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사는 것, <순천>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가치
영화: <순천>_ 감독 이홍기
일시: 2014년 10월 9일
참석: 이홍기 감독
진행: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윤상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지난 9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순천>의 인디토크가 있었다. <순천>은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순천만과 더불어 흘러가는 삶을 다룬 영화이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관객과 감독이 마음으로 소통했음이 느껴졌다. 관객은 영화를, 감독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러 극장을 찾아주신 관객 한분 한분을 마음에 소중히 담아간 시간이었다.
진행: 진행하는 저는 고영재라고 하고요.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일을 두루두루 하고 있습니다. 먼저 감독님 요즘 개봉하고 어떠신지요?
이홍기 감독: 엄청난 기대와 함께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입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여기까지였나’ 하는 생각에 힘이 조금 빠지기도 하네요.(웃음)
관객: 감독님 집이 순천이신가요?
감독: 아니요. 서울입니다(웃음).
관객: 영화를 보면서, 정말 ‘순천이 이렇게 예뻤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진행: 혹시 지금 질문하신 분은 고향이 어디세요?
관객: 부산입니다(웃음).
감독: 처음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힘을 잠시 잃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요. 이렇게 몇 분 안 되는 분들을 위해 만드는 겁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다큐멘터리 사랑해주세요.
관객: 저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학생이고요. 제가 듣는 수업의 교수님께서 이 영화가 정말 좋다고 하셔서 보러오게 됐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다른 영화와 달리 계획은 있지만 끝을 모르는 거잖아요. 순천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오시는 분들의 이야기 면에서는 감독님이 원하시는 답으로 가셨는지 궁금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결말들이 있었을 텐데 만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순천은 제가 지금까지 다니면서 본 공간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그런 공간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꼭 그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단 생각을 했고요. 인물을 중심으로 찍는 것이 그동안의 방식이었고 그런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엔 공간을 먼저 잡게 되어 그 안에서 인물을 잡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할머니 보셨죠? 뚝심도 대단하시고, 배 타고 나가시는걸 보면 의지하고 싶어지는 마음같은 것을 느꼈어요. 누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갖겠어요. 그분에게서 어떤 힘을 느꼈고 오랜 시간 관찰하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찍기까지는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웠어요. 러브스토리가 배경이고,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또 자연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들 등등.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논리를 찾아내면서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진행: 연관 되는 건데, 촬영을 그만 해야겠다고 느꼈던 계기가 있나요. 1년 찍을 수도 있고 3년 찍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감독: 큰 사건이 별로 없었어요. 밋밋하더라도 1년을 들여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다 보니 1년이 되어갈 때 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후에 또 6개월이고 1년이고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도저히 할머니한테 카메라를 들이밀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접었습니다.
관객: 이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이 보통 다큐멘터리는 인물이나 자연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 영화는 두 가지를 잘 버무려서 만들어진 점이었어요. 사실 이 두 가지가 멀리 떨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에서 이 두 가지를 보여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한마디로 삶입니다. 갈 행(行). 그걸 삶이라고 봤어요. 어떤 삶인가하면, 자연에 따른 삶. 자연의 섭리에 따른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처음부터 생각을 했고, 그게 딱 주인공의 공간과 맞아떨어졌어요.
자연의 삶이란, 새에게 언제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정확한 시기에 감으로 날아오고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휴식을 취한 뒤 또 어딘가로 돌아가잖아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시계를 가지고 살아가죠. 저는 이걸 남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럼 우리가 버렸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어요.
할머니가 그러셔요. 몇 시에 나가시냐고 물으면 “글쎄 열한시쯤 될까? 열두시 쯤 될까?”하세요. 처음엔 시골사람이라 시간 개념이 없으시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감각적으로 아시더라고요. 깜짝 놀란 건 50가구가 있는데 그 시간대가 되면 약속한 듯이 한 번에 다 나오시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은 어떤가. 제가 거기서 느꼈던 것들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관객: 저분들은 배우가 아니라 그냥 자연 그대로의 분들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감독님은 조금 힘드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
감독: 자연에게 위장하고 연기하라고 할 수 없잖아요. 자연을 찍듯이 똑같이 사람을 대했고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생활에 들어가지 않으려 애를 썼어요. 그 점이 조금 힘들었어요. 아예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잊으며 찍었어요. 카메라도 단 한 대로 끝까지 전체를 찍었어요.
어떻게 그런 연기가 가능하겠습니까.
진행: 할머니를 전 한번 뵀는데, 굉장히 쑥스러워 하시더라고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쑥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께서 카메라를 의식하시지 않도록 촬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동하셨구나’ 생각했어요.
관객: 감독님이 처음에 들어오셔서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데요. 기대를 많이 가지고 오셨는데 관객 분들이 조금 적어서 마음이 그렇다는 말씀을 듣고서, 감독님께서 작업을 하시면서 기대하셨던 게 단순히 관객 수나 명성 같은 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기대했던 건 무엇이셨는지 궁금하고, 작업마치고 감독님이 얻으신 게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삶에 대한 가치를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는 더 바랄게 없죠. 사실 그런 기대도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어요. 기대치라는 게 수의개념을 두고서 판단하는 건 아니고, 아까 제 말은 애교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적지만 적은 분들과의 소통 기회가 굉장히 소중해요. 여러분들과 같은 소수의 관객들이 저희가 지탱할 수 있도록 끝까지 힘을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행: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정말 감독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분들도 또 하나의 인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관객: 할머니도 이걸 보셨고 순천에 사시는 분들도 이걸 보셨을 것 같은데, 어떤 얘기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할머니는 딱 한마디 하셨어요. “아따 내가 너무 추잡스럽게 나왔구마잉~”(웃음)
순천에서 시사회 할 때는 극장이 거의 꽉 찼었는데, 그때는 부끄러워하셨어요. 그런데 관객 분들이 전부 용기를 주셨어요. “너무 예쁘게 나오셨다.”, “삶의 위안을 받아서 나도 할머니처럼 더 힘 있게 아이들을 키워야겠다.” 이런 얘기를 들으시더니 나중에는 할머니 생각처럼 이상하게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저한테 차려주시는 밥상이 달라지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주변 분들은 다들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전엔 ‘작품 잘 봤다’고 말씀하시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진행: ‘순천’이 함의하는 바가 사실 느리게 사는 것이거든요. 저희도 느릴지언정 끝까지 한 분 한 분 관객 분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남아주신 여러분들 정말 소중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독: 꼭 나중에라도 어떤 곳이라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아는척 해주세요. 저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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