을 요구하는 것보다 임금인상률을 높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지 않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맥도날드에서 나왔던 꺾기는, 예를 들어,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을 때 예상과 다르게 손님이 적을 경우 일찍 퇴근을 시키는 것이에요. 법적으로는 휴업수당을 줘야하는데 주지 않고 있어요. 알바노동자는 더 일을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없는 것이죠. 이 밖에도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만 고용하는 퇴직금 꺾기, 20분만 일을 시켜서 임금을 받지 못하게 하는 롯데시네마의 임금 꺾기 등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최저 임금 만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그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 문제에서 계속 화두가 되는 것이 자영업자인데, 사실상 알바 고용하는 자영업자는 많지 않고요, 대부분 가족끼리 운영을 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죠. 제 생각에는 이 경우 인건비 말고 본사가 가져가는 과다한 수수료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수입의 35-45%를 수수료로 먼저 주고 임대료를 내고 알바비를 지불하는 거죠. 건물주가 과다하게 책정하는 임대료도 문제가 되고요. 이런 부분들이 실질적 문제인데 자꾸 힘없는 알바노동자의 임금으로 화제를 돌리고 있어요.
관객: 알바노조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연대'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알바노조가 만들어졌어요. 저희가 노조를 만든 이유는, 노조가 노조법 상으로 연대가 가지지 못하는 권리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예요. 예를 들어 노조는 단체 교섭도 가능하거든요. 알바노조는 세대별 노동조합이 아니에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었던 분들이 해고당하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알바를 하고 있죠. 앞으로 여태까지 이슈화 된 것들을 계속 추진해가면서 작은 승리들을 얻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관객: ‘가현이들’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윤가현 감독: 기획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알바노동자들에 대해 찍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가현이’들과 찍어야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가현이들이 유달리 노동조합에서 주도적으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 ‘가현이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권리에 대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가현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우리는 땅을 밟고 서있어도 되는 것인지'라는 독백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노동영화를 만드는 다른 감독님은 공감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은 한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며 농성을 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알바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이 하나가 아닌 여러 곳일 수밖에 없는 거죠. 해고를 당하는 게 그만큼 쉬우니까요. 그래서 ‘나는 해고를 엄청 많이 당했는데 이 땅에 서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었던 거예요. 노동의 무게라고 해야 할까요? 보통 알바를 되게 가볍게 생각하잖아요. 해고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도 가벼울 수 없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진행: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앞으로도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 거예요.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저도 많은 분들과 현장을 다니면서 노력할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쥬씨의 외모차별공고처럼 법으로 이미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그 문제는 알바노조의 피케팅으로 쥬씨 본사에서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마무리됐거든요. 뭉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윤가현 감독: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알바노동자들을 계속 찍으려고 합니다. 오늘 영화 보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해야한다. 별 것 아닌 일에 흥분하고 들고 일어나야한다. 사실 그런 일들은 전혀 사소하지 않고 별 것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핀잔을 주고 모두를 귀찮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로 이끌기 때문에. 당연한 것을 얻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 속 힘없는 개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단합하고 합심하여 저마다 ‘가현이들’로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힘써야 한다. ‘알바생’, ‘알바노동자’ 힘없고, 사소해 보이는 몇 글자가 가져온 위대한 한 걸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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