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정일우한줄 관람평


이지윤 | 정일우, 연대의 꽃을 피워내는

박범수 | 가장 낮은 곳에 임했던 빈자의 벗, 그를 기억하는 가장 정직한 기록

조휴연 | 사람이 되기 위해 이토록 고민한 사람이 있었다

이가영 | 위대한 잠언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남을

김신 | 민주주의의 화술로 쌓아낸 친밀의 형식

남선우 | 그 시절, 사람을 사랑했던 친구





 <내 친구 정일우> 리뷰: 정일우, 연대의 꽃을 피워내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에 한국으로 건너온 사람.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즐겨 부르는 사람. 아무데서나 잘 자고 술을 잘 먹는 사람. ‘18’을 좋아하는 사람. 잘 웃는 사람. 풍물놀이를 좋아하는 사람. 청계천, 상계동, 괴산 등에 터전을 꾸렸던 사람.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산 사람. 경계 없는 공동체를 꿈꾼 사람.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는 이런 故정일우 신부를 회상하며 그에 대한 기억을 스크린 위에 풀어놓는다.



정일우 신부에게 초점을 둔 작품 속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쓴 네 통의 편지가 등장한다. 편지를 쓴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은 과거 정일우 신부가 머물렀던 공간과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의 기억을 더듬어간다.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에 있어 감독은 정일우라는 인물의 업적을 칭송하거나 미화하려들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었던 절친한 ‘친구’처럼 그를 묘사할 뿐이다. 정일우 신부가 철거민과 농민들 틈에 섞여 희로애락을 나누고 함께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은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한다. 종교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정일우라는 인물이 지닌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런 온기를 통해 <내 친구 정일우>는 종교 영화가 빠지기 쉬운 우상화의 딜레마를 넘어서는 힘을 얻게 된다. 작품은 정일우 신부를 기억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정일우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재의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정일우 신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통해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미 머물고 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기도 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품 속 세 번째 편지의 화자는 <내 친구 정일우>를 연출한 김동원 감독이다. 그는 상계동 철거촌을 회상하며 그곳에서 자본과 권력이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를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그의 기억은 낡은 푸티지로 재생된다. 그 속에는 가차 없이 집을 부수는 굴착기와 울부짖는 철거민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정일우 신부가 있다. 철거민들은 텐트까지 뺏기고 더욱 가난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행복을 안게 된다. 가난은 철거민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렸고, 허물어진 경계 위에서 그들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도우며 ‘고추장 같이 진한 공동체 생활’을 꾸려나간다. 부천으로의 집단 이주가 실패로 끝나고 서로의 몫을 챙겨 뿔뿔이 흩어진 이후에도 그들은 종종 만남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는 편안한 미소가 감돈다.



그런 과거의 잔상을 안고 감독은 현재를 응시한다. 언제부턴가 상계동 주민들은 더 이상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 행복했다 정의 내렸던 그 시절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 자본과 권력은 사회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었고, 어느새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가난한 동네는 사라졌고, 가난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물끄러미 현실을 바라보던 감독의 시선은 이윽고 잔뜩 녹이 슨 채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위를 유영한다. 그는 공허한 목소리로 세상에 없는 정일우 신부에게 묻는다.


“신부님, 신부님은 여전히 가난뱅이들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고 계신가요? 상처받은 이들이 앞장서 싸워야만 하는 이 현실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요?”


간절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내 친구 정일우>라는 영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작품이 드러내는 것은 정일우 신부에 대한 기억임과 동시에, 그와 함께 살았던 권력에 소외된 가난한 약자들의 기억이다. 그들이 지닌 과거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현재와 맞닿게 된다. 그 접점에서 관객들은 정일우 신부가 소망한 공동체 주의와 약자 간 연대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된다. 연대의 시작점에 대한 답은 정일우 신부가 쥐고 있다. 낮은 곳에서 함께하는 자유롭고 인간다운 태도와 마음가짐. 그것은 ‘친구’ 같은 따뜻한 관계와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꽃피워낼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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