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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야근 대신 뜨개질>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2. 29.

기획전 [2016 으랏차차 독립영화]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야근 대신 뜨개질>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2월 21일(일) 오후 5 상영 후

참석: 박소현 감독

진행: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너네 회사 노동청에 신고해줄까?”이다. 잦은 야근은 물론, 야근수당도 받지 못한다. 그 덕에 자기개발이나 취미생활은 어느 샌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고등학생 땐 대학만 가면, 대학생 때는 취직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우린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린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21일 일요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야근 대신 뜨개질> 인디토크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이하 진행):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나’와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눈물도 나고, 공감이 많이 됐고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여성들의 소소한 수다모임 같아 보이기도 해서 간혹 “이게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꽤 있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야지, 영화로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소현 감독(이하 감독): 사실 저도 이 회사에서 다녔었거든요. 영화 속 친구들은 실제로 같이 야근을 하곤 했던 회사 멤버들이에요. 제가 제일 먼저 퇴사를 했고 어느 날 나나를 만나 이 친구들과 야근 대신 다른 걸 해보기로 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핵심은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거였어요. “디자인할 줄 아는 친구는 디자인을, 기획력이 있는 친구는 프로젝트기획을 할 건데 너도 같이 할래?”라고 물었고 거기에 제가 “그럼 난 너희를 찍을까?”해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진행: 영화에서의 감독님의 위치가 궁금했어요. 영화 내에서 감독의 포지션을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본인이 나오는 장면을 최대한 뺀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가요?

감독: 처음부터 저의 적극적인 등장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웃음)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는 친구들이 찍거나, 어쩔 수 없이 찍힌 제 모습도 있었지만 NG컷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주변에서 제 모습을 적극적으로 넣는 게 좋을 것 같다고들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 2년이란 촬영기간 동안 서로 다독여주고 기대고 있었단 느낌이 컸어요. 중간중간 힘든 일도 많아서 촬영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가면 이 친구들을 통해 힘을 얻었죠.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끝까지 만들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고 친구들은 영화를 찍지 않았으면 계속 뜨개질 하지 않았을 거라 할 정도로, 서로 주고받은 게 분명 있었어요. 함께 해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제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제 모습을 많이 넣기도 했는데, 러닝타임 줄이려다 보니 편집 1순위가 저였네요.(웃음)

관객: 나나가 회사를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감독: 나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진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희생을 하지 않으려는 나나를 보고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다 했지만 사실 회사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개선시켜서 나와 친구 모두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게 회사를 사랑하는 나나만의 방식이었던 거죠. 나나랑 변(회사 대표)이 앞으로 계속 일을 할건지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찍을 때, 연애를 끝내는 사람들의 느낌을 받았어요. 둘은 이미 회복하기 쉽지 않은 관계였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만하자고 말하면 바로 끝날 것 같은 상황이었죠. 아마 그럼에도 나나는 변이 붙잡아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만둘 때 많이 속상해했어요.

관객: 초기에 게릴라 식으로 영등포 버스정류장에 뜨개질 작품을 매달아 놨던 걸 구청에서 나와서 다 잘라버렸잖아요. 근데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없이, 쓰레기랑 같이 버려진 컷을 보고 ‘시도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친구들이 시도하는 것들이 계속 지속되지 않는 게 문제였는데, 그래서인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결과보다는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어쨌든 시도를 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생각했던 엔딩은 이게 아니었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야근보다는 연대고, 자급자족의 방식으로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뜨개질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고요.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불러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퇴사하게 되면서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비춰질까 고민이 많았어요. 근데 나나의 적극적인 시도를 보면서 의미를 찾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의 시도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완벽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고 느꼈어요.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도, 그 사건으로 인해 밀양 765프로젝트를 시도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을 지도 몰라요. 뜨개질은 사람 살아가는 모습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털실을 풀어내는 것과 결과물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랑 다르지만 더 이어나갈 수도 있고 풀었다 다시 뜰 수도 있는 그런 점이 제일 닮았어요. 이런 뜨개질의 모습이 이 친구들의 모습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 점에 의미를 두면서 영화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만족할만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행: 엔딩에서 다들 여행을 떠나면서 그간의 일이 다 과거같이 보여져서 좀 아쉽긴 했어요. 근데 엔딩을 다르게 하려 고민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감독: 그렇게 끝나는 것이 조금 아쉽다라는 얘기들이 있었어요. 엔딩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약간의 수정보완작업을 하고 있어요.(웃음) 나나가 각자 경험들을 하고 다시 만나면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지금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있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얻었던 정보들을 가지고 책을 내자는 말이 나오긴 했어요.


관객: 사회적 기업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한 것이 센세이션이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본 다른 사회적 기업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감독: 공동상영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여성활동가분들이 많이 오셨었어요. 꼭 사회적 기업이 아니더라도 소위 활동가라 불리는 NGO나 사회적 기업가분들이 가장 공감하고 지지해주시는 것 같아요. “나도 우리 회사에 노조를 만들려다 실패했다”는 분도 있었어요.

관객: 노조 사건은 촬영 도중 갑자기 일어난 건가요, 아님 촬영 전 미리 알고 찍은 건가요?

감독: 몰랐어요. 처음엔 내 친구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30대 여성’하면 육아하는 여성이나 골드미스, 이런 이미지만 떠오르니까 이렇게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촬영을 하면서 여러 반전이 있었어요.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 결과물이 생각보다 안 예쁜 게 첫 번째 반전이었는데(웃음) 그 이후 뜨개질을 안 하더라고요. 왜 안 하냐고 물으니까 너무 바쁘다는 거예요. 무엇이 이 친구들의 뜨개질을 방해 하는가, 고민하게 되면서부터 노동과 관련된 문제로 이어진 것 같아요. ‘회사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커가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한가?’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나나가 노조를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관객: 영화에서 뜨개질이라는 것이 중의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사실 뜨개질을 못한 거고, 영원히 못할 수도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게 다를 수 있어요. 변은 너희끼리만 행복하면 뭐하냐, 임팩트가 크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죠. 우리는 이런 식의 사고와 언어에 너무 익숙해요. 그렇지만 나나는 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죠. 뜨개질도 작고 소소한, 그런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요. 다른 생각들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지 않을까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어요.

관객: 저도 산책모임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더라고요. 우리 내면엔 우리 스스로를 너무 작동시키려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감독: 누군가에게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서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위로 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저의 궁극적인 목표인데요. 우리가 시작하는 많은 소모임들을 오래 지속하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었구나, 우리만 그 문제를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생각을 하시면 좋겠어요.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는 것에 대하여 자기자신에게 느끼는 실망감 혹은 죄책감, 이런 것들에 대해 위로를 주고받았음 좋겠다는 방향으로 편집했던 것 같아요. 저는 엔딩에서 스스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결국엔 이 친구들이, 이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나에게 이런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한 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나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위로를 주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뜨개질 이야기를 할 것 같던 영화가 어느 새 노조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어느 새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박소현 감독은 제목 <야근 대신 뜨개질>에서 야근도, 뜨개질도 하나의 메타포라고 말했다. 야근은 상대적으로 쓸모 있다 여겨온 것들, 뜨개질은 상대적으로 쓸모 없다 여겨온 것들일 테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쓸모 없다 여겨온 것들일지도 모른다. 언젠간 야근을 위해 뜨개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아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서랍에 박혀있던 실을 꺼내본다. 서로 위로 받을 수 있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던 박소현 감독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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