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히어로한줄 관람평


이지윤 |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박범수 | 지친 아버지를 말없이 보듬는 가족이라는 이름

조휴연 | 7년이 지나고 나서 아이는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게 됐다. 아이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최대한 | 너무나도 이르게 '현우'를 어른으로 만든 세상이 밉다

김신 | 투쟁의 현장 이면에서 발견한 사려깊은 시선

남선우 | 소년, 세상의 '어른'(들)을 만나다






 <안녕 히어로> 리뷰: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학교에서 채워오라고 한 생활기록부 조사용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아빠의 직업을 적는 칸 앞에서 고민한다. 사회운동가, 해고자, 노동운동가. 몇 가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딱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한다. 아빠는 결국 스스로의 직업을 ‘노동운동가’라 적는다. 장래희망에 대해 적는 칸 앞에서도 고민한다. 지도자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아빠는 지도자라는 단어가 너무 포괄적이라 말한다. 고민 끝에 현우는 조사용지에 ‘CEO’라는 단어를 연필로 꾹꾹 눌러 적는다.





<안녕 히어로>는 2009년 진행되었던 정리해고에 맞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노동운동을 이어온 김정운 씨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다. 작품은 김정운 씨가 아닌 아들 현우의 시선으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노동과 해고, 투쟁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릴 적부터 목격한 복직 투쟁의 현장. 아버지의 징계구속으로 인해 주눅이 들어있었던 사춘기. “아빠가 해낼 줄 알았어”라 말하며 아빠를 이해하게 된 순간까지. 주변부에 서있는 노동자 가족의 시선으로 긴 시간의 흐름이 차곡차곡 정리된 작품은 노동 투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특히 그 시선이 아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드러나는 성장의 흔적은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려 깊은 카메라의 시선이다. 현우는 아빠의 상황을 지켜보는 자신의 이해와 감정을 담담하게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때로 현우는 길게 침묵하기도 하고 어딘가를 조용히 응시하며 눈을 깜빡이기도 한다. 카메라는 현우의 그런 침묵을 방해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현우를 고요히 바라보는 카메라는 현우가 지닌 공기와 표정 속에 담긴 정서를 작품 속으로 흡수시킨다.





그런 카메라의 시선은 아빠 김정운 씨와 현우의 관계와도 닮아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밝히기 위한 5년간의 법정 싸움에서 패소한 날, 현우와 동생은 TV를 통해 재판이 끝난 현장을 지켜본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아빠는 쓰라린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족발과 카스테라를 들고 온다. 현우와 동생은 아빠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대신 ‘아빠 TV 나온 거 봤어’라 말하며 히히 웃는다. 아빠도 아이들의 장난에 웃음기 띤 몇 마디의 말을 건넨다. 엄마와 함께 아빠의 연설을 들으러 갔을 때도 그렇다. 현우는 아빠에게 다가가는 대신 휴대폰으로 연설 중인 아빠의 모습을 오래도록 찍고 미소를 띤 얼굴로 아빠를 바라본다. 연설이 끝난 후 현우는 아빠에게 다가가 ‘아빠 마이크 드니까 목소리가 왜 그렇게 바뀌었어?’라며 장난을 친다. 또 다시 장난스러운 몇 마디가 오간다. 이처럼 현우와 아빠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로의 언어를 건네기 보단 시선으로 위로를 하고 분위기로 대화를 나눈다. 마치 그런 그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말이다.



현우는 아빠의 세상을 이해한다. 눈에 띄는 당장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긴 시간동안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말한다. 그런 아빠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현우에게 찾아든 것은 바로 세상이 가진 경사에 대한 자각이었다. 현우는 세상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너무도 일찍 깨달아버렸다. 조사용지에 적힌 ‘CEO’라는 글씨와 높은 사람에게 붙어있는 처세가 필요한 세상임을 알았다는 목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먹먹함이 들게끔 만든다.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투쟁이 현재진행형의 것임을 드러내며 마무리된다. 아직 130명의 복직 대기자들이 남아있다. 끝나지 않은 투쟁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동시에 <안녕 히어로>가 드러내는 것은 현장에서 길고도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다. 작품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보단 분위기로 감정을 주고받는 것, 한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시선이 연대와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녕 히어로>가 보여주는 이런 자세는 어쩌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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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한줄 관람평


박범수 | '바보 노무현'의 꿈을 이을 수많은 무현들을 위하여

조휴연 | 우리는 도전하려는 사람을 팔짱 끼고 바라보지는 않았나

이가영 |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도전

김신 | 붉은 눈시울, 회한의 술잔으로 구가하는 표상(실재가 아니다)의 강신술. 그 자체로 2017년 한국을 관류하고 있는 어떤 징후.

남선우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 (<라라랜드> 중)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 리뷰: 잊은 것들을 위한 기억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 

(People love what other people are passionate about. You remind what they forgot.)

-영화 <라라랜드> 중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을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어두운 파랑이 되어있었다. 그 어두운 파랑이 보라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영화의 대사를 떠올렸다. 그 하늘을 닮은 빛깔을 뽐내던 영화 <라라랜드>(2016)의 대사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린다는 말. 그리고 열정이라는 단어 앞에는 ‘정의로운’ 혹은 ‘꾸밈없는’ 등의 형용사를 붙여도 좋을 것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은 두 ‘무현’의 열정에 관객들이 끌리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는 무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총선 도전기를 교직하여 만든 다큐멘터리다. 화자인 작가 김원명이 2000년 부산의 노무현과 2016년 여수의 백무현을 찾아 나선다. 역사가 스포일러인지라 이들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도전의 과정에서 두 무현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품는지 지켜볼 수 있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볼 수 있다. 곪아 있는 세상 한 구석을 바꿔보겠다고 달려가는 그들의 열정에 끌려가면서 말이다. 카메라가 그들의 말과 마음의 간격을 좁히고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점이 좋았다. 욕망하는 정치인, 호소하는 정치인, 아파하는 정치인, 일하는 정치인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 욕심도 있는 인간, 호소할 줄 아는 인간, 아파도 하는 인간, 일해야 되는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따라 걷는다. 이 점은 영화가 두 축으로 세운 노무현과 백무현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기인한 동시에 그 인물을 다루는 방식의 진정성에 기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이 ‘무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객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이루는 두 축이 노무현과 백무현의 총선 도전기라면, 다른 한 축은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화자 김원명 작가를 시작으로 그의 지인들, 팟캐스트 ‘이이제이’ 출연진들의 술자리 대화들이 영화 중간 중간 삽입 된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술자리 영상은 사실 영화의 주된 내용인 2000년의 노무현 총선 도전기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격인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그들이 노무현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주로 피력하고 있다고 한들)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두 무현, 두 도시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독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에 크게 기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세 번째 축도 오직 노무현을 향해 집중되어 있으며, 고 백무현 화백조차 노무현과의 만남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 영화에 등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고 백무현 화백의 정치 입문과 총선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던 관객들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을 관객도 알 것이라는 점을 견지한 채로 달리는 듯하다. 노무현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백무현이라는 사람도 노무현의 정신을 잇고자 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도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가 노무현을 기억하는 독창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채워지지 못했지만, 두 무현의 이야기를 나눴기에 두 배의 열정을 기억하게 해줬다는 점에서는 ‘두 도시 이야기’가 할 일을 했다고 본다.


아파트 단지 유세 중 ‘부산 갈매기’의 가사를 까먹어 가사 다 떼고 오겠다고 멋쩍게 마이크를 내려놓은 노무현은 총선 패배 후 해단식에서 목청껏 부산 갈매기를 완창 한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에서 수 십 개의 에피소드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당장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산 갈매기이다. 작고 분명하게 시작하고 싶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려버린 사람이 차근차근 잊고 있던 불씨를 되살려낼 방법이라고 믿는다. 잊은 것들을 위한 기억, 그 기억에 대한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 컷>과 가을을 시작할 수 있음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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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기한줄 관람평


이지윤 | 풍경만으로도 참 곱고 풋풋하다

박범수 | 섬세하게 재구성된 서정적 아름다움의 세계

조휴연 | 원작과 해석 사이, 치열한 고민 끝에 제작진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순수한 감정들

이가영 | 우리의 추억으로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김신 | 여러 의미에서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현 상황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를 제공한다

남선우 | 오래 펼치지 않았던 동화책을 찾아 읽는 기분으로





 <소나기> 리뷰: 섬세하게 재구성된 서정적 아름다움의 세계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년 소녀의 애틋한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에 옮길 것인가? 안재훈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 <소나기>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는 우직한 정공법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 보면, 동시대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손길이 여기저기에 묻어있다. <소나기>는 원작의 평이한 답습이 아닌, 섬세하게 재구성된 서정적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불릴만하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내용이겠지만, 영화의 줄거리(이자 소설의 줄거리)를 한 번 간략하게 옮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소년은 등굣길 징검다리에서 윤 초시네 증손녀를 만난다. 하루는 소녀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소년에게 돌멩이를 던진다. 소년의 무덤덤함에 괜히 새침해진 것이다. 며칠간 나타나지 않던 소녀는 다시 개울가에 나타난다. 대뜸 비단조개의 이름을 묻는 소녀에게 이끌려 소년은 산 너머로 향한다. 논밭과 무 밭을 지나 산자락에 다다른 소년과 소녀는 꽃줄기를 따고 송아지를 타고 놀다가 소나기를 맞는다. 둘은 원두막에서 간신히 비를 피한 뒤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지만, 병약한 소녀는 앓아 눕고 만다. 며칠이 지나고 소녀는 개울가에 다시 나타난다. 스웨터에 든 물이 징검다리에서 업혔을 때 옮은 것이라고 말하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이사 갈 소녀에게 줄 호두를 따 온 소년은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여러 날을 앓던 소녀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자기가 죽거든 입은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소나기>와 원작 소설의 차이를 짚어내기 위해 줄거리 요약을 옮겨 놓았다. <소나기>가 원작에서 덜어낸 것은 간결한 문장들 사이사이에 스민 어떤 서늘함이다. 가세가 기울어 이곳 저곳을 떠돌아야 할 소녀의 비극적 운명이나 소녀의 유언을 전하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영화 속 소년과 소녀의 감정 또한 첫 만남의 설렘이 주는 미묘한 긴장에 보다 집중하는 듯 하다. 감정묘사 대신 행동묘사에 집중한 소설의 문체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틀 안에서 짧은 대화와 행동만으로 숨겨진 뉘앙스들을 오롯이 표현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덜어낸 부분을 영화가 어떻게 채워 나갔는지에 대한 대답이 나올 차례다. <소나기>는 원작에서 묘사되지 않은 부분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원작과 완전히 다른 감상을 요구한다. 소설에서 생략되고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들은 공간적 배경이 되는 시골의 정경이다. 밥짓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오르는 정겨운 오두막집, 추수를 앞둔 황금빛 들녘, 징검다리 아래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이미지들은 그 예다. 보라빛깔의 도라지 꽃이나 빗물을 머금은 푸르른 녹음처럼 소설에 직접 등장한 것들도 한층 더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시각적 묘사들의 섬세함을 상찬하는 것만으로는 <소나기>가 전하는 감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교정에 울려 퍼지는 풍금 소리와 송아지 치는 농부가 튼 상투는 어쩌면 그 설명을 위한 숨겨진 단서일 지도 모른다. 풍금과 상투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과 어울리는 지가 다소 불분명하지만, 2010년대를 사는 도시민들이 시골의 느낌을 명징하게 환기하는 데에는 더없이 적절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시골에 얽힌 우리의 어렴풋한 기억들을 환기하면서 그 안에 담긴 감성을 함께 불러낸다. 그 감성이란 때묻지 않은 순수에 대한 그리움이다. 수채화풍으로 묘사된 시골 정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색감이나 구도의 문제가 아닌, 그 아름다운 풍경이 소년 소녀의 이야기와 맞닿으면서 우리 내면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환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나기>는 원작과 많은 부분에서 닮았지만, 그 무게에 과하게 억눌리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신만의 길을 발견해 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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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한줄 관람평


이지윤 | 누군가의 소박한 일상으로 개발의 민낯을 이야기하다

박범수 | 잊혀져 가던 사람들, 카메라 너머의 기록과 역사를 응시하다

조휴연 | 아직 사람이 산다

이가영 | 흘러가는 강물 속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일

김신 | 사주팔자보다 강렬하게 밀려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풍랑. 소멸의 예감 앞에 선 절박한 침묵과 움직임이 빚어낸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남선우 | 보지 않았던 것들을 비로소 바라볼 때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 아직 사람이 산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할머니가 경고장을 들고 눈앞에서 흔들어대도, 시장은 도개교 개통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과 악수하기 바쁘다. 자꾸 경호원들 사이로 피해 다니며 숨는다. “저 다리 올라가는 거 봐야 되는데” 서병수 부산시장은 배남식 할머니의 외침을 짐짓 외면하며 말한다. ‘다리 올라가는 거’를 다 보고 나서 시장은 바쁘게 점집을 지나쳐 사라진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 사이에는 오래된 도개교가 있다. ‘영도대교’라 불리는 이 다리는 1931년 착공해 1934년 준공되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역할을 했다. ‘한국 최초의 연륙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영도대교는 2013년 도개 기능을 복원해 새롭게 개통되었다. 





부산과 영도를 잇는 다리가 생긴 그 때부터, 일제가 패망한 뒤 한국전쟁이 한반도 전체를 고통스럽게 할 때,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을 때, 영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사람, 전쟁을 피해 위에서 내려온 사람, 원래 영도에 살던 사람들. 가족과 떨어져서, 혹은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할,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던 부산 사람들은 영도대교 밑으로 갔다. ‘점바치 골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자기 인생이 언제쯤 풀릴지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다. 묻고 대답하며, 위로해주고 위로받으며 영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오늘 영도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겐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들과 낡은 골목만 보인다. 이 사람들은 건물을 새로 올리고 길을 닦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영도를 구경할 곳으로 만드는 게 활성화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점바치 골목에 두 개만 남은 점집도 이들에게는 눈엣가시다. 강해춘 할머니의 바닷가 일터는 지저분해 보일 뿐이다. 활성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영도는 갈아엎어야 할 낡은 섬이다. 그렇게 용접공 권민기 씨의 일터가 사라졌고, 강아지 할머니 방에는 ‘이사 가는 날’이 적힌 달력만 남았다. 해녀 할머니의 공간은 굴삭기가 헤집었다. 배남식 할머니의 점집 또한 결국 사라졌고 그 자리엔 운세 자판기가 남았다. ‘활성화’가 지나간 자리를 카메라가 비춘다. 영도를 만들어 온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까지 활성화의 일환이었나, 그렇게 생각될 정도였다. 새 영도대교 앞엔 사라진 점바치 거리 대신 ‘유라리 광장’이라 새겨진 비석을 바라보는, 운세 자판기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영도대교가 도개하는 장면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뿐이다.





하지만 영도에는 아직 사람이 산다. 배남식 할머니는 운세 자판기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노상으로 점을 본다. 용접공이었던 권민기 씨는 환경미화원으로 먹고살며 바닷가에 나가 때때로 색소폰을 분다. 강아지 할머니와 해녀인 강해춘 할머니의 경우 어디로 갔는지 영화 안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삶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바뀐 영도처럼 ‘활성화’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앞서 언급한대로 시장은 계속되어야 할 영도 사람들의 삶보다는 ‘다리 올라가는 거’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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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한줄 관람평


이지윤 |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자유

박범수 | 똥오줌을거를줄아는이똑똑한멍청이들이씨발존나사랑스러워!

조휴연 | 국가보안법은 무엇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최대한 | 레드 콤플렉스를 향해 마주선 못난이들

이가영 | 한국적인 리얼리티의 소산

김신 | 지엄하신 분들의 이해와 사상이 아연한 곳에 난입한 저속한 소동극. 음악적인 비체들의 섬광 같은 연대기.

남선우 | Why so serious? 설명이 필요 없는 조커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리뷰: 못난이들이 던진 작은 돌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밤섬해적단’의 못난이들은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한국 현대사의 레드 콤플렉스 앞에 마주선다. 그들은 ‘메탈’과 ‘반어’라는 무기를 등에 지고 레드 콤플렉스에 작은 돌을 던진다. 정윤석 감독은 그러한 밤섬해적단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았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밤섬해적단의 행동과 그들의 음악은 정신이 나간 것만 같다.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러웠고 미친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를 봤던 첫날밤, 밤섬해적단을 다양성의 범주에서 인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다음 날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극장에 찾았다.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때 무섭게도 그들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밤섬해적단의 모습을 보면서 웃기 시작했고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과 방향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과 행동의 목적성에 의문을 가지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시끄럽게, 북한이라는 예민한 소재의 가사로 음악을 만드는 것인가?



그들은 아주 시끄러운 음악으로 북한을 가지고 놀며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또한 레드 콤플렉스를 건드리면서 과거의 정부들을 자극한다. 그들의 자극은 국가의 심기를 건드렸고 박정근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는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한다. 사건이 일어난 초기, 국내 언론을 비롯해 해외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은 어느새 잊혀졌다. 결국 밤섬해적단이 한국 현대사의 레드 콤플렉스를 향해 던진 작은 돌은 조그마한 흠집만 남기고 잊히고 있었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난 8월 24일 개봉했다. 과거 밤섬해적단이 던진 작은 돌은 지금 조금 더 커졌다. 큰 균열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레드 콤플렉스를 돌파하는 작은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북한에 열광하는 반공주의자, 단순한 미친놈들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고 세상을 부수어나가는 밤섬해적단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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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범자들한줄 관람평


이지윤 | 언론, 눈물 나는 블랙 코미디

박범수 | 공고한 언론탄압의 역사 10년, 그에 맞선 투쟁은 현재 진행형

조휴연 | 기록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잘못을 찾아가는 끈질긴 추적의 기록이라면 더더욱 소중하다.

최대한 | 작은 균열이 '표현의 자유'로 이어질 수 있기를

이가영 | 언론 장악의 시작,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김신 | 날 것의 카메라, 집요한 직업정신으로 얽어낸 역사의 포승줄

남선우 | 부을 눈, 막힐 기, 차려야 할 정신을 위한 찬물 준비 필수





 <공범자들> 리뷰: 언론 장악의 시작, 끝나지 않은 투쟁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 점령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보도 후 여론이 확산되자 MB정부는 큰 타격을 받는다. 언론이 문제를 부풀렸다고 판단한 정권은 배후에서 언론 장악을 주도한다. KBS의 구성원들은 정권 인사를 막기 위해 투쟁하지만 KBS이사회는 해임 결정 당일 경찰을 투입한다. 무력을 행사하는 권력 하에 기자, PD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2년후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취재 보도한 MBC에도 권력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언론장악의 주범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공범자들이 공영방송의 수뇌부로 자리잡았다. 정치와 공공정책을 분석하고 팩트만을 전달하는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대신 정권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새로 편성되었다. 방송사에서는 살벌한 분위기가 흘렀고 방송 검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 반격

파업에는 타협이 없다고 한다. 파업이란 구성원들이 조직 안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목소리를 내는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MBC는 파업에 참여한 기자, PD, 아나운서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내쫓기 시작한다. 당신들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 많다는 충고를 하며 그들의 노력을 조롱한다. 수년간 일해온 구성원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윗선들의 가치관은 곧 MBC의 경영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언론인들은 선택을 빙자한 침묵을 강요 받았다. 타협 할 수 없는 조건을 들이밀며 선택해보라는 제안에 그들은 공범자들에게 되묻는다. “제게 선택권이 있긴 합니까?” 





- 기레기

<공범자들>은 언론의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생명을 기만하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은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오보를 은폐하려 했다. 현장 취재기자의 보고를 묵인하고 정권의 가이드라인만을 따라 보도했다. 방송사 내부에서 탐사보도팀의 존재와 역할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언론을 회복시킬 수 없게 되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취재하러 간 기자는 시민들의 질타를 받는다. 공영방송사 취재 차량과 카메라를 보자마자 시민들은 격양된 목소리로 철수하라 소리친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무리 진실을 숨기려 해도 국민들은 정확히 알고있습니다. 언론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을 모두가 느끼고있어요”





<공범자들>의 한 장면인 과거 MBC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투쟁중인 언론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간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부당한 현실에 징계와 해고 통보를 받은 언론인들의 이름이 엔딩크레딧으로 올라간다. 한 명 한 명 그 이름을 보려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엔딩크레딧이 아주 천천히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다 읽어내지 못했다. 지금도 침묵을 깨고 사실을 전하려다 제작현장에서 쫓겨난 기자와 PD들이 많다. 무너진 언론을 회복시키는 건 시간도 돈도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다. 부패한 언론의 제일 큰 타격을 받게 될 대상은 바로 평범한 우리들이다.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언론 탄압 10년 동안 수 많은 언론인들이 침묵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겠다. <공범자들>은 역사 속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지금도 투쟁하고 있을 그들에게 드라마 '미생' 속 대사를 인용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남들한테 보이는 건 상관없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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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창작의 능력과 무능력 사이의 긴장감과 설레임

이현재 | '그녀들' 대신에 '여자들'

이지윤 | 어느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김은정 | 내가 가장 부자연스러웠어






 <여자들> 리뷰: 어느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0.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


영화는 여름과 가을의 어스름한 경계에서 시작된다. 저무는 여름의 공기 사이로 한 남자가 등장한다. 뒤이어 흐르는 남자의 내레이션은 그가 ‘시형’이라는 이름을 지닌 작가임을 드러낸다. 시형은 매달 연재하기로 약속한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간 시형은 고양이를 찾으러 온 ‘여빈’을 만난다. 고양이를 기다리며 둘은 함께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흘러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둘 사이에는 사랑 이전의, 말로 쉽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든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보랏빛 색감이 하늘을 완연히 물들이면 여빈은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시형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까만 밤이 오면 시형은 혼자 남는다. 여빈은 내일 이사를 떠날 것이다. 시형은 여빈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좀처럼 써지지 않던 글을 완성시킨다. 만남과 이별로 어느 계절이 저문다.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그 다음 책장을 넘긴다. 그 뒤로도 시형은 네 명의 여자들을 만난다.


 



1. 풀코스와 디저트,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


<여자들>은 독립적으로 보이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포개지며 선명한 하나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여섯 개로 나뉜 에피소드들은 시형이 잡지에 달마다 연재하는 글을 닮았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는 다섯 여자들이 등장한다. 우연히 만난 다섯 명의 여자들은 시형에게 질문과 고민을 던지기도 하고, 때론 영감과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프롤로그인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 이후 이어지는 두 에피소드 ‘풀코스와 디저트’,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엔 ‘서진’과 ‘수진’이라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시형의 대학 후배인 서진은 과거 시형이 쓴 미완의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형에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수진과 시형의 관계에서는 일종의 대립이 드러난다. 수진은 글을 쓰는 이유조차 모르는 것 같다며 시형에게 핀잔을 놓는다. 담담한 감정을 지닌 다른 인물들과 달리 수진은 대립을 통해 시형에게 불편하고 언짢은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수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에서 카메라는 유난히 긴 호흡으로 둘의 대화를 담아낸다. 그리고 이는 둘의 대화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변화와 시형이 앓게 될 고민이 구체화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2. 아름다움의 취향? 이게 다에요.


‘아름다움의 취향’과 ‘이게 다에요’에서는 시형이 성장으로 도약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아름다움의 취향’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든’이란 인물의 매력이다. 시형은 이든과의 만남에서 가장 가벼워 보인다. 그의 고민이 이든과의 만남을 통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든의 경쾌함으로 인해 에피소드는 생기를 띠고, 에피소드가 가진 밝은 분위기는 시형이 어떻게든 성장이란 영역으로 한 발자국 더 도약할 것임을 암시한다.


<여자들>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감각적인 화면 연출과 색감이다. 작품은 평범한 중국 음식점마저도 풍부한 감성으로 담아낸다. 그런 감성적인 화면은 담담한 듯 많은 의미가 담긴 대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여자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오키나와에서의 장면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시형은 우연히 만난 ‘소니’와 평범한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글을 쓰는 원동력을 발견한다. 그것이 기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특유의 화면 연출 때문일지 모른다.


 




3. 오늘의 그는 어제와 다르다.


다섯 여자들 중 누구도 시형의 곁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시형의 표정은 밝고 몸짓은 가볍다. 그의 가벼운 몸짓은 프롤로그에 등장한 여빈의 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 위에는 원고지가 놓여있다. 시형은 자리에 앉아 원고지 위에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내려간다.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주변으로 산뜻한 바람이 분다. 오늘의 그는 분명히 어제와 다르다. 시형은 춤을 추듯 가벼운 몸짓으로 그가 보내게 될 수많은 계절의 책장을 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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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한 당신한줄 관람평


송희원 | 광기와 재난에 맞서 "난 이렇게 살아"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현재 | 당신을 비추는 거울. 그것은 벽이고, 어쩌면 문.

박영농 | 불온 혹은 불안

이지윤 | 불온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은 그저, 당신

김은정 | 내가 '나'이기 위한 조금은 어지러운 나열






 <불온한 당신> 리뷰: 불안한 당신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1.

우선 영화의 전개를 살펴보자. 영화는 ‘바지씨’ 이묵의 일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묵은 카메라 앞에서 20세기 한국의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를 ‘선배님’이라 호칭하는 감독 이영은 지극히 담담하게 그 모습을 담는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웃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지극히 담담한 그 모습. “남자여, 여자여?”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이영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걸 왜 물어봐” 이묵은 대신 대답한다.




 

2.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족속들처럼 여겨지는 성소수자들. 그들의 출현은 과연 시절이 수상해 그런 것일까. 이묵은 20세기의 서울 곳곳에 모여 살았던 성소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소수자는 요즘에서야 생겨난 족속들이 아니다. 언제나 존재했다. 그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해왔으며 주기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등 지극히 ‘주류’적인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그들의 후배를 자처하는 감독 이영은 카메라를 매개로 강제된 단절과 공백을 간결한 필치로 메우고 있다.

 

3.

20세기 국가는 성소수자의 친목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 깡패들이 모여 데모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는 불안했다. 데모가 불안했고, 데모로 이룩될 민주주의가 불안했고, 민주주의 이후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그 세상을 불안해했다.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명확한 적을 필요로 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환상을 필요로 한다.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세상을 겨냥한 불안은 빨갱이라는 적을 설정했고, 빨갱이를 제거하면 모든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믿도록 했다.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길 바랐던 성소수자들은 자연스레 빨갱이가 되었고, 해소되어야만 했다.

 




4.

카메라는 21세기의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성소수자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나라를 시끄럽게 하려는 목적은 적화통일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므로 따라서 성소수자들은 빨갱이라는 정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제거의 대상인 성소수자들은 한편 가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섹스에 중독된 정신병자들은 충분히 가엽고 다시 ‘주류’로 수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성소수자’라는 정식은 나름 일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의 20세기와 21세기는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는 왕을 보니 더욱 그럼직하다.

 

5.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혐오 시위의 현장에는 이전 장면에서도 보았던 얼굴들이 반복 등장한다.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조사 반대, 세월호 특조위 연장 반대, 퀴어문화축제 반대 등 다소 거리감이 있는 개별 주제들을 총 망라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되는 키워드는 ‘반대’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을 덧붙이자면 그 모든 반대의 기저에는 청와대의 보조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금으로 반대를 샀다는 걸까. 참 일관적이다.

 




1-1.

불안은 일관적이다. 불안은 일관적으로 불온을 만든다. 불온한 당신이 있다면, 불안한 당신이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불온한가 아니면 불안한가. “불온혀, 불안혀?” 이 호기심 어린 물음에 누군가는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누군가의 누군가는 대신 대답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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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리브 올리브한줄 관람평


송희원 |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이현재 | 올리브 나무 사이로, 사람이 산다

이지윤 | 올리브 나무를 심는 사람들

김은정 | 정의란 '뭣'인가?






 <올 리브 올리브> 리뷰: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점령은 삶을 파괴했다.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자신의 땅에서 내쫓겼고, 다시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자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에 갔다. 여자들은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 해 직장을 얻어야 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향으로부터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바로 <올 리브 올리브>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다.  





서안지구 나블루스 주의 작은 마을 세바스티아에 거주하는 위즈단은 워킹맘으로 평범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위즈단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올리브 나무를 수확해 10남매를 키워냈다.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인구 70%의 주 수입원인 동시에 그들의 민족성과 역사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그 올리브 나무가 뿌리 뽑힐 위기에 처했다.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올리브 농장은 이스라엘 점령 하에 일 년에 단 열흘만 통행이 허락된다. 우물을 파는 것마저도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접경지 주민들의 집과 사원이 피해를 당했다. 농경지 주민들 가옥 역시 공격으로 무너져 이제 그들은 구호단체 텐트에서 생활하며 가축을 돌본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행의 자유를 거두어가는 동시에 그들을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둬놓고 숨통을 조인다. 인티파나(intifada, 이스라엘의 통치에 저항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으킨 봉기) 때 자식을 세 명 잃은 무함마드 할아버지와 그 통한으로 온갖 병을 얻은 할머니. 반란 운동에 참여하다 친구를 잃고 11년 동안 감옥에서 젊음을 보내야 했던 알리. 역시 인티파나에 참여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지금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핫산. 그리고 영화 내레이션을 맡아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의 일상을 들려주는 위즈단까지. 카메라는 그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개개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가족 프로덕션 ‘상구네’의 김태일, 주로미 감독은 아들 상구, 딸 송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에 갔다. 약 2년간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가까이서 촬영했기에 그들의 힘 있는 증언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증언에는 분노와 한이 서려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기억은 그렇게 <올 리브 올리브>에 차곡차곡 담겼다.  





팔레스타인인은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역사와 현재의 참상을 알리려 노력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된 과거뿐이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필사적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고 또 알려서 그들의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결코,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비록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오직 구호와 돌멩이뿐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감독은 그 모습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처럼 그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곳 역시 고통스러운 바로 이곳, 점령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높은 분리 장벽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좌절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행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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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밍 보이즈한줄 관람평


송희원 | 청년들 땀으로 꿈을 경작하다

이현재 | 세계를 돌고 돌아 얻은 단순한 답변. 단순하기는 어렵다.

이지윤 | 삶도 영화도 유기농

김은정 |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파밍 보이즈> 리뷰: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농사를 위해 뭉친 세 청년들은 해외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또 해외의 젊은 외국의 농부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몸소 체험하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농사일을 배우고 돕는 대신에 숙식을 제공받으며 장장 2년간의 여행을 마친다. 9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다큐멘터리 영화인 <파밍 보이즈>가 내내 관객을 붙잡은 비결을 생각해보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만들었을 때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간다. 무전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이라는 요소만으로 영화는 이국적인 풍경, 낯선 사람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여기서 ‘돈이 없다’는 상황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보다 자극적으로 변화한다. 돈이 없는 여행객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몇 시간씩 히치하이킹을 한다든지, 그 마저도 녹록치 않아 비오는 늦은 밤까지 무작정 걸어야 한다든지, 풀숲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든지. 이렇게 무전여행이라는 주제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치 흥미진진한 어드벤처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이들이 여행하는 목적이다. 농사. 사실 무전여행이라는 테마 없이 단순히 농업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것에 관심 있는 한국 청년들이 별로 없듯이 농사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웰빙, 오가닉 푸드 등을 화두로 도시에서 자신만의 작은 뜰을 가진다거나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농업을 위해 무일푼으로 여행을 떠나는 세 청년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농사는 직업 그 이상이다. 삶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편집, 그리고 경우에 따라 추가되는 내레이션과 배경음악 등을 제외하면 인물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말하자면 진정한, 그리고 사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만 저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쓰고 창업을 하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또 누군가는 농사를 짓는다.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후의 삶이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라는 점. 처음에는 두렵고 설레던 무전여행이 이제는 우리가 지나온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삶에서 놓쳐왔던 생기와 의지를 불어넣어주며 다음 도약으로의 기회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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