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촛불과 광장의 온기  SIDOF 발견과 주목 [광장의 촛불, 그 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1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넝쿨 감독, 고승환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기해년 새해가 밝았고, 박근혜 파면 2주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정기상영회는 광장과 촛불을 상기시키는 두 편의 영화와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자유롭고 평등한 광장과 그 열기만큼 빛을 발하던 촛불. 광장과 촛불의 의의와 가치를 기억하며 그 이후의 일상과 삶을 되돌아 보았다. 과연 우리와 사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 속에 있는 것일까. 인디토크는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이도훈이 진행하였고, <일상의 촛불>에 참여한 넝쿨 감독과 <나를 위한 변명>의 고승환 감독이 참여하였다.

 

 



이도훈 진행(이하 진행): 고승환 감독님과 넝쿨 감독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두 분 각자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관객 분들께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넝쿨 감독(이하 넝쿨): 안녕하세요. 저는 넝쿨이라고 하고요. <모든 날의 촛불>이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에서 <일상의 촛불>을 연출한 김수목 감독님을 대신하여 퇴진행동에서 함께 기획을 했던 미디어 피디의 역할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승환 감독(이하 고승환): 저는 <나를 위한 변명>을 공동연출한 고승환이라고 하고요. 박소현, 남아름 씨가 함께 연출하였는데 오늘은 저 혼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이 두 편의 작품을 가지고 굉장히 큰 주제이기는 하지만 촛불과 광장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 광장 안에서의 정치와 신념, 그리고 광장 밖 혹은 일상에서 촛불의 가치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고민과 대답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번째로 공통 질문으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들었으면 합니다.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가 나왔고, 어떤 기획 회의 과정이 있었는지 전반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일상의 촛불>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2016, 2017년에 있었던 박근혜 퇴진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한 번쯤은 나가셨거나 생중계를 보시거나 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 안에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라는 장을 만들고 무대를 열고 같이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미디어팀으로 많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미디어활동가들이 결합을 해서 활동을 했어요. <광장>이라고 하는 열 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작업도 같이 했고 그 작품은 173월에 나왔어요. 최초로 나온 촛불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였을 것 같은데요. 정말 급히 만드느라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국면을 맞이하고, 탄핵, 파면선고가 된 이후의 국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관한 기획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광장의 사람들>, <광장에서>, 그리고 <일상의 촛불> 이렇게 세 작품을 같이 기획을 했어요. <광장의 사람들>은 말하자면 전사를 다룬, 처음에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이 되었고 이렇게 끝났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작업이었고, <광장에서>는 조금 더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작품이고요. <일상의 촛불>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촛불의 경험을 가지고 광장 밖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지 고민이 담겼습니다. 감독님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작품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진행: 광장에서 긴밀하게 현장과 결합하기 위해 미디어활동가로서 결과물을 빨리 내놓다보니 옴니버스식으로 단편들을 모아서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추가적으로 조금 더 여쭙자면 김수목 감독님의 <일상의 촛불>은 광장에 결집되어 있었던 힘의 파급력이 광장 밖으로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질문, 또는 그런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궁금합니다.

 

넝쿨그렇죠. 영화에서 인터뷰해주신 분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는 하는데요. 박근혜가 탄핵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바뀌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자유롭고 평등해보이는 광장에서 이상하고 미묘한 테두리를 벗어나면 바로 불평등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찌질하고 구질한 나, 벗어날 수 없는 나. 이런 간극을 미묘하게 다들 가지고 계셨을 것 같아요. 소위 세상을 바꿨다고 하는 행동들이 자기의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싶었고요. 사실 조금 더 밀어붙이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행동을 자기 일상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고요. 큰 변혁이라고 하는, 거대한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촛불 들고 서 있어서 탄핵이 된 거잖아요? 이런 어마어마한 진실을 자기 일상으로 끌고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죠.

 





진행: 다음으로 <나를 위한 변명>에 대해서 제작 배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여쭙고 싶은데요. 일단 세 분의 연출자가 계시는데 처음 만나서 어떤 식으로 얘기가 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일단 저희 셋이 95년생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작품을 논의하던 시기가 조기 대선이 결정되고 한 달 정도를 남겨둔 시점이었어요. 우리가 직접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과연 우리가 진짜 우리의 기준대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을 했고, 만약에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을 알지 못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각자 자기들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게 우리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기록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의도한대로 이야기들이 나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저희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변명해주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진행: 정확히 그 시점이 언제 정도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온 게 대략 어느 정도인지, 박근혜 정권 퇴진 즈음인지 궁금합니다.

 

고승환: 전부터 같이 작업을 했던 친구들이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왜 이렇게 세상이 잘못됐을까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세상이 크게 변화한 걸 직접 마주한 거죠. 본격적인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획은 하고 있었는데, 촛불을 우리가 직접 보게 되고, 나가게 되고, 박근혜가 하야하는 걸 다 지켜봤잖아요? 나름 그 곳에 있었고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막상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게 어느 정도인지 의심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박근혜가 하야한 이후에 바로 만들어지게 된 것 같아요.

 

진행: 그러면 연출과 관련해서 세 분이 공통적으로 정치적인 무기력함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이 바뀐 과정에 있어서의 분노 표출을 해보자는 합의를 하고 시작이 된 건가요?

 

고승환: 세 명 다 의견이 조금씩 달랐어요.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내레이터, 그리고 내레이터가 지칭하고 있는 그녀가 다른 두 감독들의 실제 이야기예요. 가상의 인물이나 가상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자기들의 이야기를 표현했고, 저는 환경적으로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기간이 길지 않아서 조금 더 멀리서 이야기해보겠다고 해서 각자 나름의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아요.

 


진행: 두 번째로 영화들의 구성 방식 혹은 연출 방식에 대한 부분인데요. 아까 <모든 날의 촛불>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처음 할 때부터 <광장의 사람들>, <광장에서>, 그리고 <일상의 촛불>이 서로 다른 색깔로 가되, 전체로 묶였을 때 한 편의 서사 같은 게 만들어질 수 있는 식의 구성을 따르려고 한 것인지, 최초의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뭔가 차별화를 두되 이어지는 느낌이 나야 한 편의 옴니버스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기획 단계에서는 각각 어떻게 포지션이 잡혔는지 궁금합니다.

 

넝쿨: 어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다루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을 정리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자는 기획이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세밀하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이후에 광장 밖에서도 다시 삶은 이어지니까요. 말하자면 광장에서 인간으로같은 느낌이 될 것 같은데요. 초반부터 이런 방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퇴진행동에서 같이 일한 박진님과 구성을 하는 과정에서 파트를 나누어서 기획했어요. 세밀하게는 각자 감독님들께서 주목하고 계시는 것들이 영화에 많이 담기기도 했고요. 사실 이게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다종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너무 욕심 내지 말자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촛불과 관련된, 혹은 촛불이 묻어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을테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담아보자는 정도로 이야기했습니다.

 

진행지금 우리가 본 김수목 감독님의 <일상의 촛불>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일상과 삶에다가 촛불의 의지를 가까이 들이미는 방식이에요. 전에 다른 작품들은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스펙타클함 그 자체, 광장의 열기를 찍어왔는데요. <일상의 촛불>은 그와는 한 뼘 거리를 두는 방식이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상의 관찰,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쪼개지게 된 거잖아요? 그것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협의가 된 부분이었는지요?

 

넝쿨: 아니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는 감독님의 선택이었고요. 이 영화 자체의 디테일, 구성 같은 것들은 감독님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행: <나를 위한 변명>도 구성과 연출이 궁금한데요.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영화에서 내레이터가 ’, ‘그녀라는 말을 쓰거든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왔다 갔다 하고, 나중에 가면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이런 식의 내레이션 구성을 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아까 잠깐 말씀을 하시긴 하셨지만 오늘 참석하시지 못한 두 감독님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됐었던 배경, 그리고 그게 ’, ‘그녀에서 우리까지 점프하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고승환: 일단 저희 셋 다 변명을 하고 싶었고, 변명을 하기 위해 나름의 선택이었던 건데요. 내레이션을 하는 친구는 오히려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고, 내레이션이 지칭하고 있는 그녀는 그래도 이번 기회에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입장이었고, 저는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웃음)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저희 세대의 이야기랄 것을 저희 셋이서 말한 건 아니잖아요? 저희가 끌어들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의 입을 빌려서 표현을 했기 때문에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

 




진행: ‘는 없고 그녀만 있잖아요? ‘그녀는 오늘 참석하지 않으신 박소현 감독님과 남아름 감독님의 경험담이 녹아 든 내레이션인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감독님은 로서 들어가지 않고 우리쪽으로 묶인 듯한 느낌이거든요?

 

고승환: 저도 그런 것 같네요.(웃음)

 

진행: 내레이션에 대해서 약간 소외감을 느끼진 않으셨는지요(웃음).

 

고승환: 사실 내레이션은 제가 대본을 쓴 거라서요. 그게 제 나름대로 개입을 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진행: 그럼 일부로 빼신 거네요? 이것 또한 일종의 변명인가요?(웃음) 내레이션을 빌미로 삼아서 그 뒤로 숨으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는데요. 이 영화의 구성 방식은 성장담처럼 보이기도 해요. 시간대별로 배열한 흐름을 따르고 있거든요.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런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고승환저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가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즉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만 들여다봐도 크고 많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자라온 동안에 분명히 그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체감을 못하고 살았던 거죠. 우리가 살아있었지만 그때 일어났던 변화들에 대해서는 인지를 못하고 우리가 하는 것에 묶여있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영화를 사실 처음 만들 때 이건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안에 어차피 정치는 다 들어 있었고, 그 둘을 같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을 해보려고 한 거죠.

 

진행: 저는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는 바인데, 예를 들어서 영화의 한 장면에서 누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때부터 대학교까지의 일대기가 영상을 통해서 전개가 되는데, 보고 있으니 러닝머신을 뛰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속도 조절을 할 수도 없는데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까 러닝머신 위에서 계속 뛰어야 하는 느낌. 그걸 돌리고 있는 게 정치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공통 질문으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인터뷰 대상을 섭외를 해서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어떤 인물들을 섭외하고자 했고 어떻게 구성했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일상의 촛불>에는 대학생, 세월호 관련활동과 영상 작업을 하시는 두 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 이렇게 네 팀이 나오시잖아요? 앞에 두 팀은 저희가 이런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짚어서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뒤에 두 분은 감독님과 인연이 있어 나오게 된 분들인데요. 앞에 대학생 분은 한 지면에 칼럼을 쓰신 적이 있어요.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자유로운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의 나의 모습에서 괴리를 느꼈다, 나의 일상은 변할 수 있을까, 그런 글을 쓰셨던 분이어서 섭외했습니다. 이런 괴리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자기 일상을 바꾸고 싶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한 분은 촛불집회를 할 때마다 오셨던 분이에요. 오랜 기간 촛불집회를 했잖아요? 매번 자원봉사자들이 촛불을 나눠주거나 피켓을 나눠주거나 하셨는데, 영화에 등장하신 남성분도 자원봉사에 참여하셨던 분이에요. 촛불집회를 지켜보았던 사람, 일상과의 괴리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기획 단계에서 나왔습니다.

 

진행: 광장으로 다가가고 싶어하지만 아직 다가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고, 광장에 속해있지만 문득 어느 순간 일상에서의 괴리를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촛불 또는 광장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포용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있지만, 어쩌면 그게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간극들이 무너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넝쿨: 말을 자꾸 길게 해서 죄송합니다만(웃음). 감독님께서 섭외해놓으셨던 분 중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던 분이 안다미로 사장님이셨어요. ‘촛불집회 나랑 별로 상관없지 않나? 정치 나랑 별로 상관없지 않나? 그냥 내 행복이 중요한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장사 때문에 한 번도 가 볼 수가 없었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항상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게 되는데, 오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같이 들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되게 반가웠죠.

 

진행: 촛불의 빛이 전해지면서 멀리 있지만 마음으로도 같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으로 <나를 위한 변명>에서 인터뷰 인물 구성을 보자면 아무래도 지인 분들, 친구분들이 나오셨던 것 같고요. 그 친구들의 공통점이 지방에서 상경한 분들이었다는 거죠? 인터뷰를 섭외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우리가 하고 싶은 변명이 있는데 우리가 하기는 그렇고 친구들의 입을 빌려보자는, 조금 이상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는데요.(웃음) 가까운 친구들을 통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저랑 한 친구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정말로 가까운 친구들이 다 나온 거구요. 그나마 친구가 많은 다른 한 명이 나머지 친구들을 다 섭외해줬어요. 다들 기준이 뚜렷했던 건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섭외할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편하게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런 기준으로 채워나간 것 같아요.

 

진행: 감독님께서는 아까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해외에 계신 기간이 많아서 그런 거죠?(웃음) 듣다 보니까 제목이 변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속 우리들의 변명, 연출자분들의 변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왜 항변이 아닌 변명이라는 타이틀을 쓰신 건지 궁금하네요.

 

고승환: 방금 말한 게 가장 큰 이유인데, 저희가 저희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에요. 그래서 맨 처음에 시작할 때 내레이션에서 지금부터 들려 줄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변명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시작을 하고 인터뷰들이 쭉 나온 다음에 지금까지 들려 준 이야기는 우리들의 변명일 지도 모르겠다.’라고 끝이 났거든요.

 

진행변명이라고 하지만, 과거에 겪었던 혹은 현재에 당면해있는 시국에 대한 비판, 국가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을 고찰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잖아요? 실제 영화 속에서 담긴 것 말고도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성토의 장이었는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는지. 친구분 중에 한 분이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조금 경직된 모습을 보였거든요. 존댓말을 써야 할 지 아니면 평소에 하듯이 반말을 해야 할 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톤이 조정된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영화에서는 어떤 부분들이 걷어지고 어떤 부분들이 담기게 된 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오히려 친한 친구들이어서 어려웠던 부분인데요. 평소에 친구들이랑 진지하게 각 잡고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각 잡고 이야기하려니까 서로 조금 어색했어요.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저희도 카메라 뒤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저희들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고, ‘너도 이러지 않았니?’ 했을 때, ‘맞아, 나도 이랬어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게요. 점점 편해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넝쿨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 영화에서 인터뷰는 대선 조금 전에 촬영됐던 걸로 보이고 아마 완성도 그 즈음에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대선이 진행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부터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출연하신 분들이나 아니면 공동기획자로 참여하신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한 지가 궁금하네요.

 

넝쿨: 안타깝게도 제가 연출은 아니어서요.(웃음) 주인공들과 인연이 직접적으로 있지는 않아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려도 괜찮다면, 정권이 변하며 천지개벽할 것 같았지만 사실 별로 바뀐 건 없죠. 그다지 많이 바뀐 건 없는 것 같아요. 내 미래를 설계하고 내 일상을 유지하면서 살고자 할 때, 특별히 평등한 조건이 만들어졌다거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게 된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정치상황이라던가 경제상황 같은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는 특별히 많이 바뀐 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런데 촛불집회를 겪기 전과 후에 시민들의 자신감과 평등이나 자유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도 이 작품을 오랜만에 보면서 맞아, 우리 이랬었지싶었던 게, 과거를 말할 때면 탈출구가 없고, 주저앉아서 무기력하게 살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만연했던 것 같아요. ‘부패? 그래, 다 부패하지. 부패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어. 불의? 누가 정의로워? 기회만 있으면 불의하더라도 내 이득을 따라야지.’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만연했는데, 변화의 기점이 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사실 그렇지 않잖아. 나 사실 그런 사람 아니거든? 너도 그렇지 않니?’라는 말들을 서로 확인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촛불집회라고 하는 게 단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잖아. 우리 조금 더 근사한 사람들이잖아.’라고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래서 그런 감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부분들은 사실 정치상황, 경제상황 같은 것들로만 이야기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구나 품고 있다는 가슴 속 삼천 원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진행<일상의 촛불>의 후반부에 광장 안에서 많은 분들이 전단지를 돌리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혹은 피켓을 들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거기에 보면 뭔가 각자 다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그런 여러 목소리가 그 광장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는 건데요. 정치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큰 판이라면, 여러 군데로 쪼개져 있던 것들이 촛불과 광장을 계기로 해서 다시 그 안에 모여서 새롭게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마치 급류가 휩쓸듯 한 번에 확 왔다가 지나가는 바람에 그 퍼즐이 아직은 완성이 안 되었고요. 이제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가는 단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했고 우리가 실제로 광장에서 느낄 수 있듯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그 안에서 새롭게 배치되면서 감각이 조금 재편되고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일단 좋은 영화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일상의 촛불>을 보니 인터뷰하신 분들께서 너무 말씀들을 잘 하셔서요. 이 분들이 몇 년 뒤에 다음 정권이 될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살고 있을 지 다시 찾아가서 후속 인터뷰를 한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넝쿨: 감독님께 건의해보겠습니다.

 

관객: (이어서) 그리고 고승환 감독님께 질문이 있는데, 영화에서 일상적으로 학교 교육을 받으면 정치에 관심을 갖기도 어렵고 삶의 속도가 너무 버겁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한 분이 자기가 되게 한심하다고 말한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러면서 친구분들이 학교에서 이런 정치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거나 만18세에 투표권이 있었으면 조금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런 대안에 대해서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듣고 싶네요.

 

고승환: 저희들끼리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확실히 제도적인 개선이 있고 교육 현장에 잘 반영이 된다면 지금 같은 문제가 반복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에 저희가 열아홉 살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가 저희들한테는 되게 알 수 없는 분노를 심어줬던 시기예요. 그러면서 투표권 연령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런 문제들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정치가 학생들의 관심 영역이 아닌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바꿨다고 믿는다면, 또는 바뀌어져 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조금씩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진행: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덧붙이고 싶은데요. 교육, 제도적인 부분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경제관을 빨리 심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초등학교 때 통장 개설하라고 하고, 은행에서 돈 찾는 방법, 송금하는 법까지 일일이 가르쳐주고 저축을 장려하며 경제관은 심어주는데 왜 정치관은 잘 안 심어줄까요. 투표권을 1, 2년 앞당겨준다면 고등학생 때 이미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고, 정치에 관해 학교에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관객: 소감도 말씀을 드리고, 조금 반복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제 언어로 다시 여쭤서 대답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일단 저는 이 두 편의 영화가 다 교집합적인 온기가 있고, 타인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연대의식을 포착하고 반영하는 동시에 연대 혹은 변화라는 알레고리가 가지는 막연함 또는 불완전함 또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를 위한 변명>의 고승환 감독님에게 조금 더 여쭤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항변이 아니라 변명이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사실 가부장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지배 양식 속에서 학교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을 한 결과, 학생들에게 어떤 무력감 내지는 순종심을 심어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도의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개인의 책임 의식을 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본인의 무기력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부분을 넘어 실천 내지는 창조하는 것도 할 수 있을 텐데, 변명이라는 힘없는 목소리에서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고요. 만약 이게 변명이 아닌 항변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식의 고민이 나오고, 그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고승환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자면, 일단 만드는 저희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었어요.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고요. 똑같이 모르는 입장에서 우리가 왜 몰랐을까를 탐구해보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됐는지, 또 우리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데 왜 너희들은 몰랐는지 묻고자 접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항변은 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몰라, 우리는 왜 몰랐을까, 우리는 이래서 몰랐구나가 전부인 영화라서요. 이걸 항변으로 발전시켜 보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할 수가 없네요.

 

 

관객: 영화 두 편 다 너무 잘 봤고요. <일상의 촛불>에서는 저도 집회를 매주 다니다시피 했던 사람으로서 대학생분 인터뷰에 굉장히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고요. 광장 안에서의 촛불의 힘을 온전하게 느끼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300원 더 비싼 걸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게 되는 제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 일상에서 변화된 것들이 있느냐는 질문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영화에서는 그 질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럼 일상에서는 어떻게 내가 촛불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혼자서 흔들리는 촛불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야기 해주신 것 같아서 굉장히 좋게 봤고요. 그리고 <나를 위한 변명>은 사실 변명을 하게 될 때는 굉장히 많은 밑밥들을 깔게 되잖아요? 그런데 대선이 다가오고 투표를 하게 됐을 시점에 가지게 된 고민과 변명을 하기 위한 밑밥들을 까는 과정들이 굉장히 단단하고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까도 살짝 나오기는 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고 질문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어떤 질문들을 넣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질문으로 어떤 걸 물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고승환일단 질문을 한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정해져 있었어요. 처음에는 친구한테서 어떻게든 이걸 이끌어 내보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과연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거야말로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너희는 사실 모르지?’ 처럼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질문 방식을 아예 다 엎어버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질문하는 방식이 너 그때 기억나? 너 그때 나랑 친했잖아.’ 이런 식으로 진행된 거고요. 얘기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오래된 친구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요. 저희는 그때 그랬지? 너 그때 기억나?’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상황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진행: 이 두 작품은 설득적이지도 않고, 해석적이지도 않은 것 같고, 소위 말하는 프로파간다적인 영화가 아닌 대신에 그 당시의 정세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뭔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짝 뒤로 물러서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이 촛불의 열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거나 촛불의 역사적인 가치와 의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촛불과 광장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각자의 촛불이 있고 각자가 가지는 광장에 대한 의미가 있는데, 이제는 각기 다른 모양새가 있는 촛불들이 통시적으로 묶일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금 묵직한 질문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웃음) 각자 영화에서 생각하는 촛불에 대한 의의와 의미는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강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런 고민들을 담고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개인적인 소견도 좋고, 아니면 영화를 같이 만들면서 나눴던 의견을 종합해서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박근혜가 파면되고 나서 그런 얘기를 조금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우리의 일상이 바뀌는 순간이 올까?’ 박근혜를 파면시켰지만 사실 촛불을 들면서 우리가 광장에서 외쳤던 게 그것만은 아니었잖아요? 제일 큰 목소리는 박근혜 퇴진이었지만 내 일상의 변화를 같이 요구했는데, 그런 변화는 언제 올까 생각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요. 앞서 잠시 미선이 효선이 사건이나 광우병 사태 촛불집회들을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2016년 이전에는 우리가 87년 체제를 살았다고 하면, 2016년 이후에는 촛불 체제를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요. 사실 무언가 하나가 딱 이루어지기 보다는 앞으로 한 30년은 이 사건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조금 더 획기적인 변화라고 하는 것,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같은 것들이 담기면 좋겠죠?


고승환: 제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살아온 세월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삶에 깊숙이 새겨져 버린 것들이 몇 가지 있어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랑 촛불이 저에게 새겨졌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가 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방향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실례를 무릅쓰고 거창한 질문을 드렸던 이유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무언가 상징으로 남겨진 다음에 그것만 남고 잔여물은 빠져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비단 촛불, 광장, 박근혜 퇴진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를 포함해서 그 이전의 모든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기념비화되고 새겨지고 난 다음, 그것만 남고 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까, 이런 자리에 모였을 때 의견을 나눠보고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 만들어진 단편들이 모여서 옴니버스 형태로 나왔는데 그 작품들을 보시면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어있거든요. 각각의 목소리들이 어떤 식으로 담겨 있는 문제들을 해소할건지가 앞으로 남은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정리하는 차원에서 두 분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것인지, 혹은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하시면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승환사실 작품을 완성한 지는 꽤 됐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네요. 제가 살짝 무기력한 태도로 보였을 것 같은데요. 그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과연 내 안에서 혹은 세상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고민을 더 하게 되어서 그런지, 지금 하는 말들은 변명에 변명을 더 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계속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넝쿨: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고 나서도 사람들이 계속 집에 안 가고 토요일마다 나와서 너무 지겹다, 왜 안 가냐, 그만 좀 갔으면 좋겠다라고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제가 아직도 그 짓을 하고 있어요.(웃음. 저도 촛불의 처음부터 끝까지 혹은 박근혜 정권의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일종의 촛불 영상 백서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희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내년 3월이 되면 박근혜 파면 2주년이잖아요? 그 즈음에 맞춰서 개봉을 해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행: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어주네요.(웃음)

 

넝쿨촛불이 만든 거죠.(웃음) 제목은 광화문의 광화이고요. 언젠가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반갑게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진행: 그러면 수고해주신 두 분께 박수 드리면서 자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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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 패밀리>  한줄 관람평


권정민 | 연민과 환멸로 똘똘 뭉친우리 집의 거시 현대사

김정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부동산 버블에 휩쓸리는, 휩쓸릴 수밖에 없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승문보 | 진지함과 웃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보여주는 자본, 공간, 그리고 가족사의 관계

주창민 환상에 대한 욕망과 공간에 대한 젊은이의 의미 있는 해석

박마리솔 그 많은 버블은 누가 만들었을까








 <버블 패밀리>  리뷰 : 환상에 대한 욕망과 공간에 대한 젊은이의 의미 있는 해석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서울이라는 장소/공간은 수많은 감각이 공존하고 다양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 중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급격한 성장의 이미지 혹은 성공의 땅이라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에 적절했다. 부동산 버블은 성공이라는 환상에 대한 욕망과 자본주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고정된 장소에 침투하는 부의 욕망은 폭력적으로 공간을 탈바꿈시키고 계속해서 더 고양된 욕망을 발생시킨다. 그 역학에 따라 태초의 땅은 선명하게 구획되고 욕망의 투영물들이 건설되었다. 그 공간 속 개인의 삶은 결국 터지게 되는 풍선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마민지 감독은 이러한 자본과 공간, 그리고 개인과의 관계를 과거 잘나가던 중산층에서 현재 몰락하고 있는 가정의 모습을 경유하여 블랙코미디로 표현한다.

 




영화 <버블 패밀리>는 과거의 모습, 60년대에서부터 90년까지의 한국 경제사를 뉴스 푸티지 그리고 홈비디오로 소환한다. 홈비디오 속 풍경은 이 영화를 감독만의 이야기로 한정시키는 효과가 아닌 IMF를 겪었거나 서울도시계획사, 공간의 변화를 몸으로 느낀 우리들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이는 관객의 과거를 회상시키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반면 현재의 모습은 가족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이는데, 감독은 부모로부터 내려온 빚을 청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행위를 스크린 위에 기록한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버지와 모르는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수행적 다큐멘터리의 측면을 드러낸다. 마민지 감독은 영상 속 주체가 되어 공간을 재맥락화하고 자신의 관점을 근거하여 가족의 모습을 통해 부동산 버블의 문제, 빚의 대물림 문제를 논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사실 외환위기, 강남투기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지만, 이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주체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젊은 세대의 외동딸이다. 왕년에 잘나간 중산층의 외동딸은 어쩌면 문제의 현안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만, 오히려 간접적인 체험과 역사의 기록물을 바탕으로 지금 자신의 세대한테로 넘어온 책임과 문제를 제시한다. 그에게 부동산 버블은 엉망진창 풍경 속 반쪽짜리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동안 도시 공간의 해석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던 주체가 기성세대와의 간극을 인정하면서도 다층적인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 속 가족과 개인의 삶은 시대상, 자본, 서울이라는 장소와 공간으로 대변되는 거시적 환경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급변하는 한국 경제 문제 속 주체는 줄곧 왜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부동산에 계속 집착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빚을 빨리 청산하려는 태도와 집을 따로 내어 사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로 말미암은 몰락과 대습된 빚을 청산하려 저항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피하기는 어렵다. 약육강식의 사회 속 약자들은 환상에 대한 욕망을 더욱 가질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것만이 현실적인 삶일지도 모른다. 마민지 감독은 이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며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내 미래가 보장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부모님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라는 독백으로 자본 그리고 환상의 매혹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하지만 이 땅이 언젠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다시 거리를 두고 가족사진을 비추며 삶으로 돌아온다.




 

<버블 패밀리>는 도시공간과 경제 문제를 분석적으로 다루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지점의 영화다. 오히려 가족의 모습을 담은 홈비디오나 '웃픈' 모큐멘터리에 가깝다. 즉 서울이라는 장소에 얽힌 모순과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장소의 관계에 더 주목한다.  '버블 패밀리'의 주거공간은 서울 중심 거주지에서 밀려난 몰락한 주택을 상징하면서도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점에서 다층적인 결을 지닌다. 이러한 구조를 택하면서도 사회 그리고 가족 사이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끝까지 끌고 간다. 앞으로 마민지 감독이 다룰 도시공간에 대한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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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면>  한줄 관람평


권정민 | ‘함께 살면 살아져요’. 시선을 고민하는 속깊은 다큐멘터리

김정은 다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세상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

승문보 | 두 개의 시간이 하나의 시간으로 되어간다

주창민 꼭 어른이 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시선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박마리솔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어른이 되면>  리뷰 :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으레 걱정되는 것들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그저 안쓰럽고 불쌍하게만 느껴지는 것,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스스로를 확인하는 것이 불편했다. 장혜영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음을 <어른이 되면>을 통해 보여준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서른의 혜정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언니 혜영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른이 되고나서도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을 혜정에게 혜영은 이렇게 답했다. 네 삶은 네가 선택할 수 있다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이 당연한 명제가 장애인인 혜정에겐 아득하게만 느껴질까. 영화를 만든 장혜영 감독은 를 질문하고 있다.





함께 산다는 건 원래 녹록지 않다. 그게 누구든.


영화는 혜영과 혜정이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땀을 뻘뻘 흘리던 혜영은 혜정에게 같이 선풍기를 사러 가자고 말한다. 혜정은 벌 서는 얼굴로 거듭 싫다고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린다. 선풍기 하나 사는 것부터 이렇게 어려워서야 같이 살 수 있나,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산다는 건 원래 녹록치 않은 일 아닌가. 그게 누구든. 동거하는 사람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른 사람과 생활을 공유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만 어려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지난 22, 인디스페이스 <어른이 되면> 싱어롱 상영회에서 장혜영 감독이 관객에게 했던 말이다. “혜정이는 정말 타고난 협상가예요. 원하는 게 관철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이야기해요. 안 되면 이야기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이야기하고. 저렇게 하면 안 될 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 말 하나로 혜정의 다름이 충분히 납득되었고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 없었다. 혜영은 혜정의 다름을 세상의 여러 다름 중 하나의 다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를 썰어주는 것이 아니라 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혜영이 혜정에게 스테이크 써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있다. 혜정의 어색한 손놀림에 스테이크는 좀처럼 썰리지 않는다. 혜영은 혜정에게 고기를 썰어주는 대신 혜정이 고기를 썰 때까지 조곤조곤 방법을 가르쳐준다. 혜정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혜정은 스테이크와 한참을 씨름하다가 한 점을 겨우 입안으로 넣는다. 이렇게 장애인과 어울려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격리된 공간에서 비장애인이 썰어준 고기를 먹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딜지라도 고기 써는 방법을 배우면서. 그럴 수 있다면 장애인도 장애인으로서의 자립을 어느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혜정이 시설 밖의 세상을 만나고 배워나가는 방식,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혜영의 모습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간다면


혜정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아프리카 음악보다는 트로트를,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모아나>와 <인어공주>를 좋아한다. 스티커사진이 너무 찍고 싶다며 우기다가 서러운 나머지 울기도 한다. 이렇게나 욕구가 구체적이다. 혜영은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는 혜정에게 이따금씩 놀라는데, 이는 혜영이 혜정과 같이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혜정의 모습들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살지 않아서 모르는 모습들에 대해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격을 갖고 있지만 동등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현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완전히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잘 생각해보면 이건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인과 흑인, 미취학아동과 청년, 여성과 남성, 이성애자와 비이성애자. 세상의 그 어떤 층위를 보더라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공존은 얼마만큼 이야기 되었는가, 라고 따져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201812월로부터 10년 뒤인 202812월엔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43살이 되어있을 혜정은 그때도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가는 중일까. 자신 없는 물음표만 자꾸 남지만, 그래도 기대하고 싶다.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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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아닌, 불평등  <어른이 되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16일(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장혜영 감독, 주인공 장혜정 

진행 뮤지션 시와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주고, 또 받는 것이다. 주기만 하는 것도, 받기만 하는 것도 관계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18년만에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혜정 역시 주변인들과 많은 것들을 주고 받으며고군분투한다. 1213일에 개봉한 장혜영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은 혜영과 혜정이라는 두 자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혜정과 사회 간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혜정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16,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깜짝 게스트 혜정과 함께 뮤지션 시와가 진행하는 인디토크가 있었다.

 

 



뮤지션 시와(이하 시와): 하하. 오늘 여기 들어오기 전에 마셨던 음료를 먼저 얘기하셨죠그리고 관객 분들에게 인사를.

 

주인공 장혜정(이하 장혜정): 저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객석으로 감)

 

시와: (웃음)네 알겠습니다. 장혜정님이었습니다.

 

장혜영 감독(이하 장혜영): 여러분들의 음료를 조심하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시와: 커피를 좋아하시는 건 이미 영화 보셨으니까 다들 아실 테고, 이미 한잔 마셔서 더 마시면 오늘 잠을 못 자게 되잖아요?

 

장혜영: , 그렇겠죠. 그런데 얻어내는 능력이 너무나 탁월해서. 긴장하고 있죠.

 

시와: 혜정님이 다시 나와서 얘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겠습니다. 저는 생각 많은 둘째언니의 팬이자, 또 장혜정님과 친해지고 싶은, 노래하는 시와입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이 있을까요?

 

장혜영: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장혜정의 언니, 장혜영입니다.

 




시와: 영화 마지막 장면이 201811일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 되잖아요. 어느새 2018년이 끝나는 시기인데, 영화를 그렇게 완성하시고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장혜영요즘은 상당히 복잡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데, 우선은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일단 어쨌든 영화를 많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완성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해요. 또 한편으로는 되게 슬프고 착잡한 마음도 있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올해에 장애인권을 둘러싼 많은 일들, 국회 예산이나 어떤 제도적인 틀에서 그리 성과를 얻지 못한 것. 그것을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다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욕적으로, 의식적으로라도 기운을 내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런 마음들이 요새 왔다갔다합니다.

 

시와그렇게 다른 분들을 격려하면서 같이 힘을 얻는 건가요?

 

장혜영: 그럼요. 그게 요새 저를 움직이는 중요한 마음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저 스스로 일단 납득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고, 더 힘을 얻는 거죠.

 

시와: 그렇군요.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힘을 얻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작년에 제가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혜정님을 먼저 만난 적이 있더라구요. 작년에 탈시설 경험자들의 인터뷰집이 책으로 나왔는데, 그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 제가 노래하러 갔었거든요. 근데 혜영님 없이 혜정님이 그 자리에 와있었고. 제가 노래를 하는데 혜정님이 나와서 춤을 췄어요. 되게 기쁜 순간이었어요. 왜냐하면 제 노래에 누가 춤 췄으면 좋겠다고 항상 상상만 해봤는데, 그걸 혜정님이 이뤄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 노래를 더 자신 있게 부르고 힘을 얻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어른이 되면>을 통해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영화 속에 담으셨을 텐데, 혹시 더해서 하실 말씀이 있나요?

 

장혜영: 어쨌든 영상의 방식으로 보여주다보니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에 대한 감정 같은 것들을 담아내기가 좋았다면, 일부러 배제했던 어떤 순간들이 있어요. 특히 시설에서의 혜정의 모습, 또 부모님의 모습도 일부러 배제했거든요. 왜냐하면 영화에서만큼은 부모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그리고 시설에서의 모습과 시설 밖에서의 모습을 대비하는 순간 관객들이 느끼기에 디테일이 사라질 거예요. 시설과 비교해서 시설 밖의 삶은 웬만해선 다 좋아보이니까. 일상에서의 수많은 순간 안에서 혼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이후 책을 통해서 제가 감춰뒀던 부분들, 추가된 이야기들을 많이 했고요. 많이 욕심은 났지만 참았던 것들은, 그럼 지금 뭘 해야 할지에 대해 설득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와: 책의 마지막 챕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걸로 마무리를 하셨잖아요. 아까 섬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배제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그게 아마 장혜정이라는 사람, 어떤 개별적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뭔가 설득하려고 하기 전에 혜정이란 한 사람을 저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나는 동생 혜정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잘 모르는 혜정이 모습이 나오면 겁이 났다그리고 바로 이후에 하지만 우리가 서로 잘 모르는 건 당연한 것이다라고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새롭게 다른 것을 쌓아가는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거든요. 어떤 집단으로 묶이는 것보다 이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신 건지?

 

장혜영: , 정확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자꾸 착각을 하게 되는 게 있어요, 내가 사회에서 더 오래 살았으니까,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내가 장애가 없으니까, 장혜정이라고 하는 사람의 삶이 더 나은 삶이 되는 것에 대해서 장혜정 보단 내가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또 지금도 쉽게 빠지는 것 같아요. 계속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혜정의 목소리보다는 내 목소리가 훨씬 잘 들리는 형태로 빚어져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저에게는 아프지만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구요.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립니다. 오늘이 16일이니까 8일 뒤면 혜정씨 생일인데요. 작년 생일 때는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올해는 어떤 계획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시와: 마침 전하려는 소식이 있었거든요. 직접 전해주세요.

 

장혜영: 다행스러운 것은 혜정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자리에서 혜정 생일 이틀 전에 또 <어른이 되면> 상영이 있어요. 싱어롱 상영으로 하기로 했어요.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는 상영회로 하고, 영화 끝나면 혜정과 인서의 작은 공연으로 혜정의 생일을 다함께 축하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혜정: 저는 어우동 복장!

 

장혜영: 어우동 복장을 입고오고 싶나요?

 

장혜정: .

 

장혜영: 알겠습니다. 참작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시와: 관객의 기대감을 더 높여주시네요.

 

장혜영: 그러게요.

 



관객: 영화에 많은 노래가 나오잖아요. 그 중에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제가 만든 노래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제일 많이 부르게 되는 노래는 역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인 것 같아요. 그 노래를 생각하고 부르면서 힘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어떤 창문 같은 느낌이라서 되게 고마운 노래라고 생각해요. 어렵네요. 이런 질문은 어떻게 대답하면 되나요, 시와님?

 

시와: 지금 하신대로 하면 돼요.(웃음) 저한테 묻진 않으셨지만, 저는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라는 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장혜영 감독님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녹아있어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느끼는 바가 생겼어요. 제가 사실 노래를 만드는 길을 잃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장혜영: 정말 행복한 말이네요.

 


관객: 영화 잘 봤구요. 감명 깊게 봐서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어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영화에서 한 말씀 중에, ‘혜정이하고 같이 살지 않았을 때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최근에 들어서 장애인권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있는데, 흔히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도와야하고, 배려 받아야할 존재고, 비장애인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착각을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혜정님이 온전한 감정의 소통을 하고, 또 혜영 감독님한테 혜정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영화로 보여주신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가 사실상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적잖아요. 저는 이 사회에서 장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분들이 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영감과, 선한 영향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이야기 드리고 싶었습니다.

 

시와: 감사합니다. 그 마음 혼자 간직하지 않고,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웃음) 좋은 영향력이 더 많이 퍼질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 어떠세요?

 

장혜영: 새해덕담을 미리 들은 것 같은 느낌이네요. 너무 감사하죠. 사실 쑥스러워서 도망가고 싶은(웃음) 너무 감사합니다.

 

장혜정: 저요!

 

시와: 다음엔 혜정님으로 갈게요.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구요. 촬영하는 분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제가 느꼈을 때는 굉장히 통일감 있게 느껴졌고 굉장히 일관성 있는 시선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꼭 마치 장혜영 감독님 혼자서 찍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좀 뜬금없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저는 관계가 너무 어렵고 팀플 하나를 같이 할 때에도 너무 힘든데, 이렇게 일관성 있는 시선으로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 되게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장혜영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의미가 뭔지,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혜영굉장히 본질적인, 제가 좋아하는 질문이네요. 관계라는 건 혜정이 탈시설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부터 저한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였고, 저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대답하는 사람인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혜정의 삶은 수많은 관계들로부터, 혹은 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로부터 아주 일찍이 박탈당한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번 사회에서 추방당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돌아올 때 어떤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미 마련된 길이 있지는 않을 테고 길을 내면서 돌아오는 걸 텐데, 그렇다면 그건 아마 사람길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의 길을 통해 다시 사회로 나와서 이 관계망 속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의 연출에 있어서 제가 감독으로 팀을 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과 어떤 기본적인 원칙을 합의했어요. ‘생활이 먼저고, 작업은 나중이다라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상황에 화학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느끼면 촬영을 그만두자고 약속했고 그건 잘 지켜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우리가 이 모든 작업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장혜정이라는 한 사람이 그저 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로 돌아오는 일에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조력한다는 거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저희가 먼저 좋은 관계를 갖지 않으면 좋은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처음에 혜정을 만나고 가까워질 때 어떻게 혜정을 대해야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스텝들도, 그리고 저 스스로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어떤 명확한 길이 있다기 보다는. 어쨌든 우리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있어도 혜정이 이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제스쳐가 있다면 그러면 일단 멈추고 보자. 멈추고 다른 방법을 찾자. 이런 태도를 가진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든,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든, 뭐가 됐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남이 이것 이상으로 강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어떤 층위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겠죠. 설령 우리 모두가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대도 이 사람이 “No”라고 한다면 우린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합의하는 게 건강한 관계에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와: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하시더니 좋은 얘기를 해주셨네요. 물어보는 게 실례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넘겨짚는 배려를 하다보면 외려 배려가 아닐 때가 많잖아요. 근데 혜정님은, 해요. 저희가 말로 물어보는 방식이면 혜정님은 온몸으로 부딪힌다고 할까. 포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장혜영: 맞아요. 시와님도 예전에 특수교육에서 종사를 하셨기 때문에 더더욱 섬세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기, 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도 들을 수 있고 저렇게도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혜정 같은 경우는 내가 말하는 건 이거야라고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저도 되게 명확하게 반응할 수 있게 돼요.

 




관객: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첫째는 영화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는 장혜영으로서의 시간과 장혜정 언니로서의 시간, 두 개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셨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하고요. 둘째로, 저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인데요. 이번 여름에 중증장애생활시설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때 지적장애가 있는 세 명의 자매와 함께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갔는데, 그때 이 자매들이 제 친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제가 보호자 같기도 해서 계속 양가감정이 들었어요. 어떤 상황에서 주의를 줘야하는지, 웃어넘겨도 되는지 계속 갈등이 되는 거예요. 사실 웃어넘기면 그 친구들이 하는 행동들이 다 너무 재밌고 즐거운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또 어떠한 수준의 요구를 해야 되고, 그러면 이 친구들의 면면이 개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보호자와 친구, 그 사이의 갈등이 있었는데 감독님도 영화에서 어느 정도는 갈등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를 싫어하게 되는 걸 인정을 해야 하고, 그런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자면요. 초반에는 저는 그 두 가지가 분리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근데 일 년 반 정도 같이 살다보니 생각보다 그건 그렇게 분리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혜정하고 같이 살기 전에 두 가지 시간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함께 살아가면서는 그게 합쳐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에는 나에게는 발달장애 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고 해요.’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그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었어요. 내 안에서 중요한 정체성이 빠져 있었던 거예요. 근데 지금은 제 인생의 여러 가지 선택 중에 가장 나다운 선택이 혜정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선택이었고. 그걸 삶을 통해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도 장혜영다운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저는 혜정의 언니이기도 하니까요. 이 두 가지는 굉장히 훌륭하게, 하나의 세계로 다시 합쳐졌다고 여기고 있구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늘 고민스러운 부분인 것 같아요. 혜정과의 시간 속에서 누구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저는 특히 초반에 어디까지 통제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잠정적으로 답을 얻은 것은, 통제는 불가능하며 통제라는 개념 자체가 더 문제를 어둡게 만든다는 거예요, 통제가 아니라 협상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통제는 오히려 나가고자 하는 명확한 방향이 있고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젠데, 협상은 해보기 전에는 결과를 모르는 거죠. 혜정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집요한 사람이에요. 제가 늘 많은 것을 배우는데. 뭔가 한 가지 의지를 전달할 때 저렇게까지 집요하면 나같은 사람도 설득이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왜 하루에 두 잔째의 커피를 주지 않는가에 대해 하루에 40번씩 들으면 41번째에는 주게 되기도 하거든요.(웃음) 그렇게 결론짓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관객: 안녕하세요. 저는 감독님을 올해 알게 돼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영화는 오늘 처음 보게 되었어요. 처음에 제도적인 측면에 있어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2018년을 되돌아볼 때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고 어떤 점이 실망스러웠는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고요. 네덜란드를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장애인권운동의 맥락에서 올해를 정의한다면, 저는 장애인권운동의 백래시의 해였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백래시라는 단어는 페미니즘 언어잖아요. 이런 말이 있죠.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얼굴을 하고 온다.” 거기서 착안해서 저는 장애운동의 백래시는 장애인권의 얼굴을 하고 온다.’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국민명령 1호라는 이름으로 내걸었어요. 수많은 언론을 통해서 장애계의 숙원사업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름만 그렇고 사실상 원했던,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라는 슬로건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는 내용이었죠. 예산도 자연증가분 이상의 예산이 나온 것도 아니고. 다른 서비스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사실상 제도적으로는 셈법이 달라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장애등급제가 폐지됐다는 프레임만 홍보가 됐어요. 이 문제에 대해 늘상 고민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럼 이제 장애등급제도 폐지됐는데 장애인들은 왜 아직도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거야.’라는 여론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투자받기 좀 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모든 이슈를 그게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설명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매스컴이 장애이슈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사세요같은 식으로, 여전히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특수학교 설립에 있어서 부모들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보면 장애인들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보다는 이렇게 비참한 사람들이 있는데 동정하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인류의 수심이다.’라는 식으로만 그들을 비난하죠. 탈시설 문제에 있어서도 사실 하나하나 얘기하자면 끝이 없어요. 명확하게 나아간 실적은 많이 없어서기득권 제도 정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분에 있어서는 절망감을 많이 느꼈지만, 제가 희망을 보는 건 여기 앉아계신 한 분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변화하는 모습들을 느낄 때예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트위터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언제 가슴아파하는지, 무엇을 보며 행동하고자 하는지를 볼 때 저는 좀 기운이 나는 것 같구요.

그래서 올해 말과 내년에는 여전히 열심히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일 년 반 동안 떠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지 제가 더 떠들고 싶지는 않은데, 어쨌든 이건 장애인들의 힘든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게 서로 어떤 환경에 처해있냐에 따라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결국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 보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걸 더 열심히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어른이 되면>이 여러분 덕분에 개봉관까지 왔으니까. 한분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영화와 책을 알리고, 또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와: 장혜영 감독님 덕분에 저의 생각이 열리는 계기가 몇 번 있었거든요. 그 중 하나가 불행이 아닌 불평등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문제를 불행으로만 바라보니까 좋은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 당사자들이 오히려 더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많죠. 아예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일인데요.

 




관객: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 재밌고 특색 있어서 영화보기 전에도 들으면서 친구들이랑 같이 부르고 그랬거든요. 짤막한 노래부터 긴 노래까지,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작곡을 하시는지도 궁금하고, 혹시 음악을 따로 배우신건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일단 노래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도 일찌감치 많은 시간을 노래방에서 보내는 중학생이었고요.(웃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긴 했습니다. 시와님 노래도 참 많이 들었죠. 인서하고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혜정과 함께 지내는 데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소통 수단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인서는 하여간 노상 뭔가를 치고 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친구가 자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어느 순간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입히고.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어쨌든 노래를 만들긴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하루는 되게 마음이 안 좋은 상태로 일기를 썼어요. 그런 날 일기를 많이 쓰게 되죠.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어딘가 풀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일기장에다가 막 혜정은 오늘 이런저런 사고를 쳤고, 나는 화를 냈고,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이런 내용의 일기를 썼어요. 일기를 다 쓰고 한번 쭉 읽어봤는데 그 글귀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이,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되게 공감할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한번 음악을 만들어 볼까 싶어서 멜로디를 붙였고, 그날 저녁에 인서한테 들려줬더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예요. 역시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인서가 별로라고 했다면 이 노래는 이 세상에 없었을 텐데. 옆에서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다음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 혜정님이 스테이크 써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처음에는 썰기 힘들어하는데 뒤에는 능숙하게 쓸면서 생활의 달인이라고 말하고.(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살아갈 힘이나 용기를 얻었어요. 사실 저는 장애인 인권문제는 많이 몰랐고, 관심을 가질 계기가 많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스스로 외면해 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감독님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인간적인 삶 없이는 우리의 인간적인 삶은 없다고 말하신 게 많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소한 질문인데, 노래를 듣다보니까 외계인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웃음) 외계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 이유가 있다면 궁금합니다.

 

장혜영: . 일단 SF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유독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다르기 때문에 배척받은 사람들이 되게 많은데, 외계인이라고 하면 귀엽잖아요. 공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나는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죠. 저는 지금도 아예 의심을 거두고 있지는 않아요.(웃음) 때가 되면 갑자기 내 안에서 지구의 탐험을 끝낼 때가 됐군.’ 이러면서 진정한 인격이 나올 수도 있고.(웃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장혜정: 저요. 암 쏘 커피 매니아. 예쓰.

 




시와: 혜정님이 커피매니아라고.(웃음) 저는 혜정님 생일날 파티를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줘서 영화 속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느껴졌어요. 감독님이 영화 속에서도 말씀하시고 여기서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오로지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그 장면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그럼 이제 감독님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장혜영: 파티장면의 해설을 준비하던 때의 마음이 기억나요. 딱 요맘때쯤에 했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관계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잖아요. 혜정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은 그 특유의 에너지, , 이런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위한 가장 적절한 자리가 음악을 나누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고요. 관계를 언제 만지고, 느끼고, 지각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거나, 같이 맛있는 걸 먹거나, 그렇게 시간을 공유할 때 우리 사이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되잖아요. 그래서 혜정에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가 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우리에게 연결된 관계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고 싶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자리였죠. 그래서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아까 관객분이 질문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2018년의 인간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건지 많이 생각하는데요. 지금의 인간을 정의하는 건 아마 가장 강하고 가장 잘살고 장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참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2018년의 인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이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흔해졌는데, 그건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주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전쟁을 겪고, 인간이 인간위에 서도 좋다는 생각이 제어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픈 가슴으로 약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우리 안의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로 이행되고 있는가 보면, 우리는 그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건 현재의 약속이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혜정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불편을 겪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올 연말도 내년과 함께 기운내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 다른 분들께도 많이 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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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영씨>  한줄 관람평


권정민 | 드라마를 뭉개는 코미디실험적인 동시에 고전적이다.

김정은 약자들의 연대와 사랑으로도 견뎌내기엔 역부족인씁쓸한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실

승문보 | 고봉수 사단의 매력은 다시 한번 확장되었다

주창민 고봉수 식 해학과 사랑, 그 가능성과 한계

박마리솔 한겨울에 건네는 귤 같은, 그런 사랑





 <다영씨>  리뷰 : 약자들의 연대와 사랑으로도 견뎌내기엔 역부족인씁쓸한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빵과 우유로 끼니를 해결하며 갖은 모욕을 당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퀵서비스 기사 민재. 삼진물산에서 일하며 가끔 택배를 받는 다영씨는 민재에게 유일하게 따스한 미소를 건네는 사람이고, 민재는 그런 다영씨에게 자신도 먹지 못하는 귤을 선물하며 수줍은 마음을 표현한다. 다영씨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어렵게 일하는 것을 알게 된 민재는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자처하여 삼진물산에서 입사해서 다영씨를 돕기 시작한다.

 




대화나 색채 없이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으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 속의 부조리함을 선명하게 포착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약자를 향한 폭력이 만연한 영화 외적인 상황이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유 없는 분노와 혐오는 약자를 향해 흐르며, 그 강도는 거듭할수록 점점 거세진다. 삼진물산에서 명백한 을인 다영씨와 민재는 동료와 상사들의 터무니없는 구실로 무장한 구박의 대상이 되며, 괴롭힘의 방식은 치졸하면서도 다양하다. 곳곳에 숨겨놓은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있지만 웃음을 짓기에는 조금의 과장만 덜어내면 현실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처절한 모습이었다.


 



흑백무성영화라는 시도와 고봉수 사단만의 개성으로 갑을관계를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꼬집어 내지만, 다영씨와 삼진물산의 또 한 명의 여성 직원인 하람을 대하는 시선은 아쉬움이 남는다. 민재를 제외한 삼진물산의 남자 직원들은 상대적인 약자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료의 관계로 비추어지며, 그들끼리 공모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다영씨와 하람은 철저히 타자화된다. 다영씨는 온갖 차별과 배제를 겪으며 혐오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람은 출중한 외모와 사장님의 딸이라는 이유로 남자 직원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떠받듦을 받는다. 말단 직원이고 사장님의 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직원 중 여성이 동등한 동료가 아닌 대상화된다는 점, 그리고 남성 직원끼리의 연대는 있으나 두 여성 직원의 관계에서는 갈등만이 그려진다는 점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영씨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민재의 도움으로 인해 조금은 휴식을 취하게 되는 다영씨의 모습에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녀가 하는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맡은 일을 끝까지 해냈던 다영씨를 민재의 등장 이후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그려낸 점도 아쉽게 느껴진다.


 



유사한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듯한 구조와 영화적인 완성도,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시선은 아쉬웠으나 고봉수 사단에 응원을 보낸다. 거대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지켜내기에 바쁜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자 온몸을 던지는 순수하고도 애틋한 사랑을 흑백무성영화라는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전작인 <튼튼이의 모험><델타 보이즈>에 이어 한정적인 예산에 굴하지 않고 유일무이한 영화적인 개성과 정체성을 고수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고봉수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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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건네는 귤 같은, 그런 사랑  <다영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9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배우 이호정, 신민재, 강하람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다영씨로 시작하지만 민재씨로 끝이 난다. 다영을 안아주고 싶은 건 민재지만 영화가 끝나면 사랑하느라 수고한 민재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다영을 향한 민재의 쓸쓸하고 수줍은 미소는 애틋하다기보다 짠하게 느껴진다. 웅장한 음악과 과장된 몸짓들 사이에 그 진심어린 마음이 자꾸만 작아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의 진행으로 신민재 배우, 이호정 배우 그리고 강하람 배우가 함께했다.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이은선입니다. 우선 배우 세 분의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호정 배우(이하 이호정): 안녕하세요. 저는 <다영씨>에서 이다영 역을 맡은 이호정이라고 합니다.

 

신민재 배우(이하 신민재): 안녕하세요. 저는 택배기사 역을 맡은 신민재라고 합니다.

 

강하람 배우(이하 강하람): 안녕하세요. 저는 사장 딸 역을 맡은 강하람입니다.

 


이은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영화를 보셔서 관객분들께서 지금 목소리를 듣는 게 특별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우선 <다영씨>라는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고 구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민재: 우선 고봉수 감독님이 다른 촬영 때문에 이 자리에 못 오셨어요.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저희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영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면, 고봉수 감독님께서 <델타 보이즈>에서는 백승환 배우가 주연이었고 <튼튼이의 모험>에서는 김충길 배우가 주연이었으니 이제는 제 차례라고 하셨어요. 저한테 어떤 영화 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멜로를 하고 싶고, 무성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의 습작 중에 무성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잘 만드셨더라고요. 마침 감독님도 무성영화 제안에 좋아하셔서 같이 하게 됐어요. 촬영은 추석 연휴 동안에 하게 되었고 제가 예전에 택배 알바하면서 겪었던 것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은선: 지금 중요한 이름들이 등장했는데요, 백승환 배우와 김충길 배우 두 분을 고봉수 감독의 전작 <델타보이즈><튼튼이의 모험>에서 보신 관객분들이라면 낯이 익으셨을 것 같아요. 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서 <다영씨>에서는 두 분이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려요.

 

신민재백승환 배우는 과장 역할을 했어요. 저희도 직책은 잘 모르지만 다영을 괴롭히던 친구가 백승환 배우고요, 온갖 얼굴 근육을 사용했던 사원 역이 김충길 배우입니다.

 

이은선: 흑백 무성영화라는 것 자체가 낯선 포맷인데 세 배우 분은 어떤 기분으로 흑백무성영화를 촬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하람: 저는 사실 무성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무성영화라 하면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는 정도였는데 이 작품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너무나 발전한 21세기에 흑백무성영화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민재저는 어릴 때 무성영화를 좋아했습니다. 2011년 개봉한 <아티스트>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그 영화와 저희 영화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 흑백무성영화를 해도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물론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 개봉해도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은선: 방금 언급하신 <아티스트>라는 영화는 프랑스의 장 뒤자르댕 배우가 주연을 맡은 흑백무성영화인데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러 부문 노미네이트된 작품입니다.

 




이호정: 저는 사실 주된 분야가 소리였는데 최근엔 이미지를 연구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무성영화를 만나니 신선했어요. 중간중간에 제 입모양을 보시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는데, 촬영 당시에는 무성흑백영화라는 생각보다는 상황을 인지하며 촬영습니다.

 

이은선: 소리에 대한 연구라는 게 어떤 연구인가요?

 

이호정: 제가 중고등학교 때는 실용음악, 보컬을 했고 대학에선 연기 전공를 전공했어요. 최근에는 텍스트보다는 움직임이나 오브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 와중에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은선: 시나리오는 활자가 많잖아요. 대사도 많고 지문도 많은 글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시나리오가 도대체 어떤 모양일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지문만 잔뜩 써있는지 혹은 시나리오 안에 상황만 있고 현장에서 바로 주문된 것을 연기하시는 건지 궁금했어요.

 

이호정: 처음에 시나리오가 있었고 장면 장면마다 어떤 상황인지가 있었어요. 그걸 리허설도 했고요. 실질적으로 산돌교회에서 월요일마다 모였는데 거기에서 그런 연습을 했어요. 그런 다음에 감독님이 지시하시는 혹은 원하시는 것을 숙지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신민재사실 시나리오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관객 웃음) 있었던 것을 보니 아주 얇았나봐요.

 

이호정: 배우마다 차이가 있는데요. 저의 경우에는 공연할 때도 대본을 늘 갖고 다녀요. 그런데 고봉수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에는 자유로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느낌이나 상황 같은 것들을 강조하세요. 대본 보다는 상황을 강조하시고. 그래서 다른 배우 분들도 자유롭게 촬영하시는 편인 것 같아요.

 




이은선: 이전의 두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시작해서 세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서 찍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신민재 배우님이 시나리오부터 시작해서 형식까지 의견을 내실 만큼, 거의 기획을 하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 것 같아요. 연기 말고도 영화 내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더 아이디어를 내신 게 있을까요?

 

신민재: 글쎄요. 제가 드린 아이디어는 연기적인 것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극 중 다영씨 캐릭터는 감독님이 본인의 모습이라고 하셨어요. 예전에 감독님이 회사를 다니신 적이 있는데 그때 모습이 다영에 반영되었다고 하세요. 일 못하니까 욕먹고 따돌림 당하고. 김충길 배우가 감독님을 흡족하게 했던 것 같아요. 작은 걸 요구했는데 큰 걸 보여주고. 그게 가이드라인이 되어 다른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이은선: 아무래도 대사가 없는 영화다 보니 배우의 표정에 집중해서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얼굴을 구겨가며 연기하는 걸 보니 영화에 리듬감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악은 왜 하필 헝가리무곡을 사용했는지 궁금했어요.

 

신민재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우연히 헝가리무곡을 다시 듣게 되셨다고 해요. 이 음악을 가지고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으셨고, 영화에 넣어보니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은선: 그래도 노래의 리듬감과 영상의 씽크를 맞추는 기술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신민재제가 편집을 한 건 아니라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감독님 말씀으로는 그냥 딱 맞아 떨어지셨다고 해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관객 웃음)

 

이은선: 영화 제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납득이 가는 것과 동시에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제목으로는 다영씨보다 민재씨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영씨>라는 제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호정: 사실 처음에는 제목에 대해 잘 몰랐어요. 조연출님이 추석 연휴 때 3일 시간 되냐고 하셔서 된다하고 갔더니 제가 다영이더라고요. 대본을 받았는데 대사가 없었고요. 다영이는 흔히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이라 선택하셨다고 해요. GV할 때 다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이 오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신민재제가 알기로는 제목이 생각난 다음에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해요. 어떤 멜로영화를 할지 고민하다가 다영씨떠오르셨다고 했어요. 제목이 정해지고 시나리오가 나오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은선: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됐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헝가리무곡을 틀지 않고 어떻게 박자를 맞추셨는지도 궁금하고요. 빠른 배속으로 촬영하신 것 같고 마임하는 것에 가까운 연기를 하셨는데 대사 없이 연기를 하는 것이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강하람: GV 때마다 받는 질문인데요, 저는 이번 영화 촬영하면서 말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대사를 하는 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는데 대사를 하지 않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악역을 맡은 건 처음인데요, 무성영화라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말투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만약에 무성영화가 아니었다면 저만큼 못된 모습이 안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민재일단은 굉장히 수월하게 촬영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NG를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 고봉수 감독님이에요. 웃느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무성영화다 보니 사운드가 안 들어가니까 뒤에서 웃음이 터져도 현장에선 그냥 촬영을 끊지 않고 진행을 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배속이 빠르니 눈알을 굴린다거나 걷는 행동을 좀 섬세하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런 요구를 받고 연기 했습니다.

 

이호정: 말이라는 건 사실 사람이 생각을 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거잖아요. 사실 저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다른 분들처럼 확장된 모습을 보여드리진 않았어요. 그냥 순간순간마다 상대와의 상황 속에서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촬영 현장이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촬영하면서 집중하지 않을 때는 김충길 배우나 다른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 웃기더라고요. 저도 많이 웃었어요


이은선이 영화를 이틀 내에 찍었다고 해요. 배급사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찍었다고 들었어요. 어쩐지 익숙하더라고요. 이틀 내에 촬영이 가능한지가 궁금해요. 그래도 장편이고, 분량이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요.

 

신민재: 배속을 빠르게 하니 분량이 짧아져서 추가로 더 촬영을 하긴 했어요. 감독님은 충분히 해내시더라고요. 처음엔 파티션이 없는 걸로 구상하셨는데 막상 사무실에 와서 보니 파티션이 빠지지 않았다고 해요. 감독님이 안경을 잡으면서 어떻게 할 지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파티션을 그냥 놓은 상태로 촬영하시더라고요.

 

이은선: 파티션 덕에 혼신의 걸레질도 나왔고요.

 

이호정: 감독님이 매일 밤마다 그날 촬영본을 편집을 하세요. 밤을 새더라도 하세요. 내부시사회를 촬영 완료 기점으로 일주일 뒤에 해요.(웃음) 굉장히 독립적인 1인 시스템으로요. 컴퓨터 한 대, 카메라 한 대, 마이크 하나의 심플한 환경으로 빠르게 아웃풋을 내는 데에 특화되신 것 같아요.

 

이은선: 빠르게 찍고 편집하고 개봉하는 시스템이군요.

 

이호정: 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생각해온 그간의 조각들을 지금 막 내시는 것 같아요. 즉흥성 그리고 현장성이 뛰어나신 분이고요. 짜여진 것에 맞추려 하면 안 맞고 늦어지고 답답한 상황이 오는데 그걸 잘 대처하세요.




 

이은선: 강하람 배우님은 고봉수 감독님 프로덕션이 처음이신데, 이 시스템을 겪고 나니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강하람워낙 빨리 진행하시고, 처음부터 다른 배우 분들이 잘해주셔서 적응은 금방 했어요. 찍을 때 저는 더 하고 싶은데 테이크를 많이 안 가시더라고요.(웃음) 이게 감독님 스타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은선: 강하람 배우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강하람: 저는 대리 역할로 나온 조준희 배우와 친분이 있어서 소개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김충길 배우, 신민재 배우의 소개를 받고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선다른 배우 분들끼리는 이전 작품을 통해 여러 번 맞춰보신 경험이 있는데 강하람 배우님은 처음이시다보니 어색한 기류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강하람: 처음엔 그게 걱정이었어요. 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저만 첫 작품이다 보니 그게 가장 걱정이었어요. 사실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모두 잘 챙겨주셨습니다.

 

이은선다음 작품도 같이 하시겠네요.(웃음) 이 영화가 배우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이 다른 영화랑은 좀 달라서 때문에 악당 캐릭터를 더 나쁘게, 얄밉게 극화시켜 놓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의 주문이 있었나요?

 

강하람: 딱히 주문은 없었는데, 제가 전화 받으러 나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주문하셨던 게, 화나는 걸 표현할 때 머리를 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굉장히 흡족해하셨어요. 영화를 봤던 제 지인도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해요.

 




이은선: 택배기사가 다영씨에게 귤을 계속 주는데 왜 귤이었어요? 현장 상황에 따라 나온 건지 생각한 모티브를 가져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신민재이 이야기는 실제 제가 겪었던 일이라고 했는데요. 실제로 그 분과 주고 받은 게 귤이었어요. 그래서 귤을 사용했고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이은선신민재 배우님은 멜로물을 기대하셨잖아요. 막상 영화가 이렇게 나오니 어떠세요?

 

신민재저는 멜로물이라서 흡족하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무성영화를 했다는 것이 흡족하고 감사합니다.

 

이은선: 혹시 편집 과장에서 대사를 자막으로 넣는 걸 고민하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민재처음엔 고민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아티스트> 보면서 마지막에 자막을 넣는 건 어떨지 제안도 했는데 감독님이 고민하시다가 아예 없이 가자고 하셔서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고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세 배우 분들이 여기서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고봉수 감독님이 또 작품하자고 하면 하실 수 있는지,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이호정: 할 수 있어요. 사실 여태껏 감독님 작품이 저는 항상 어려웠어요. 캐릭터나 대사 양이나, 여러가지가 늘 쉽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굉장히 편하고 유쾌하게 작업했어요. 이런 작품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신민재그럼요. 저는 고봉수 감독님하고 작업하면 신나고 재밌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시나리오만 해도 엄청 많고. 즐거운 현장이거든요 정말. 고봉수 감독님과는 기회만 된다면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습니다.

 

강하람: 네 저도 당연히. 또 뵙고 싶습니다.

 




관객: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민재 배우님께 궁금한 게 있어요. 극 중에 신민재 배우님 '보름달' 빵과 바나나 우유를 드시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은 본인이 생각하신 아이디어인지 궁금해요. 제가 좋아하는 다른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있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신민재: '보름달' 빵은 감독님이 생각하신 거고요. 일상의 고단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는데, '보름달' 빵과 바나나우유를 우걱우걱 먹어보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내셨어요.

 


관객: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택배 배달하시는데 소품 디테일에 대해 궁금했어요. 왜 실제처럼 송장을 붙이지 않고 매직으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의도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이은선: 박스 안에 뭐가 들어 있었나요?

 

신민재빈 박스구요. 이번 영화에서는 고봉수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으시더라고요. 저희도 감독님께 그 부분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고 하셔서 그냥 매직으로 쓰게 되었어요. 제가 드릴 말씀이 없네요. (관객 웃음)

 


관객: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신민재 배우님께서 멜로를 이번에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많은 장르 중에 왜 멜로를 하고 싶어 하셨는지 궁금하고요. 앞으로 세 분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신민재일단 멜로를 하고 싶었던 건 아무도 안 시켜줄 것 같아서고요.(웃음) 멜로는 저한테 허락되지 않던 장르였어요. 학교에서 공연할 시절에는 주로 악역이나 아빠 역을 주로 했어서. 고봉수 감독님이 이전에 뭐든지 시켜준다고 하기에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었는데 실제로 캐릭터를 만들어주실 줄은 몰랐어요. 저는 앞으로 계속 연기를 하고요. 고봉수 감독님의 차기작은 찍어놓은 게 있고 차차기작을 찍고 계신데 오늘은 그것 때문에 못 오셨어요. 저는 그 작품을 함께 찍으러 내일 평창에 가고요. 무술 영화입니다. <튼튼이의 모험>에 나오신 고성환 배우님, 그러니까 고봉수 감독님의 삼촌이과 함께 촬영 중이시거든요. 가제는 <우리 마을>이고 1980, 1990년대의 성룡이나 주성치의 홍콩 영화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신다고 들었어요.

 

이호정저는 1215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에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라는 연극에 프로듀서로 참여합니다. 김동수 컴퍼니에서 하고 있고요. 극단에서 다양한 작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강하람: <다영씨>가 개봉해서 기쁘고요, 앞으로 <다영씨>를 통해 저를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고 끝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하람: 추운 날씨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얼굴이 많이 비춰지면 좋겠습니다. 많이 기억해주시고 홍보 부탁드립니다. 21세기에 흑백무성영화 흔하지 않으니 널리널리 홍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민재추운 휴일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때 무성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 영화를 보며 외로움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히 우리들의 <다영씨>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개봉까지 하게 되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저에게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많이 만나 뵙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호정: 만나뵙게 되어 반갑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나오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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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에 대한 아름다운 머리말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1일(일)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명소희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감독은 아들을 낳고 싶던엄마와 화해하고 싶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유년을 지나간 상처 그리고 엄마의 빨리 잊으라던 말과 화해하고 싶었다. 아이를 품어 감독 자신이 엄마가 되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도록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춘천의 엄마에게 갔다. 6년 뒤 '-엄마-엄마의 엄마'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문>이 탄생했다. 그는 영화는 완성했지만 완전히 화해하지는, 깨끗이 치유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낸 여성만이 쓸 수 있었던 아름다운 머리말로 읽힌다.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상영 후, 정지혜 평론가의 진행으로 명소희 감독과 관객이 나누었던 대화를 옮긴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6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 영화를 작업하셨는데, 애초에 생각하셨던 방향에서 본인의 생애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 영화의 운명도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스물네 살 가을에 카메라를 들고 춘천행 열차에 타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애초부터 이렇게 장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못하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감독(이하 명소희): 처음에는 나는 왜 엄마가 미운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나는 서울에서, 엄마랑 떨어져있는데도 왜 엄마가 미운가? 이 질문이 제 안에 내내 있었고 답을 찾고 싶어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엄마를 찍어야겠다고 호기롭게 춘천에 갔어요. 두 달 정도 촬영을 하고는 사실 접었었어요. 살면서 엄마 일상을 그렇게 가까이서 지켜본 건 처음이었는데 별로 마주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고, 늘 미워하던 엄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이어서 그런 것들을 인정하는 제 모습이 힘들어서 진행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편작업을 염두하고 시작했던 거라 두 달 촬영하고 포기했는데, 영화에도 나오지만 4,5월 즈음에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다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엄마를,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도 있고. 엄마가 항상 외할머니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요, 다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여전히 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낳고 생활하면서 제 감정들이 변화하더라고요. 이 감정은 뭔지 의문들이 생겼어요. ‘왜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이 작업을 하게 된 이유예요. 또 한편으로는 생활이 계속 불안정한데, 이 생활이 엄마의 생활과 비슷하더라고요. 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힘들게 사는가, 이런 질문으로 넘어가는데 그때 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운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 저에게 큰 짐처럼 남아서 그런 것들을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장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지혜처음에 감독님의 서울살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기차를 타고 춘천을 가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왜 그 힘든 순간에 춘천이라는 곳, 그곳에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떠올랐을까요. ‘도대체 왜 그 힘든 순간에 다시 춘천으로 가게 됐을까?’라는 물음이 6년간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게 되는 단초잖아요. 영화를 보다보면 장면 장면에서 일종의 되감기가 몇 번 진행이 되더라고요. 처음 기차가 춘천역으로 들어갈 때 맞은편의 기차는 반대로 움직이는걸 보면서 되감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반사경에 비치는 이미지로 사람이 뒤로 걸어오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 지점이 영화 전개상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서, 되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명소희: 되돌아간다는 결정은, 단순하게 엄마를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춘천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춘천에 가는 게 너무 힘이 들었는데 이 영화를 완성하려면, 제 스스로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꼭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부분을 꼭 마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부끄러운 것이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주한다는 게 나라는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있어 중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라지는 것들을 보면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되감는다, 되짚어본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어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두 가지 안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변화하는 제 자신도 발견하게 되고, 결국 사라지지 않는 무엇을 사라져가는 제가 마주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그런 질문들이 스스로에게 있었어요.

 


정지혜영화의 초반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인가?’ 라고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감독님의 사건들과 이야기들에 더 집중되어 진행되는 모습이었어요. 초반부분을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감독님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엄마를 그렇게 오랜 시간 지켜볼 일이 사실 없잖아요. 엄마의 대부분은 계속 뭔가를 분주히 해나가는 모습이었어요. 굉장히 많은 시간 엄마의 모습을 찍고 그 중에 추리고 추렸을 때 감독님이 본 엄마의 핵심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고있는 모습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에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그려나갈 때 엄마를 어떤 인상으로 그리고 만들어나가셨을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엄마는 저와 반대되는 성격의 인물이에요.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힘을 얻으시는 분이에요.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를 받는 분인데, 그러면서도 엄마는 항상 나쁜 일은 빨리 빨리 잊어버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엄마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요. 그 모습이 엄마의 생활 속 어떤 곳에서 드러나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는데, 엄마는 뭔가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몸을 더 움직이시더라고요. 그런 게 저한테는 인상적인 모습이었어요. 엄마가 바쁘게 일을 한다는 것은 기분이 안 좋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라는 게 짐작이 되면서도 저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다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괜히 위로도 되더라고요. 엄마와 나의 삶을 비춰봤을 때 우리가 되게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엄마는 끝없이 움직이고 딸인 저는 한숨 쉬면서 고민하며 살고 있거든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면서 계속 열심히 살아주길 바랐던 마음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가 겹쳤어요. 항상 열심히 일하고,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 모습에요.

 




정지혜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 <방문>이 처음 공개되었는데요, 그때 어머니께서 영화를 보시고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이 그날 굉장히 긴장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명소희: 그날 최고로 긴장했던 날이었어요. 또 거의 마지막 상영인 날 오셔서 관객도 더 적었는데. 그날 오셔서는 왜 이렇게 관객이 없어?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가.” 하시고.(웃음) 또 그날 친척들이 다 오셨는데, 술을 한 박스씩 사서 오셨대요. 그런데 그 술을 그대로 남겨서 가져가셨대요. ‘다들 네 영화 보고 나와서 기분이 썩...’ 이러시면서. 술 먹을 정신도 없을 만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지.(웃음) 저는 다들 좋아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앞에서 까불까불 거리면서 영화 어떻게 봤냐고 물었는데 다들 그냥..” 그러시더라고요. ‘그냥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많은 뜻이 있구나 싶었어요.

 

정지혜감독님이 가족들,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그분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영화지만 감독님의 목소리가 아주 확고한 영화이기도 한데요.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그러한 점이 돋보였어요, 나를 알고 싶고, 내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끝까지 집중하는, 그러면서도 엄마와 할머니의 자리를 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지던 영화였어요. 특히나 감독님이 떨칠 수 없었던 감정들, 기억들을 불러내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 순간들을 내레이션의 방식으로 고백하신 것 같아요. 촬영 이후 편집을 진행하시면서 내레이션 작업을 결정하지 않으셨을까 싶고, 그 고백을 하기가 참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내레이션을 통한 감독님의 속 이야기, 그리고 눈길을 걸어갈 때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올해 초반에 촬영이 된 걸로 알고 있어요. 가편집본을 보신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추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행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명소희: 이 영화를 단편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넣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그 사건을 빼놓고 엄마와 나의 관계의 이야기를 하기 참 어렵더라고요. 사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엄마와 나의 거리감은 그 사건 이후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요.

그 사건을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어요. 내레이션을 할 때 피해자가 되었다이런 식으로 썼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 싶기도 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할지, 이 영화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고민했고요. 엄마가 가편집본을 보시고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한 달 뒤쯤 술을 마시는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가해자가 누구잖아.”하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엄마가 알고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20년 만에 알게 됐는데 그것 때문에 또 한동안 작업이 주춤했어요. 이 이야기를 넣느냐 마느냐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넣기로 결정했을 땐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요. 엄마의 말을 넣기까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고 영화 안에서 엄마가 비춰질 모습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오늘 다시 보면서도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 고민은 계속 하겠지만 지금 저의 역량 안에서는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지혜감독님의 내레이션이 단편소설을 낭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직접 등장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랜 시간 감독님이 내레이션을 썼다 지우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오래 고민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아요. 정돈되고, 자신이 하려는 말을 에두르지 않고 정확하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내레이션의 선택과 고민의 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명소희: 물리적으로 내레이션을 쓴 시점은 가편집이 시작되고부터인 것 같아요. 장편이 처음이다 보니 편집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6년 치 소스를 보아야 하고, 아직 저에게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버거운 일이어서 본격적인 편집기간으로만 거의 1년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내레이션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쓰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작업 막바지까지도 문장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내레이션 쓸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어렵지만, 내가 글을 정말 못쓰는구나 싶어서 하루하루 좌절하다가 어떤 날은 너무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정지혜영화에 물의 이미지가 계속 등장하는데요. 축축하고 눅눅한 이미지가 등장하고, ‘물비린내가 난다는 표현도 쓰셨어요. 춘천이란 공간이 가진 특징이기도 할 텐데요. 분지에, 습하고, 호수가 있고 안개가 잦고 비가 오고. 그게 감독님의 서울 생활과 이어지기도 하고 엄마와 할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이어지더라고요. ‘이라는 것이 왜 공간과 관계 안에서 중요한 시각적 이미지, 촉각적, 후각적 이미지로까지 들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제가 춘천을 딱 떠올리면 기억나는 냄새가 있어요. 물비린내. 그래서 춘천이라는 공간을 표현한다면 당연히 물이 등장하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접근했는데 영화를 계속 만들면서는 물이 가진 은유들이 적재적소에 잘 어우러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파편화된 기억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묶어줄 수 있을지 떠올려보니 기억들 안에 공통적으로 물이 있었어요. 그래서 물이 영화 안에서 다양한 은유로 사용돼요. 엄마가 아침에 떠놓고 기도하는 신성시되는 물도 있고, 제 몸을 닦고 아이의 몸을 씻기는 물도 있고, 비나 눈, 동네 곳곳에 모여 있는 썩은 물, 죽음을 내포한 강 등 여러 가지 은유를 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힌트를 얻었던 엄마의 말이 있어요. 춘천 관광을 해주시면서 손님들한테 소양강을 보여주면서 하시는 말이. “이 물이 흘러 흘러서 여러분이 사시는 서울의 한강까지 갑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가끔 한강을 보면 엄마가 있는 곳에서 흘러온 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제자리로 돌고 도는 이미지를 포함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물질이 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 안에서 여러 은유의 방식으로 물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객: 먼저 두 분께 여성감독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감독님 스스로 영화를 평가하실 때 몇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쉬운 점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정지혜감독님께서 여성 감독들의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모임도 하셨는데,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시면서 남다른 마음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명소희: 여성감독전을 한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무수한 좋은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들과 함께 한다는 게 영광이었어요.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고요. 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여성감독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둘러보면 영화를 떠나신 분도 있고 준비하던 게 잘 안돼서 포기하신 분도 있고, 지금도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많이 사라지기도 해요.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새로운 여성감독의 등장이라는 토크를 진행했었는데, 그 안에서 저랑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신진 여성감독들이 모두 했던 말이 있어요. 항상 많은 여성감독들이 새로이 등장하지만 그 여성감독들이 두 번째 영화를 찍거나 세 번째로 넘어가는 경우를 잘 볼 수 없다, 그래서 10년에 한 번씩 새로운여성감독의 등장 이라는 타이틀로 포럼을 하고 또 10년이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여성감독이 등장한다는 거죠, 이번 기획전에는 다양한 장르의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상영이 됐어요. 새로운 장르들, 공과 사를 넘나들고 우리의 일상 언어를 기록하는 영화가 굉장히 많은데, 그 영화들이 대부분 제작지원을 받지 못하고 영화제에서도 초청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영화를 발견하고 찾아내고,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전이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는 소중한 기회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용기와 위로가 되기도 하거든요. 여성 감독의 영화들을 더 많이 소개하고 누군가는 비평언어로 여성들의 영화를 읽어내주는, 그런 시간들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전은 소중한 자리입니다.

 

정지혜이어서, 작품에 점수를 매기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연출자로서의 나의 위치랄까요? 내레이션을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에서 나의 위치를 고민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좀 더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명소희: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 건 저의 게으름도 있겠지만 상황도 한몫했어요. 출산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편집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었어요. 그렇기에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것도 제 몫인 것 같아요. 편집기를 닫는 순간 더 이상 나는 고치지 않는다, 편집을 하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내레이션도 끝까지 수정을 한 거고 편집도 끝까지 한 건데 오늘 이 자리에서 보니까 아쉬운 점이 많긴 하더라고요. 말을 번복하기도 참 그렇고.(웃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때 저는 최선을 다한 거니까 다음 영화로 넘기려고요.





관객: 영화 잘 보았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아픈 기억들이 치유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될 줄 알았는데. 치유가 된 것 같진 않아요. 부산국제영화에서도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데 어떤 분이 GV 내내 우시다가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고요. 지금도 울컥하는데, 그 말이 위로가 됐어요. 내가 영화를 완성해서 치유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영화를 두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내가 치유가 되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게도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가지는 고민을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역설적이게도 아이가 태어나서 다시 영화를 시작하게 됐고, 아이가 이 문제가 풀려나가는 지점인 것 같은데요. 선우라는 아이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아이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그리고 다큐가 아니라 극이었다면 해결의 결말을 어떻게 연출하셨을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영화를 만들 때, 처음엔 아들이어서 안도한 게 있었어요. 딸이면 이 아이를 사랑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아이가 5살인데 이만큼 자란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한국 사회 안에서 남성으로 자라나고 있고, 문득 아이의 사회적인 남성성을 발견할 때 고민이 생겨요. 이 아이가 딸이었다면 어땠을지도 해결되지는 못했어요. 그걸로 다음 영화를 기약하고 있어요. 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감정에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다큐멘터리가 시작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극영화로 만들었다고 해도 비슷한 결말을 취하지 않았을까 해요. 완전한 화해가 아닌 이해한 듯 못한 듯 서로가 그렇게 남아있는, 좋은 말로 하면 열린 결말이요.

 

 




정지혜영화의 제목이 <방문> 인데요. 영문 제목은 <The strangers> 복수로 되어있더라고요. 직역하자면 낯선 자들인데요, ‘방문이라는 것이 사전적으로는 어딘가에 찾아간다는 의미가 있는데 영제와 붙여놓고 보니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감독님께서 그곳을 어떻게 바라보고자 하는가에 대한 시선, 태도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마냥 반가운 마음으로 간다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보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제목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명소희: ‘방문의 사전적 정의는 잠깐 들렀다 온다는 의미거든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같은 말 처럼요. 제가 춘천에 갈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잠깐 들렀다가 오는 곳. 영제목 <The strangers>는 보어같이 사용을 했어요. 저와 엄마, 혹은 외할머니, 영화 속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지칭 하는 단어예요. 그 사람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엄마가 대구에 갔다가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저의 삶도 그렇고요. 표류하는 여성의 삶, 가장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목소리를 잃은 여성들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저의 위치를 표현하고 싶어서, 이곳에 영영 정착하지 못하는 저의 마음 상태나 위치를 표현하고 싶어서 한글 제목을 <방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지혜내레이션 중에 인상적이었던 단어가 그날이라는 표현이었어요. ‘그날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뭔가가 일어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특이한 그날그날은 물비린내가 싫지 않았다.”는 문장 속에 있는데요. 할머니 장례식 뒤에 바로 이어지는 그날은 이상한 뉘앙스거든요.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좀 더 감독님의 이야기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에게도 미친 영향이 있을 테고요,

 

명소희: 사실 영화가 거기서 끝났어야 해요. 단편으로 생각했을 때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그날 물비린내가 싫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춘천과 화해를 했다하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 때 저의 감정 변화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춘천과 나의 관계가 조금 풀어지려고 하다가 다시 틀어지는 시점에 무의식적으로 그날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결혼식 날 밤에 춘천의 야경을 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공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 달 뒤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사람이 그런 게 있잖아요. 슬슬 좋게 마무리가 되겠다 싶었는데 불쑥 무언가 던져지면 혼란스럽고 나를 시험하려는 건지 의심스럽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외할머니를 너무너무 미워했는데, 외할머니가 사라진 춘천이 이상하리만큼 쓸쓸해 보이더라고요. 그때 화해가 다 안됐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 미운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았구나. 그날 처음으로 춘천과 화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예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에 가는 동안, 그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했어요. 나는 왜 하나도 슬프지 않을까? 이 미운 감정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그게 그 순간 저에게 의문이었어요.







관객: 차기작은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명소희: 생각만 하고 있는 단계라서 분위기나 뉘앙스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울한 분위기. 가족들은 이제 밝은 영화를 만들으라고 하는데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거예요 알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다음 영화는 조금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자료조사와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정지혜오늘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감독님 영화는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소희: 일요일 오후에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감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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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기억할 만한 지나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0일(토) 오후 6시 상영 후

참석 박영임 감독

진행 이완민 감독 (<누에치던 방> 연출)









*녹취 인디즈 11기 윤영지 / 정리 인디스페이스 전한솔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길을 걷던 화자는 어느 관공서 안에서 눈물 흘리는 서기(書記)를 창문 너머로 지켜보게 된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이러한 지나침을 기어이 기억하고야 마는 것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괴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주인공 시인 김도 마찬가지다. 시인 김은 수없이 망설이고, 숨어들고, 슬퍼하지만, 찰나를 기억한다. 그렇기에 시인 김에게는 다음 걸음이 있다. 어쩌면 기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에서 만난 <기억할 만한 지나침> 박영임 감독과 진행을 맡은 이완민 감독의 인디토크 기록이다.



 



박영임 감독(이하 박영임): 안녕하세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만든 박영임이라고 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완민 감독(이하 이완민): 질문에 앞서, 시를 쓰는 사람에 관한 시적인 영화인만큼 우리의 질문이나 대답도 주어나 술어가 완벽치 않더라도 관대하게 바라봐 주십사 제안을 해봅니다. 제 안에서 가장 강렬하게 샘솟는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거쳤다는 감정을 떨칠 수 없었는데요, 단순히 누군가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오랫동안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결과로서, 직관으로서 무언가를 직조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고요한 감각에 의해 빚어진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컷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다음 컷에 자리를 내주고,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전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감독님께서는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제가 가진 원칙은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나는, 촬영할 때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연기와 컷이 제 마음에 와닿는지 따져보고, 편집할 때도 와닿는 만큼 컷을 쓰고자 했습니다. 또 영화를 만들면서 이 영화로 무엇을 남길까, 정말 좋은 마음을 남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는 좋은 것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편집하면서 이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고, 힘들 때 제 영화를 많이 봤어요. 좀 우스운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 스스로 위로받고자 했고 만든 사람으로서 일차적으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점들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이완민: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호흡에 굉장히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 전작과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감독님은 순리필름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고 20년 가까이 영화작업을 하고 계세요. , 실험, 다큐 등의 장르를 아우르고, 작품마다 러닝타임도 굉장히 다양해요. 작업을 이어오시면서 어떤 변화를 지나 이 영화가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처음에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막연했던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에는 이야기 보다는 이미지가 많았고, 그런 것들을 처음에는 실험영화란 이름으로 그려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부끄러워요.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을 넣은 첫 장편영화는 15년에 처음으로 공개가 되었는데, 촬영 후 십 년이 지나서야 완성이 된 거예요. 첫 번째 영화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바빴던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말 하고 싶다, 그런 조급함이나 치기어림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시골에 내려간 지 6년 정도 되거든요. 충남 홍성의 불모지에 내려갔는데(웃음) 서울에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고 붙잡고 있던 일들이 다 잘 안됐어요. 몇 년째 첫 장편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로 시골에 내려갔는데 자연 풍경이 많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후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완성되는 그 사이에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2015)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말하려고 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히려 들어주는 영화를 하고 싶더라고요. 김정민우 촬영감독님이 우리 영화는 들어주는 영화 같다는 말씀하셨을 때 공감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좀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좀 하고 싶다,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작업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첫 번째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싶고.(웃음) 내가 왜 영화를 하려고 하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기면서 <기억할 만한 지나침>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이완민: 제목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 기형도 시인의 동명의 시가 있죠, 기형도 시인의 시에는 건물 안에서 울고 있는 서기가 등장하고 라는 인물이 서기를 떠올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요. 염소를 바라보던 시인 김, 그리고 시인 김을 바라보는 연출자 혹은 관객. 이런 구도와 연관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나침이라는 건 뭔가 스쳐가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바닥을 치고올라온다. 누군가가 가라앉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일련의 과정을 문적인 형태로 박제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목을 어떤 이유로 선택하고, 이 제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박영임: 제가 시를 잘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형도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사실 영화 내용과 동명의 시의 내용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 순간을 목격하고 그 순간에서 드러나는 마음을 붙잡으려고 하는 지점이 이 영화에도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살면서 많은 순간들을 지나치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외면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의 마음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 그 시하고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이걸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완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작형태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전체적인 제작기간, 그리고 프로덕션 기간, 촬영 자체의 기간, 또 촬영의 순서나 인적구성, 물적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집요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들로만 구성되어야 할 것 같고, 실제로 크레딧을 보니 일인다역인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박영임: 시나리오는 1년 정도 쓴 것 같아요. 크게 두 번 정도 이야기가 바뀌었어요. 원래는 세 여자의 이야기, 알고 보면 한 사람이지만(웃음) 각각 다른 세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식의 구상 안에서 좀 더 난해하고 추상적이었어요. 그게 변하고 변하면서 한사람의 이야기로 압축하면서 1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캐스팅과 제반준비를 하는데 4-5개월 정도 걸렸어요. 짧은 시간이어서 사실 영화가 촬영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김정민우 촬영감독님은 촬영을 미루자고 했어요. 제가 이 영화 배경이 겨울인데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하니까 안 된다고, 지금 찍어야한다고 해서 힘들게 찍었죠. 촬영하면서 헌팅하고, 촬영하면서 캐스팅하고 그랬어요. 결국 남편 역은 촬영감독님이 하셨는데.(웃음) 배우분들과 함께한 촬영은 두 달 정도, 24,25회차 정도 진행했어요. 마지막 후반작업은 1년 가까이 했습니다. 이미지컷으로 나오는 자연의 풍경은 배우들의 촬영이 끝나고도 계속 찍었어요. 흰돌이의 무덤 장면은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저희가 촬영 중간에 강아지를 구조했는데, 산들이라는 이름도 붙였어요. 그런데 산들이는 며칠 지나 세상을 떠났어요. 마침 흰돌이가 죽는 장면을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산들이의 묘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적구성은 저, 촬영감독님, 연출부 두 분, 촬영부 두 분. 총 여섯명 정도의 인원이 고정인원이었고요. 분장 담당자분이 4-5회차 정도 나오고, 미술감독님도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내내 계시진 못했어요. 장비는 4k 촬영으로 많이 쓰는 소니 카메라를 사용했고, 저희 영화가 2컷 빼고는 다 핸드헬드 씬이에요. 지방에서는 장비를 대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카메라랑 그립 장비는 아예 샀어요. 조명장비 등은 지역에 있는 미디어센터에서 무상으로 대여해주셔서 지원받아서 사용했습니다.

 

이완민: 캐스팅 관련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주연배우인 이헌주 배우님은 어떻게 같이 작업하시게 되었는지, 이 호흡을 지탱하고자 어떻게 대화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먼저, 오늘 뇌성마비소녀 엄마로 출연하신 오민정 배우님이 오셨거든요. 잠깐 인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헌주 배우와 다른 배우들 모두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을 했어요. 그리고 영화 속 가족구성원들 모두가 리허설을 몇 번을 같이 했어요. 이헌주 배우는 2주 정도 미리 이곳에 내려와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고요. 사실 초반촬영분은 이후에 다시 찍었어요 감정이 무르익지 않았고 저희도 몸이 덜 풀리고. 배우님도 좀 어려워하셨어요. 소통할 때에는 저는 기술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그 감정이 있는 그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예를 들어 슬프다는 감정을 그려낼 때 누구는 울 수도 있지만 누구는 헛웃음이 나올 수 있잖아요. 배우에게서 온전하게, 솔직하게 나오는 걸 담아내고 싶었어요. 촬영 중간에도 계속 리허설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제가 발견하지 못한 걸 제시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헌주 배우를 이 캐릭터에 끌어당긴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배우를 더 일체화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완민: 캐릭터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첫째언니는 집을 떠나 본질적인 문제 상황을 일으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돌아오는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시인 김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첫째언니가 설정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고요. 장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도 궁금해요. 이 영화 속에서 장 선생님은 유일하게 모든 걸 받아주는 듯한 인물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시인 김을 배제하는 것 같았어요. 투 샷으로 시작했는데 원 샷으로 끝나는 그런 장면에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박영임: 아주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도 가족이라는 건 마지막 보루처럼 생각하게 되잖아요. 마지막으로 기댈 곳인데, 가족 구성원의 해체 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관계가 부서지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족구성원들끼리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넣기 위해 큰언니라는 인물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투 샷이다가 원 샷으로 한 사람만 잡는 샷은 사실 처음에 투 샷으로 찍었어요. 시인 김과 다른 인물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감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작은 영농조합 반장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김이 해고를 당하는데 거기서 헌주 배우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거예요. 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테이크가 한 스무 번은 갔거든요. 그러면 이 감정을 좀 더 담백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주인공을 배제했는데, 그랬을 때 오히려 김이 느끼는 충격이랄까? 당구처럼, 충격이 쿠션으로 더 세게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몇몇 사람과의 컷에는 이런 샷을 일괄적으로 가져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장면입니다. 장 선생님은, 저희 영화가 기댈 곳이 없잖아요. 영화의 인물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감정이 기댈 곳이 없어요. 사실 저는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영화를 잘 못 보거든요. 마음이 힘들어서요. 동물이 고초를 겪는 것도 아예 보지를 못해요. 어쩌다보니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됐는데(웃음). 그래도 마지막으로, 혼자라고 생각해도 딱 곁에 있는 하나의 존재, 그런 상징을 쓰고 싶었어요. 장 선생님과 영화에 나오는 많은 자연 풍경들, 동물들은 위로를 주고받는 대상으로써 넣었어요.

 

이완민: 영화를 보는 내내 애도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어쩌면 시인 김은 자기 자신, 시 쓰기에 있어서의 실패, 또는 자신의 사회부적응에 대해 애도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믿은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을 때를 애도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또 아버지의 죽음, 흰돌의 죽음을 지나면서 애도를 필요로 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장 선생님을 통해 위로를 터뜨리면서 그것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색감이 나오죠. 그때 김이 다른 국면에 접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실패나 부적응, 또는 애도 상태에 이르렀을 때 김은 계속 자살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 이미지들은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직접적으로 넣으셨어요.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죠. 자살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밤들을 견뎌낸다고, 이 영화에서 자살이라는 것은 어떤 평온한, 해방감이 드는 그런 이미지들도 구상된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듭니다


박영임: 일단 먼저, 죽음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 영화에 계속 죽음이 나오거든요. 근데 영화의 첫 장면에서 김이 저수지를 바라볼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저수지를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요. 자살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말하려고 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죽음에 관해서 긍정적인 느낌으로 담고자 하진 않았어요. 죽음이라는 게 항상 저희의 발밑에 있잖아요. 사람도 기대수명이 있고, 말하자면 유통기한이 끝나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거든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반대로 삶을 더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더 말하려고 했어요. 또 영화에 로드킬이 나오는데, 시인 김은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제가 시골에 살면서 로드킬을 참 많이 봐요. 차들은 쌩쌩 지나가고 하루에도 죽어가는 동물들이 참 많은데, 우리가 사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들은 다 차를 잘 타고 잘 달리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갓길에 위태롭게 있는 거 같고, 나도 언제 차에 치여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존재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엮었어요. 김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끔.

 

이완민: 시인 김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긴 여정을 거쳐 당도했을 때 아버지의 얼굴을 대면하게 되잖아요. 그걸 굉장히 직접적으로 찍으셨더라고요. 아버지 얼굴이 클로즈업된 장면이 한 번 더 나오고요. 그 사실을 대면해야만 한다는, 그런 의지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박영임: 제가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 영안실에서 시신을 보는 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이 갑자기 실체화돼서 나에게 툭 떨어지는 그런 형언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건 실제구나,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절벽이 있는 거구나, 이런 감정을 느꼈거든요. 그것을 물리적으로 대면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완민: 사운드와 색감의 사용도 궁금합니다.

 

박영임: 사운드는 사실 되게 힘들었어요. 심정적으로 고요한 장면이 많은데 저수지에서 오리가 계속 꽥꽥거려서 후반작업에서 다 지웠거든요. 사운드의 큰 기준은 자연에서 제가 듣는 소리를 고요한 상태에서 들려주는 것, 그리고 사운드가 인물과 관계 맺는 것이었어요. 음악을 너무 강렬하게 쓰면 음악에 끌려다니는 것 같을 때가 있어서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 느낌의 사운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촬영감독님이 음악도 하시는 다재다능한 분이어서 그런 분위기로 진행했습니다. 색감은 앞서 이완민 감독님이 봐주신 대로 어떤 심정적인 변화, 아주 작은 단서로써 넣게 되었죠.

 



 

관객: 힘들고 여유가 없이 살다보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될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김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흰돌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흰돌이가 아플 때나 방에 들어오려고 할 때 소리도 내지 않는데 김은 그냥 안단 말이에요. 김은 되게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잘 발견해내는데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흰돌이를 발견할 때나 방안에서 아픈 걸 발견할 때 보면 소리가 없죠. 소리를 넣지 않아도 관객분들이 그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김이 저수지에 빠져있다가 한참 있다가 흰돌이를 찾아 저수지가로 갈 때, 저는 그게 김에게는 들리는 아주 미약한 소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잘 안들리지만 김은 그런 작은 소리들에 반응하고 보듬을 것이라고요. 내용적으로는 그렇고,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주고 싶어서 사운드를 배제했습니다. 흰돌이가 낑낑거리는 사운드를 그 장면에서 넣으면 김이 물에서 빠져나와 움직이는 이유를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김의 행보가 궁금하지 않게 되지 않고 흰돌이와의 만남에서도 맥이 빠져버릴까봐 사운드를 빼게 됐죠.

사실 김의 인생이 힘든 건 그런 걸 외면하지 못해서 힘든 거죠.(웃음) 그런 소리들을 외면하고 산뜻하게 살면 좋은데. 그렇지만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그게 소중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일에 돈을 쓰고 시간을 쓰면 나도 불안해지고 보는 사람도 불안해지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받지만 결국은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김을 통해 하고 싶기도 했어요. 현실에서 붙잡아야 하는 것은 나한테 보장된 것. 현실적인 방법들.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있는 다가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근데 그런 마음을 붙잡으면 힘들어지죠.(웃음) 그래도 붙잡읍시다, 라고 말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관객: 주인공 김이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캐릭터잖아요.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는데, 이런 인물을 보여주는 경우 1:1에 가까운 작은 화면비에 갇혀 보이게끔 하는 시도를 많이 봤는데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 비율이더라고요. 자연경관이 나올 때는 광활한 느낌인데 동시에 김이 등장할 때 오히려 답답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요. 원래부터 화면비율을 길게 잡기로 설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영임: 촬영은 1.85:1보다 약간 더 와이드한 앵글로 했어요. 나중에 화면비를 시네마스코프로 할지, 1.85:1로 할지 고민을 하긴 했어요. 시네마스코프로 정한 건, 인물이 주변에 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를 보면 인물이 항상 구석에 가있거든요. 촬영할 때도 그런 식의 배치를 했고요.

 

 

관객: 영화에 들어가는 주변의 소리들이 되게 크게 들리거든요. 바람소리나 자동차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