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37> 한줄 관람평


이지윤 | 당신은 무엇을 믿고자 하는가

박범수 | 죄와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는 치열한 성찰의 과정

조휴연 | 어디에서든 벌어지는 대소문제

최대한 | 추악함을 들춰냈지만그 또한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이가영 | 하나의 신앙심에서 분리된 선과 악

김신 | 보고 듣는다는 것은 결국 사실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

남선우 | 성경의 낱장처럼 연약한 인간성경의 문법처럼 번잡한 세상





 <로마서 8:37 리뷰: 죄와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는 치열한 성찰의 과정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종교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죄의식을 강요하거나 신실한 믿음을 찬양하는 길로 손쉽게 들어서는 것과 달리,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되는 죄 자체를 직시한다. 정직한 신앙인으로 살던 전도사 기섭은 평소에 존경하던 형이자 부순 교회의 담임 목사 요섭이 이단 논란에 휩싸이자 그를 돕기로 결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내 죄가 죽은 것이라는 설교로부터 촉발된 논란은 곧 교회의 이권을 둘러싼 네거티브 대결의 양상으로 번지고, 요섭이 여신도 지민을 성추행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교회와 요섭을 향한 기섭의 믿음은 시험에 든다. 요섭을 위해 의혹을 변호하는 것과 양심에 따라 의혹의 진실을 캐내는 것 사이에서 기섭은 고뇌에 빠진다.

 

요섭의 성추행 의혹은 지민의 용기 있는 증언과 요섭 본인의 빠른 시인으로 진위가 비교적 손쉽게 밝혀진다. 그러나 요섭이 사임을 거부하고 교회로 복귀하면서 이야기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기섭이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인간은 유혹 앞에 나약하기에 누구나 죄인이 될 수가 있다는 말을 꺼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죄인 또한 하나님께 쓰임 받을 곳이 있다면서, 부순 교회의 신도들을 이끌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요섭이 내세우는 사명이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데에 있다. 비 온 뒤 땅이 굳듯, 교회가 당면한 고난을 이겨내야만 믿음의 공동체가 더욱 단단하게 결속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를 이루는 신도들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그 교회는 결국 본연의 사명을 저버리는 게 아닐까.

 






유사한 문제를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2016)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배교한 스승을 찾아 일본에 밀입국한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게스는 현지 기독교도들인 키리시탄이 탄압받는 현장을 목도한다. 로드리게스를 체포한 일본 막부는 키리시탄들을 그의 눈 앞에서 하나씩 처형하면서 더이상의 죽음을 보기 싫다면 성화를 발로 밟아 배교하라는 요구를 한다. 로드리게스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신앙을 버려 키리시탄을 살리는 길과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는 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로드리게스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키리시탄들을 전부 구해낼 능력은 없지만, 로드리게스는 그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것이 교회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로드리게스가 알기 때문이다.

 

<로마서 8:37>이 까다롭게 읽히는 지점은 사명의 완수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를 한 요섭의 태도에 있다. 욕망 앞에 나약함을 고백한 요섭의 말을 악인의 단순한 자기변명으로 보기에는 지민에게 저지른 잘못만큼 그 스스로가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만큼 스스로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진 자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그가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자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그의 죄를 위해 기도하는 자들의 고통을 알지 못함으로써 스스로의 죄를 직시하고 돌아 볼 기회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등지기 어려운 신도의 입장인 지민은 더 이상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성추행을 둘러싼 진실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진실을 밝히는 데 실패한 기섭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부순 교회를 떠나지만, 장인의 제안에 따라 처음으로 신도들 앞에서 직접 작은 예배를 올린다. 소수의 신도들 앞에서 진심을 담아 설교와 기도를 올리는 기섭의 모습이 거대한 관료 조직으로 변모한 교회가 인간을 외면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교회는 핍박과 고통에 신음하던 이들을 감싸 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던 로마서 8 37절의 말씀은 다시금 이 땅 위에 퍼져나갈 수 있을까. 신도와 비신도를 떠나 죄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깊은 울림을 받게 될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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