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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가영 <비치온더비치>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12. 20.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가영  <비치온더비치>  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2월 12일(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정가영 감독

진행: 정태희 로카픽처스 배급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에 상영되며 전석 매진을 기록한 <비치온더비치>가 영화제에 이어 바로 개봉했다. 주인공 ‘가영’(정가영 분)은 전 남자친구인 ‘정훈’(김최용준 분)의 집에 무작정 들이닥친다. 반가워하지 않는 정훈에게 한번만 자자고 요구하는 가영을 정훈은 거절하지만, 점점 흔들리게 된다. 도발적이고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고 연출, 연기까지 맡은 정가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정태희 로카픽처스 배급팀(이하 진행): 전 여친이 전 남친에게 찾아가서 자자고 조르는 이야기이다. 이 내용을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정가영 감독(이하 정): 단편영화에서 남자와 여자 얘기를 많이 찍었다. 비슷한 남녀가 나오는 장편을 꼭 찍어보고 싶었다. 원래 영화 찍는 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독립적으로 단편을 찍어왔다. 그래서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1회차의 느낌으로 영화를 많이 찍었다. 영화제에서 많이 소개되진 못했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신 관객 분들 덕분에 용기 내서 장편으로 찍게 되었다.


진행: 유튜브에서 ‘가영정’으로 검색하면 전작 단편 <혀의 미래>, <내가 어때섷ㅎㅎ> 등을 볼 수 있다. <비치온더비치> 제목이 인상 깊다. 어떻게 지었는지?


정: ‘섹스온더비치’라는 칵테일에 꽂혀서 짓게 되었다. 해변은 나오지 않지만, 해변의 분위기가 나는 영화라고 자부한다.


진행: 촬영 규모나 스태프들의 구성을 보면 현장이 소규모이고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진행됐을 것 같다. 4회차동안 촬영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정: 4일동안 너무 평탄해서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할 법한 게 없다. 그냥 즐겁게 촬영했다. 굳이 찾자면, 촬영지가 집이랑 되게 먼 곳이라 근처 찜질방에서 4일간 묵었는데, 그때 한창 ‘응답하라 1988’에 빠져있었다. 내일 촬영이 걱정되면 맥주와 함께 ‘응팔’을 행복하게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관객: 서독제에서 보고 재미있어서 또 한 번 보러 왔다. 보니까 “후회하는 게 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것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


정: 자전적인 대사다. 그때는 그냥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결국 이렇게 돼버렸구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예쁜 나이에 왜 불행한 생활을 했을까 싶었다.


진행: 그때는 영화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닌지?


정: 고등학생 때까지 그냥 좋은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를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꿈은 아니었다.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을 즐겨봤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관객: 영화 중에 롱테이크가 엄청 많았다. 그렇게 찍은 이유와 대사는 어떻게 만든 건지 궁금하다.


정: 촬영 현장에서 정말 여유가 없었다. 대사만 틀리지 않으면 무조건 롱테이크라고 생각했다. 즉흥 연기에 대한 자신이 없어 김최용준 배우와 함께 대사를 전부 외웠다. 사실 상황이 모두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리액션 하기로 합의를 했다면 잘 받아 칠 수도 있었겠지만, 대사 한 두 줄이 본인도 모르게 빠졌을 것이다. 대사가 생략되는 부분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스타일이다.


관객: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처음이라 너무 재미있게 봤다. 주인공 두 명의 ‘케미’가 무척 좋아 보였다. 연출과 동시에 주인공 역할도 맡았는데, 상대 배우를 캐스팅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는지?


정: 짧은 기간, 많은 대사, 게다가 페이를 많이 드릴 수도 없었는데, 김최용준 배우가 애정으로 잘 봐주었다. 이전에 내가 제작한 단편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작품들을 좋아했다. 유튜브에 없는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전 남자친구들을 찾아가 우리 연애가 어땠는지 묻는 내용이다. 아마 연기하는 데 충분히 참고할만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관객: 각본과 연출, 연기를 직접 했으니 영화의 모든 부분에 감독님의 욕망과 의도가 투영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여주인공은 때로 감독 본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일하게 남주인공만 조금 다른 개체로 느껴진다. 남주인공을 감독님이 원하는 상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남성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정: 아마 분명히 연애했던 남성들이 투영되어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상형은 전혀 아니다. 뺀질 대면서 유약한 스타일을 싫어하지만, 분명히 귀여운 구석은 있다.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남성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많이 보여주진 못한 것 같다.


관객: 영화 속에 다른 감독들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홍상수 감독도 많이 언급이 됐다. 이 이야기는 홍상수 작품의 여성 버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홍상수 감독이 되고 싶은 건지? 


정: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하고 평소 사람들에게 얘기를 많이 한다. 영화 속에서 그 얘기와 함께 나온 여러 시나리오들도 실제로 내가 생각한 스토리들이다. 사실 내가 찍는 이야기는 주로 남녀의 이야기로 한정돼 있다. 충분히 재미있을 아이디어들이 아까워서 이렇게 영화 속에서 풀고 있다.


관객: 감독님이 특히 애정 하는 장면이 있을까?


정: 베란다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좋았다. 처음 침대의 키스신은 관객들이 배신감, 당황스러움, 그러면서도 짜릿함을 느끼도록 의도했다. 두 번째 베란다 키스신은 처음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촬영하다가 상의하며 만들었다. 


진행: 베란다신은 유일하게 대사가 들리지 않고 배경음으로만 처리가 되어있다. 어떤 상황을 생각하고 찍었는지?


정: 남성분들이 관계 후에 주로 담배를 피운다고 들었다. “좋았어?”는 아니겠지만,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얘기를 했을 것 같다.



관객: 섹스를 대신한 장면들을 제일 인상 깊게 봤다. 아파트 오르막길, 골목길의 돌아가는 곳, 놀이터의 미끄럼틀이 나오고 그 다음 빈 벤치가 나와서 이게 성관계를 대체하는 장면들이라고 파악했다. 섹스신을 찍지 않고 집 밖의 이미지를 나열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화분 인서트는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정: 컷과 컷 사이에 들어가는 인서트는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여러 인서트들을 사용하면 너무 기능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화분 인서트 하나로 통일감을 유도해 보았다. 사실 성관계를 대체하는 장면으로 명동에서 붐비는 사람들을 찍으려 했었다. 이 둘 사이에 굉장히 큰 일이 있어도 세상 밖은 평온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사정상 같은 의도를 가진 집 밖의 풍경들을 사용하게 됐다.


진행: 막바지에 여동생이 잠깐 나온다. 두 주인공 사이에서 비중이 커 보이진 않았는데, 굳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 영화에 신선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하윤 배우가 그 인물 자체로 특이한 느낌이 있어 잘 맞았던 것 같다. 원래 배우가 아니고 같이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다. 영화를 되게 좋아하고 많이 본다. 그런 지점들이 감동적이어서 꼭 같이 해보고 싶었다.


관객: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인지? <비치온더비치>를 페미니즘 영화로 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정: 사실 맨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재미있는 이야기 외엔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페미니즘을 포함해 어떤 것이든 각자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진행: 감독님의 주변에 가영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떤 평을 내리고 싶나?


정: 자기 말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행동들에 대해 염려 할 것 같다. 술친구 정도로 적절하지 않을까?


진행: 감독님이 추구하는 작품관이 있다면?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 궁금하다.


정: <비치온더비치>와 같은 인간에 대한 작품을 찍을 것 같다. 인간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외롭거나 자기 말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쓸 것 같다.


진행: 우리의 뒤통수를 더 세게 치는 작품으로 찾아올 것 같다.



영화 내내 확실하게 욕망을 표출하는 가영을 보다가 관객 앞에서 수줍어하는 정가영 감독을 보니 생경하기도 했다. 아마 영화 속 가영의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계산과 의도보다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영화를 구성해 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욕망하는 여성, 페미니즘, 관계의 케미 모두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고 관객에게 각자의 크기대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정가영 감독의 다음 번 가영은 얼마나 더 도발적일지, 얼마나 성장할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매력과 사유를 전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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