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의지에 대해 SODOF 발견과 주목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9월 20일(화)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박영임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9월 ‘SIDOF 발견과 주목’에서는 6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영임 감독의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이 상영되었다.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이라는 모순적인 제목의 이 영화는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지나치게 되는 풀, 구름, 나뭇잎 등의 자연적인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들이 인터뷰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비록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솔직하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에서 관객들은 익숙한 내 자신,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의 박영임 감독님을 만나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의지에 대해서 주목해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도훈 한국영화협회 비평분과(이하 이): 지난번에는 <수상 관저 앞에서>(2015)를 상영했고 이번에는 박영임 감독님의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심플하고, 담고 있는 목소리들이 굉장히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순리필름’을 운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잠깐 부탁드릴게요.
박영임 감독(이하 박): 순리필름엔 저하고 김정민우 감독, 이렇게 딱 두 명이 있어요. 98년부터 작업을 했는데,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어요. 그러다 시골로 내려가면서 팀 이름을 순리필름으로 바꿨어요. 사실 ‘순리’라는 이름은 순리대로 살라는 뜻의 저희 개 이름이에요.(웃음) 영화도 그렇게 만들어보자 해서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이: 귀농을 하셨다고 했는데, 언제 귀농을 하셨고 도시에서 살 때와는 다르게 시골의 환경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 있는지 간략하게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귀농은 아니에요. 농사는 짓지 않고 있거든요. 4년째 시골에 살고 있어요. 시골생활에 딱히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서 지내면서 해오던 것들의 결과가 좋지 않아 힘들었어요. 막막함이 힘들게 다가왔고 제가 키우는 순리가 털이 길고 많은 커다란 개인데, 더 이상 도시에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먼저 시골에 내려간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시골에 내려갔을 때는 너무 조용하고 깜깜해서 놀랐어요. 마치 제 인생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웃음) 그런데 자연이 주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풀이나 구름의 모습들이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졌고 살아있는 생명체와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저에게 영감을 줬어요. 그리고 달빛이 그렇게 밝은 줄 몰랐어요. 도시는 너무 밝아서 제대로 된 어둠을 만날 수 없었는데, 옛날에 달빛에 의존해서 길을 간다는 것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처럼 시골의 삶을 통해 제자신이 한 꺼풀 벗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거기서부터 이 작품이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지방에서 태생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지방으로 내려가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될 때, 작품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이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예전엔 ‘감독’보다는 미디어 아티스트에 가까운 작품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작품의 성향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 초반에는 실험 단편 위주로 작업을 했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도 실험영화인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실험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라고 답을 드려요. 저는 실험영화라는 것이 제가 잘 알지 못했던 상태에서 했던 작업으로 기억이 남아있어요. 애매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실험영화라는 말을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만들기 전까지는 영화라는 것, 그리고 창작을 한다는 것에 있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굉장히 피상적으로 작업을 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영화를 하려고 했었지만, 사실은 언저리에서만 맴돌다가 이제야 조금 ‘이렇게 만들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시작점에 서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 예전에는 텍스트가 풍부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본인의 해석이 들어가기도 했고 이것을 표출하고자하는 의지와 충동이 굉장히 강하셨던 것 같은데, 최근작으로 올수록 그런 예술적 충동을 많이 덜어낸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이 구조적으로 굉장히 심플해서 좋았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나요?
박: 이 작업 이전에 8년 정도 촬영해놓은 극영화가 있었어요. 그 영화를 계속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는데, 내 딴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다 잘 안됐죠. 그러면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시골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시골이란 장소성이 주는 특별한 것이 있다기보다는 그 당시 제 상황 자체가 시골의 조용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지점에 전혀 도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려나있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너무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죽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었어요. 사실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같이 전시를 해보자 제안을 해서였어요. 결과물을 예측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고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다음에 할지 말지를 결정을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당시 감독님의 심정이 영화에 반영이 된 것 같아요. 섭외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진 건가요?
박: 제 주변 분들이에요. 처음 시골에 내려갔을 때 학교에서 영상을 가르치는 특별반 수업을 나갔어요. 그때 제 동료 선생님, 옆집 사는 분, 마을에서 가끔 마주치는 할머니 이런 식으로 기획의도를 써서 드리고 섭외했어요.
이: 인터뷰 과정도 궁금합니다.
박: 한 분을 한 번에 3시간 정도 인터뷰했어요. 질문들은 낮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새벽, 자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훅 찾아오는 물음들이었기 때문에 대낮에는 질문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서 저희 집을 어둡게 해놓고 한 분 한 분 촬영했습니다. 암막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조명 하나만 켜놓았어요. 카메라 두 대로 정면과 측면을 촬영했지만, 측면만 활용했습니다.
관객: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감동했습니다. 그러면서 풀들이 강한 존재구나 생각했어요. 영화의 인터뷰이 분들이 풀처럼 강한 심지를 갖고 계시고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요.
이: 풀에 대해서 굉장히 인상 깊게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저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풍경들로 열고 닫는 부분들이 있어요. 오프닝에서 6컷 정도 자연적인 이미지들이 나오고 끝에서도 비슷하게 자연적인 몽타주가 나와요. 그리고 그 사이에 다섯 분의 인터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치 책 같은 구조라 할 수 있어요. 이처럼 구름, 풀 같은 자연들이 이 영화 전체에 모티브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촬영을 하시거나 편집을 하실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이렇게 붙이신건지 궁금합니다.
박: 말씀해주신대로 풀이 가진 이미지가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받은 감정들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존재의 의지가 확고해요. 힘들다는 말들을 토해내다가도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항상 끝맺음을 해요. 그래서 그 존재의 의지들을 내가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저는 풀로부터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풀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의 의지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물을 앞뒤로 넣어서 표현해내려고 했어요. 초반에 나온 컷들은 제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의 감정들을 담은 컷들이에요. 땡볕이 강한 여름에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저 혼자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을 담았어요. 대낮에 느낀 당혹감이란 것이 저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당혹감 같은 거죠.
이: 오프닝과 클로징 부분의 컷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감독님께서 자연과 교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상 그 교감이 또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 전체 구조와 잘 맞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인터뷰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찍은 장면만 컬러인데,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 첫 번째 질문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보통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라도 질문이 준비되어 있잖아요. 전체적으로 내용을 들어보면 행복, 사랑,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공통 질문을 드렸던 건가요?
박: 어떤 질문을 할 것이라고 리스트를 정해놓고 질문을 드렸어요. 처음부터 바로 질문을 하지 않고 안부를 묻고 근황 얘기를 먼저 했어요. 여기서 파생되는 몇 가지 소소한 질문을 드린 다음에 제가 준비한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일종의 테라피 같은 질문들을 공통적으로 드렸어요.(웃음) 영화에서 질문을 없앤 것은 화면을 흑백으로 만든 것과 비슷한 이유인데요, 말하자면 한정짓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흑백이라는 것이 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조금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조금 더 상상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투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관객들이 질문을 먼저 알아버리면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고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질문 부분을 없앴어요. 조금 더 깊게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닿을 수 있도록 일부러 제 목소리를 없앴습니다. 그리고 그 구름 컷도 처음에는 흑백이였어요. 그런데 흑백으로 하니 구름의 질감이 다 없어져서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컷만 컬러로 넣었어요.
이: 이와 연관해 추가 질문을 드리자면, 인터뷰 형태이기 때문에 감독님이 영화에 나오실 수도 있었을 텐데 아예 기획단계에서부터 배제하셨던 건가요?
박: 네, 제가 나올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이 작품 자체가 결국에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직접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제 이름을 넣게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이 분들과는 어느 정도 친밀한 상태에서 진행하신 건가요? 실제 친한 친구와의 인터뷰라면 아마 저런 식으로 인터뷰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밀하지만 약간 낯선 상태여야 매끄럽게 진행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인터뷰이 분들과 어느 정도의 관계였던 건지, 그리고 혹시 곤혹스러워하진 않았는지 에피소드들을 듣고 싶습니다.
박: 너무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셔서 저도 놀랐어요. 한 분 한 분 인터뷰를 할수록 마치 ‘천일야화’ 듣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궁금했고 재밌었어요. 보신대로 아주 친밀하지도 않고 아주 서먹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것이란 기대를 안 했고 낯설어하진 않을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인터뷰가 너무 좋았다고 해주셨어요.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좋아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요. 영화를 예술이라 표현할 때 ‘제7의 예술’이라는 수식을 붙이곤 하는데 저는 여기에 조금 더 보태서 영화가 라디오의 기능을 훔쳐왔다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무성영화이후로 우리가 듣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천일야화 듣듯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의 위치를 측면으로 설정하셨는데, 특별히 선호하신 이유가 있나요?
박: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는 정면에서 찍고 하나는 측면에서 찍는 식으로 카메라 두 대를 뒀어요. 그런데 정면으로 찍은 컷들은 사람의 얼굴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보통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실제로는 아닌데. 그래서 측면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한 쪽 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측면을 활용함으로써 조금 더 입체적인 이미지들이 나온 것 같아요. 최근 이 작품과 유사하게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다큐멘터리들이 국내외적으로 눈에 띄고 있어요. 최근 작품에 한해서 말씀드리자면, EBS 국제다큐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 <휴먼>(2015)이라는 작품 또한 관념적인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다른 성격의 영화이긴 하지만, 비슷하게 배경으로 검은 장막을 쳐놓은 상태에서 인물들을 정면으로 찍었습니다. 이외에도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5)이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으로는 박배일 감독의 <깨어난 침묵>(2016)이 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역설적인데, 지으실 때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박: 이름이 없다는 것을 한자로는 ‘무명’이라고 해요. 저는 ‘무명시인’, ‘무명예술가’처럼 무명이라 붙여지는 것이 슬펐어요. 그 사람들의 이름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이름들이거든요. 그런 존재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분들의 일상을 따라가서 찍어볼까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일상을 보여주게 되면 이분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 생각은 바로 폐기했어요. 왜냐하면 이분들의 개인사가 드러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이 한 사람, 아니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것은 나일수도 있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세계 어딘가에 있는 한 사람으로 읽히기를 바랐어요.
이: 재밌었던 부분은 엔딩 크레딧이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구성이 되어있다는 점이였어요. 마지막에 ‘총체적 도움’이라고 나오던데, 그렇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 총체적 도움에 나왔던 순리는 저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라서 넣었어요. 김정민우 감독님도 고마운 존재이시고요. 영화를 여름에 찍었는데, 순리가 옆에 있으면 촬영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촬영할 때마다 잠깐 맡기고 끝나면 데려오는 식으로 했는데, 털도 많은 순리가 같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총체적 도움이라 넣게 되었어요.
이: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셨는지, 인터뷰를 하면서 순간순간 느낀 것들이 궁금합니다. 물론 인터뷰이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소회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일단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다들 내적으로 혹은 외적으로 힘들게 버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알고 싶은 사람,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겉과는 다르게 뭔가 있지 않을까하는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섭외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한 대상을 두고 단순하게 판단을 하지만, 사람은 정말 입체적인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저를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죠. 그리고 이승진 선생님을 찍으면서 혼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어린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좀 부끄러웠어요. 그렇지만 사람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걸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이라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철이 없고 남들이 볼 때 별것도 아닌 것들로 고민을 하지만, 지금 이 시기의 나는 이 이야기밖에 할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만들자는 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이: 여기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이 이야기를 할 때 계속해서 주어를 ‘나’, ‘나 자신’ 등으로 표현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과정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발견의 영화이면서도 치유의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등장한 분들이 인터뷰가 끝나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부끄럽다고 한 분도 있고 덤덤하게 좋았다고 한 분도 있었어요. 거부감 없이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주셨어요.
이: 다섯 분의 인터뷰이들이 하신 말씀들 중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말이 있을까요?
박: 3시간 촬영을 했기 때문에 해주신 말씀들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이야기를 고른 기준은 첫 번째로 나 자신에게 와닿는 이야기일 것, 두 번째는 인물이 가진 고유의 특징, 성격,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되 나와 맞닿아 있는 고민들일 것이었어요. 어느 이야기가 좋았다고 딱 집을 수는 없지만, 배지현 선생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묻던 것에 공감을 많이 했고 힘이 되었어요.
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분류되기 때문에 은연중에 계속 인터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배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맞지만, 이 분들이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의 성격을 드러내고 인생사가 녹아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셨기 때문에 충분히 배우일 수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감독께서 연출을 하실 때에도 이 분들의 개성이나 성격이 드러나게끔 노력을 하셨기 때문에 배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준비하시고 계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올해 말에 극영화 장편 작업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제목은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고요,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 중 하나에요. 시 내용은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제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메시지와 연관이 있어서 제목으로 붙이게 되었어요. 영화는 고독에 관한 내용이에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젠가 모두 죽을 텐데, 죽음으로 향하는 이 삶이 쉽지는 않잖아요. 힘들 때가 많고, 행복은 짧고.(웃음) 왜 견뎌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한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지금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있어요. 그리고 김정민우 감독님이 찍으신 사진과 3년간 필드 레코딩했던 음악, 제가 준비하고 있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 영화의 일부를 엮어서 라이브 시네마 형식으로 전시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전시는 10월 7일까지 홍대 더갤러리에서 해요.
이: 예전 작업들 중에서도 문학 텍스트를 활용하신 게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나오는 자막들은 직접 쓰신 건가요?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박: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 좋아하는 시들만 몇 권 읽는 정도인데, 기형도 시인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이에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에 나오는 텍스트들은 제 작업 일지 중 하나에요. 저는 작업을 하면서 일기를 많이 쓰는 편인데,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왜 이 장면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등을 스스로 묻고 답해요.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이 작품에 많이 쓰여요.
이: 감독님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박: 이번에 만드는 영화의 주제와도 연관되는데, 무언가가 되려고 하거나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도달하려 하거나 재산을 모아두려 하는 이런 것들이 저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의지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과에 행복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그 과정 자체와 순간이 가진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메시지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있고요. 하지만 순간의 행복들이 불안과 걱정들에 많이 묻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삶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순간들의 빛을 명료하게 봤으면 해요. 제 영화도 그런 기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입체적인 존재, 모두 치열하게 고민을 하며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감독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할 일들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타인의 단면적인 모습밖에 볼 수 없을뿐더러 종종 자신의 감정조차 쉽게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거센 바람에 흔들려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아가는 들풀들처럼 모두 저마다의 내면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에서 존재의 의지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오늘도 이름 없는 자들 중 한명으로 이름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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