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 속 세 가지 이야기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리뷰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감독: [연필로 명상하기] 안재훈 한혜진
원작: 김유정 [봄•봄],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진영 님의 글입니다 :D
◈ [인디즈] 한 줄 관람평
윤정희: 현대 문학 작품과의 특별한 조우. 진작에 만들어졌어야 했다.
김은혜: 한국문학이 수채화풍 애니메이션과 만나 또 다른 문학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이윤상: 아름다운 문장이 살아 움직이는 기적같은 영화, 보고나면 마음이 착해진다.
신효진: 더 이상 암기를 위해 별표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작화와 연기에는 나도 모르게 밑줄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윤진영: 서정적인 장면의 아름다움, 판소리의 재치, 애잔한 음악의 3박자.
세 편의 소설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어 찾아왔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다. 달 밝은 밤, 소금을 흩뿌린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이나 심술궂은 장인님의 얼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 아이의 지친 울음소리와 비린내 같은 것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들로 소설이 영화가 되었다. 영화는 독립적인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메밀꽃 필 무렵’은 서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아름다웠다. 영화는 봉평 장터의 활기 가득한 소란스러움과 함께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메밀꽃이 끝도 없이 펼쳐진 달밤에 허생원이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다. 그 하룻밤의 추억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과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음악이 무척 잘 어울렸다. 마지막에 허생원이 동이를 바라보는 그 여운이 흩날리는 메밀꽃과 함께 마음에 오래 남는다.
두 번째 이야기 ‘봄봄’은 김유정 문학 특유의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봄봄’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이자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잡는 것은 바로 판소리이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판소리는 앞의 ‘메밀꽃 필 무렵’을 잠시 잊고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심술궂은 장인님과 어수룩한 주인공의 싸움도 재미있고 토속적인 분위기가 따뜻한 느낌을 준다. 꽃가루가 코를 간질이고 마음이 괜스레 들뜨는 봄에 점순이와 주인공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비록 주인공이 눈치가 없지만 뭐 어떠랴.
세 번째 이야기 ‘운수 좋은 날’은 마지막 장면이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 비극이다.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제 강점기 서울, 전차가 다니는 곳에서 인력거를 끄는 김첨지의 모습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이상하게 운수가 좋던 그 날의 처량한 분위기가 음악으로 정말 잘 표현되었다. 배우 장광과 류현경의 목소리 연기도 인상적이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면 몸이 가벼워지고,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지던 돈을 벌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초조해지던 비극적인 아이러니 속에서 거친 말과 무뚝뚝함 속 김첨지의 투박한 애정이 안쓰럽고 애잔하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간 작가들의 이야기이다. 그 시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너무나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되었다. 1920-1930년대에 발표된 소설, 식민지 시대를 살던 작가들의 소설이 이 영화에서 하나로 묶였다. 장돌뱅이의 애환, 농촌의 풍경, 도시 하층민의 삶이 그려진 이 세 가지 모습의 영화를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재치에 웃고, 비극에 애잔했다. 한국단편문학이 앞으로도 더 많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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