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 소소대담] 삶과 삶 사이로 마주한 시선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 10월이 되었다.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7기는 두 번째 소소대담 시간이 오기 전까지 4편의 다큐멘터리와 1편의 감성 드라마 영화를 만났다. 영등포 안동네 사람들의 삶을 다룬 <왕초와 용가리>(감독 이창준), 손녀가 할머니의 삶을 그린 <할머니의 먼 집>(감독 이소현), 해녀들의 삶이 담긴 <물숨>(감독 고희영)은 각각의 삶들이 계절에 따라 순차적으로 잘 담겨 있었다. 더 나아가 <우주의 크리스마스>(감독 김경형)를 통해 한 여자가 선택의 기로에 선 삶을 볼 수 있었고,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 <자백>(감독 최승호)에서는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 담겨진 삶과 우리들의 삶이 만나는 그 경계에 서서 인디즈는 어떠한 시선으로 그 삶들을 마주했을까.
편견 없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담아낸 <왕초와 용가리>
상효정: 1,095일 동안 찍은 합숙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영등포 안동네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줬어요. 흔히 ‘쪽방촌’이라 하면 사람들에게 ‘무심코 지나치는 곳’ 혹은 ‘나는 잘 모르는 곳’ 등으로 타자화 된 시선으로 느껴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안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이웃들이라는 것을 거리감 없이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이형주: 먼저 교회 측의 도움을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결국 도움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시선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생을 포기하게 되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동네의 사람들을 안고 이해하려는 느낌으로 다가왔거든요. 특히 (다큐멘터리라는 측면에 있어서) 영화에 카메라라는 존재가 남게 되고 그 안에 담겨지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이 꾸밈없이 드러나서 좋았어요. 그런 점에서 감독이 그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전세리: 제가 좋았던 부분은 왕초의 사랑에 관한 부분이에요. 영화 속에서 봄이라는 계절과 연결되는데, 그 안에서 또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을 보았거든요.
최미선: 길에서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플랜카드를 본적이 있어요. 이와 연결 지어서 생각해볼 때 안동네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필요하면 밥과 옷을 주는 것이 진정한 선행이고 복지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목적을 상실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선행이 아니었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수지: 저는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연장선상에서 이 영화를 보았어요. <서울역>의 노숙자 혹은 <왕초와 용가리>의 안동네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는데, 영화를 통해 제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었어요.
진심어린 시선으로 인디즈 모두를 울렸던 <할머니의 먼 집>
상효정: 개인적으로 홈메이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할머니의 먼 집>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서 굉장히 좋았어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공감을 자아낼 수 있던 것 같고요. 나아가서는 지금 한국사회의 현주소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농촌에서 사는 노년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이형주: 할머니의 삶(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이 영화의 영화적인 구성이 완결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산책을 하시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돼요. 기본적인 영화 구성을 깼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좋았어요. 진짜로 그 인물을 사랑해서 만든, 그 인물을 위한 영화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전세리: 핸드헬드로 찍은 장면이 많이 나와요. 이때 담겨진 시선이 ‘할머니의 따뜻한 어루만짐’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서 좋았어요.
홍수지: 평소에 감동 코드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여서 영화를 보기 전에 걱정을 했는데, 담겨진 인물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솔직하게 담겨져 있어서 좋았어요.
해녀들의 삶이 와 닿은 <물숨>
상효정: <물숨>은 구도나 색채 등 영상적인 면에서 무척 아름다웠어요. 개인적으로는 내레이션과 음악 그리고 해녀들의 삶까지 삼박자가 고르게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면에서는 내레이션이 오히려 관객들이 스스로 이해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의견과 영화가 한 해녀분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면서 일정부분 작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형주: 영화가 취하고 있는 구성을 보면 명확한 플롯에 설명해주는 식의 내레이션이 결합되어 있어요. 그런 점에서 방송용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미선: 아무래도 방송 쪽에서 일하셨던 제작진분들의 특징들이 묻어났기 때문에 방송용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해녀들의 용어들과 중요한 정보들이 잘 설명이 되었어요.
전세리: 해녀의 삶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생경한 주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生)과 사(死)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홍수지: 아마 여러 해녀들의 이야기 중에서 한 해녀분의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등장했다가 장례식 장면까지 담겨지게 되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해녀 분들이 왜 그렇게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하시는지 바로 와 닿았어요.
메시지는 분명했으나 아쉬움이 남는 <우주의 크리스마스>
이형주: 같은 우주를 만들어내는 표상들이 단순했던 것 같아요. 세 명의 우주가 같은 이름을 갖고 있고 평행우주론 같은 관계와 소품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 표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어떻게 복합적으로 유기되는지 잘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영화 내에서 발생하는 우연들을 대사로만 묶어서 설명했던 것 같아요.
홍수지: 우연들을 대사로만 처리해 서사를 끼워 맞추는 듯한 싶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나이대가 고려되지 않은 채 거의 비슷했어요.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19살의 우주는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26살의 우주가 가진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최미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했어요. 38살의 주인공 우주는 과거에 사랑과 꿈을 포기했지만, 두 명의 우주를 만나게 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자신의 꿈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 돼요. 여기에서 용기를 내 선택을 하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드러났어요. 하지만 영화의 메시지가 그대로 담긴 화집의 메모가 너무 직접적으로 보인 점은 아쉬웠어요.
전세리: 소재가 참신했어요. 하지만 우주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로 나와 여성이 너무 대상화되어 그려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형주: 하지만 불안한 스토리 속에서도 38살 우주 역을 맡은 김지수 배우님의 연기는 단단했어요. 마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과 같은 느낌으로요.(웃음)
의문을 품고 계속 나아갈 시선으로 <자백>
상효정: <자백>은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자칫 딱딱하게 보일 수 있었는데, 속도감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어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촉구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선악 구도가 생기게 되면서 분노와 서늘함만이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형주: 저도 고발성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현실에서 잠깐 환기되고 말아버리는 데에 그치는 것 같아 절망감과 피로감을 느끼곤 했어요. 하지만 <자백>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영화가 바로 이 점을 타파하고 있다는 것이였어요. 뉴스에서 봐야 할 모습들이 방송으로 방영되지 못하고 극장에서 상영하게 되었는데, 이 점이 슬프면서도 일종의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통쾌했어요.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카피에 걸맞게 블록버스터 급의 긴박감과 액션을 이루어낸 것 같아요.
홍수지: 마지막에 펀딩하신 분들의 이름들이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때 영화관 안의 사람들과 같이 박수를 쳤는데, 연대의 연장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최미선: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통’이라는 단어가 맴돌았어요. 질문에 대답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에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런 점에서 ‘악순환의 시작은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간첩조작을 하는 걸까?’ 등의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전세리: 결국 자신의 초상권만 중시하는 면면의 모습들이 씁쓸했었어요. 그리고 “제이슨 본이 총 대신 저널리즘을 집어들었을 때 벌어지는 일”이라는 한동원 평론가의 평에 매우 공감해요.
인디즈의 이번 소소대담은 영화들을 통해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삶을 접해 볼 수 있었다는 소감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누군가의 삶이 상영관 스크린에 펼쳐지면서 자신의 삶과 만나게 될 때,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더 풍부해진다. 그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삶과 삶 경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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