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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살인재능> : 자본주의가 만들 수 있는 괴물

by indiespace_은 2015. 8. 7.

<살인재능>




 SYNOPSIS 


“사람 죽이는 거 하나는 타고난 거 같아. 마치 재능 같은 거지…”


8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한순간에 실업자가 된 남자 ‘민수’.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 ‘수진’에게 버림 받은 뒤, 

그녀를 되찾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날, 대리운전 중 우연히 만난 옛 상사의 멸시에 홧김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 그는 

자신도 몰랐던 죽이는 재능을 처음 발견하게 된다. 

죄책감도 잠시, 점차 살인과 쾌락에 중독된 악마가 되어가는 ‘민수’, 

이제 그의 광기는 ‘수진’에게로 향하는데…







<살인재능>줄 관람평

양지모 | 자본주의가 만들 수 있는 괴물

김민범 | 우발적인 재능과 재앙 같은 현실이 만났을 때

전지애 | 을이 갑이 되는 유일한 순간




<살인재능>리뷰

<살인재능> : 자본주의가 만들 수 있는 괴물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살인재능>은 얼핏 한국에서 자주 제작되는 사이코패스 주인공의 스릴러 영화 같다. 살인이 재능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돈다발 위에서 자위를 하며 쾌락을 느끼는 민수(김범준 분)의 표정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오프닝에서부터 영화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분명히 한다. 이 영화는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대리인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건 수진(배정화 분)이 민수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었다. ‘오빠가 사고 나서 다리 하나 없어져도 같이 살 수 있는데 돈 없는 오빠랑은 진짜 같이 못 살아’라는 수진의 말은, 듣는 순간 무언가 이상했다. 이 대사를 현실적인 요구로 만드는 것은 ‘돈’이다. 그런데 물질적인 요구(돈)와 비교되는 대상은 또 다른 물질적인 것, 신체(다리)이다. 수진은 다리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는 것을 더 죄악시한다. 그렇지만 돈은 대체할 수 있어도 신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대체 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 이는 두말할 것 없는 자본주의의 욕망이다. 수진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욕망의 대리인이다.


카페를 인수하고자 하고, 돈 없는 민수 대신 돈 있는 남자를 소개팅 받고, 민수가 명품 가방을 선물하자 다시 돌아가고, 동생 연우(전범수 분)가 민수와 부적절한 일을 하고 있음을 짐작(의심)하면서도 애써 넘긴다. 영화는 수진에게 ‘돈’ 말고는 그 어떤 일관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일(살인)의 고통을 토로하며 그만 둘 것을 고민하는 민수를 수진이 말리는 씬을 떠올려보자. 내게는 영화의 그 어떤 장면보다 끔찍했는데, 대사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배정화 배우는 이를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연기했다. 이 장면에 이르러 수진이라는 캐릭터는 완벽하게 인간성을 상실 당한다.


그녀는 민수가 자본의 욕망을 넘어 폭주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야 비로소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권력(경찰)에 투항한다. 수진이 영화에서 완벽하게 타자화되면서, <살인재능>의 드라마는 자연스레 남성에게 향한다.





돈과 욕망의 상관관계 : 가족 판타지로의 봉합


수진의 이별 선언이 일종의 트리거가 되면서 민수는 변화를 요구 받는다. 폰 도둑질을 하며 용돈벌이나 하고 있던 수진의 남동생 연우는 이런 민수를 이용한다. 연우는 민수에게 자동차 절도를 제안하면서 이전보다 큰 자본을 얻게 된다. 돈의 맛을 알아버린 그는 이윽고 노동과 자본을 분리한다. 연우는 절도 행위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민수에게 이전과 마찬가지의 자본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연우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연우는 민수를 ‘매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에게 가족 판타지를 부추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은 노동하지 않고 자본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부모님이 없는 연우에게 유일한 가족은 수진이지만, 그녀는 연우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 연우가 민수를 가족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이유는 그가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가족 판타지를 동원하며 나름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든 연우는 성적 쾌락을 충족하는데 자본을 사용한다.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고, 그 돈의 일부를 유흥에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익숙한 남성의 욕망이다. 그렇지만 ‘대리 절도’라는 안전한 탈주로 자본을 획득하려던 연우의 바람은 민수의 폭주로 좌절되고 만다.





괴물의 탄생


영화의 시작부터 민수는 실직 상태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면접을 보지만 그를 채용하려는 회사는 없다. 사실을 안 여자 친구 수진은 그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이별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민수는 낮에는 닭 공장,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어 보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졌고, 혼자가 된다.


여기에서 영화는 미국식 히어로물과 유사한 내러티브로 방향을 선회한다. 우연한 계기로 살인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각성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살인이 재능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민수에게 살인은 재능일까? 민수는 자신을 해고한 직장 상사가 술에 취해 끊임없이 조롱을 하자 참지 못하고 첫 살인을 저지른다. 섹스도 힘들 만큼 무기력했던 그는 첫 살인의 순간을 떠올리며 한껏 흥분해서는 자위를 한다. 그리고 또 살인을 저지른다. 이건 재능의 발현이라기보다 중독에 가깝다. 박탈감에 허우적대던 그에게 살인은 주체적으로 누군가를 제압하고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승리의 순간인 것이다. 민수가 하는 일이 살인청부업이 아닌 차량 절도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민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살해한 남자의 아이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살인을 그만 멈추라고 스스로를 자학한다. 그럼에도 살인의 쾌감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있음에도 탄생할 수밖에 없는 괴물, <살인재능>은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 것’을 권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요구를 뒤집는 다. 다만 전재홍 감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무질서를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봉합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영화 속 괴물은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 공권력에 투항했다. 그렇지만 괴물을 만든 구조는 어떠한가. 영화 속 엔딩이 던지는 질문. 숫자를 보라. 당신은 괴물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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