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상하고 신비로운 순간들 <파스카>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7월 11일(토) 오후 2시 30분
참석: 안선경 감독 | 배우 김소희, 성호준
진행: 씨네21 김혜리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토요일 오후, <파스카>의 인디토크는 “영화제 관객과는 달리 안 좋은 이야기도 직접적으로 할 것 같아 두려운 며칠간의 시간이었다”는 안선경 감독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김혜리 기자의 진행 아래 긴 호흡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김혜리 기자: 셋 다 연출자다. 김소희 배우는 ‘연희단거리패’ 대표로 연기랑 연출을 같이 한다. 성호준 배우도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안선경 감독의 예전 작품으로는 <열애기>(2004)라는 단편과 <귀향>(2009)이라는 장편 등이 있다. 특히 전작 <귀향>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기를 포기하느냐 마느냐가 나온다는 점에서 <파스카>와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포기한 인물과 포기당한 인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 세상을 떠도는 이야기이다. 영화 감상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질문을 시작하겠다. <파스카>를 재미있게 본 것은 현실에서 진짜 마주치는 사랑의 적대자들, 장애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는) 보편적으로 많이 존재하는데도 영화에서는 재연되지 않는 벽들이 있다. 사랑에 있어서 장애는 재벌과 가난한 사람이 만날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가을’(김소희 분)과 ‘요셉’(성호준 분)의 나이차가 보편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세상이 바람직한 사랑의 표준으로 제시하는 사랑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자꾸 사람을 나누고 결핍을 가리려고 한다. 그렇지만 요셉의 두려움처럼 바깥과 접하면서 우리의 원칙을 통용시키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그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이 생긴다. 예를 들면 결혼은 우리에게 버거운 제도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연애조차 버거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반려동물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적인 사랑의 고통들이 있는데, 왜 지금까지는 멜로드라마에 없었을까 공감을 했다.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듯이 적당한 나이와 조건, 이 사람들의 행복과 관계없는 사람이 오지랖을 부렸을 때 지치고 사랑을 놓아야 하는 일들이 힘든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나이 차나 통념에 대한 도전이고 심지어 영화에 두 개의 죽음이 나오지만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두운 이야기라고 받아들인다면 ‘이런 사랑은 안 될 사랑이야’라는 체념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이지만 불행하게 될 거야’ 무의식적으로 속단하기에 그렇지 않은가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요셉이랑 가을은 대단한 혁명을 하겠다거나 세상과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다. 동물병원에서 원장이 ‘엄마와 아들’이라고 할 때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고, 가을이 엄마와 이야기 할 때에도 순하게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행동을 큰 일로 만드는 건 주변 사람들의 리액션이다. 이 사람들이 고난에 처해있고 위험한 사랑을 한다는 건 어떤 프레임을 갖고 영화를 보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가난하지만 취향대로 예쁘게 공간들을 꾸미고, 경제적·심리적으로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있다. 망가지지 않았다. 전혀 나쁜 삶이 아니고 폐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 캐릭터가 남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시작할 때가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저 정도의 삶은 나쁘지 않다 생각하고 봤다. 다만 둘이 너무 저자세라는 게 불만이었다. (웃음) 그리고 왜 이렇게 지지해주는 친구가 없을까. 그런 것 때문에 고독해 보이는 게 마음이 쓰였다. 똑같은 이야기를 갖고 로맨틱 코미디 형식의 주류 영화로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획이 불가능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 커플들이 절대적으로 마주쳐야 할 벽들을 회피, 우회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파스카>가 어떤 태도, 슬픔만 간직하고 가기보다 잘 사는 방법이나 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 영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궁금한 부분들을 묻겠다. <파스카>는 감독이 반려동물을 잃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준비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여러 스토리가 섞이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체험과 예전에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써놨던 시놉시스라든가 관객들에게 이 즈음에 전달하고 싶었던 것들이 변형되고 합체된다. 이 영화는 예전부터 품어왔던 주제와 어떻게 결합되어 완성됐나?
안선경 감독: 고양이 ‘희망’이 죽어서 겪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막막함과 불편함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많이 봐왔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작은 경험, 뭔가를 쓰게 만드는 경험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귀향> 이야기도 했지만 이렇게 만들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좀 집중했던 게 뭔가 뒤늦게 보이게 되는 게 있다. 사실 (내가) 시나리오 작가이거나 글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시작을 못 한다. 그렇게 하면 몇 줄 못 쓰더라.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인위적으로 삶이 구성이 된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올 한 올 바느질을 하면서 방향이 그때그때 생기는 것처럼 우연적으로 생겨난 구조가 많이 있다. 두 사람은 괜찮지만 굉장히 사회 속에 섞이기 힘든,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온전히 받아주지 않으면 굉장히 고독해진다. 그런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주변에 게이 친구들도 많았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봤고 섞이기 어려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외적인 조건으로 인해 사회가 배척하는, 개인이 삶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상처를 받는 인물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지인 가운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커플이 있는데,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도 어르신이나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 커플이 열아홉과 마흔이라면’이라는 가장 사회적인 통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커플을 설정했다. 남녀가 온전할 수 있는데 미성년자 기준법에 걸린다든가 하는 경우들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여성의 삼십 대와 마흔을 다르게 인식한다. 사십 대가 되면 욕정에 불타서 사랑을 욕망을 채우려 하고, 순수하게 사랑한다고 잘 믿지 않는다. 남녀 성별이 바뀌어도 비슷하다. ‘이들에게 과연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썼던 것 같다.
김혜리 기자: 마지막에 요셉과 가을은 처음에는 걷다가 점차 뛰기 시작한다. 희망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파스카’는 구약성서에서는 구원을 가리키거나 평정을 되찾는 순간을 말하는데, 그래서 ‘근데 뭐가 파스카였어, 혹은 구원이었지?’ 질문할 수 있겠다. 희망적으로 종결되지만 터닝포인트가 없다. 이를테면 가족 중 누군가가 이들에게 이해심을 보였다거나 가을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된다는 전화가 걸려온다든가 아니면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가 우호적인 표정을 지어주는 그런 장면마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웃음) 계기 없이 오로지 버티면서 조금 더 파워업하는 정도였다. 이들에게 무기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었고, 결국 무기는 성격밖에 없다. 실제 극장에서 개봉을 염두하고 ‘모멘트가 없는 승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극적 전환점이 없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두 배우들도 이렇게 감정의 궤적에 있어서 포인트 없이 이들의 마음의 흐름을 연기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했는가?
안선경 감독: 이십 대에 연극하다가 늦게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카메라를 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직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먼저가 아니었고, 삶을 충분히 살고 그 다음 영화를 판타지 없이 받아들였다. 삶과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영화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건 사실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인생에서 보면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웃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거나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다든가 하지 않는다. 착하게 살면 병신 취급을 받는다. 빈부격차도 심화되고 더 살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은 변하지 않는다. 버티다 보면 노인 다 돼서 인정할 수도 있겠다. (웃음)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을 우리가 다 겪고 있는데, 갑갑했다. 좋은 결말을 내고 싶었고, 어떻게 이 갑갑함을 통쾌하게 돌파할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거짓말을 못하겠더라. 내가 겪은 ‘파스카’는 이상한 신비로운 순간들, 삶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되게 힘든데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다. 계속 나를 짓누르고 절망적이라는 생각에 눌려서 사는데 어느 순간 어깨가 가벼워지고 ‘왜 지금 내 마음이 가볍지?’ 갑자기 짐을 어디에 두고 온 걸 망각한 것처럼 그런 순간이 삶에서 있더라. 내 삶은 별로 변하지 않을 거고 고통은 계속될 거고,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같은데 적어도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람이 삶을 견디다 보면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이 평온하게 보일 때가 있더라.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리 기자: 이런 생각을 (배우들과) 같이 나누고 촬영했나?
김소희 배우: 평소에 가을이랑 많이 다르다. ‘왜 고양이를 키우니?’에 일상적으로 더 가깝다. 동물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쪽이다. 아까 이야기했던 ‘(왜 그런 것에) 돈과 시간을 써?’ 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세계이고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양이 눈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겉모습으로 보다가 들여다보게 되고, 고양이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느껴지는 엉덩이 살의 느낌을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인생이란 조금 더 안 되더라도 더 좋은 곳을 향해서 노력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뭔가 더 발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속 간다면 어느 정도까지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구체적인 노력을 한다면 소통의 문제나 외적인 문제도 희망이 보인다. 상투적이고 제도권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가을과 요셉의 경우는 그런 외적인 게(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영화에서 그것이 없어도 ‘요셉을 만나고, 너무 예쁜 고양이를 만나서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생동감으로 오늘 하루 느껴서 걷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견디다 보면 굳은살이 배기고 하는 것처럼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니까 그 안에서 어떤 위로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래서 버릴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없는, 다시 돌아와서 오늘 하루 같이 길을 걷는 것, 그렇게 하루를 걷는 것이 삶이다. 그 때는 정말 잊어버리는 것 같다. 사실 그걸 찍을 때도 어떤 날은 가을이에 대해서 ‘왜 이렇게 하니’ 의문을 품다가도 어떤 날은 그걸 잊고 찍었다.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했던 것 같다.
성호준 배우: 가을이 집에서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찍히는 장면이 있다. 귀걸이를 만들면서 불안하고 적막하고 음악도 뭔가 좀 그러다가 연락을 기다리고 하는 게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 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시간이 쌓이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쌓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했을 때는 시간도 밀도가 높아진다. 지난 일주일 동안 했던 것들이 일 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그런 경험, 그런 것이 있다. 또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 병원에서 웃으면서 같이 이야기를 할 때, 두 사람에게 어떤 시간의 결이 쌓여있는지, 누가 그걸 볼 수 있고 그것을 둘 사이에서 드러낼 수 있는지, 누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서 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김혜리 기자: 영화에 대해서 평자 사이에서 <파스카>에 동의를 하느냐 물러서느냐의 분기점은 임신 12주 된 아이의 낙태 숏이다. 이 숏이 왜 거기에 있는가? 1차적으로 ‘이 숏이 관음적 쾌락에 봉사한다든가 선정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가?’를 물어봤고,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왔다. 2차적으로는 ‘이 숏은 인물의 묘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필수적이다’라는 것이 내 답이었다. 당연히 다 다를 것이고, 다른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역시 다 달랐다.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요셉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을이 택했다고 감독은 설명했는데, 태아의 죽음은 무엇과 교환이 됐다 생각하고, 그 장면 안에 있었던 김소희 배우는 다른 의견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안선경 감독: 가을이 낙태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낙태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낙태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낙태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그 당시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낙태의 흔적이 있었다. <귀향>을 쓸 때부터 (사람들이) 낙태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더라. 10년 정도 지난 후에도 계속 그 시기가 되면 생각이 난다고 한다. 막연한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가 낙태를 결정하는 게 대부분은 사실 되게 간단하다는 것이다. 키울 수 없다, 그리고 키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냥 당연히 병원에 가서 수술하는 것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했을 때 (낙태)수술을 한다는 게 되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를 수 없는 아이니까,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어떤 행위인지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낙태 장면을) 보여주는 가장 큰 이유는 ‘너희는 당연히 결합되면 안 되고 아이가 나오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부끄러우니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회피하고 싶은 어떤 것, 자신의 명예를 다치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한 일이 어떤 일인가. 가을이 낙태를 했을 때, 뚫고 나갈 방법이 없어서 택했겠지만, 적어도 그 아이가 남의 손에 의해서 버려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 자기 손으로 떠나 보내는 게 맞는 마음이 아닌가. 가을은 수습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고에서는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낙태를 하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 억제하고 가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으로 한 뒤에 ‘(관객들과) 같이 보자’ 이런 마음이었다.
김혜리 기자: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안을 생각했다는 것, 자칫 그 장면이 낙태 반대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누가 낙태 가해자인가?’ 가을이라는 모체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게 만들었던, 아무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랑을 반대한 사람이 낙태 행위의 주체이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막상 찍을 때는 어땠는가?
김소희 배우: 소품 팀이 갖고 왔는데, 실제 봤을 땐 너무 충격적이었다. 안 감독이 그걸 여는 손까지만 보여주고 얼굴을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내 얼굴은 이 때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얼굴이 더 끔찍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면에서 진실에 부합되지 않는 연기를 할 수도 있고 나 혼자 그 당시에 느끼는 생 감정이 나와 버릴 수도 있었다. 가을도 스스로 어쩌면 결정하는데 동참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값을 치러야 했고, (그게) 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너무 리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몸에 근육들이 마구 경직이 되기도 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관객들도 그렇게 느낀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제대로 대면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운이 좋아서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늘 바라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이 맞는 것도 아니기에 겪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힘들었다.
김혜리 기자: (요셉이) 군대에 간다고 한 다음에 가을이 아이를 돌보는 장면에서 낳은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사실 (시간의) 폭이 굉장히 넓은 것 아닐까? 물론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의도는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숏은 분명 그러고 싶었던 것 아닌가?
안선경 감독: 가을 입장에선 사실 시나리오 써서 돈을 못 버니까 그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다른일들을 해야 한다. 베이비시터도 그렇다. 가을이 어차피 애를 못 낳을 것이기에 아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걸 보면서 ‘뭐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니까 판타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뤄지지 않은 꿈이라는 의도가 있었다.
김혜리 기자: 영화를 보면서 박완서 작가의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라는 단편 소설이 생각났다. 거기에 보면 ‘나는 아기를 갖고 싶다. 기르고 사랑할 수 있는 아기를 갖고 싶다.’는 구절이 있다. 아이를 낳는 건 좋은 거고 안 갖는 건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기르고 사랑할 수 있는 아이라는 건 굉장히 복잡한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좋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영화에 대한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쳐야겠다.
역설의 영화, <파스카>를 보고 나서 드는 첫 생각이었다. 비극적인 내용이 아님에도 막막하고, 낙관적인 결말이 아님에도 희망이 느껴졌다. 안선경 감독의 영화에 대한 선언과도 같은 의견과 김소희 배우의 생각을 들으면서 이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평온함을 찾을 수도 있다는 역설은 실존의 순간마다 느낄 수 있는 삶의 성찰이다. <파스카>는 영화가 삶과 포개어지기 바라는 감독의 바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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