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하고 사랑하라  인디돌잔치 <초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5 23일(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서은영 감독, 김정현 배우

진행 김도란 인디스페이스 기획운영 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고등학생이자 체조 선수인 ‘도현’(김정현 분)은 사고를 친 벌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 도현은 그곳에서 책을 좋아하는 소녀 ‘수현’(채서진 분)을 만난다. <초인>은 소녀와 소년이 학교와 친구, 가족 사이에서 겪는 일들을 밝은 색채로 그려낸다. <초인>이 첫 장편이었던 김정현 배우와 이 영화로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받은 서은영 감독. 지난 일 년 동안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날 인디토크에서 들어보았다. 




 



김도란 인디스페이스 기획운영팀장(이하 진행): 5월 인디돌잔치로 <초인>이 선정되었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소감 부탁드립니다. 



서은영 감독(이하 서): 안녕하세요, 서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정현 배우(이하 김): 안녕하세요, 김정현입니다. 일 년 전에 개봉한 걸 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진행: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서: 다음 영화 준비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빨리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김: 저는 일 년 동안 작업을 열심히 했고요, 드라마를 계속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을 할 것 같아요. 계속 차기작을 알아보면서 연기 연습하고 있습니다. 


진행: 영화 보면 도현이라는 캐릭터가 밝고 순진무구한데, 실상 안에 그늘이 많아 그걸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두운 내면을 가진 고등학생 연기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일단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나리오를 많이 보고 동료 배우와 리딩을 하면서 인물을 이해했던 것 같아요. 


진행: 감독님은 수현과 도현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모습이길 바랐나요? 배우가 캐릭터라는 옷을 입으면서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 게 있나요? 


서: 보신 것처럼 도현이는 굉장히 밝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 십 대 아이들의 모습인 것 같아요. 두 배우의 앙상블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정현 배우와 서진 배우가 함께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이 두 친구가 함께 연기하는 게 그려졌고 가장 잘 어울렸기 때문이에요. 또 둘 다 첫 장편영화고요. 두 분이 많은 것들을 끌어 온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흡족합니다. 


진행: 배우님의 첫 장편이고 첫 주연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임했다고 들었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어땠나요?


김: 이미 알고 있던 동료들이어서 좋았고 편했어요. <초인>보다 편한 현장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 빨리 보내주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그리워지는 현장이네요.(웃음) 


서: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선택이 좀 빠르거든요. 그리고 워낙 이 두 친구의 연기에 대해 믿음이 있었어요. 요청하는 대로 두 배우가 모든 것들을 빠른 시간 내에 해주었어요. 저는 체력 때문에 오래 작업을 못 해서 빨리 끝내고 다음 회차를 더 열심히 하는 루틴으로 진행했어요. 다들 학교 선후배 사이라 재밌게 찍었어요. 이렇게 좋은 분위기는 앞으로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행: 감독님은 예전에 회사원이었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서: 공대를 나왔고 반도체 연구원으로 5년 동안 근무를 했어요. 그때도 영화를 엄청 많이 보러 다녔어요. 유일한 삶의 낙이었거든요. 그러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무턱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을 봤습니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진행: 배우님은 원래 꿈이 배우였나요?


김: 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계속 꿈이었어요. 그전에는 자다 일어나면 꿈이 바뀌었고요.(웃음)





진행: 영화를 보면 감독님이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 글귀들은 감독님이 생각해둔 걸 작품에 녹여낸 것인지, 아니면 작품을 쓰다가 필요한 걸 생각해서 넣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서: 후자에요. 시나리오를 쓰다가 책이 등장할 타이밍이 되면 책장을 보고, 고르고. 이렇게 진행했어요. 책을 생각해 놓고 시나리오에 녹여낸 것은 아니에요. 이야기가 더 중요하니까요.


진행: 나중에 책의 내용으로 이야기를 쓸 계획은 없나요?


서: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병적으로 좋아하는데, 그걸 한국식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요.


진행: 배우님은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김: 책이요? 좀 시즌을 타면서 보는 것 같고요.(웃음) ‘역적’(*출연 드라마)이라는 책을 30권까지...(웃음) 최근에는 시나리오를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진행: 도현이가 마지막 책을 읽고 잘 반납했을까요?


김: 시나리오에서는 반납을 해요. 찍었는데 안 들어갔어요. 잘 반납했어요.(웃음)

 
관객: 작품 잘 봤고요, 개봉 일주년 너무 축하드립니다. <초인>을 처음 봤을 때는 마냥 서럽기만 했는데, 오늘은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저는 이 작품을 보고 ‘초인’을 닮아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또 많이 성장하기도 했고요. 감독님과 배우님이 <초인>을 겪고 일 년이 지났는데 어떤 물리적, 감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요? 또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서: <초인>은 저의 첫 장편영화이고 이 작품을 보내면서 비로소 영화라는 걸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내 영화를 가진 느낌이요. 예전에 단편영화 찍을 때는 그런 만족감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관객들을 만나고 관객들이 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피드백을 주시니까 영화라는 게 진짜 재밌는 거구나 느꼈어요.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게 내 일생에서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영화 빨리 찍고 싶은 마음에 미친 듯이 시나리오 쓰고 있습니다.(웃음) <초인>처럼 밝은 이야기보다는 나의 진짜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김: 방금 질문하신 분, 작년 GV에서 뵈었던 분 같아요. 안아드렸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말씀하신 문제는 괜찮아졌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도 울컥울컥해요. 일단 일 년이 지나는 동안 배우로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됐어요. <초인>이라는 작품 덕분에 스스로 힘을 받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초인>이라는 작품으로 하나의 가족이 생긴 느낌이에요. 나중에 관객이 많아지고 멀어지면 잘 못 챙길 수 있잖아요. 지금 계신 분들 계속 기억하려고 합니다.


진행: 개봉했을 때 저희 극장에 굉장히 푸릇푸릇한 모습으로 오셨던 게 기억이 나요. 인디토크도 하고 무대인사도 하고 프리허그도 했죠. 배우님에게 <초인>은 굉장히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김: <초인>이라는 작품 덕분에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됐어요.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작품이에요. 이 영화가 없었다면 지금 여기 계신 분들도 못 만났겠죠. 말로 표현을 못 하겠어요. 느껴지죠?(웃음)


서: 감독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는 게 사실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에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초인> 안부를 물어봐주는 분들이 있어서 많은 응원이 돼요. 그분들이 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고요. 저의 삶에서 가장 좋은 원동력인 것 같아요.  


김: 갑자기 생각났는데, 어떤 의미가 딱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소중하게.


관객: 그래서 초인은 뭘까요? 어떻게 초인이 될까요? 두 분이 생각하는 초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서: 영화에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고 얘기해요. 저는 계속 부정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 니체의 ‘위버멘쉬’ 철학을 접하면서 생각이 뻥 뚫린 부분이 있어요. 나를 탓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너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이야기를 쓸 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계속 물어요. 한국상업영화 시스템에 맞춰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재미없어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내 내면의 모든 걸 넣자니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고. 계속 부딪치는 것 같아요. 내가 ‘초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이 제목을 놓고 찍을 만한 사람이었나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김: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진짜 많이 얘기했어요. 일 년이 지났는데 그전도 그렇고 저 스스로가 싫어지는 삶, 순간이 있었어요. 항상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는 게 쉽지가 않아요. 원하지 않아도 어쨌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게 초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관객: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후배 배우 지망생에게 해줄 조언이 있으신가요?


김: 우선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드니 가려서 들으세요.(웃음) 되게 힘들다는 거 알거든요. 정말로 저는 <초인>이라는 작품을 만날 줄 꿈에도 몰랐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줄, 개봉할 줄은 더더욱 몰랐어요. 그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님들이 끝까지 하라고 말하시는 것 같아요. 끝까지 가다 보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항상 자신감 있게 살아가세요. 힘내세요. 꼭 될 거예요. 


관객: 배우의 얼굴이 크게 잡히는 연출에 이유가 있나요?


서: 저희 영화는 엄청나게 적은 예산으로 찍었어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의 배우와 하나의 샷,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장면을 구성하는 미술이 중요하고요. 저희 영화에는 미술이랄 게 없죠.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제가 선택한 이 배우들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는 클로즈업이 너무 많다고 하겠지만 저는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독립영화는 그런 맛이 있잖아요.(웃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에요. 조연 분들도 한 분 한 분 주연을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배우들이고요. 그분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관객: 배우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장면이 많아요. 연기할 때 도현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혹은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는지요?


서: 저도 독립영화를 많이 보는데요, 도현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애초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로 밝고 신선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일차적인 목표는 아니었지만 내 주인공은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김: 관객분은 어떤 걸 느끼셨어요? 


관객: 도현이의 모습이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 어떤 마음을 느끼길 바라면서 연기하진 않았어요. 연기는 어쨌든 수행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전달의 부분은 관객들을 만나야 완성이 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 중심으로 연구하려고 했고 감독님과 많이 대화했어요. 그리고 관계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진행: <초인>과 함께 기억에 남는 순간이 궁금해요. 


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연락 받았을 때 너무 기뻤던 게 기억이 나요. 아직도 그 문자메시지를 갖고 있거든요. <초인>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메시지요. 그때 마침 배우들과 녹음을 하던 중이었어요. 그 두근거림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김: 감독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부산영화제 상영 소식을 전하려 저한테 전화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영화제 갔던 그 순간과 개봉했을 때 제 연기를 보고 앉아있는 제 모습도 기억에 남네요.(웃음)


진행: 앞으로의 계획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영화를 일 년 동안 잊지 않으셨다는 것이 감동이에요. 영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늘 들어요. 다른 영화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응원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응원해주세요. 감사드립니다. 


김: <초인>이 한 살이 됐어요. 기억해주셔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배우 김정현은 <초인>을 첫 장편영화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역적’에 출연하는 등 다방면으로 연기활동을 해왔다. 서은영 감독도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일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러 온 관객도 자신이 조금은 변화했다고 말한다. 이날 인디토크에 참여한 사람들은 초인이란 매 순간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설령 그 삶이 고통스럽고 뜻대로 풀리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앞으로 많은 이들이 <초인>을 보고 세상을 마주하며 긍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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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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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비디오에서 버블경제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1일(일)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마민지 감독, 천주희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저자

진행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신나는 다큐모임, 찍는 페미, 인디스페이스가 함께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의 <버블 패밀리> 대담.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박혜미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마민지 감독, 그리고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천주희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버블 패밀리> 발제문: 욕망의 교차로에서 태어난 http://indiespace.kr/3437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박): 서울에서 첫 상영을 했습니다.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족의 이야기, 한국사회의 이야기까지 엮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민지 감독(이하 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보다 더 떨렸어요. 일요일 저녁에 시간 내서 와주신 관객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먼저 <버블 패밀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 안에도 들어가 있지만, 제가 사춘기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들이 있었어요. 아버지와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종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죠. 그 이후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 문화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리서치 작업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직장사’가 사실은 정부의 도시개발 역사와 맞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다음 작업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게 되었어요. 



박: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마: 사실 아버지는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어머니는 처음에 되게 협조적이었고요. 초반에는 부모님과 가족 이야기보다는 도시 개발, 부모님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위주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점점 카메라가 일상생활 속에서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 등을 찍게 되니 의심을 하시더라고요. 특히 화장을 안 했을 때 찍는 걸 되게 싫어하셨어요. 이번에 전주로 어머니가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어머니 허락을 먼저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버지가 모르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요. 어머니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고 다음 상영 때는 친척 분들도 다 모시고 온다고 하셨어요.





박: 천주희 작가님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천주희 작가(이하 천): 처음에 의뢰를 받았을 때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이 텍스트를 분석해달라고 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보고 나니까 저와 되게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여성 감독이 오늘 날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서 거기서부터 분석을 하기 시작했어요. 영화를 보고 처음에는 심정적으로 동일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의 중산층 문화를 드라마나 책으로 배웠어요. 심정적 거리감이 있었지만, 만약 내가 그 위치에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어요. 이 영화에서 제가 관심을 가졌던 건 ‘버블 패밀리’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 그 역사를 추적해 가는 감독입니다. 감독에게 이입을 해서 봤어요. 어쨌건 역사라는 건 누가 어떤 관점으로 기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독립한 딸, 그러나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는 ‘나’의 현실 상황과 불편하지만 만날 수밖에 없는 가족을 만나고 이 가족의 과거를 추적해 가면서 그것을 역사화 하는 과정을 봤습니다. 제가 ‘부채’를 연구하면서 이 시기 문헌들을 살펴보면 거칠게 도표화 되어 있어요. 저는 이 텍스트를 통해 다층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거품경제에 대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계획과 'IMF'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이것에 문헌을 병치하면서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는 세대적으로 황금기를 살았던 부모 세대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자녀 세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이 텍스트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부모를 크게 설득하지 않는 자녀의 모습, 본인이 살아왔던 시간을 과감하게 비추는 부모의 모습이었어요. 자녀와 부모가 집이라는 욕망, ‘강남’과 돈이라는 욕망에 대해 서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갈등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저는 오히려 좋더라고요. 오늘날 ‘버블 패밀리’의 역사를 다시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현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위태로운 경제 상황 속 어머니와 딸의 극복 방식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엔 땅을 투기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 이 돈으로 차라리 학자금 대출을 갚았으면 하는 딸의 욕망이 솔직히 들어나는 것이 굉장히 좋았어요. 가족의 서사를 통해서 거품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아요. 한국사회의 역사적 요소들이 어떻게 개인의 삶, 가족의 삶에 들어오고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모습이 어떤가 생각을 해봤을 때 저는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일상생활이 변화하는 것들이 보였어요. 어머니의 홈비디오에 드러나는 당시 중산층의 삶과 그때와는 다른 지금의 낡은 벽지, 고장한 싱크대, 보일러 같은 것들이죠. 일상의 내가 늘 마주하는 풍경이 달라지고 어머니의 언어가 달라지는 모습 등이 감독의 시선으로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경제를 말하는 주체는 늘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조연, 카메오처럼 등장합니다. IMF 이후 아버지의 부채 때문에 집이 몰락했을 때 수습은 어머니가 했잖아요. 이 가족의 사례가 특수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빚을 어머니가 갚는 구조, 그러면서 자식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비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이런 이야기가 한국의 보편적 가족이 부채를 극복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같아서 좋았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내’가 가장이 되어서 집으로 컴백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단순히 내 개인 서사로 머무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적 서사로 이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우는 장면은 없지만 절망이 느껴지는, 가족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꿋꿋하게 매듭을 지은 것처럼 보여서 굉장히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제 생각에도 영화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돋보이는 것 같아요. 



마: 사실 천주희 작가님의 글을 받아서 보다가 좀 울었어요. 어떤 교수님 한 분이 20대인 너희 세대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고, 저는 IMF라고 대답을 했어요. 교수님이 잘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너희까지 영향을 받았을 줄 몰랐다고요. 실질적으로 제 삶이 뒤집힌 때가 외환 위기였어요. 20대 중후반이 되어서 텍스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더라고요. 노동운동의 관점, 경제구조의 관점으로 쓰인 글은 굉장히 많았지만, 저나 제 친구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텍스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부분을 영화 안에서 읽어내 언어화해주신 것을 읽으면서 제 자신도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단편 영화를 계속 찍어왔는데, 마지막으로 찍은 게 어머니와 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였어요. 거기에도 아버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를 아예 배제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찍고 나니까 아버지의 존재가 영화 안에 잘 안 보이더라고요. 분명히 편집 단계에서는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감정이입을 해서 작업을 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 어머니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관객 분들도 어머니 캐릭터에 호응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놀라운 경험이에요. 왜 이렇게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어머니의 캐릭터가 더 살아난 것 같습니다. 



천: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게 타인의 입장일 때보다 어려울 수가 있죠. 너무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머니가 몰래 사둔 땅과 학자금 사이에서 갈등을 했는데, 그 땅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웃음)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가족 한 명당 3, 4개씩, 보험을 많이 들어뒀어요. 그러다 일을 그만두게 되자 보험금을 내기 위해 빚을 졌더라고요. 아버지들과 달리 어머니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불안감이 있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마: 첫 질문에 먼저 답변하자면, 아버지와 정말 친하지 않아서 일단 휴대전화 번호 교환을 했어야 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부모님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찍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가족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캐릭터에 대해 애정을 느끼게 되었고 인물들을 객관화하게 되었어요. 땅에 관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지난 GV 때 그 땅 근처에 사는 관객이 있었던 거예요. 그 근방이 ‘핫플레이스’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마지막에 제가 의도했던 건 개인의 욕망입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경제흐름과 거시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스템 안에 개인이 휘말리거나 놓였을 때 굉장히 쉽게 편승하고 휩쓸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자신이 부모와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보니 땅을 보러 간 현장에서 제가 시종일관 굉장히 즐거워하더라고요.(웃음)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어요. 막상 땅을 보고 나니까, 땅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즐거워하게 되는 제 자신이요. 언젠가는 이 땅이 나에게 보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저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사실 개인의 욕망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정된 행복을 기다리는 데서 온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내레이션으로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건 미래에 담보된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내 기반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관객: 거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를 자전적 내레이션 형식으로 끌어간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대상과 작가의 거리가 확실히 최소화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가족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낼 수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마: 내레이션은 처음 기획에서 잡고 간 가장 주요한 방법론이고, 미시사와 거시사를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족 안에 들어있는 한국경제와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편집하면서 고민이 되게 많았습니다. 중간 중간 피드백을 받았는데 가족 이야기를 늘리면 너무 사적이라고, 푸티지 사용을 늘리면 너무 거시적이라고 그랬어요.(웃음) 이 밸런스를 잡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편집감독님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 분이 가족의 스토리를 잡았고 저는 거시적인 부분을 맡았어요. 그렇게 두 흐름을 접합시키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단순 해설자로서의 내레이션이 아니라 제가 경험한 도시, 제가 바라본 가족, 제 관점에서 본 경제 흐름을 제 목소리로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건 가족에 대한 제 감정적인 부분 보다는 영화적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뚜렷한 사건 위주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되게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언제 찍고 언제 찍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단 찍고 윤리적 판단은 편집 과정에서 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집요하게 촬영을 계속 했습니다.



박: 영화에서 아버지를 5년 동안 안 봤다는 내용이 굉장히 쿨하게 스쳐지나가요. 분명 이전에 가족에 대한 상처나 갈등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가족 다큐멘터리의 경우 이런 지점을 결국 해소하거나 보듬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없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낯설기도 했어요. 



마: 그 점에 대해서 편집자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 상처를 보듬고 해소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태프들을 강력히 설득했어요. 왜냐하면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극복했습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분명 관계가 나아진 부분은 있지만 이것이 진짜 회복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절대 웃으면서 끝나지 않았으면, 비판적인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태프들과 상의를 굉장히 오랫동안 했어요.



천: 분명히 보통 가족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것 같아요. 감독이 외부인이었다면 더 극적으로 갔을 텐데, 감독님은 그 삶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의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았어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인 것 같아요.



마: 조금 더 덧붙이자면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때는 오히려 영화를 찍기 전이에요. 아버지를 보지 않았을 때요. 촬영을 시작한 시점은 이미 어느 정도 부모님에 대한 격한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라서 크게 혼란이 없었던 것 같아요. 



관객: 89년생이고 서울에서 쭉 살아온 사람으로서 영화가 너무 제 이야기 같다고 느껴졌어요. 가족에 대한 징글징글함과 IMF 이후의 경험들이 굉장히 많이 와 닿았어요. 제 삶이 기록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5년을 안 본 아빠와 같이 사는 게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어요.



마: 감사합니다. 저도 89년생이고요, 비슷한 경험을 한,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은 매우 힘들어요.(웃음) 집에 잘 안 들어갑니다. 다행인 건 아버지와 제가 생활패턴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다는 거죠.





관객: 혹시 만들면서 참고한 작품이 있나요?



마: 처음에 참고로 한 것은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2011)였어요. 참고한 작품이 많지는 않은데 아슬라우그 홀름 감독의 <브라더스>(2015)를 재밌게 봤고 편집자 레퍼런스로 보여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박: 천주희 작가님을 통해 <버블 패밀리>를 페미니즘적 시각뿐만 아니라 부채, 청년세대와 연결하여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마지막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천: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대학을 권하는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지만, 감독님과 저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그러면서 점점 가난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제 책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을 했어요. 공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을 왜 빚을 져가면서까지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었어요. 자신을 ‘아파트 키드’라고 소개를 하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파트 키드는 기존의 담론이에요. 한국 사회의 욕망이 아파트를 통해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담론인데, 그것에 갇히지 않고 나아가서 ‘버블 패밀리’라는 개념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의 청년부채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할 때, 차를 살 때 등 늘 빚을 지게 되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이름을 붙이는 일에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 질문하고, 드러내고, 공적인 이야기로 끌고나가는 좋은 사례가 된 영화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가 됩니다. 



박: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도시라는 공간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던데요,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작업을 할 생각인지, 현재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끝 인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 주변에서 지금 타이밍에 잘 쉬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많이 해주셔서 일단 잘 쉬는 것이 목표인데 이미 틀린 것 같아요.(웃음) 내년에 단편 작업을 할까 생각중이고 아카이브 푸티지 작업에 관심이 많아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 운동에 관한 이야기, 지역사 등을 다뤄볼까 아이디어를 내놓는 중입니다.






<버블 패밀리>는 늘 경제를 이야기할 때 소외되었던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 되어 서사를 끌어간다. 이들의 불안감과 욕망에 대해서 정직하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성찰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 경제사라는 거시적 흐름을 가족이라는 미시적 집단으로 끌어오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인상적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늘 시스템과 얽혀있으며 때로는 시스템에 가려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은 개인에게서 나온다. 그것이 욕망이든, 윤리의식이든. 그것을 깨달으면서 관객인 나는,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고 말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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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보이즈한줄 관람평


송희원 | 현실은 기(승전)결, 우리만 아는 승전

이현재 | 타인의 진지를 비웃지 마라

이지윤 | 허기가 도는 세상, 빛나는 꿈

최지원 | 우리는 대책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다

김은정 | 온 몸으로 흔들기






 <델타 보이즈> 리뷰: 우리는 대책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델타 보이즈>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톤으로 네 남자의 대책 없는 모험담을 이야기한다. 분명 남성 사중창 콘테스트에 도전하는 이야기임에도 ‘도전 해볼까’로 시작해서 ‘제대로 해보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제대로 노래를 연습하는 과정은 영화 후반부에야 등장한다. 심지어 이렇다 할 배경음악도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도전을 해내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마음먹는 과정이 얼마나 지지부진한지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때문에 (공연을 올릴 수 없게 되었지만) 공연 전 마지막 연습 이후의 이야기는 아예 생략되어 있고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들의 박수소리만 사운드로 삽입될 뿐이다. 도전의 시작, 노력하는 과정, 결말이라는 순차적 구조를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인물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네 남자는 생각보다 능력이 없어서, 이미 여러 번 실패해서,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서, 아내가 반대해서 등의 이유로 영화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짜증이 치미는 현실에 그들은 고함치고 주정부리며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인물들의 공통적 ‘대책 없음’은 <델타 보이즈>의 단점이기도 하며 원동력이기도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인물들이 굳이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장사를 뒤로 한 채,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잘 하고 있던 생선가게와 공장을 그만두고 (잘 하지도 못하는) 사중창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자학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흘러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즉 영화는 어떤 도전을 할 때, 확신을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한심해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되고, 따라서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성을 가지게 된다. 신화적으로 꾸며진 모험담, 꿈의 도전기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후반부에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 노래한다는 ‘대용’의 대사가 있는데, 이를 들은 ‘일록’은 더 큰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전까지의 모험담에서는 대용의 희망찬 대사가 그 자체로 희망적인 것으로 읽히겠지만 <델타 보이즈>에서는 대책 없는 해맑음으로 읽힌다. 게다가 일록의 상황을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공들인 탑이 완성되기 직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들려오는 희망적인 대용의 말이 상황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책 없음’은 분명 영화의 단점으로 보일 수 있다. 성인 남성 넷이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취해서 고함을 지르고 현실적인 고민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노래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장면들이 일으키는 반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네 인물의 강력한 캐릭터성과 무식한 고군분투는 독특하고 생생한 활기를 띠게 한다. 여타 영화와는 다른 각도에서 주인공들의 지친 모습, 미성숙한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희망적 메시지까지 담아내고 있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솔직하고 단순한 이 중창단 도전기는 어쩌면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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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 소소대담] 봄 지나 봄이 오길... 


일시: 2017년 5월 12일(금) @인디스페이스
참석자: 송희원, 이현재, 박영농, 이지윤, 김은정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리뷰] <다시, 벚꽃>: 봄의 마음으로 http://indiespace.kr/3373





박영농: <다시, 벚꽃>은 그동안 미디어 출연이 뜸했던 장범준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다들 ‘버스커 버스커’나 장범준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송희원: 원래는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음악이 좋아서 찾아들어봤다.

김은정: 장범준의 음악을 좋아한다. 버스커 버스커가 활동 중단을 선언할 때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 않았나.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음악적 성장을 위해 활동을 그만하기로 결심했다는 고백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고 다른 멤버와 여전히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이현재: 약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본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게 부러웠다. 하지만 나름의 고민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박영농: 버스커 버스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들 음악을 많이 들었다. 이후 팀 활동을 중단하고 여러 구설수에 오르면서 자연스레 음악과도 멀어졌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음악들을 다시 들으니까 예전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을 좋아했던 이유를 새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들어보니 좋더라. 한편 영화의 내용이 매력적이거나 흥미롭진 않았다. 팬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미있었을 듯하다.

이지윤: 버스커 버스커의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당시 소탈한 매력이 매우 좋았다. 영화를 보기 전엔 선입견도 있었지만 뜻밖의 귀 호강을 해서 좋았다.

송희원: 후진 양성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괜찮아보였다.





[리뷰] <더 플랜>: 합리적 의심과 투표 이전의 개표 http://indiespace.kr/3396




박영농: <더 플랜>은 그래픽이나 연출 등이 내용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게끔 흥미를 유발하도록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송희원: 질문이 있다. 무효표를 재확인할 때 다시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그게 제대로 반영이 안 될 수 있는 건가?

이지윤: ‘시민의 눈’으로 활동 중이다. 시민단체가 이의제기를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계가 무효표로 걸렀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이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는데 <더 플랜>에 따르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송희원: 음모론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짧은 제작기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근거를 착실히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은정: 사실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큰 관심이 없어서 보기가 꺼려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보고나니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나 같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보기 좋은 작품인 듯하다. 그런데 의견들을 들어보고 나니 나 같은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지윤: 제일 싫은 말이 ‘투표 하세요’이다. SNS의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독려하면서 하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하다. 사실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투표를 해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에는 이 영화처럼 개표의 불투명성이나 의심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음모론이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긴 하는데, 사실 그런 음모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라고 생각한다. 얼토당토않은 얘기일지라도 이런 영화들이 나와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견제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요성을 공감한다.

박영농: 긴장감 형성, 제작자의 의도와 방향으로 관객들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포럼2017] 데일리 http://www.indieforum.co.kr/xe/forumdaily



박영농: ‘인디포럼2017’ 비평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을까? <봄동>이란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 하나의 서사로 응집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클로즈업하지 않고 공간 전체를 조명하여 그 속에 등장인물들을 위치시켜서 재개발 신도시라는 공간의 분위기와 일상적 이야기가 어우러져 복합적인 감상이 들도록 했다.

김은정: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같은 분위기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감정에 맞춰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이현재: <나와 당신>의 경우 4:3비율로 촬영을 했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상영 시 검은 부분을 남기게 된다. 그게 겹 프레임을 형성해 액자식 구성처럼 느껴졌다. <베스트 컷>과 <솔로>는 우연하고 우발적인 이야기 소재를 영화에서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특히 <베스트 컷>을 굳이 써보고 싶었던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로 눈이 내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우발적 상황을 어떻게 영화 속 필연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얘기해보고 싶다.

이지윤: <랜드 위드 아웃 피플>을 좋아한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마음에 와 닿고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순환 소수>도 개인적으로 감독님을 좋아해서 작품 역시 좋았다. <솔로>는 디테일한 웃음 컷이 좋았던 작품이다.



김은정: 이번 달에 인디포럼 활동에 참여하게 되어서 굉장히 뜻 깊다. 다양한 종류의 독립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좋았다. 새로운 정권은 <더 플랜> 같은 영화가 나올 필요 없는 충실한 정권이기를 바란다.

박영농: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이래로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이전 정부의 외압논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증명되었다. 인디스페이스는 그동안 ‘시네마달 기획전’과 ‘세월호 추모 기획전’ 등 잘못된 정부권력에 맞서 부단히 노력해왔다. 올해 인디즈로 활동하며 이와 같은 기획들에 함께 참여할 수 있어 뜻 깊었다. 촛불의 바람을 타고 새 정부는 순항하길.

송희원: 이번 달은 공휴일이 많고 개봉 영화도 적어서 숨고르기 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사이 새로운 정부도 출범되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 영화 중에는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다큐멘터리가 많았는데, 앞으로 이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게 새로운 정부에서 관심을 많이 기울였으면 한다.

이지윤: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6월에는 더 많은 독립영화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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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한줄 관람평


송희원 | 먼 이국땅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강인한 삶과 노래

이현재 | 잊혀진 꿈의 악보

박영농 | 고려(빼어날 고, 아름다울 려)의 아리랑

최지원 | 가락으로 전해지는 한의 정서와 감동

김은정 | 역사 한 켠, 여전히 노래하는 고려인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리뷰: 잊혀진 꿈의 악보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 하나가 투사된다. 오래된 사진을 처음 본 관객은 그 사진이 전달하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정지된 화면 위로 내레이션이 흘러 나와 그 사진에 대한 정보를 추측가능하게 만든다. 내레이션은 한국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쫒긴 그들의 기구한 기원을 짧게 서술한다. 서술이 마무리되면 카메라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게 얼어붙은 대지를 걷는다. 다시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며 그들의 고통스러운 이주를 전달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고려인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 당도한다. 다시 내레이션은 그들이 처음 연해주에 도착하여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움집을 파고 살았던 시절을 서술한다. 서술이 마무리 될 즈음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념비 위에 무희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투사된다. 그리고 그제야 내레이션은 영화가 다루게 될 대상이 고려극장, 이함덕과 방 타마라가 누구인지를 서술한다. 이상이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이하 <고려 아리랑>)의 오프닝이다.





<고려 아리랑>의 오프닝은 정해진 대상을 다루려고 하는 다큐멘터리로서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이미지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히려 정보를 전달하는 쪽은 이미지를 돕고 있는 내레이션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레이션이 이미지들을 정리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프닝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내레이션은 선형적인 시간을 따라가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전달하는 정보의 시간대는 고려인의 기원이 된 러시아의 황망한 땅에서 고려인이 겪었던 이주의 시간으로, 그리고 다시 러시아의 황망한 땅으로 돌아간다. 회귀한 곳에서 내레이션의 서사는 다시 고려인들의 본격적인 삶의 터전이 된 중앙아시아로 비약한다. 정리되지 않은 내레이션은 이미지들을 한 곳에 묶지 않고, 묶이지 못한 이미지들은 벌어진 사태나 인물의 초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시퀀스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영화는 고려극장의 공연 장면이나 이함덕과 방 타마라의 노랫소리 혹은 풍경과 자료가 오버랩 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앞서 말했듯 열리고 닫힐 때 제시되는 사운드나 이미지가 시퀀스에 제시된 형상을 정리하거나 정보들을 좌표에 지정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고려인들에 대한 김소영 감독의 시선이나 고려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접고 펼치는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이 형성하는 것은 고려인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떠돌고 이산되어야 했던, 그들이 걸어온 궤적의 리듬이다. 이 리듬은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정돈하고, 나아가 고려인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일종의 거울이 된다. 영화는 정보를 좌표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유동적으로 조응시켜 그들이 왜 한국이 아닌 연해주를 그리워했는지,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엇인지, 그들의 노래가 그들 자신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복원한다. 이 리듬으로 인해 영화는 고려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적 아카이브라기보다는 고려극단의 노래를 기준으로 정보를 정리한 일종의 악보와도 같다.





여기에는 해소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사명이라면, 흘러나오는 영화는 과연 지금 시점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제시되고 있는 ‘악보’는 적절한 재현인가? 이는 결국 복원의 기준은 왜 리듬이어야 했는지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인 대답을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이 영화가 악보였어야만 하는 이유를 언뜻 찾을 수는 있다. 영화의 초반, 방 타마라가 (우리가 보았던) 고려극장의 공연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이 영상을 처음 봐요. 제 젊은 시절을 되돌려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는 영상의 주인공을 본다. 그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시간이 중첩되는 순간을 관람을 통해 경험한다는 의미에서) 다분히 체험적인 순간이지만, 방 타마라 본인에겐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는 회귀의 시간이다.


이러한 회귀는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나오는 이함덕의 모습이 투사되는 장면에서 더욱 명확하게 형상화된다. 보는 이는 없지만, 투사되는 영상은 그 곳에 한 때 희망을 품고 왔던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제의이다. 이 제의는 잃어버린 역사를 마주한 이가 그것에 시선을 던지는 가장 적합한 태도이다. <고려 아리랑>은 자신만의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며 먼 곳의 소식을 전하는 헤르메스가 되고 있다. 중간 중간 제시되는 오버랩 된 영상과 자료들은 장소들을 움직이고 교통하게 만들고 중첩시키는 수행자로서 작동한다. 고려인이라는 망명자를 찾아 떠난 카메라는 그저 또 다른 장소를 찾아 영원히 떠돌 뿐이다. 이 떠돎의 상태는 고려인들이 처한, 그리고 처했던 ‘현실’과의 결연이며 이 현실은 본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자 최종적인 지향점이다. 결국 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리듬만을 남겨놓아 자료를 ‘떠돌 수 있게’ 만든 것은 본 다큐멘터리가 수행하는 수사의 기반이자 윤리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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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제인한줄 관람평


송희원 | 비관과 희망의 뉴월드

이현재 | 구교환의 '제인'은 올해의 캐릭터

박영농 | 제인입니다

이지윤 |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여기, 뉴월드에서.

최지원 | 시시하고 불행한, 거짓말과 꿈이 덧칠되는 삶

김은정 | 불행과 함께 살기






 <꿈의 제인> 리뷰: 불행과 함께 살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소현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다. 그런데 그 방법은 배워본 적도 없고 아무도 알려줄 생각을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항상 함께 모여 있다. 즐거워 보인다. 소현만 빼고. 아주 처음, 그 시작에 놓여있었을 때, 모든 것은 신비롭고 자극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불행과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불행이라는 자극에는 쉽사리 익숙해 질 수가 없다. 그것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비틀어 예상치 못한 곳을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행복이라는 것은 일견 다르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에 환호하게 된다. 불행에 더 예민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자극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행복에 익숙해져버려 더 이상 이것이 가져다주는 자극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불행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해 또 다시 절망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설령 비슷한 정도의 불행과 행복이 우리에게 닥친다하더라도 다르게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비약하여 연민을 얻고자하는 오묘한 심리를 깊은 곳에 내재하고 있으므로 이는 일견 불가피해보이는 인간의 특성인 것이다.  





소현은 굉장히 소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 말인 즉 주변의 인물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소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의 인물들이 자신을 떠나가게 만든다. 소현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 정호도 말없이 떠나고, 소현에게 다가왔던 지수도 떠나고 만다. 심지어 꿈의 제인마저도. 그러나 소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제3자로서 소현에게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극 속 인물의 입장으로서 그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의 행동은 경멸스러웠고 언뜻 순진해보이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들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 속에 섞이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눈물을 보이는 것도 자신이 또 다시 실패하고 모든 것을 망쳐놓고 말았다는 실망감에서 온 것처럼 느껴졌다. 소현이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외톨이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그가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껴질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은 어느 것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헤어날 수 없는 딜레마와 같은 것이다.





소현은 꿈을 꾼다. 끔찍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함인지 현실의 사건들을 조금씩 비틀어버린다. 그 곳에서 제인은 새로운 ‘가출팸’의 엄마로, 지수, 쫑구, 대포는 그의 식구들로, 바에서 일하는 주희는 쉼터의 자원봉사자로 그려진다. 그곳에서는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이 소현이 받아들일 수 있고 소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소현은 정호와 헤어진 모텔로 찾아가 자살시도를 한다. 소현은 말한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그 때 제인이 그 방으로 들어온다. 그런 존재가 제인이다. 현실에서도 제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소현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슬픈 눈빛을 마주쳤을 때, 소현에게 말했다.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야.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학생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 부모의 그늘 아래서 고민 같지도 않은 것들을 고민하며 산다. 학생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존재에게 부모가 없다면, 그 그늘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 추락할까?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만다. 어떤 단어에 따라오는 보편적인 이미지. 그것이 마치 세계의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듯한 거대한 착각. 그러나 가끔씩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는 메시지가 없다면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을 방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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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입니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사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시민들의 이야기

이현재 | 노무현을 볼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가끔, 딱 그리운 만큼 그가 무서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박영농 | 꿈의 무현

이지윤 | 그저, 노무현입니다

최지원 | 한 사람을 기억하는 예의

김은정 |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 실로 놀랍다.







 <노무현입니다> 리뷰: 안녕하세요, 제가 노무현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그리움’이란 상실한 대상에게 여전히 사로잡혀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많은 저작물과 연달아 흥행하는 영화를 보면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할 만큼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이미 몇 편 나왔다. 그가 변호를 맡은 1980년대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2013)과 2000년 부산과 2016년 여수에서 각각 출마해 낙선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백무현 후보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가 대표적이다. 이 두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입니다>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영화는 2002년 2월에서 5월까지의 민주당 경선의 여정을 되짚는다. 노무현은 2000년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타파, 동서화합을 이루겠다며 부산 북·강서을로 내려가 낙선한다. 대의를 위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한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부르며 응원했고 결국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노무현은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쟁쟁한 후보들 곁에서 지지율 2%로 꼴찌였던 노무현은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제 방식을 통해 대선주자가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상 깊은 연설과 자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돕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는 노무현의 명연설 장면들과 그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경선 당시의 역전극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노무현입니다>는 크게 ‘노무현은’, ‘노무현과’, ‘노무현의’, ‘노무현을’이라는 제목이 붙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장마다 영화를 상당수 채우는 것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대일 인터뷰다. 인터뷰이는 총 39명으로 이화춘 전 정보국 요원과 노수현 전 운전기사, 유시민 작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문재인 대통령, 노사모 회원들이 등장한다. 가까이서든 먼발치에서든 그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사적인 일화들을 들려주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증언한다. 인권변호사 시절 자신을 감시한 정보국 요원과도 친구가 된 일화와 운전기사의 결혼식 날 차를 대신 운전해준 일화 등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영화는 이러한 다양한 증언들을 들려주며 ‘노무현은’, ‘노무현과’ 같은 미완의 문장을 관객 각자 스스로가 완성해 갈 수 있게끔 유도한다. 장의 제목은 관객에게 일종의 열린 형식의 질문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추억을 환기하고 그리움에 사로잡힌 상황만을 전개하지 않는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습도 배치한다. 감독은 그들의 성숙한 참여의식을 보여주며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노무현’이라고 말한다. 보수 언론의 색깔론, 지역주의 프레임을 정면 돌파하며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도와주십시오”를 단호하고 힘 있게 외쳤던 노무현. 계파도, 당내지지 기반 세력도 없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대선 후보로 만들어낸 시민들 모두 ‘노무현’이다. <노무현입니다>은 노무현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를 복기하는 수많은 영상물과 자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쉬이 보내주지 못할까. 그 이유를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대신하고자 한다. "떠나보내려고 해서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다.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다. 노무현에 대한 애도가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 잡혀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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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우리들'이 될 때까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그녀들의 점심시간>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4 30분 상영 후

참석 구대희 감독,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으로 <그녀들의 점심시간>이 관객들을 만났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상영된 배경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을 앞둔 시간, 구대희 감독과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가 함께했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발제문: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http://indiespace.kr/3434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소현): 이 영화는 가사노동을 비롯한 노동환경 속에서 여성성과 식사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떻게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며 연대의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이하 이지원): 이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주목했다. 많은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보통 우리가 취업준비 기간을 단지 준비 혹은 허비의 시간으로만 치부하지 않나. 그러나 그런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시간들이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 노동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분명히 노동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그 가치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먹는’ 행위로부터의 공동체와 연대가 주는 느낌이 좋았던 영화이다. 출연자들의 식사시간에서 느껴지는 끈끈함, 힘든 일상의 시간들을 서로 견딜 수 있게끔 하는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안소현: 실제 이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식사를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대희 감독(이하 구대희):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가 벌써 2년 전이다. 당시 자취 10년 차였는데, 하려던 것들이 다 잘 안 돼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매일 밥을 챙겨먹는 것도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그런 내 모습이 곧 인생으로 느껴졌다. 초라하게 자취방에서 대충 차려서는 밥상을 꺼내기도 귀찮아 바닥에 놓고 먹는 모습이 궁상맞으면서도 서글펐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의 식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혹은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통해서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소현: 두 분 다 여성이라는 삶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따라 맺는 관계와 능력 발현이 달라질 것이고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많다보니 그 책임감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출연자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힘 같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지원: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여성의 문제가 전면적 담론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령 청년 문제가 ‘N포 세대’로 담론화될 때 여성의 입장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얘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중년층 여성 노동자들은 매우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찬값을 벌러 나왔다’는 인식 하에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노동문제 같은 부분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 아쉬워서 활동으로 이어나가게 됐다.





안소현: 여성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 않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벌어진 여성들의 자발적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다양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라운 점은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한 기준과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방점을 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점심식사라는 행위로 한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달하고자 했다.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을 다루고자 했고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기보다는 우선 인터뷰가 가능한 분들을 물색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섭외하기도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영화에 담기가 어려웠다. 여성이 많은 직업군인 식당, 환경 미화 종사자 분들을 꼭 섭외하고 싶었다. 



안소현: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식사하는 행위를 세세하게 쪼개어 보여줌으로써 그 사이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밥을 해서 먹(이)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라는 행위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좀 더 이어가보고자 한다. 작년 페미니즘 운동을 재촉발 시키기도 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명백히 드러났다. 사건의 범죄자가 ‘피해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정확한 워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검찰은 ‘묻지마 살인’으로 한정지었다.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성은 폭력 가까이에 놓여있는데, 언론과 사회 분위기는 이를 여성문제와 철저히 구분 짓고 있는듯하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 가져다준 변화는 여성과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보편적으로 나아가게끔 한 점이다. 시위 현장 속 얼굴 노출의 위험 등 여러 제약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꿋꿋이 동참했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작용했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불안을 느껴왔다는 것에 기반한다. 이런 목소리가 하나의 큰 움직임으로 터져 나온 데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응답했다면 결코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치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편의 경험으로 문제의식이 터져 나온 것이라면 적어도 사회는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 문화, 제도 등 전반에 도사린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단순히 성전쟁, 남녀갈등 조장 등으로만 몰아가는 점이 매우 아쉽다. 여성과 페미니즘의 이야기들을 보편의 영역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관객: 먹는 행위의 양상이 세대별로 다른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챙겨먹는 것도 힘든 것 같은데, 또 다른 세대에서는 먹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기능하고 대화의 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구대희: 이 영화는 큰 갈등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배열순서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엔 그냥 쉽게 연령별로 배열했는데, 그렇게 하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같은 점심식사라고 해도 각각의 점심마다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나 재미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게 느낄 수 있도록 순서를 다시 배열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보면 연령대별로 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딱 그 틀에 맞춰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장치들을 넣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연령대보다는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듯하다. 가령 경마장 환경 미화원 분들은 워낙 일이 고되다보니 같이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자 휴식인 거다.





관객: 제작기간, 그리고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 등이 궁금하다.



구대희: 총 제작기간은 2년 반에서 3년 정도이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제대로 갖추고 난 다음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촬영한 기간은 약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실 엄청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그중에서 아주 예쁘고 잘 나온 것들을 뽑아서 만드는 거다. 등장한 열 분 모두 다 인간극장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많은데, 어쨌든 콘셉트가 있었고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많이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쉽다.



이지원: 영화를 만들기 전에 기획 의도 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나. 계획과 작품이 얼마나 부합하게 나왔는지가 궁금하다. 촬영한 결과물이 이전 의도와 달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점심시간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 제작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업물의 가치를 설득시켜야만 했다. 구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안도 나왔다. 그런데 다 엎어지고 되게 담백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업물이 완성됐다. 군더더기 없이 내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원: 영화가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심시간이라는 게 힘이 되는 시간 혹은 즐거운 시간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희망적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구대희: 맞다.(웃음) 모두의 삶이 녹록치 않다.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꿈이나 희망 등을 품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영화 속에서 경마장 점심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반찬을 싸와서 다 같이 먹고 당번으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되게 보기 좋았다.



안소현: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여럿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매우 이상적이지 않았나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는 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장해 가져가야 할 것이기도 하다.





관객: 촬영의 원칙, 현장에서 지키고자 했던 윤리, 찍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더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희망적으로 보았다는 활동가님께 질문이 있다. 요즘 현실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데 활동의 동력을 무엇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몇 번이고 촬영이 가능한 소재다. 한 번에 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몇 번에 거쳐서 촬영을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촬영을 하니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항상 같이 먹자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노인정 촬영이 특히 그랬다.



이지원: 활동의 동력은 활동을 계속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인 듯하다. 돈도 시간도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선배와 남자교수가 전부였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만나고 있다. 자극이 된다.



안소현: 이 작품은 대상들과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대상들과 가까워지려는 강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진행을 이어나간 배경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듣고 싶다.



구대희: 치밀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웃음) 사람 자체가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카메라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평생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연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그들이 소탈했던 탓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나를 찍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갖고 그 사람의 속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경지를 욕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다가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성격상 어려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출연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도 있어서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은 미뤄두고 있다. 이제 막 이 영화에서 손을 뗀 기분이라 앞으로 차근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안소현: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꾸준히 견지된 것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한 점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단면이 영화에서 툭툭 튀어 오를 때 한 개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활동가님의 계획도 묻고 싶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제 일 년 정도 지났는데, 초기 멤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는 퀴어-페미니즘 활동에 집중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이름도 바꾸고 채비를 할 예정이다. 많이들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양한 여성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점심시간을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구대희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흔히 영화는 항상 특별한 것들, 특별한 이야기들, 특별한 사람들만을 담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종종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아닐까. 점심시간이라는 한 단면을 통해 마주한 그녀들의 삶은 혹여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스크린 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역으로 ‘페미니즘’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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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다훈이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난잎으로 칼을 얻다>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임경희 감독,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진행 강유가람 감독 (<이태원>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아버지의 오랜 역사를 담은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시력이 점점 떨어져가 내가 끝마칠 수 없을 것 같은 이 책을 네가 완성해 줄 수 있겠냐’고 하면서. 처음에는 단순히 학자로서 아버지의 부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단순히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상영 후 강유가람 감독의 진행으로 <난잎으로 칼을 얻다>의 임경희 감독과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와 함께 대담을 이어갔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 발제문: 난잎과 칼의 변증법적 동행을 느끼고 사유하다  http://indiespace.kr/3435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강유가람입니다. 한 영화를 깊이 있게 읽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임경희 감독과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김영옥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김영옥 선생님은 여성학자이자 최근에는 나이듦에 대한 연구도 같이 하고 있어요. 임경희 감독님은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첫 장편이죠? 어떻게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나요?



임경희 감독(이하 임경희): 여기 나오는 주인공 ‘정다훈’은 저의 20년 된 친구에요.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교수이죠. 사실 교수가 살아가는 이유는 읽거나 쓰는 게 거의 전부인데 눈이 안 보이게 되면 큰 제약이 생기잖아요. 눈이 멀어감으로 인해 삶이 변해가는 모습에 대해서 딸로서 마음 아파하는 것이 공감이 됐어요. 또 저와 친구가 만나면 늘 이야기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항상 싸우는 거지?’ 의문이 있었어요. 문제들의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것 같아요. 역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평생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큰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비단 저희 아버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기성세대 전반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한 벽을 넘어 이야기하고 싶어서 대화의 장을 열어보고자 영화를 찍었습니다.



강유가람: 세대 간 대화의 장을 열고 싶었던 감독님의 열망이 영화에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김영옥 선생님,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김영옥 대표(이하 김영옥):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재미있다는 것이 단순히 시각적, 내러티브적인 이유가 아니에요. 새로운 여성감독이 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왔는데 3,4년 전 봤던 것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이를 악물고 싸우려고 하는 여성주의 영화와는 다르게 유동적으로, 자신감 있게, 휘둘리지 않을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줘서 기분이 좋았고 향후 어떤 작품을 만들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영화에서 부녀 관계를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데 사실 부녀 관계는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특히 자의식과 역사의식이 강한 딸일수록 분열의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딸이 그 손을 잡았다고 볼 수 있죠. 처음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만 보다가 두 번째 볼 때에는 매우 정동적으로 봤습니다. 부녀간의 모습이 매우 다정하게 다가왔고 32년 동안 부녀가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서 농익은 단어들이 튀어나와 어떤 단어 하나도 놓칠 수 없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성인이 된 딸로서 ‘병약해진’ 아버지와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어요. 얼핏 보면 멘토인 아버지가 질문하고 멘티인 딸이 어떻게든 정답을 말해야하는 것처럼 읽히는 장면이 있지만 사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아버지가 딸에게 해석권을 넘겨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제는 그러한 정세를 네가 읽어라.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읽어왔는데, 너와 대화하니까 내가 매우 제한적으로 생각해 왔구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노력과 인생을 인정 해달라 요구하는 것으로 읽혀서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딸 또한 아버지한테 공격적으로 다가가지 않죠. 아무래도 그래서 더 이 영화가 소중하지 않나 싶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는 쉽게 동일시가 가능해지는 분입니다. 평생 신념을 누르지 않은 분이죠. 딸에게 자신의 것들을 어떻게든 전승해주고 싶어 하는 가장이자 여행자이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은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본인이 추앙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마치 눈앞에 있는 듯이 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오래오래 곁에 머무는 역사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임경희: 이제 아버님의 한 쪽 눈은 거의 안 보이고, 은퇴 후 집에서 지내고 계세요. 중국 공산주의 행정학을 굉장히 많이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을 가르치지 못해 제자 없이 메아리 같은 말씀을 해왔죠. 그러니까 딸이 유일한 제자인 거예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위로 받는 느낌이에요. 





강유가람: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대화 욕구를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은 제3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있어서 정말 좋았고 이후 작업 또한 기대가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영화의 주인공 정다훈 씨가 와 계신데요,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정다훈: 아버지는 조금 무료하게 지내긴 하지만 나름 인생 3막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퇴임과 제 강의 시작이 겹쳐서 마치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답이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를 편집할 때 초점을 역사에 더 두었는지, 부녀 관계에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부녀의 대화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편집하지 않고 길게 남겨둔 이유가 있나요?



임경희: 두 가지를 모두 잘 섞어서 녹여냈다면 좋았을 텐데.(웃음) 역사 안에서 부녀가 캐치해내는 것을 따라가길 원했어요. 이회영은 아버지가 가장 이입한 인물이고 윤동주와 안중근은 딸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대화가 지루할 수 있는데 길게 담은 건 학자들이 이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확인을 하고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예요.



강유가람: ‘평화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던데, 무엇인가요?



임경희: 20년 지기 모임이 있어요. ‘블랙홀’이라는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농구모임인데 모이면 항상 이러한 화제를 두고 이야기를 해요. 저는 이념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반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평화 여행 루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끝이 북한, 우리나라로 끝나면 그것이 아시아의 평화 루트가 되지 않을까 거대한 꿈을 꿨어요. 항상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의 사건만이 부각되는데 다른 나라에도 같은 사건들이 되게 많거든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으니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영옥: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아시아를 생각할 때 한·중·일만 생각하고 그 외 국가들은 거칠게 이야기해서 진열된 민족성처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제 세대는 서구 제1세계 백인들의 언어를 경유해서 아시아와 만나왔기 때문에 아시아 역사들을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시아 각 나라의 역사성과 민족성이 다른데 지리학적으로 같다는 이유로 하나로 여겨지고 또 다른 언어를 빌려와야만 한다는 점이 어려워요. 아시아 사람들이 만났을 때 각각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제3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고, 물론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조심해야하는 문제죠.





관객: 아버지에게 자신감 있게 대화를 청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이런 모습이 부녀만의 특성이지 않나 생각도 드는데 이 관계를 어떻게 확장시켜 바라보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임경희: 사실 이 친구는 과거에 굉장히 저항적으로 살았어요. 아버지와 굉장히 많이 부딪혔어요. 아버지가 공부를 하라고 해서 하긴 했지만 이 친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부단히 노력했던 거예요. 저는 이 이러한 고집이 아버지가 이 친구를 돕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이 친구의 의견이 아버지의 의견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고 아버지를 납득시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종국에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학자가 이 일을 부탁했을지라도 기꺼이 완성했을 거라 이야기하더라고요. 단순히 부녀 관계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화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과연 아버지에게는 글을 완성할 사람이 딸밖에 없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아버지는 딸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두 분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경희: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두 분을 보면서 제가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본 것 같아요.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편에서 굳건히 입장을 지켜주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대 간 화해를 하자는 것은 의견을 같게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보자는 거죠. 



김영옥: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아버지가 화가 나서 본인이 딸에게 가르치려고 한 책을 버리려고 했다는 부분이에요. 딸이 좋아하는 책을 버린 게 아니라 본인이 가르치려했던 책을 물에 젖게 내버려둔 거잖아요. 딸이 어렸을 때부터 진지하게 계승의 관계를 가지려고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죠. 세대 간의 갈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들이 살아온 환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자랐던 그 과정을 부인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무조건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과정을 겪어서 저만큼 이르게 되었나 알아보는 게 중요해요. 세대 간 갈등은 필연적이죠. 그 갈등을 풀려는 노력도 필연적이어야 해요. 동상이몽이지만 한배에 있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 될 것 같네요.



강유가람: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릴게요.



김영옥: 말씀드렸다시피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푸는 방법과 의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임경희: 영화 마지막에 부녀가 훈춘이라는 지역에 가요. 그곳에서 아버지가 ‘이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밖에 없잖아’라는 이야기를 해요. 단지 딸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게 하는 말로 들렸어요. 이제 우리 차례가 된 것이죠. 제목인 ‘난잎으로 칼을 얻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난잎'은 지식이나 생각을 말해요. 그대로 있으면 그냥 생각과 지식에 불과해요. '칼'과 연장도 그것만 있다면 아무렇게나 휘두를 뿐이죠. 이 두 가지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보고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노력해보자는 거예요. 늦은 시간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단지 한 아버지와 딸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와 새롭게 시대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딸에게 무엇인가를 전해 주고 싶어 한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그녀의 생각보다 간절하게 아버지는 자신의 것을 물려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이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딸의 도약을 바라본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모든 ‘다훈’이들에게 난잎으로 칼을 얻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기를 당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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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 소소대담] 좋아서 하는 대화 


일시: 2017년 4월 14일(금) @인디스페이스
참석자: 송희원, 이현재, 박영농, 이지윤, 최지원, 김은정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바쁘게 4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인디즈는 3편의 영화를 보았고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인디피크닉’에 갔다. 각자의 상황에서 만난 각자의 감상을 나눠보았다.






[리뷰]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http://indiespace.kr/3340


[인디토크 기록] 170315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내가 본 것, 그리고 네가 본 것 (참석: 김경원 감독, 박정민 배우, 김영진 평론가)

http://indiespace.kr/3345



이현재: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작품의 고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특정한 작품은 감상의 형태든 연구의 형태든 관계없이 일단 소비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비의 과정은 생산의 과정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며 소비 자체가 큰 물질적 토대를 요구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의 고유성에 관계없이 소비자 본인만의 고유성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예술 산업에 대한 풍자를 통해 작품의 창작자와 해석자 간의 시차를 다루고 있다. 이 시차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혀보자.

박영농: 동의한다. 지젤은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이다. 이는 동양 고유의 것(동양화)이 서양에서 재현될 때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 지젤부터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한 코미디적 요소로 설정된 것이겠지만 이는 영화 전반의 주제와 상충하고 있다. 본질과 순수를 추구하는 지젤은 타인의 작위적인 해석과 개입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지젤은 정말 영화 속 대사처럼, ‘굳이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는 본질과 정체성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본질은 정말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 단정할 수 없겠지만 본질도 변하지 않나?

김은정: 예술 산업에서의 시차는 어쩌면 예술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든 누구에게든 해석되기 마련이며 해석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만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며 이 때 창작자와의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영화에서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시차에 주목하기 보다는 소비자들 사이의 시차에 시선이 갔다.

이지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드러나는 창작자와 해석자 간의 시차는 본질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지젤에게 예술은 ‘장사꾼과 사기꾼, 쓰레기와 양아치가 판치는’ 현실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재범은 예술에서 느끼는 영감, 감동을 자본주의적 가치로 치환시킨다. 그에게 예술의 본질은 결국 돈인 것이다. 예술이 정말 무엇인지, 작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답은 예술과 자본이란 틀을 넘어 더 세부적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과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각기 다른 영감을 주고 그것에서 시차는 비롯된다. 하지만 예술과 작품의 본질에 정답은 없다. 어쩌면 영감과 열망을 통해 각자 발견해낸 서로 다른 본질이 바로 예술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닐까.





[리뷰] <어폴로지>: 더 늦기 전에 사과를 요구한다 

http://indiespace.kr/3348


[인디토크 기록] 170322 <어폴로지>: 나비의 비상 (참석: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http://indiespace.kr/3355



이현재: <어폴로지>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해국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투쟁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영화가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카메라를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어폴로지>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행동을 절대 앞서지 않는다. 카메라가 인물을 이끌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인물들의 개별적인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고 카메라는 그것을 기록하는 기계로서 충실히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말들을 따라가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어폴로지>의 접근법은 대단히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송희원: 말들을 따라가며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말은 그들의 증언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함께 연대한다는 말 같다. 연대를 할 때 상대방을 임의대로 재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어폴로지>는 특정한 내레이션 없이 그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더 구체적으로 담아낸다. 또한 관객은 이러한 객관적인 증언을 토대로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의 접근방식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박영농: <어폴로지>가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다뤄 온 영화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바로 다른 국가의 피해여성에도 주목한 점이다. 아마 이런 접근이 가능했던 이유에는 감독이 외국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일전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이 베트남전에서 현지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역사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이미 같은 비극을 겪었고 아직까지 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진통을 앓고 있다. 전 세계적 범위에서 전쟁 여성인권 유린 사례를 꾸준히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지윤: 연대는 결국 타자화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어폴로지>는 국적도, 삶의 배경도 다른 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 견고한 타자화의 틀을 깨나간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을 취하지만 <어폴로지>는 그것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친밀감이다. 작품은 ‘위안부 할머니’라는 프레임을 경계한다. 악의가 없더라도, 할머니들을 ‘위안부’로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부정적 프레임으로 작용되며 타자화의 과정으로 직결된다. 티파니 슝 감독은 이런 프레임을 할머니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뜨려나간다. 마치 할머니가 손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할머니들과 연출자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친밀함은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 관객들은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앞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게 된다. 

송희원: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증언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 세월 동안 가해자들의 논리로 피해자들을 소외시키고 재단하기도 한 것 같다. ‘위안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수 있던 것 또한 91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최초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이 증언을 통해 가시화되었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표면화시켜 사과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발화의 장을 열어주고 그들의 증언을 귀를 열고 들어주고 함께 연대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 





[리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http://indiespace.kr/3363



박영농: 홍상수의 영화를 기억해보자면 세세한 서사보다는 특정 대사 혹은 인상이 먼저 떠오른다. 반면 이번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이지윤: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늘 대화에 집중을 하곤 했지만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에도 굉장히 눈이 많이 갔다. 홍상수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테이크를 길게 간다는 것인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같은 경우는 이전 작들에 비해 테이크가 비교적 짧게 나누어져 있다(물론 그것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길었지만). 그만큼 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고 이전 홍상수의 영화에 드러난 관계의 미시성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야에 드러나는 여러 공간들은 작품 속 김민희를 더욱 고독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김민희는 그저 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바다 앞에 오롯이 혼자 서있다. 그게 너무 슬펐다. 카메라로 대변되는 홍상수의 눈에서 어떤 고독감과 으레 모든 사람들이 갖는 ‘밤’이란 순간에 대한 묵묵한 슬픔이 드러나는 듯 했다. 다만 안타깝지는 않다.

송희원: 20대 때부터 홍상수 영화를 좋아했다. 내 주위에서 본 것 같은 인물들을 또 영화에서 보니까, 객관적으로 혹은 낯설게 보이는 효과도 불러일으키는 것 같더라. 세간에서는 홍상수 영화를 쉽게 해석해서 보기에는 영화의 층위, 구조가 깊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다. 자신의 속물성을 현학적으로 표현하다가 일상에서, 특히 사랑할 때 속물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는 게 재밌더라. 적어도 자신이 속물인줄 아는 대자적 속물 캐릭터가 나온다는 점이 나에게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뭔가 그런 냉소적인, 속물성에 대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이현재: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관람한 영화에 대하여 감상을 나눠보자. 나는 <시읽는 시간>과 <옥주기행>을 보았다. 둘 다 GV가 있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감독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시 읽는 시간>은 여기저기 파편적으로 흩어진 에피소드들을 ‘시’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하나의 형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옥주기행>은 표면적으로는 진도 아라뱃길 축제를 다루고 있지만 문화인류학보고서 같은 다큐멘터리였다. 판소리꾼부터 아라뱃길 축제에서 벌어지는 한마당 공연까지 진행된다. 바다만 나오면 생각나는 세월호에 대해 일종의 씻김굿을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송희원: 정재훈 감독의 장편 신작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를 보았다. 내가 정재훈 감독을 알게 된 것은 응암동 재개발 현장을 담은 다큐 <호수길>(2009)을 통해서였다. <호수길>은 접근방식이 신기했다. 어떤 구호 없이 담담히 롱테이크로 기록하는데 알 수 없는 감정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켜서 좋았다. 사실 이번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의 러닝타임이 세 시간 반이나 되는 줄 모르고 갔다.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GV에서 들어보니 감독이 처음부터 어떤 것을 기획해서 영상을 찍어나간 것이 아니라 전에 찍어놨던 영상들을 새로운 영상과 얽어 편집했다고 하더라. 영화는 난해했다. 후반부 저화질 화면과 귀가 찢어질 듯한 조선소 용접 소리가 나오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내가 <호수길>을 왜 좋아했는지 생각해보게 되더라. 정재훈 감독 고유의 방식에 끌렸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마 다음 영화도 꼭 찾아서 볼 것 같다. 

이지윤: <깨어난 침묵>을 보았다. 생탁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영화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영상과 묵인되어 온 부조리를 하나하나 힘겹게 터뜨려내는 듯한 연출이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치열한 투쟁들은 모두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3권 보장과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환경개선에 대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들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생탁 노조의 투쟁은 외면 받고 손가락질 당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회에 팽배해 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법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에서 관람한 영화도 감상을 나눠보자. 나는 세 편의 단편이 묶인 단편 섹션을 두 개 보았다. 하나는 ‘단편2: B급의 맛’(<구덩이>, <라이츄의 입시지옥>, <인류의 영원한 테마>)이었고, 다른 하나는 ‘단편1: 꿈의 대화’(<플라이>, <여름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였다. 여섯 편의 단편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지만, 특별히 <라이츄의 입시지옥>을 이야기하고 싶다. <라이츄의 입시지옥>은 다음을 알 수 없는 종횡무진 가족드라마다. 소위 ‘막장’이라고 불리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서사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거기에 맥락이 없는 정치적 이름들을 붙여놓았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이름들이 정말 어디에건 다 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재현되지 않지만 관람자의 기억 속에 있을만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김은정: 인디피크닉에서 <분장>을 관람하고 인디토크를 기록했다. 주인공의 입장이 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연극에서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인정한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생각할 겨를 없이 스스로의 입장을 고정시켜버린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에서는 단순하게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입장으로 정리가 되었던 반면에 이 영화에서는 그들을 이해한다고 착각하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송희원: <노후 대책 없다>와 <가현이들>, ‘단편4: 시대를 비행하는 카메라’(<<업무시간> <수난이대> <천막>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 자국>)를 봤다. <노후 대책 없다>는 다큐멘터리인데 한국 인디 펑크씬의 뮤지션들이 나온다. 자유분방한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었다, 그들이 하는 음악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리고 ‘단편4’는 각각의 영화에 이 시대를 관통하는 회사와 농성장, 집, 동네 등의 장소가 나온다.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는 회사 안팎 공간, 갈등하는 아들과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그때의 슬픈 기억에 잠겨있는 동네. 그 각각의 장소에서 회사 동료는 서로를 미워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해고노동자는 서로에게 기대며 버티고 있고 유가족들은 무책임한 국가의 망각에 맞서 기억하려 한다. 노동, 세대, 안전이라는 영화 속 인물들과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주제를 다룬 것 같아 인상적으로 봤다. 

이지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와 ‘단편5: 혼돈의 밤, 소동의 기억’(<빈방>, <순환하는 밤>, <무저갱>, <우리아빠 환갑잔치>, <앰부배깅>)을 보았다. 그 외 작품들도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한 번씩 만나본 작품들이라 굉장히 반가웠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세련미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문명환 촬영감독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촬영기법이 돋보였다. 정갈한 미장센과 흑백 영상도 세련미를 배가시켰다. 묘하게 어긋나며 오가는 대화들이 자칫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독창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돕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 속 무성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최지원: <천에 오십 반지하>를 보았다. <가현이들> 중 한 ‘가현이’가 나온다. 그게 재밌더라. 영화의 제목처럼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청년의 어려움을 다루는 다큐인데 불안한 상태를 해소하지 않는다. 불안한 상태에서 시작해서 불안한 상태에서 끝내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이현재: 한 달간 활동한 소감을 나누자. 바빴지만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위안이 된다. 

김은정: 이제 활동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인디즈 초이스로 선택한 <뿔>(2014)이라는 영화가 기억에 남는다. 단편 영화를 많이 본 적이 없는데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으로도 관객의 뇌리에 박히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간결하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도 단편 영화를 관람했는데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 관심을 두고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박영농: 인디즈 활동을 하면서 여러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 특히 지난 한 달은 인디피크닉 등 다양한 특별전을 통해 아쉽게 놓쳤던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되어 더욱 좋았다. 앞으로도 예정된 기획이 많은데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에게 똑같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송희원: 계속 바쁘게 달려가는 것 같다. 그래도 재밌다. 매번 인디스페이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글이 완성되고 실릴 때마다 인디스페이스에 감사하다. 인디즈가 앞으로 더 바빠지겠지만 그만큼 더 재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이지윤: 독립영화를 정말 꾸준히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전에 비해 영화를 보고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웃음) 날도 따뜻해지고 꽃도 피고 좋은 독립영화들도 만날 수 있어서 여러모로 봄을 실감했던 한 달이었다.




4월은 많은 이들에게 바쁜 달이다. 새 해에 시작하려 했던 일들에 근육이 붙는 시기이다. 저마다 계획했던 것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계획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또한 밖의 많은 상황들도 바뀌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이야기했던 자리도 변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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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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