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한 장의 가족사진  <철원기행>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5월 4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대환 감독, 김보람 촬영감독

진행: 이광국 감독(<꿈보다 해몽>, <로맨스 조>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 속으로 가족은 차례차례 발자국을 남긴다. 그 발자국이 한 번 더 내린 눈으로 뒤덮이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던 가족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관객은 눈 덮인 철원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풍경 속에 계속 머무르려 한다. <철원기행>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든 김대환 감독과 김보람 촬영감독을 만났다.



이광국 감독(이하 진행): 처음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만들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을 거 같다. 어떤 점이 제일 크게 다가왔나?


김대환 감독: 어린 나이에 처음 기획했을 땐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었다. 단지 학교를 준비하면서 기획한 아이템이었다. 기획이 잘 진행된 뒤 제작할 때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뒤 개봉이 더뎌지면서 초조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큰 아쉬움은 없다.


진행: <철원기행>을 스물아홉에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밀도 있는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만들었다는 게 놀랍다.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대환 감독: 장편영화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 운 좋으면 대학원에서 장편을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학부 때 단편영화 두 편을 찍었는데 완전히 망했었다. 어디서도 틀지 않고, 모든 곳에서 거절당한 영화였다. 그렇게 실패하니까 오히려 더 쉬워졌다. 영화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깔끔하게 머리를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철원기행>의 설정이 내 상황과 비슷한데, 실제로 부모님 두 분 다 교직에 계신다. 대학원을 준비할 당시, 아버지는 철원에, 어머니는 춘천에, 나는 서울에, 동생은 천안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철원으로 군대를 가면 가족이 면회 갔을 때 아버지 관사에서 잠을 자겠구나. 그렇게 상상하면서 처음 영화를 기획했다. 이후 인물의 나이를 올리고 고부간의 갈등을 추가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진행: 어느 부분까지 감독님이 경험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결혼이나 고부간의 갈등을 체험해보지 않고 상상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겠다.


김대환 감독: 고부간의 이야기를 피부로 느끼지 않고서는 쓸 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를 보면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단국대 대학원 커리큘럼이 작가, 연출, PD 각각 트랙에서 3인 1팀으로 구성해 영화를 진행하는 거였다. 그 중 <철원기행>의 작가인 박진수 씨가 기혼여성이다. 고부간의 이야기를 포함한 관계에 대한 디테일한 아이디어를 작가님에게 의지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진행: 시나리오 작업을 작가님과 함께 한 건가?


김대환 감독: 그렇다. 혼자 초고를 썼는데, 솔직히 학교에서 너무 사적인 이야기라 힘들다고 그러더라. 그 뒤 작가가 긴급 투입되면서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원래는 면회를 간 가족이었는데, 아버지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재구축하면서 아버지의 퇴임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겨울에 철원으로 가족이 모이는 것 정도다. 많이 바뀌었다.



진행: 촬영감독님이 함께 자리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샷으로 영화를 이어갈지 촬영감독과 함께 조율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콘티 작업을 하는 시간이 제일 어렵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은 어떻게 <철원기행>의 콘티 작업을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김보람 촬영감독: 감독이 레퍼런스로 얘기했던 게 <비정성시>(1989)라는 영화였다. 이 얘길 듣고 이 작품은 하지 말아야지 했다. 그런데 감독이 기억에 남는 말을 했다. 이 작품이 보고난 후 한 장의 가족사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했다. 이를 토대로 여러 생각을 했다. 콘티를 짜는 이유는 영화의 호흡과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다. 컷을 어떻게 짤 것인지 보다는 먼저 인물을 어떻게 배치하고 움직이면서 어떤 대사를 어느 타이밍에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또 각각의 공간에서 인물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한다. 감독이 레퍼런스로 얘기했던 걸 보면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행: 서로 간의 의견 차이가 크지 않았나 보다. 


김대환 감독: 촬영 쪽에서 워낙 선배다 보니 무조건 믿고 갔다.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지만, 의견 충돌은 전혀 없었다. 혹시 있었나?


김보람 촬영감독: 있었다. 공간 문제 때문에 그랬다. 촬영하기에 집이 너무 좁아서 촬영자 입장에서 몇 번 어필했지만, 단호하게 여기가 좋다고 해서 마음 접고 촬영할 방법을 찾았다. 제일 중요한 건 감독이 하고 싶은 공간과 이야기다. 이에 최대한 맞춰가는 게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다. 


진행: 영화 중반부에 아버지와 큰아들이 눈을 치운 뒤, 큰아들이 빨리 가자고 하자 아버지가 숨 좀 돌리고 가자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아버지 본인이 처한 모든 상황을 표현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끝난 뒤 이들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감독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나?


김대환 감독: 가족 각자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철원에서의 자기 삶에 만족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억세고 드세 보이는데, 역할, 지위, 체면의 문제와 가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식들도 각자 본인의 욕망이 있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한 아버지의 이혼 선언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혼 선언을 통해 가족을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본다. 영화가 끝난 뒤 부모님은 실제 도장을 찍지 않았을 것 같다. 가족 각자가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 것이다. 다만, 그 전보다 가족을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까? 다들 뭐 하고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관객: 한두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섯 명의 배우가 비슷한 분량으로 나온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이 중 어떤 인물에게 가장 마음이 가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연기연출은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다. 


김대환 감독: 초고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잡았다. 단편에서 그렸던 관계도 비슷했는데, 나의 아버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고 당연히 실패했다. 이번 영화를 기획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진행하는 게 정말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시나리오를 수정해가면서 원톱 주인공보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철원기행>의 미덕이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제일 고민이 많았던 캐릭터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모였고 아버지를 통해 가족이 서로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중 제일 많이 알게 된 게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모습을 알아가는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애착이 간다. 연기연출은 잘 모른다. 다만, 다섯 명의 배우가 진짜 가족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에 엠티를 가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배우 각자가 캐릭터와 닮아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배우 간의 관계 설정이 자연스레 되다 보니 내가 했던 건 테이크를 많이 갔던 것뿐이었다. 


김보람 촬영감독: 대부분 10 테이크는 기본이고, 많이 갈 때는 30 테이크 씩 갔다. 다섯 명 배우의 합을 맞춰야 하는데, 김대환 감독은 단 한 명도 본인이 생각한 연기가 아니면 무조건 ‘NG’를 외쳤다. 독하게 했다. 완전한 합이 나올 때까지 계속한 뒤, 최종 편집으로 NG 컷을 썼다.


진행: 동료 감독으로서 변호를 하면, 나 또한 20 테이크를 갔는데 첫 테이크를 쓴 적이 있다.


관객: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머니가 밥 먹으면서 “진작 얘기했어야지!”라고 화내는 장면이다. 소통이 안 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이 영화가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은지 묻고 싶다.


김대환 감독: 말한 것처럼 진작 얘기해주지 않았기에 더 억울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한 번이라도 언질을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화가 중요하다. 가족 간 소통의 문제가 있을 때 이걸 푸는 방법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경우는 살을 부대끼면서 같이 지내는 게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철원에 계실 때 일주일마다 찾아가 술도 마시고 잠도 잤다. 그러다 보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알게 됐다. 그렇게 살을 부딪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거고, 무엇부터 풀어야 하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무엇 하나 섣불리 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 <철원기행>은 그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한다. 수많은 말보다 오랜만에 살 부딪치는 시간을 갖는다. 가족에겐 짧은 여행이 어떻게 남을까. 나를 포함한 관객은 영화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할까. 무엇보다 눈 덮인 풍경을 뒤로하고 찍은 한 장의 가족사진으로 남았으면 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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