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죽었다>한줄 관람평
차아름 | 멸망해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에 대하여
김수빈 | 현실과 영화가 교차할 때의 높은 몰입감
심지원 | 안녕하지 못할지언정, 그래도 괜찮은 청춘
추병진 | 종말 끝에 보이는 희망!
김가영 | ‘지구 멸망’과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의 상관관계
<그들이 죽었다>리뷰
<그들이 죽었다> : 종말 끝에 보이는 희망!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독립영화의 어떤 경향 중 하나는 바로 영화에 대한 영화, 즉 메타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만들어진 메타 영화만 떠올려보아도 <힘내세요, 병헌씨>(2012), <디렉터스 컷>(2014), <오늘영화>(2014 | <뇌물>, <연애다큐>) 등이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생기는 해프닝과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겪는 고난과 역경을 다룬다. <그들이 죽었다> 역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딘가 조금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느 순간 영화의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면 어느덧 예상치 못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주인공 상석은 할리우드로 진출하기를 꿈꾸는 무명 배우이다. 상석과 마찬가지로 무명 배우인 재호는 상석에게 장편영화를 만들자고 권유한다. 결국 그들은 제작 인원 다섯 명이 전부인 상태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하지만 첫 스크린 테스트부터 촬영은 꼬이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영화는 엎어지게 된다. 상석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것마저도 포기하고 절망에 빠진다. 결국 상석은 직접 시나리오를 써내려간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지구 종말을 하루 앞두고 옆 건물에 사는 ‘이화’라는 여자와 상석이 일출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상석은 눈물을 흘려가며 영화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적어 내려간다. 지구 종말의 날 2012년 12월 21일은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지구 종말에 대한 호기심 또는 두려움이다. 친구 재호는 지구가 멸망할 것을 알아도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말하고, 후배 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 질문을 던진 상석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 대신 그것은 상석이 쓰는 시나리오를 통해 드러난다. 종말을 앞두고 상석과 여행을 떠난 이화는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낙심에 빠져있던 상석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이때 극 중의 대사를 작성 중이던 실제 상석은 처량하게 눈물을 흘린다. 본인이 쓴 이화의 대사가,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내지 못한 자신에게 던진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상석은 울음을 그치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지구가 멸망해가는 것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띤다. 이 웃음이 상석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가 카메라를 보며 ‘컷’을 외칠 때 우리는 한 번 더 어리둥절해진다. (사실 이 대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석의 영화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단순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상석이 웃으며 맞이하는 종말은 자포자기의 심정보다는, 인물들이 언급하던 지구 종말로 결국 영화를 끝(장)내고 말았다는 감독 자신의 세리머니에 가깝지 않을까.
<그들이 죽었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화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해질 무렵 바닷가 주변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두 사람이 진지하게 주고받는 대화는 이전과는 달리 긴 호흡으로 이루어져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서부터는 하나의 영화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진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화가 등장한 이후로 상석의 지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이화의 등장으로 영화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지만, 이전에 등장한 인물들이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갑작스러운 공백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죽었다>는 우리에게 정체 모를 쾌감을 전달해준다. 최소한의 스탭과 예산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크랭크인 이후 약 2년 만에 완성되었다. 상석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들이 죽었다> 역시 백재호 감독이 남몰래 흘린 눈물로 탄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이 작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눈물보다 희망을 전달해준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는 결국 장편영화로 완성되었고 그것은 보란 듯이 관객들 앞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은 백재호 감독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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