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2015년 7월 기준,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라면 무엇일까. 아마도 세월호 참사(2014.4.16)일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모두 무게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사건이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전과 후 대한민국의 공기는 달라졌다. 부지불식간에 개인의 일상을 꿰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건들은 역사를 구성하며 기록되고 전달된다. 하지만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보다 미시적인 개개인의 일상이 중요해진 현대에는 시간, 이익, 관심 등 여러 가지로 역사를 지나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광장을, 피켓과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대학교 벽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지나치곤 한다. 동참하지 않아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역사는 현재 그만큼 무게를 잃었다. 한편, 지금의 역사 교육은 어떠한가. 필자를 포함한 20대는 근현대사가 선택적인 영역이었다. 선택하지 않으면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입시에서 선택하지 않은 영역까지 안고 갈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과 관심에 의지한 영역이 근현대사 교육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선택된 교육은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가. 단언할 수 없다. 교과서의 편집 위원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된 기록들이 교육되기도 하며, 교단에 선 선생의 태도에 의해 공부할 영역이 지정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언론의 성향에 따라 하나의 사건은 여러 가지 입장으로 기록된다. 객관성이 중요한 영역인 만큼 보도의 사실성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년 4월, 우리가 믿고 틀어놓았던 방송3사의 보도가 틀린 것임을 맞닥뜨린 순간이 있었다. 배가 기울어졌다는 보도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를 방송으로 접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거짓임을 알게 되었고 후에 구조 여부를 두고, 사건의 진위를 두고 언론과 사람들은 쉼 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곳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세월호 사건의 현장을 찍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작품이 있다. <다이빙벨>(2014)이다. 영화의 부제가 말해주듯, 이 영화의 연출 의도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를 보여주기 위함이며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대부분의 연출의도이기도 하다. 영상을 통한 기록은 글로 적혀진 것 보다 생생하며 현장성이 있다. 우리가 가볼 수 없었던 사건 현장에 가서 실존 인물을 만나고 그대로의 장면을 촬영해온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잊힌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잊힌 근현대사에 대해 날 것 그대로 혹은 아름답게, 생생하게, 여러 가지 태도로 기록을 해 온 영화들을 소개한다.
1. 사건의 날것을 보여주다 <두 개의 문>(2011 / 감독 홍지유, 김일란)
2009년 1월 20일, 용산의 한 철거 건물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 1명이 사망하는 ‘용산 참사’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는 이 사건의 현장을 중계하듯이 촬영했다. 건물 내부로 잠입하거나 화재 현장의 진행을 옆 건물에서 촬영하는 등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 현장과 최대한 가까이 붙어 촬영을 진행했다. 더불어 사건 당사자의 실제 인터뷰 음성을 그대로 싣거나 경찰 특공대원의 자필 문서를 보여주는 등 사건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검찰은 용산 참사가 일어난 이유가 철거민의 불법폭력시위였다고 말한다. 영화는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의 입장보다는 철거민들의 편에 서있다는 점에서 편향된 기록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꿋꿋이 공권력의 과잉 진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유가족 동의가 없는 시신 부검, 사라진 수사 기록, 삭제된 증거 수집 영상 등. 더불어 경찰 특공대원들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던 사건의 현장에 대해, 철거민과 경찰 모두를 희생자로 만든 사건 현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비념>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민들이 폭도로 몰려 강제 진압 당한 사건을 시작으로 현재 제주에 일어나고 있는 국가의 횡포를 다루고 있다. <두 개의 문>이나 <다이빙벨>과는 조금 다르게 사건이 일어난 시간적 간격이 있기 때문에 제주도에 생존한 희생자의 가족들을 인터뷰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를 고증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아름답게 편집된 미장센들을 통해 제주의 잊히지 않은 슬픔을 전달한다. 또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제주’라는 지리적 위치에 내재한 통시대적 슬픔을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다. 인물의 얼굴, 신분 등이 자극적으로 주목되지 않기 때문에 미학적인 영상과 함께 슬픔에 조용히 젖어들게 된다.
3. 사건에 대한 정직한 기록 <레드 툼>(2015.7.9 개봉 / 감독 구자환)
<레드 툼>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의 지도를 위해 설립되었던 단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1950년 6월 말부터 약 3개월 간 국가에 의해 희생된 ‘국민보도연맹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희생자의 남겨진 가족들의 진술을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최소화하여, 있는 그대로 편집한 것이 특징적이다. <레드 툼>을 연출한 구자환 감독은 이 영화가 잊힌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남길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연출과 편집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서른이 넘도록 몰랐던 사건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끼며 동시대의 사람들과 후손들이 자료로서, 기록으로서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4. 사건의 당사자들의 이면에 주목 <밀양 아리랑>(2015.7.16 개봉 / 감독 박배일)
<밀양 아리랑>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언론에서 비춰지는 한전과 밀양 시민의 분쟁의 이면에 밀양 시민들이 어떻게 시위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위자들인 밀양 주민들이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면서 긍정적으로 시위에 임하고 있다는 점, 송전탑과 고리 원전의 폐지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다큐멘터리이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이슈에 대해 환기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기억해주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투이다. 열악한 제작 환경과 부족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기록해주지 않고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는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기록의 일은 소수가 하더라도 기억의 일은 다수의 것이어야 한다. 역사가 잊혀가는 것에 마냥 슬퍼하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심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 (<레드 툼>과 <밀양 아리랑>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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