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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변화할 희망의 증거 <자백>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10. 25.

변화할 희망의 증거  <자백>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0월 19일(수) 오후 8 상영 후

참석: 최승호 감독

진행: 주진우 시사인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자백>은 최근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간첩조작사건을 파헤친다. 이들이 간첩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영화는 누구도 추궁치 않은 역사와 책임자를 향해 꿋꿋이 나아간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이하 주): 다들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는지. 저희는 탐사 보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분야가 비슷해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다. 처음 만난 게 황우석 사건이라는 굉장히 큰 일을 다뤘을 때였다. 정권조차도 현실을 마주하는 게 얼마나 두려움이 컸는지, 참여정부 분들이 PD수첩과 최승호 피디를 압박하던 때다. 이번 <자백>때문에 시국을 뒤로 하고 간첩만 잡으러 다녀서 불만이었다.(웃음) 내가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도 바로 윗방에서 간첩사건을 취재하고 계셨고. 영화에 나온 이시원 검사가 나의 재판도 담당했었다. 계속 출석을 요구했는데, 가지 않았고 결국 무혐의 처분 받은 기억이 있다.


최승호 감독(이하 최): <자백> 관련 취재하면서 검사들이 나도 오라 했는데, 가지 않았다. 소환장 한 번 보내더니 그 후엔 소식이 없었다. 결국 무혐의 처분 되긴 했다. 물론 검찰이나 경찰이 여러분한테 연락을 했을 때 그냥 안 가시면 안 된다.(웃음)


주: <자백>에 쏟아진 극찬에 대해 조사해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웃음과 눈물, 분노가 다 있다” 등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고 그야말로 맨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결론은 재미있다. 재미있는데 화가 나는 묘한 장르는 뭐라고 해야 할까?


최: 블랙코미디라고 여러 영화 평론가들이 이야기했다. 나는 재미라는 단어가 선뜻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해는 된다. 여러분께서는 재미있다고 해주셔야 한다.(웃음)


주: 어제 최승호 감독 형수님하고 오랜 시간 통화를 하며 요새 선배 어떠냐고 물어봤다. <자백>을 만들 때도 집에 안 들어오더니 만들었다고 연예인 물이 들었는지 뭘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돌아다니고 집에 들어오면 멍하니 있다고 했다. 고등학생 아이가 밥상에서 수학여행에 대한 얘기를 실컷 했는데, 마지막에 선배가 “그래서 수학여행 어디 간다고?”라고 다시 물었다고 하더라.


최: <자백> 홍보를 위해 SNS 등으로 많은 분들한테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생각에 빠지니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점점 더 심해져서 계속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주: 영화에 출연자들이 많은데,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최: 각각 느낌이 다르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만났을 땐 등골이 서늘했다. 김기춘 씨에 의해 조작과 고문을 당한 분들이 40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아 만나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그 피해자 분들을 뵈러 가는데, 마침 공항에서 우연히 딱 마주친 거다. 취재팀 후배가 “어, 저기 높은 사람, 높은 사람!” 그러기에 보니까 김기춘이었다. 주변에서 기다리다 출국심사 다 끝내고 비행기 탑승구 앞 스낵바에 앉기에 굉장히 안전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접근했다.


주: 그때 김기춘 씨가 비서실장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최: 그때가 아니었음 인터뷰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소를 알았지만 거기서 대기해봤자 만나기 힘들었을 테니까. 이걸 찍어 오사카에 가서 피해자 분들께 보여드렸다. 사실 김기춘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40년만에 그 분들을 대신해서 언론이 묻는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위로 받았다고 하셨다.


주: 과거에 MBC에 계셨는데, 이유 없이 해고됐다. 아마 후배들이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고됐을 때 주로 다른 길로 가는데, 최승호 감독은 뉴스타파에 들어가 주구장창 일을 했다. 보통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엔 숙련된 피디, 작가와 카메라 등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독립 매체인 뉴스타파는 취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최: 뉴스타파에도 골격은 있지만 사람이 줄기는 했다. 조사를 하는 서브 인력이 부족하고 작가도 따로 없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었다. 사실 더 재미있다. MBC에 있을 땐 사실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했던 적도 많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시민들이 운영자금을 보내주는 곳이니까 눈치 볼 곳이 없다. 그래서 국가정보원 같은 곳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거다. 일이 좀 힘들긴 하지만 정신적인 제약을 느끼지 않는다. 나를 잘 잘랐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나도 화가 난다.



주: 최승호 감독의 취재 과정과 결과를 보면 영상의 힘을 느낀다. 원세훈 전국가정보원장 부분과 검사들이 걸어가는 장면도 매우 인상 깊었다. 


최: 그 두 장면이 굉장히 비슷한 성격이다. 권력의 민낯이다. 원세훈 씨가 그때 우산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았으면 그런 웃음은 짓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들도 우리가 찍는걸 알았다면 자신 있게 담배 피우며 노닥거리며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가 그들의 증거 조작이 완벽하게 드러난 상태에서 미안하지 않냐고 물은 날 밤이었다. 유우성 씨한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징계 등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주: 그 검사들은 지금도 승진하고 다 좋은 자리에 가있다. 우리 모두 진실을 다루는 사람들인데, 만약 우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방조했다면 징계 한 달커녕 무기징역을 받았을 것이다. 


최: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죄를 뒤집어 씌울 때 증거를 위조한 검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을 통해 처벌해야 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힘이 있으니 기소도 안하고 정직 1개월로 처리된 거다.


주: 역사에 의해 심판 받을 것이다. 조작을 하면서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데,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최: 주진우 기자도 2011년에 류승완 감독과 함께 MBC에서 본인이 직접 출연하여 ‘간첩’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주: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2012)을 만들기 전에 취재를 같이 했다. 어느 날 간첩을 찾아보자고 해 진짜 찾아본 거다. 그러나 ‘종북 빨갱이’라는 이름은 허울뿐이었고 다큐멘터리는 블랙코미디로만 남았다.


최: 주진우 기자는 국정원이 왜 사건을 조작한다고 생각하나? 권력 핵심부에 대한 취재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남다른 통찰이 있을 것 같다.


주: 국정원도 그렇지만 정부가 국가나 국민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권력을 쥐고 뺏기지 않으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 나는 것 같다. 간첩단 사건은 주로 정권의 위기, 큰 실수 등이 있었을 때 터졌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 때도 세월호 국면과 더불어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공격의 일환, 테러방지법 이후 댓글 사건으로 코너에 몰리자 벗어나기 위해 취한 제스처가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다. 국가의 안보, 안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유우성이 간첩으로 와서 했다는 행위가 뭐였는가?


최: 탈북자단체 간부로서 명단을 갖고 있었는데, 그 명단을 북한에 넘겨주었다는 혐의였다. 대단한 개인정보라고 볼 수 없었다. 인터넷만 잘 뒤지면 그보다 어마어마한 정보가 있는데, 왜 굳이 탈북자에게 그런 일을 시키겠는가.



관객: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신문방송학과 학생이다. 권력의 핵심이나 공권력을 취조하는 팁을 알고 싶다.


주: 자신의 태도에 달린 것 같다. 현재 언론은 최순실과 방산비리 등에 대해선 침묵한 채 김제동에 대해서만 탐사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게 나와 회사에게 도움이 되느냐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관객: 고 한준식 씨의 딸에게 부고를 알리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은 피해 당사자들은 큰 내상을 입었을 텐데, 그때 어떻게 취재하시는 지가 궁금하다.


최: 그 취재가 제일 어려웠다. 전화를 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도 많이 하고 감정의 동요를 막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통화 중에 단어를 잘못 내뱉으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딸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꼭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정부에 시신과 부고를 넘겨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름과 생년월일을 날조하고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아마 처음엔 보도자료도 안 내려고 했을 것이다. 방송으로 보도하려고 하니 그 몇 시간 전에 보도자료를 냈다. 지금까지 죽음이 완전히 묻혀버린 사람이 이분 말고는 없다는 보장을 못하겠다. 


주: 그 장면에서 최승호 감독의 목소리가 떨린다. 보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나도 이런 경우에는 극복하기 힘들더라. 고통스러운 사실을 직면했을 때 나도 힘든데, 그분들에게 전해주는 건 더 힘들어 때로 도망가기도 한다. 

 

관객: 요즘 뉴스를 잘 안보는 대신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너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고 단칼에 무언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사장을 청와대에서 내리꽂았기 때문에 모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낙하산이 불가능하도록 법적인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현재 방송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단죄해야 할 것이다.


관객: 오늘이 네 번째 관람이다. 처음에 봤을 땐 많이 충격적이었고 무서웠지만, 자꾸 보니 분명 재미있었다. 감독님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최: 거대한 국가적 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뉴스타파가 함께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거고, 개봉도 스토리펀딩 덕분에 기적같이 이뤄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엔딩크레딧의 후원자들 덕분이다. 영화의 결론은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후원자 이름들이 손잡고 올라가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손만 잡으면 모든걸 바꿀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자 한다. 


주: 이 영화가 개봉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다. 이런 나쁜 정부, 검찰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힘이 부족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손잡고 가야 한다. 사회가 더 나아지기 위해선 옆 사람을 한 번 더 잡아야 한다. <자백>을 보고 전파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최: 국정원이 장난질 치지 못할 정도로 관객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북한 없이 못사는 그들이 저지르는 종북 놀이에 어느 누구도 휘둘리지 않도록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렇게 어마무시한 사건이 공개되면 마치 진실이 밝혀졌으니 모든 것이 당연히 해결된 듯 막을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음을 안다. 간첩조작사건은 뉴스를 스쳐 지나갔다. <자백>은 그 스침을 안간힘을 써 다시 붙잡아 우리 앞에 두었다. 다시 한 번만 돌아봐달라는 이 절절한 외침에 시민들이 응답했다. ‘당연한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의 ‘당연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이날의 대화은 서로 너무 당연했던 외침과 대답의 뜨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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