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ver 2.0. 연영석> 태준식, 연영석 인터뷰
2008년 5월 19일 인디스페이스에서
<필승必勝 ver2.0. 연영석>의 개봉을 앞둔 5월의 어느 날, 태준식 감독과 영화 속 주인공인 문화노동자 연영석씨를 만났다. 매 주 월요일 명동성당 앞에서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을 하고 있는 연영석씨는 공연 전 조금 이른 시간에 극장을 찾았다. 태준식 감독과 연영석씨는 개봉을 앞둔 들뜬 마음 보다는 영화 속에서 쏟아낸 그들의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인디스페이스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영화, 현실, 그리고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어떻게 연영석씨를 주인공으로 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태준식 : 그 때 당시에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2005, 연출 태준식> 작업이 끝나고 나서 KBS 열린채널 방영문제로 말썽이 있는 중이었죠.(<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는 젊은 조각가 고 구본주의 죽음에 대한 삼성화재의 손해배상 소송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거대 자본이 한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는 지와 지금 이 곳의 예술창작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KBS 열린채널 방영과 관련하여 방영보류 결정이 내려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다음 작업을 기획을 하고 있었죠. 이전부터 록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사람을 찾다 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더라구요. (웃음) 음악가는 그렇게 선택했고, 그 전부터 ‘필승’이라는 제호를 가지고 연작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필승 시리즈는 이렇게 한번 가보자는 생각을 했죠.
● 연영석씨는 처음 그 제안을 받고 어떠셨나요?
연영석 : 거절하기도 쉽지 않고 수락하기도 쉽지 않은 뜨거운 감자였죠.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 대한 판단이나 문화운동에 대한 판단이 다 섞여서 하게 되었죠. (태준식 감독의) 이전 영화들은 못 봤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에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으니까요. 내가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또 사람이라는 게 욕구가 생겼을 때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 욕구에 내가 한 부분이라는 것도 중요하죠.
● <필승必勝 ver 2.0. 연영석>은 통상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연영석씨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연영석씨가 노래를 부르는, 그리고 연영석씨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현장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검구릉씨, KTX 여승무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이랜드 투쟁 등 음악과 현장이 교차로 가는 데 이런 구성을 처음부터 기획하셨나요?
태준식 : 완성된 영화상에서는 영석이 형과 투쟁현장이 동등한 비율로 다루어지지만,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영석이 형이 주인공이었고, 영석이 형을 중심으로 촬영을 많이 했죠. 그러나 처음부터 영석이 형의 노래가 불리는 공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 공간의 사람들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찍고 만나다 보니까 비율이 변하게 된 것이죠.
● 코스콤이나 KTX등 투쟁 현장들은 선택할 때는 두 분이 상의를 하신 건가요?
연영석 : 난 연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어요. 단지 태감독이 “언제 어디 가세요”하고 물어보기는 했죠. 그리고 코스콤은 원래 태준식 감독이 고정적으로 찍었던 곳이었고, 저는 오히려 코스콤 보다는 장애인이나 이주 노동자 쪽에 주력하고 있었죠. 저는 안가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제가 코스콤에 연대 공연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태 감독이 연락해서 촬영했죠.
● 영화 속에 연영석씨의 노래가 13곡정도 나오는데 고르시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태준식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택이 필요했죠. 영석이 형의 음악을 보면 3집 <숨>은 좀 사적이고 개인적인 고민들이 담겨진 곡들이 많았는데, 전 어쨌든 현장과의 관계 속에서 음악이 배치되어야 한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석이 형의 음악 중에서 상대적으로 거대한 의미가 있는 곡들을 음악을 배치했죠. 순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나올 노래는 변하지 않았어요. ‘공장’은 처음부터 마지막 노래라고 생각했거든요. 음악 선곡에 대한 또 하나의 원칙은 영석이 형의 전 앨범이 다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죠.
● 영화를 보면, 투쟁현장을 바라보며 노래로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연영석씨의 모습은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기록하는 감독님의 입장과 겹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연영석씨는 영화 속 주인공 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점처럼 보이는데요.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출발했는지 궁금합니다.
태준식 : 처음에는 그런 의미가 구체화된 상태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노동자뉴스제작단을 그만두고 허허벌판에서 혼자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관통해오는 문제가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창작자라는 자의식인데, 그게 작품 속에서 반영이 되어 온 것 같아요. <농담 같은 이야기 – 저작권 제자리 찾아주기 프로젝트>도 비슷하고,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도 어떻게 보면 예술가의 노동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져 있는데, 그게 저의 고민과 맞닿아 있죠. 음악다큐에 대한 기획이 성사가 되어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먼저 영석이 형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형의 고민들이 나의 고민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드러난 것 같아요. 제가 형의 고민을 다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고민들이 영화 속에서 나의 고민과 함께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형의 고민을 나도 충분히 지지하고 그걸 함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승리하는 삶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있었고요.
연영석: 난 솔직히 촬영 당하면서 이 양반이 어떻게 이걸 정리할까 걱정 반 의구심 반이 있었어요. 물어보기도 그렇고, (촬영본을) 보자고 하기도 좀 그랬죠. 어쨌든 그건 태 감독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두 사람의) 합의라기보다는, 내가 현장과 관련되어 음악하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처럼 태감독도 그런 사람이니까, 이 사람의 작업이 이 계기를 통해서 좀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영화를 통해서 각각의 투쟁사업장이나 내 노래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보다는 태감독이라는 작가가, 영화감독이 이번 작업을 통해서 어떤 과정을 겪을까가 더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오히려 서로가 운동을 보는 생각이나 운동판의 답답함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못했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바램들이 있었어요.
● 감독님에게도 <필승 연영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작이기도 하지만, ver 1.0은 노동자뉴스제작단에 계실 때 만들었고, ver 2.0은 개인작업을 하시면서 만들었습니다. 또한 필승이라는 의미도 그 때와 지금이 변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태준식 : 지금도 의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봉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와 같은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가 던져준다는 것부터 그렇죠. ‘필승’에 대해서는 저도 계속 고민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깊이 있게 묶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연영석 : 저는 검구릉이라는 친구의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 친구가 빵 먹는 장면, 신발 신고 나가는 장면, 저는 사실 그 장면을 보면, 아직도 안타까워요.(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검구릉씨는 영화가 공개된 이후, 2007년 10월. 그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표적 단속되어 결국 본국으로 추방당했다) 오늘도 이 인터뷰 끝나고 이주노조 사무실에 들를 생각인데, 지금 거기가 되게 힘들어요. 제가 아쉬운 것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맥락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왔으면 하는 거죠. <빵과 장미> 같은 영화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사실 영화는 영화거든요. 오히려 현실이 더 지긋지긋해요. 현실이 더 영화 같고, 현실이 더 아프고, 그런데 그걸 아프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아니라, 뭔가 우리사회가 계속 언발란스하게 흘러가고, 또 사회만이 아니라 이 운동 안에서도 언발란스 한 부분들이 많아지는 거죠. 어쨌든 저도 운동판에서 아웃사이더고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도 아웃사이더인데, 그런 현실을 조금 더 꼬아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게 결국 우리에게 아픔으로 다가온다면,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이럴까 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영화라는 것이 감독의 몫도 있지만 보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과 그런 걸로 보잖아요. 그래서 저는 검구릉이 나오는 몇 장면으로부터 모든 상황이 연출이 되요. 제 머리 속에 검구릉이 와서 뭐하고 살고 나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빵 먹는 장면 방안에 있는 장면에서 나는 다른 영상들이 떠오르는 거죠. 저는 그래서 그 두 장면에 제일 기억에 남아요.
태준식 : 어쨌든 영석이 형의 음악의 힘을 빌려서 나의 이야기, 형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제일 아쉬운 것은 음악을 잘 살렸는가라는 부분이죠. 그래서 음악 자체의 완성도라는 데 집중해서 가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죠. 너무 많은 가지들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음악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있어요. 그 건 여전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제가 기억에 남는 것은 코스콤 동지들이 올라가서 노조 사무실 점거하는 장면이에요. 같이 올라가면서 이 장면은 정말 잘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게 어쨌든 지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 때 하루 반 정도 코스콤 동지들과 같이 있으면서 기다렸어요. “있을 거다, 있을 거다.” 해서 기다리는데 안 오는 거에요. 그래서 잠깐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다시 나오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다렸다가 잡은 장면이죠. 올라가서 봤던 정규직 노조 사무실의 플랜카드들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의 미래 쟁취하자”, “임전무퇴” 이런 슬로건들이 있는데, 정규직 노동자의 수준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미래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노동운동의 수준이 여기까지 이구나 하는 것을 그 플랜카드를 보면서 느꼈죠. 서강대에서 맑스 꼬뮤날레 폐막 공연할 때는 내가 찍으면서도 너무 신나서 찍었던 장면이에요.
연영석 : 내가 보기엔 똑같은 것 같아요. 태감독도 다큐멘터리 감독이지만 활동가로서의 자의식이 있는거고, 저 같은 경우도 음악 하지만 활동가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죠. 그래서 영화 보면 내 음악들이 나오는 장면들도 많지만, 그런 부분보다 검구릉에 꽂히는 거죠. 그 건 내가 활동가로서 꽂힌 부분이거든요.
난 코스콤 투쟁에 그렇게 많이 결합한 건 아니었어요. 근데 태감독은 코스콤을 이미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현장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는 것이었죠. 그건 활동가로서 느끼는 거고, 저도 똑같아요. 영화 속 음악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게 1순위는 아니에요. 근데 앞으로 그게 나에게 어떤 고민으로 올지는 모르겠어요. 태감독이라는 활동가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부딪히는 고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지만, 저도 그런 고민을 늘 하고 있고 괴로워하고 있죠.
● 이제 6월 6일에 개봉을 하면, 좀 더 집약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볼 텐데요. 내 영화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으신가요?
태준식 : 다큐멘터리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영화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다큐멘터리가 주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보고 싶어서 오신 분들일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적 미학적인 표현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되어졌는가 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영석이 형의 음악일 수도 있겠고, 여전히 싸움하고 있는 코스콤이나 KTX투쟁 이런 분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그 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영화를 보면서 같이 고민하고 최소한 한 번 찾아보고, 같이 할 수 잇는 방법들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한 명의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저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는 과정의 연속에 있는 한 지점으로 봐줬으면 좋겠고요.
연영석 : 저도 태감독 말에 공감을 하구요. 저는 처음부터 제 음악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것은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 음악이야 원래 있던 거고 음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기술적인 문제나 전문적인 문제가 약간 있겠지만, 그것보다 영화에 기본적인 질이 있으니까, 그게 고민이 되었죠. 저도 마찬가지로, 제가 곡을 만들거나 인터뷰하거나 영상에 찍힐 때도 마찬가지지만 태감독이 어떻게 고민 했을 지가 중요했죠. 전에 태준식 감독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이 영화에서 내 주변의 동지들이 배경이 되거나 그림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태감독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되게 미안했거든요. 왜냐하면 태감독이 자유롭게 만들려는데 이 말 때문에 스스로 검열할 수도 있으니까요. 끝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작가에게 내가 과연 좋은 재료가 되었을까 하는 거죠. 그래도 그것보다 제가 드는 생각은 있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현실을 잘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 앞서 말씀하셨듯이 지금 함께 하는 싸움들이 주변부에 있고, 그래서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과 연영석씨에게 필승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태준식 : “언젠가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패배가 일상화되어져버린 상태이고 그러면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라고 할 때, 희망 자체를 어디서 찾기 보다는 한 발자국씩 지금 현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꾸준하게 연대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들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석이 형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똑같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 스스로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서도 게으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필승이 아닐까요.
연영석 : 이주동지들이 지금 적지 않게 추방 되었는데, 그 때 태감독이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라고 했듯이 한 사람 한 사람 쫒겨날 때 마다 “우리 모두 샤마이다.”,“우리 모두 꼬빌이다.”고 외치면서 싸웠는데, 6월 달에 네팔에서 사람들이 모여요. 주로 방글라데시와 네팔 친구들인데. 비록 한국에서 쫓겨 났지만, 자기 나라 가서 자기나라 현실에 맞는 일들을 하거든요. 방글라데시 같은 경우는 섬유 쪽 여성노동자들 다룬 다큐감독이 된 친구들도 있고, 조금씩 번 돈으로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친구도 있고, 네팔 노총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 네팔 아동노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는 친구도 있고, 이렇게 다양하게 있어요. 그 친구들이 모여서 6월 달에 네팔에서 모이는데, 뭔가 서로 얘기하고 의지를 만들겠죠. 그런 게 우리가 꿈꾸는 국제연대인 것 같아요, 국제연대 말은 많이 하지만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한국에 와있는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이거든요. 저는 절망이라고 하는 것 안에 다른 가능성이 싹트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내가 판단해 볼 때 내 마음이 50:50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노래 부르고 다니는 게 사실 되게 징그럽거든요. 짜증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고 신물 나기도 하고 그래요. 나는 10년 넘게 장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근데 아직 그래도 (왔다 갔다 하지만) 49보다는 51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하는 거거든요. 근데 49되면 안 하겠죠 그냥 그렇게 하는 거에요. 앞으로도 또 해야 되고 그러니까.
★ 인터뷰의 전문은 인디스페이스 소식지 INDIESPACE on PAper vol.8에서 더 재밌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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