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5월 3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광국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는 제목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도 퍼즐이 명확히 풀리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갸웃거리며 상영관을 걸어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 날 자리한 손님들이 무척 반가웠다. 이광국 감독과 정성일 영화평론가였다.

다행히 인디스페이스에는 오늘 다음 회차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인디토크는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영화 칭찬만 하는 GV만큼 따분한 게 없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지론처럼, 감독이 난처할 법한, 그러나 여태 망설이느라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에 이끌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러분도 긴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성일입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감독에게 응원이자, 어떤 논쟁적인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광국 감독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이광국 감독(이하 이광국): 안녕하세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연출한 이광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일: 아무래도 이미 백 번쯤 들어보았을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제목을 들으면, 도대체 이 제목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호랑이가 직접 나온 것은 아닙니다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오기도 합니다. 제목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광국: 2016년 여름에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저희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씀 중에 그러니까 여름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들 하지 않냐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관용구잖아요. 예전에 에어컨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시기 한 여름에 누군가 집에 오면 얼마나 접대하기 고역이었을지 생각하니 직감적으로 영화 제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이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여름이었으니까 여름부터 구상을 해서 가을쯤에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든 부지런히 움직여서 겨울에 촬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고,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촬영을 꼭 해야 된다는 각오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꿔보았어요. 겨울에 찍으니까.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꾸고 나니까 이 제목에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더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하나씩 갈피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는데, 저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을 짓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영화가 시작하는 부분에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을 하면 어떨까였어요. ’한 남자가 같이 동거중인 여자친구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버림받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이어지고 그 이후에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맥락 구상을 시작한 것 같아요.

 

정성일: 고현정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이광국 감독께서 처음 본 건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을 했었던 시절, <해변의 여인><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일겁니다. 홍상수 감독은 배우의 성질, 능력, 특질 같은 것을 매우 특별하게 이끌어내는 연출자인데, 그걸 조감독의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아마도 남다른 것들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서 제 기대와 달랐던 건, 의외로 고현정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현정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그녀가 갖고 있는 아우라 때문에, 혹은 카리스마 때문에 거의 영화를 멱살을 잡듯이 끌고 갈 것이 자명한데, 한편으로 이런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광국: 말씀해주신 것 중에 재미난 지점이 고현정 선배님이 갖고 계신 어떤 아우라에 대한 것인데요, 이 영화 안에서도 일종의 착시가 있긴 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분량으로 치면 고현정 선배님이 연기한 '유정'은 경유’ 역의 절반의 절반이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서브캐릭터일 수 있는 역할이고, 실제로 시나리오도 경유가 혼자서 쭉 끌고 가는 이야기로 썼어요. 하지만 고현정 배우가 갖고 있는 어떤 아우라가 착시를 만들어주면서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조감독 때 처음 고현정 배우를 만나 뵀었는데요, 말 그대로 카메라 뒤에서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거나 혹은 감독님이랑 말씀하시는 걸 듣기만 했는데 되게 독특한 리듬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말씀하실 때나 연기하실 때, 고유한 리듬인데 불규칙적이고 예측이 안 되는. 대사만 그런 게 아니라 선배님 행동, 몸짓도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이상한 리듬이 있더라고요. 저 대사를 어떻게 저런 호흡과 저런 리듬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저 혼자 고현정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공상에 빠졌던 거죠. 영화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후 한 2년 있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때 좀 선배님하고 얘기를 많이 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이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시나리오는 유정역할에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쓴 부분도 있고요. 10월 말 경에 시나리오가 나왔는데, 정말 무턱대고 선배님한테 말씀을 드려서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선배님이 통화하시다가 따로 그럼 날을 잡지 않고 지금 바로 만나서 받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생각보다 빨리 시나리오를 전해드리게 됐고, 쓴지 이틀 만에 드렸기 때문에 사실은 드리고 나서 후회를 엄청 많이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 쓸 때 수정을 여러 번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 때 보여드린 게 초고였거든요. 드리고 나서 더 다듬고 드릴 걸 그랬다 싶고 너무 보여드린 게 후회가 되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제작비도 하나도 없는데 선배님한테 ‘2월 달에 무조건 촬영에 들어갈 거니까 선배님이랑 같이 하고 싶다, 제작비를 못 구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도 들고 찍을 텐데 그런 상황이 되어도 선배님이랑 하고 싶다라고 되게 무모한 부탁을 드렸었거든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시나리오 드린 지 이틀 만에 전화로 되게 재밌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먼저 캐스팅을 하고 거기에 맞는 서브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게 순서인데, 본의 아니게 유정먼저 캐스팅이 된 거죠. 선배님이 함께 하시기로 하면서 동기부여나 독려 같은 것들도 생기고, 마찬가지로 김형구 촬영감독님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내가 선배님하고 영화를 찍은 게 맞나싶을 정도로 저한테는 되게 막연한 희망 같은 일이어서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정성일: ‘유정역을 연기할 고현정 배우가 먼저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경유를 연기할 이진욱 배우는 그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텐데요.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상대가 고현정입니다할 때 약간 망연자실 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고현정은 그냥 배우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보였을 반응이 조금 궁금한데요.

 

이광국: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경유역할이 너무너무 어려웠었거든요. 다 쓰고 나서도 말 없는 이 답답한 친구를 누가 연기하는 게 좋을지 막막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고현정 선배님이 유정을 하기로 한 이후에는 남자배우의 폭 자체가 좁아지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는 건데, 시각적으로나 기운으로 눌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이진욱 배우를 신인 때 만났던 기억이 났어요. 너무 잘생겼는데 그냥 잘생긴 느낌이기보다는 눈빛이나 얼굴의 모양 같은 것들이 저에게 되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타이트하게 남은 상태에서 혹시 모르니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구라는 말씀도 드렸는데, 약간 갈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이진욱 씨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한편으로는 소모된 것이 있었는지 본인이 되게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약간 다른 방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상대역에 대한 당연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어떤 호기심 같은 것들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정성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를 멈춰 세운 것은 배우가 아닌 김형구 감독이었습니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살인의 추억><괴물>을 찍었고,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연인>도 촬영했고요. 또 조명에 이의행이란 이름이 있는데, 이의행 씨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계속 조명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스텝은 얼마든지 누구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고현정, 김형구, 이의행,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조감독 시절을 보냈던 감독의 이름을 함께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조합이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어떤 효과를 염두에 두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김형구 감독이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서도 김형구 촬영감독은 자기가 완전히 선택이 안 되면 그냥 찍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보다는 저게 어떻겠습니까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영화를 사진에서부터 시작한 촬영감독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광국: 촬영감독님도 제가 조감독 하면서 같이 작업을 했던 분이고요, 제 첫 영화 <로맨스 조> 만들 때 시나리오를 드렸었어요. 시나리오를 보시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으나 촬영 스케줄이 안 맞아서 작업을 같이 못하게 되어 아쉬웠는데, 제가 김형구 촬영감독님의 샷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물론 많은 분들이 좋아하지만 그 중에 저는 정적인 샷에서 되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봄날은 간다>도 촬영 하셨는데 그런 고요하면서도 핸들이 느껴지는 샷들을 제 영화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고, 카메라는 최대한 안 움직이고 여백이 있는데 어떤 기운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저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촬영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드리자 운이 좋게도 흔쾌히 작업을 승낙을 해주셨고, 감독님하고는 촬영 컨셉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카메라가 땅에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안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두 번째로 인물들에게 서서히 다가갔으면 좋겠다, 경유의 뒷모습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다가가서 결국엔 타이트한 바스트 샷으로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컨셉에 대한 말씀들을 많이 드렸습니다. 촬영감독님께서 본인이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시면 마찬가지로 감독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어렵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 최근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 헬드 촬영이 거의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 거의 완강하리만큼 카메라가 멈춰 서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도 거의 동선이 없습니다. 대부분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하죠. 이 멈춰 서있는 카메라와 함께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건 영화가 인물들로부터 갖고 있는 독특한 거리감입니다. 인물들이 아주 특별하게 상대가 반대편에 서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투 샷, 한 구도에 두 인물이 같이 있는 구도로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약점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상 인물의 표정을 거의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경유’나 유정이 대사를 할 때 어떤 표정을 보여주는 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유정은 제스처가 크지만 경유를 연기하는 이진욱 배우는 그 소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의 어떤 제스처도 보여주지 않거든요. 표정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마음은 더더욱 더 불투명하게 보이는 점을 각오하고서라도 완강하게 멈춰 선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가진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광국: ‘경유캐릭터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경유가 가진 그 답답함, 혹은 어떻게 보면 무능력하고 누구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며 카메라 역시 인물의 감정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철저히 경유의 곤경과 난처함을 지켜보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감독님이랑 인물을 어디서부터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었던 것 같고요. 카메라가 인물 캐릭터를 도와주지 않으면 이 인물이 좀 더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처음 이광국 감독이 설명하신 것처럼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겨울손님으로 바꾸셨는데, 간단하게 겨울에 찍느라고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전작 <꿈보다 해몽>에 이어서 다시 한 번 겨울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이 이광국 감독에게 이 영화에서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이었으면 아 그냥 배경이 여름으로 바뀌었겠구나가 아니라 완전히 모든 게 바뀌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많은 장면이 야외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계절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겨울은 고양이가 돌아다니기에 좋은 계절이 아닙니다. 단지 제목 이상으로 저는 이 영화에서 겨울이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제가 평소에 생활 패턴이기도 하고 습관이기도 한데, 길에 많이 있어요 평소에. 걸어 다니거나 어디 앉아서 사람들 구경한다거나 실내보다는 야외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20대 후반쯤, 조감독 하다가 작업이 끝나면 그 다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냥 지낼 때, 한 마디로 그냥 백수생활 하게 될 때, 집에서 제가 있지를 못하더라고요. 집에서는 밥 먹고 씻기만 하고 일단 무작정 나오는데 막상 정류장에 섰을 때 갈 데가 없더라고요. 어디를 가야 될 지도 모르겠고. 이게 그냥 하루면 모르겠는데 계속 몇 달, 일 년, 이렇게 반복이 되니까 어느 날에는 정류장에서 한 시간 서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그나마 봄, 여름, 가을에는 저를 치명적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았었는데, 겨울에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춥기도 하고 스스로 더 위축되고 더 쓸쓸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던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저한테 겨울에 대한 인상은 그런, 어딘가 목적지가 없이 거리에 던져진 인상이 제일 크고요. 이 영화의 제목을 겨울손님이라고 정한 이유가 단순했다고 말씀드렸고 그게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겨울에 대한 정서가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성일: 배경이 겨울이 되면서 이야기에서 뭘 더 강력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광국 감독에게 홍상수 감독은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에게 없는 것이 이광국 감독에게 있습니다. 그건 영화에서 다루는 빈곤이었습니다. 경유는 빈곤 때문에 한겨울에 거리를 떠돌아야 하고, 대리기사를 하면서 못 볼 꼴을 보게 됩니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만나는 손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제목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렇게 짓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빈곤에 대한 의식은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에도 있었지만 매우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는 빈곤의 감정, 또는 감각이 전면에 나서서 영화를 끌고 가는 힘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또 몇몇 대목에서는 이광국 감독이 그 빈곤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의 감정도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어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광국: (웃음) 이건 저 혼자 스스로 생각하는 건데요, 사회적인 각자의 사이클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 나이대가 갖는 기대치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서로에게 갖게 되는 이정도 나이 되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사회적인 기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제가 그 기준에 저를 대입해봤을 때 평범한 제 나이또래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사이클이 한 10년 정도는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빈곤이라는 것에 대해 되게 막연한 낭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막연한 낭만. ‘뭔가 하나를 붙잡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겠지’ 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 30대까지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40대가 되면서부터는 갑자기 , 이게 진짜 대책이 없는 거였구나, 내가 독립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게 경제인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누군가에게 끼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제가 빈곤하다고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웃음) 독립영화작업이 경제활동 면에 있어서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되게 큰 낙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40대 지나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그런 것들이 좀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계속 독립영화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그럼 이 시점에 내가 영화를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뭘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더라고요.

 

 

 


정성일: ‘경유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유정이 몇 번 물어보아도 이제는 안 쓴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유정경유가 쓴 소설 <나그네>를 자기가 고쳐서 발표해도 괜찮겠냐고 질문했을 때, 사실상 자신이 소설을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경유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 부분은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이광국: 이번에는 되게 미니멀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저한테 항상 딜레마이긴 한데요,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찍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제가 찍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고, 그러다 보니 '경유'가 글을 그만 둔 이유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그 이후에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현지'가 '경유'를 내보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현지'는 그냥 이별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 '경유'를 쫓아낸 다음 연락처를 바꿉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를 추론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유정보다 현지가 훨씬 미스테리하게 여겨집니다. 이 인물은 어떤 각도로 다가가도 잘 설명이 안 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미스테리한 인물을 놓고 영화를 시작했을 때 여기서 얻고자 한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현지경유한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고요, ‘경유의 비겁함들이 쌓이고 두려움들이 쌓여서 결국 상대들이 떠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아침에 경유가 용기를 냈다면 현지는 그렇게 가버리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래서 '현지'가 사라진 사건이 영화 전체에 그림자처럼, ‘경유밑에 깔려서 공기처럼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마지막에 경유가 전화를 한 번 걸어보는 것으로 첫 장면의 현지를 환기했습니다.

 

정성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 나오는 두 인물 경유유정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 속 이야기 이후에 아마 상태가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워 보이는 이 영화의 내면은 사실상 참담하고 참혹하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은 인물들이 더 나아지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유'는 점점 더 나쁜 손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맨 마지막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소녀까지 포착하게 됩니다. ‘유정은 새 삶을 살겠다는 듯이 소주를 다 갖다 버리지만 또 술에 손을 댑니다. 심지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작가로서의 경력도 끝납니다. 말하자면, 두 인물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 보여준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간으로 가려던 노력에 관한 태도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광국: 제가 스스로한테 어떤 절망감 같은 것들이 전보다 좀 크게 생긴 것 같고요, 제가 시나리오 쓰면서 경유유정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모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이루면서 사는 사람이 둘 다 불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계속 영화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지만 이어 나간다고 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섞이다 보니 이야기가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정성일: ‘유정은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창작의 재능이 고갈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유정은 처음에 경유를 만났을 때 자기가 결혼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뜻은 나한테 조금도 가까이 오지 마라는 방어선일 겁니다. 그런데 소설이 써지지 않자 유정경유에게 연락합니다. 영화는 모호합니다. 한편으로는 경유가 보고 싶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유가 남겨 놓은 소설 <나그네>에 관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은근히 들게 만듭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경유유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반대의 방식으로 창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재능이 있는 경유는 포기하고, 재능이 없는 유정은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광국: 결국 이 이야기는 저의 고민에서부터 나온 것 같은데,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야기를 쓰면서 제 안의 두려움하고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 동안은 도망치거나 스스로 무서워서 피하거나 모른척하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그럴듯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가도, 또 어떤 날은 다른 좋은 영화를 접하고는 나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고 싶으니까 지금까지 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과연 내가 이것을 업으로 평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매일매일 있거든요. 꿈을 포기한 사람과 꿈을 이룬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 결국에 동전의 양면처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물음 같은 게 이번 이야기에 담긴 것 같아요. 결국 제 딜레마들이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우리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에 관심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책상을 보면 정확하게 알게 되지 않습니까. '유정'의 집에 우리들의 시선을 유난히 끌었던 건 여러 권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한 권도 아니고 여러 권이 있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노인과 바다>는 상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경유가 유일하게 가방에 넣고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삼중당 문고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노인과 바다>가 무언가 '경유'와 '유정' 사이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저는 사실 이게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연결시켜주면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제가 뒤늦게 소설을 좋아하면서 번역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좋아하는 소설이 있으면 출판사별로 보면서 어떤 게 내가 읽기에 제일 좋은 번역인지 살피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재밌고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유라면 좋아하는 소설을 그렇게 출판사별로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유정집에 있는 <노인과 바다>들을 다 '경유'가 선물했다고 설정했습니다, 아까도 살짝 말씀드렸듯 저는 이 영화의 큰 맥락이 결국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치열하게 실패하고, 거기서 오는 쓸쓸함이 저에게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경유혹은 유정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과정들이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다고 생각하여 그 책을 선택했습니다. 삼중당 문고는중학생 때부터 갖고 다니는 작은 문고판 책이 있으면 좋겠어서요. 여전히 연결은 안 되시겠지만.(웃음)

 


관객: <노인과 바다>에서 나오는 노인이 청새치한테 뜯기고 꾸는 꿈이 아프리카 초원 속의 사자 꿈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호랑이잖아요. 호랑이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마치 꿈처럼 존재하는데, <노인과 바다> 속 사자와 꿈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만드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영화를 보면 사는 공간과 생활, 결혼에 대한 문제에 있어 감독님이 개인적으로도 뭔가 난감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역시도 궁금합니다.

 

이광국: <노인과 바다>의 사자 꿈 부분을 의식하고 책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책 안에서의 사자는 제가 느끼기에 희망적인 느낌인데 이 영화에서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비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 타이밍을 한번 놓쳤고요. 그 때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제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후로는 당연히 결혼을 못했고, 계속 결혼에 대한 공포감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결혼이 여전히 무섭고, ‘결혼 절대 안하고 혼자 살 거야보다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무서운 호랑이 같은 존재다라는 생각인 것 같고요.

 

 

정성일: 마지막 장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양수역. 그 역까지 가시려면 경의선 전철 타고 양수리 근처까지 가셔야 됩니다. ‘경유는 거기에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의 제목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입니다. 그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타납니다. 이 장면을 볼 때 갑자기 영화 중간의 유정이 떠올랐습니다. ‘유정이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글 호랑이가 우리에서 탈출하던 날을 쓰다가 계속 지울 때, 여러 명의 아이들이 호랑이 마스크를 쓰고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인상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그 둘이 동일하지만 그만큼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은 지나가는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며 어떤 예술적 감흥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재능이 없는 거죠. 마지막 장면에 양수리에서 '경유'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쓰다가 한 사내를 마주쳤을 때, 한 번도 쓰지 않은 와이드 앵글을 써서 갑자기 화면이 늘어나고 그것은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둘의 삶만큼이나 다른 엔딩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엔딩을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우리는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 ‘유정이 글을 쓸 때 지나가는 아이들이 가면을 쓴 것은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한 상태지만 도심의 사람들이 이를 무감각하게 느끼는 모습, 그 사실이 공포가 아니라 하나의 뉴스이자 놀이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모습입니다. ‘유정은 되게 절실하게 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에서 쓸 수 있는 ‘꺼를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그 타이밍에 지나갔기 때문에 호랑이에 관련된 뭔가를 써보게 되고, 자기 일상에서 뭔가 빨리 캐치해내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면서 그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하구요. 엔딩에서 나온 '사내'라고 말씀하신 그 인물은 소년이에요. 10살 정도의 키 작은. 엔딩은 경유가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장면으로 생각하고 썼는데, 어떻게 보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다 취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는 상징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환영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실제로 그 공간에 꼬마아이가 호랑이 가면을 쓰고 경유 앞에 우연히 서게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환영 쪽이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실제 그 공간에서 어린아이를 만났다기 보다는 하나의 해석의 여지로 작용했으면 더 좋겠고, 자기 안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경유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관객:경유라는 인물이 감독님 자신이 투영된 분신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보다가 궁금한 건데 유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삼청각에서 입고 있는 옷과 머플러, 가방, 신발 이 모든 것들이 출판사 블랙리스트 이야기하는 장면과 똑같거든요. 시나리오 쓰실 때 출판사 장면의 유정이 먼저 등장을 하고, 그 다음에 '경유'를 만나는 그런 상황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광국: 정확하게 보셨는데요, ‘유정이 편집자 먼저 만나는 씬이 시나리오 상에서는 앞부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화를 찍고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붙여보니까 흐름이 너무 뻔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유정이 갖고 있는 곤경은 뒤에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나리오랑 다르게 그 씬을 뒤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의상이 의도치 않게 같아진 건 저는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질문은그냥 뭐 외모 빼고는 제가 많이 투영 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들을 모두 봤는데요, 환상과 현실 두 가지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혼재 또는 발현으로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광국: 이유라기 보다는요, 예를 들어 잠을 자며 꿈을 꿨을 때 꿈 안에서는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가끔 꿈에서 깼을 때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싶을 정도로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마다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이라는 하는 물음이 항상 있었고, 만약에 내가 잠을 하루에 12시간 꼬박 잔다면 정확히 인생의 절반을 꿈속에서 보내는 건데,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혼자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미학적인 접근을 위해서 하는 생각이라기 보단 그냥 제가 평소 생활에서 하는 질문이고, 그 지점들이 이야기를 쓸 때 들어있었던 것 같고요.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그런 지점들이 줄어들기는 한 것 같아요.

 

 



정성일: 그러면 제가 마지막 질문을 하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공식상영으로는 마지막 GV 자리인데, 이 세 번째 영화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광국 감독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 같습니까?

 

이광국: 저한테는 가장 오래 꾸던 꿈같은 건데, 고현정 선배님하고 작업하고 싶은 제 소망이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격할 때 영점이라는 걸 잡잖아요, 자기 눈에 맞는. 제가 많은 영화를 찍은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제 스타일, 앞으로 평생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제가 붙잡고 가야 되는 영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격할 때도 딱 세발 쏘고 영점이 잡히면 좋다고 하거든요. 장편 영화를 세편 만들었으니까 다음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가야 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제 영화를 보고 구조적인 재미가 있다고들 하시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작업을 계속 재미있게 해나갈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있어요. 그래야지만 제작비가 있건 없건 제가 영화를 적극적으로 찍을 동력이 생길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에 다양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냥 움직여서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다음으로 빨리 또 넘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정성일: 이광국 감독님의 네 번째 영화를 원하면서, 여러분들을 이광국 감독의 다음 영화 GV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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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게 스쳐간 봄날의 꿈처럼  <춘몽>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0월 22일(토) 오후 7 상영 후

참석: 장률 감독

진행: 정성일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한바탕 꾼 봄날의 꿈. 그 꿈에서 깨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현실을 꾼 것일까? 영화 <춘몽>은 그 제목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일장춘몽’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아련하게 스쳐간 봄날의 꿈같다. 봄날의 꿈은 다소 적막하고 씁쓸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여운을 준다. 지난 22일,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춘몽>의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이하 정): 사전에 저는 장률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 <춘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질문을 드리자 감독님께서는 수색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수색역은 전철역의 이름이자 지역명으로 그 장소에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가기 불편한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 언제 수색역이라는 장소를 발견하였으며 무엇을 보았고 그때 어떤 기분을 느끼셨기에 수색역에서 출발하게 된 것인지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장률 감독(이하 장): 서울에 살게 된지 5년인데, 수색역 맞은편 DMC에서 처음부터 살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외국인 아파트 하나밖에 없는데,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몇 달 있다가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옵니다. 제가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주민인 것 같습니다. 그곳은 한국 동네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산책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동네 분위기가 나는 공간을 찾다보니 수색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 동네에서 터널을 넘어 15분 걸으면 수색에 갈 수 있는데, 그곳은 DMC와는 정반대로 시장도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그런 동네가 많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수색에 가면 조금 편안하고 안착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착된다는 것은 고향과도 비슷한 정서 아니겠습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 혹은 매일 그곳을 찾는데, 고향에 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넘어갈 때 보통 갑작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과도기가 있지만, 이곳은 터널하나만 지나면 완전 다릅니다. 꿈과 현실처럼 다른 느낌을 매번 받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주공간이 되지 않았나합니다. 


정: 저는 연변을 가보질 못해서 장률 감독님께서 사셨던 곳의 공간적인 느낌을 갖지는 못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격이라서 일부러 DMC 한국영상자료원부터  수색역까지 걸어봤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시간적인 점핑처럼 1970년대에 머물러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춘몽>은 20세기 남한과 21세기 남한이 공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절묘한 캐스팅, 즉 박정범, 양익준, 윤종빈 이 세 감독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연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 출연했다는 점으로 그 영화 안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배우로 대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감독들을 한데 모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무산일기>의 박정범, <똥파리>의 양익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은 자신들의 그 영화 속에서 걸어 나와 그 인물이 가졌던 성격을 고스란히 껴안고 <춘몽> 안으로 걸어온 다음 한 데 만났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범은 탈북자라는 성격 그대로, 익준은 양아치 역을 그대로 연기하고 있고 종빈은 이등병의 역할의 그대로 재현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장: 세 감독의 영화를 다 좋아합니다. 잘 찍었고 연기도 너무 잘했고. 그 캐릭터들이 설득력이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세 감독의 캐릭터들은 실제 감독들이 가진 질감과 비슷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안의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나와 지금의 삶을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텐데, 저 또한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세 편의 영화와 <춘몽>을 같이 보면 조금 재밌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언젠가는 이 세 편의 영화와 <춘몽>이 동시에 상영되는 날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세 분이 본래 감독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지점과 동시에 불편했던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장: 배우와 같이 찍을 때도 현장은 항상 서로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스크린에서는 <춘몽>이 한 가지 버전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친구들의 마음속으로는 네 개의 버전으로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장에서는 감독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도 많이 참아내고 최선을 다해서 완성된 것 같습니다. 실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질감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세 명을 다시 모이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춘몽>을 보고 있으면 이 세 감독들이 자신들의 영화에서 각자의 연기를 보여줬던 것처럼 종종 그 대목들은 시나리오의 대사들을 따라가고 있지만, 많은 순간에 즉흥 연기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즉흥연기를 어느 정도까지 허락해주셨고 이 세 사람의 배우 분들에게 어떤 원칙을 정하셨는지요. 


장: 저보다 연기에 대해서 더 잘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연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나왔으니까요.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자유를 많이 줬습니다. 원칙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오버는 하지 말라’.(웃음) 


정: 가장 힘들어했던 대목은 어느 부분이었나요? 


장: 모든 장면이 다 힘든 것 같습니다.(웃음) 제 마음에 들 때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노래방 장면은 어떻게 보면 영화 속에서 제일 좁은 공간에서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래를 3곡 해야 되고 춤을 춰야 되고 그 안에 예리와 종빈의 미묘한 감정 흐름도 있어야 하고 4명이 끌어안고 노래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연기해야겠다’라는 생각들이 다 달랐습니다. 그래서 선을 넘지 말라고 엄격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찍은 씬이 실제로 토론이 제일 적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해서 찍을 때 배우들이 조금 불편했을 것입니다. 


정: 장률 감독님의 영화 제목을 듣고 제가 느꼈던 점은 건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춘몽>은 의외라는 느낌마저도 들었습니다. 영화 연출을 하기 이전에 소설가이셨던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춘몽, 봄의 꿈은 사람마다 다른 뉘앙스로 다가올 터인데, 제목을 짓게 된 연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 앞의 제목들이 딱딱했나요? 늙어서 그런가.(웃음) ‘춘몽’이라 하면 정서상에서 소설보다는 시와 가깝지 않겠는가 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싫어하는 쪽입니다. 영화와 시는 항상 애인 같으면 좋겠고 영화와 소설은 사돈처럼 멀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소설은 스토리로 끌고 가기 때문에 그 힘이 커서 영화가 스토리에 묻혀버릴 수 있는데, 시는 리듬으로 가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는 춘몽을 봄날의 꿈이라고 그 글자처럼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야한 꿈이라고 이해합니다. ‘일장춘몽’이라 해야 한국의 춘몽과 같은 뜻이 됩니다. 중국에서 개봉하면 이상하게 영화가 잘 될 수도 있습니다.(웃음) 


정: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찍혀있습니다. 장률 감독님의 영화 중에서 전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던 것은 이 춘몽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리가 살았던 시간을 모두 흑백으로 진행하고 예리가 죽고 나자 영화가 색을 얻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조금 더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면 예리가 죽고 산 시간을 가운데다 놓고 영정사진을 기점으로 누군가가 죽은 시간을 회고하고 기억하는 흑백으로서의 시간, 영화 전체의 흑백을 예리가 죽었던 시간을 회고하는 시간으로 둔 다음 컬러를 예리가 죽고 난 다음 죽은 예리가 꾸는 꿈과 같은 느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컬러의 장면들은 색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정사진을 보여준 다음 화면은 갑자기 처음으로 초점이 나간 것처럼 흐릿하게 보입니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세 사람을 본 다음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는데, 누군가의 환상이거나 꿈처럼 보입니다. 주영이 고양이와 함께 집 앞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수색역 옆의 고압 철탑의 익준과 종빈을 보여주고 종범을 찾으러 가자며 끝납니다. 예리가 꾸는 꿈처럼 보이게 합니다. 현실과 꿈이라 나누기도, 시간으로 나누기도 애매합니다. 질감도 매우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적어도 이 영화의 전체를 흑백으로 찍은 의도, 어떤 감정을 전달하기를 원한 것인지 질문 드려보고자 합니다. 


장: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각자의 해석이 다 다릅니다. 색은 연출의 한 부분인데, 흑백으로 찍자고 처음부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수색역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칼라로 생각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공간의 질감이 흑백과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서상으로 흑백이 더 맞는다고 봅니다. 



정: 말하자면 수색역이라는 장소가 주는 기분이 흑백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예리를 중심으로 하여 세 남자와 주영이 주막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다시 이 영화를 생각하면 예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범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범이 인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익준과 종빈이 어딘가 가버린 정범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예리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딘가 가버린 정범으로 끝날 때에 그냥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북한에서 먼 길을 거쳐 남한에 도착한 사람이라 생각을 한다면 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범으로 시작해서 정범으로 끝나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이 세 사람이 어떻게 보면 공동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크게 말하면 예리까지도 포함해서요. 그런데 그 세 사람들은 모두 수색역이 고향이 아니지만, 정범을 제외한 두 명은 거리상 가깝습니다. 정범은 3·8선을 넘어온 제일 먼 관계입니다. 항상 영화 안에서 그 친구는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까. 이 두 사람(익준, 종빈)은 항상 이 친구(정범)를 찾고. 그런 점에서 제일 먼 거리의 사람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리는 항상 이 세 사람을 같이 찾지 않습니까. 그런 관계에서 편집이 그렇게 나왔고 제 스스로도 조금 슬프지만, 지리적으로 멀고 혼자 행동하기에 더 찾아야하고 더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 영화를 보면 예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머니가 어떤 병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어떤 연유로 남한에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빈은 익준이나 종범보다도 더 외곽에 있는 듯한 느낌이고, 덜 설명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종빈에 대해서 설명을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설정을 할 때 부모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굳이 그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대사 안에 사람을 넣었습니다. 실제 윤종빈 배우의 아버지가 경찰이고 일찍 돌아가셨고요. 그래서 그 설정으로 가는 것이 어떤가했고 그 설정 안에서 어리바리한 종빈의 캐릭터가 자기의 출신을 그렇게 진실하게 이야기하겠는가 해서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정: 영화 속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주영일 것입니다. 백두산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종일관 축구공을 차면서 길을 돌아다니고 예리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또한 그녀는 시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컬러 장면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주영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매우 괴리합니다. 오토바이를 산 위까지 끌고 올라간 다음 알 수 없는 미소를 남기고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정보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하게 남는 주영을 통해서 예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 무슨 영화를 그렇게 자세히 봅니까.(웃음) 실제로 삶에서 주영과 같은 사람들이 꽤 있고 알아보려고 해도 계속 궁금해집니다. 그런 주영이 춘몽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는 간단합니다. 세 명의 친구만 있으면 예리가 너무 막막할 테니 주영과 같은 시인 친구가 등장하면 어떻겠는가 생각했습니다. 보통 시인이라 하면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은 독특한 행동이나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대 전후의 여학생이 축구를 하고 다니는 것도 실생활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주영이라는 배우가 축구를 아주 잘 하기도 하고 오토바이도 그 친구 오토바이입니다. 현장에 올 때도 그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동성애가 있는데, 사람은 똑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시인을 보는 것처럼 저쪽인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이 친구의 등장으로 예리란 캐릭터가 조금 더 풍부해질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예리에게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물어보니 이왕이면 주영을 선택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정: 예리 주변에 계속 세 남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세 남자의 애인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고 그들을 보살핀다는 생각이 큽니다. 겉보기에는 예리가 마음에 들어 포장마차에 계속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주막의 이름이 고향인 것을 감안한다면 고향처럼 계속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남자에게 예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장: 예리는 예리입니다.(웃음) 어떤 정서냐고 물어보면 동네의 정서이자 점점 없어지는 기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 도와주는 정서가 점점 이 사회에서 없어지는 것 같은데, 수색에는 아직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정서가 공간의 지배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친구들은 고향이 없는 친구들로 고향 주막에 항상 찾아오지 않습니까. 예리도 연기할 때 어머니 정서로 연기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률 감독님께서 중국에서 만든 영화와 남한에서 만든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중국에서 만든 영화의 카메라는 모두 요지부동인 것처럼 서있는 반면에 남한에 와서 찍은 영화는 카메라가 시종일관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주>(2014)에서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았는데, <춘몽>에서는 목욕탕 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면은 핸드헬드 방식의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중국에서의 멈춰선 카메라가 경직된 느낌과 안정된 느낌을 동시에 들게 한다면 남한의 핸드헬드 방식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기댈 때가 없어서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은 당연히 그 공간과 그 인물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 감독의 삶이 변한 것과 같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었고요. 카메라가 고정해 있으면 엄숙하고 고집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들고 찍으면 그 인물과 공간에 따라가고 녹아들어야 합니다. 교만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중국에서 자라왔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중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은 이 사회, 이 나라, 이 땅의 정서를 찾는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조금 더 다가가고 불안하면 멀리 가는 것처럼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정서가 카메라와 같았습니다. 5년만 시간을 더 준다면 한번 고정해서 찍어보겠습니다. 


정: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많은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웃음을 짓게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문득 돌아서면 이 영화 전체가 예리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춘몽>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여자의 일장춘몽과도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죽음을 많이 다뤄왔던 장률 감독님께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장: 그렇게 말씀하니 저도 왜 그렇게 많이 죽음을 생각했는지... 오래 살고 싶은 쪽입니다.(웃음) 살고 싶으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떤 나이가 되면 죽음이 피부로 다가오게 됩니다. 한명 한명 다 떠나지 않습니까. 감정이 깊어지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죽음은 일상입니다. 그 일상을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예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는 것을 앞에서 많이 심어줬는데, 전봇대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계속 살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차피 가는 방향은 죽음이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지 않습니까. 끈질기게 생명의 끈을 쥐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죽음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예리의 대사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냥 이렇게 삽시다, 하하. 


관객: 중간에 말을 못하시던 아버지가 종빈하고 예리에게 말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장: 환청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거나 말을 못하고 있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정: 감독님께서 생각이 그러하다면 제 생각을 덧붙여보겠습니다. 환청은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자기가 하는 대답입니다. 그래서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종빈이 한편으로 ‘내가 예리에게 어울릴 리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니다.



관객: 저는 의상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세 남자의 의상이 바뀌지 않고 동일한데, 다른 날에 찍은 씬인데도 이 세 남자만큼은 비슷한 의상으로 입혀도 괜찮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 조금씩 변화는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처럼 의상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는데, 왜 그런가하면 어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의상을 많이 바꾸지 않고 거의 며칠씩 입기 때문입니다. 


정: 역시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저는 그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옷을 바꿔 입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것이지요. 풍요로움을 갖지 못해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관객: 주영이 예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동선이 너무 아름다워서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으로 보이는 컷이 다음에 바로 장난감 총 컷으로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무언가 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상으로는 어떻게 되어있었는지 실제로 그 사이에 찍은 장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장: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 편집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영의 사랑고백은 아름다운 감정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현실 공간 안에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 안에서는 현실과 똑같은 또 하나가 더 발생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울에서 찍으면 현실에서 찍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정서상으로 더 다가옵니다. 거울은 현실을 비춰주는 것이고 그 안에서는 우리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옵니다. 그리고 거울에서 거울로 컷을 넘긴 것은 아름다운 리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도 있는데, 이것을 대조하면서 거울이 우리 안의 일상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경주는 어떤 느낌인지 수색역은 어떤 느낌인지 가봤는데, 영화와 잘 매치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외적인 질문인데, 다음 영화는 어느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싶으신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장: 실제 계획은 크게 없습니다. 날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사람이라.(웃음) 다만 조건이 된다면 끝까지 논의하다가 제 감정이 든 공간을 이야기 안에다 넣습니다. 공간이 제게는 너무 중요하고 어떤 배우와 그 공간의 질감이 맞다하면 그때 찾지 않겠는가 합니다. 

 

관객: 감독의 손을 떠난 다음에는 관객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어떻게 보면 영화가 블랙 코미디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님께서는 의도하지 않으셨으나 합니다. 


장: 영화는 감독의 취향으로 만들게 됩니다.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실생활에서 웃는 사람이 있고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 맞출 순 없고 감독의 정서로 성실하게 앞으로 가다보면 어떤 관객은 받아들이고 어떤 관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모든 관객이 똑같은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코미디 쪽으로 말씀해주니 기쁘고요. 이번 영화는 재밌게 만들자는 생각보다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말과 언행을 따라 그 공간에서 품어 나오는 정서들인 것 같습니다. 거칠게 큰 소리로 웃고 울고 하는 것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동네의 적막과 슬픔이 그 공간에 흐르는 것 같습니다. 웃음과 거친 것과 적막과 슬픔이 섞여 있으니 그것이 제게 매력이 있었습니다. 


관객: 배우의 이름을 배역의 이름으로 끌고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 <춘몽>은 제가 찍은 영화들 중에서도 인물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에는 이름을 만드는데, 제가 원래 이름을 잘 못 짓습니다. 그래서 저 편하자고 본명으로 할 수 있는지 배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 친구들 입장에서 자기 이름으로 부르면 감정이 더 진실합니다. 배우 자신과 배우의 역할이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과정을 조금 수월한 방법으로 한 것입니다. 


정: 주영은 예리를 찾아와서 갑자기 ‘시에요, 언니가.’ 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두 가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하나는 예리라는 인물에 대해서 장률 감독님께서 가져온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리가 이 영화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 같은 ‘인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시 같은 인물, 시로서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연변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약간 과장한다면 연변에서 남한으로 온 중년의 남자인 장률 감독님께서 남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시처럼 읽혔습니다. 시는 가냘프지만, 종종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죠. 혹은 감독님께서 오늘도 몇 번 시는 리듬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담백하고 직접적으로 즉 연변사람으로서 자신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가장 투명하게 투영된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 <춘몽>이라는 영화는 감독님 자신에게 어떤 영화였습니까?


장: 한글로 좋아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립다’입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앞의 방향을 보면서 다가가지만, ‘그립다’ 이 단어가 너무 와 닿았습니다. 수색역도 지금은 절반정도 허물어져 가고 있는데, 그런 동네들은 몇 년 지나면 없어집니다. 장소 헌팅을 할 때 허물어지는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서가 더 있는 것이 어떻겠는 가해서 카메라를 절대 허물어지는 곳으로 대지 말자고 정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 창작이라는 것은 다 수단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윤동주 시인 시 중에 제일 좋아하는 한 구절은 ‘서시’의 ‘별들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입니다. 별과 죽어가는, 사라지는 것. 별의 감정은 사라지는데, 우리의 시선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더 두고 싶었습니다. 


정: 이 영화를 다시금 느껴보는 것은 물론 한 번 더 보는 것이겠지만, 오기 전에 수색역을 한 번 더 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귀한 말씀을 들려주신 장률 감독님께 박수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디토크를 마치면서 장률 감독의 <춘몽>이 우리내의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수식이나 복잡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유유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처럼 오늘의 한 조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사라져가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것을 바라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기억들로 이 ‘춘몽’을 채워나갈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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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목) 10:30 개봉 | 20:00

10월 21일(금) 13:00

10월 22일(토) 19:00 인디토크

10월 23일(일) 15:10

10월 24일(월) 12:10 | 18:00

10월 25일(화) 11:00 | 15:10

10월 26일(수) 12:40

10월 27일(목) 11:00

10월 28일(금) 12:40

10월 29일(토) 17:20

10월 31일(월) 11:00

11월 1일(화) 15:00

11월 3일(목) 20:00

11월 6일(일) 10:20

11월 7일(월) 17:10

11월 9일(수) 12:20

11월 10일(목) 10:40

11월 13일(일) 19:30

11월 14일(월) 15:00

11월 15일(화) 17:20

11월 16일(수) 11:00

11월 20일(일) 20:00

11월 22일(화) 10:20 종영






 예매하기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토크(GV) 




<춘몽> 인디토크(GV)

● 일시: 2016년 10월 22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 참석: 장률 감독

● 진행: 정성일 평론가






 INFORMATION 


제목 : 춘몽 春夢

각본/감독 : 장률

출연 :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이준동, 이주영

특별출연 : 신민아, 유연석, 김의성, 김태훈, 조달환, 강산에

제공: ㈜스톰픽쳐스코리아

제작 : ㈜률필름

공동제공: ㈜프레인글로벌 

배급: ㈜프레인글로벌, ㈜스톰픽쳐스코리아 

개봉 : 2016년 10월 13일





 SYNOPSIS 


 “바보 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물간 건달 익준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

어리버리한 집주인 아들, 어설픈 금수저 종빈

그리고 이들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리가 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들만의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예리의 고향주막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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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가 비평을 만났을 때 
-<카페 느와르>를 통해 살펴본 독립영화의 현재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하면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영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에 대한 사랑을 궁극적으로 실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소영(김정) 등이 트뤼포가 말한 세 번째 방법을 실천하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증명해보였다.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2009)는 그 사랑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상업적 목적을 떠나 감독의 세계관이 온전히 담긴 이 영화는 여느 독립영화들과 확연히 다르다. 비평가이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들의 영화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또 같은 독립영화의 범주에서 생각할 때, 이들의 영화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는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고 싶다.



<카페 느와르>는 일반 관객들에게 굉장히 낯선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설을 읽는 듯한 인물들의 대사는 구어체 대사에 익숙한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유난히 호흡이 긴 쇼트들은 빠른 리듬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을 힘들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중간에 느닷없이 영화 제목과 크레딧이 다시 등장하면서 2부가 시작되고,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이 불규칙적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또 의도적으로 180도 상상선을 어기기도 하고, 사실적인 극의 흐름에서 벗어난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열거한 요소들은 영화의 전형적인 관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실험이자 시도이면서, 동시에 정성일 감독이 영화에 대해서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정성일 감독이 21세기 영화의 새로운 화법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구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데 반해,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은 오히려 관습적인 영화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즉, 여러 독립영화들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영화의 화법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이러한 경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매년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제작되고, 그 중에서 ‘선택된’ 작품들만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그리고 주요 부문에서 수상을 한 극소수의 작품들만이 영화관에서 상영될 기회를 가진다. 아쉽게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는 영화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화법으로 전개되는 영화들이다. 영화관에 온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독립영화는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관객이 감상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능 있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선택하는 것은 영화의 새로운 화법이나 실험보다는 이미 익숙한 화법이나 장르의 컨벤션이다.

 

비평가 정성일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쇼트 단위로 낱낱이 파헤친다. 그는 영화의 가장 작은 단위인 ‘쇼트’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카페 느와르>에서는 정성일 감독의 어떤 결단이 담겨있는 쇼트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 영수가 다른 인물에게 손을 내미는 동작에서 영수의 손을 갑자기 클로즈업으로 보여줄 때, 또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에서 종로3가에 이르는 거리를 단 하나의 쇼트로 보여줄 때,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굳이 두 부분으로 쪼개지 않고 투샷으로 한 번에 찍을 때 그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영화라는 세상을 창조하는 영화감독의 결단이다. 이처럼 <카페 느와르>의 모든 쇼트들은 각자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영화 속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정성일 감독이 서울이라는 공간을 주로 광각렌즈를 통해 널찍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를 구성하는 쇼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독립영화 감독들은 쇼트의 구성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때 정성일 감독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묻는다. “이 쇼트는 왜 그렇게 찍었습니까?”, “이 쇼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생각이나 태도는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쇼트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그 어떤 것을 취사선택하여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바로 쇼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세심하게 보는 관객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개별적인 쇼트이다.    


수많은 독립영화들은 필연적으로 배급과 상영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카페 느와르> 역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었고,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각종 영화제를 제외하면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만큼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일반적으로 독립영화를 외면한다. 기존의 독립영화들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평론가들의 영화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비평만큼이나 흥미로운 영화평론가 김소영(김정)의 장편영화 데뷔작 <경>(2009),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는 안타깝게도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했다. 아무리 비평이 훌륭하더라도, 또 영화를 만듦으로써 영화에 대한 사랑을 궁극적으로 실현하더라도 관객과의 성공적인 만남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이미 휘청거리는 배에 올라탄 ‘몰락한’ 비평과 ‘저예산’ 독립영화는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까? 만약 비평과 독립영화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독립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열정 가득한 글이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도 증가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립영화 감독들은 비평가들의 날선 비평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다. 이와 반대의 위치에서, 비평은 새로운 독립영화들의 등장으로 인해 자극을 받고 더 긴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촉각이 곤두 선 비평가들이 쓴 새로운 감각의 글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비평의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립영화와 비평의 진지한 만남은 한국영화계에 활기를 더할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카페 느와르>가 다양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또 <경>이 여러 가지 담론 속에서 이야기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다. 언젠가 독립영화와 비평이 상생하는 미래를 꿈꾸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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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권현진 2015.10.08 20:5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학교에서 마침 영화이론에 대해 배우고 있어서 유익한 내용이 많네요^_^

한여름의 시간에 대한 생경한 응시<한여름의 판타지아>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6월 13일(토) 오후 2시 30분

참석: 장건재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무더워진 유월 중순의 날씨와도 걸맞게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개봉했다. 영화는 실제로 한여름에 영화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간 감독과 일본에서 만난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시간에 대한 응시가 어떤 방식으로 촬영되었는지 6월 13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들어볼 수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 오늘 이 자리가 뜻 깊습니다.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면 자신의 힘으로 커야 합니다. 장건재 감독은 성공적으로 세 번째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까지 만들었네요. 이 영화의 GV 제안이 왔을 때 몹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아카데미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다가 이제 비평가와 감독으로 만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첫인상은 이전 두 편의 영화가 갖는 호의와는 달리 장건재 감독의 영화 세계가 갑자기 어떤 다른 단계로 점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힘, 도약 그리고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여러 가지 방법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만들었는데 영화를 모두 찍고 나서 ‘나라’라는 곳에 대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장건재 감독(이하 장): 나라현 고조시에서 찍었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느낌이라기보다 고조시에 대한 느낌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한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실내에 계신 주인공분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 계시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정: 이 영화는 시작할 때보면 아시겠지만 나라영화제에서 기획을 했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도 참여했죠. 얼마 전에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고 지난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앙>(2015)이라는 작품이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수자쿠>(1997)라는 영화로 최연소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기도 했죠. 이런 화려한 수상경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영화계에서는 성미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장건재 감독이 공동 프로듀서로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훌륭하게 작업을 끝냈죠. 작업을 하는 과정 중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실제로 만났던 가와세 나오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장: 처음 만난 건 제가 <잠 못 드는 밤>(2012)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의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였어요. 그 때는 영화제 호스트로 다른 감독들이랑 영화제를 운영하는 운영자의 모습이었어요. 굉장히 열심히 일하신다는 느낌이었죠. 규모가 조그맣고 스태프들도 얼마 없기 때문에 일당백을 해야 하는 영화제였고 그 때 그런 모습으로 멀찍이 봤어요. 영화제 폐막식 날 자원 활동가 분들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무대로 올리는 세레모니가 있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지역에는 극장이 없기 때문에 자원 활동가가 다 동네 분들이시거든요. 어린 학생부터 연세 드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 이름을 다 외우신 것 같았어요. ‘아, 여기는 서로 다 아는 가족들이구나.’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 후 프로젝트 제안 받고 헌팅 하려고 <한여름의 판타지아> 1부의 감독처럼 저희도 갔었어요. 비 내리는 날 아침이었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 집 앞에서 일본 제작 스태프와 봉고차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때 되게 떨리더라고요. 만나서 영화를 찍는구나, 내가. (웃음) 보조석에 타셨고 카메라를 들고 저를 찍으면서 인사하셨어요. 그걸 어디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부터 저를 틈틈이 찍으시더라고요. 감독 가와세 나오미, 이것이 제가 받은 첫 번째 인상이었어요.


정: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장: <따뜻한 포옹>(1992)과 <사라소주>(2003)입니다.


정: <따뜻한 포옹>은 가와세 나오미가 <수자쿠>로 칸에서 상을 받기 전에 찍은 다큐멘터리죠.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어린 나이에 떠났던 아버지를 찾는 다큐멘터리이고, 이 영화를 통해 주목 받으며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사라소주>는 저도 가와세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여러분은 낯선 이름을 보게 될 텐데, ‘요네자와 코하루’에게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있죠. 그 분은 누구인가요?


장: 1부에 시골로 들어가서 만나는 할머니 있잖아요. 그 분 성함이에요. 아흔이 다되어 거동이 불편하고 보청기를 꼈는데도 말을 잘 못 들으세요. 앉아서 얘기를 하시다 보면 금세 힘들어하시고. 저희 스태프들이 그 할머니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인터뷰 할 때도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 그때 시골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는데 후반작업 중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며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정: 1부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 역시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었어요. 다른 인터뷰 장면과 달리 이상할 정도로, 딱히 특별한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1부와 2부, 둘로 구성되어있고 1부는 어떤 점에서 거의 기복 없이 흘러가죠. 그래서 어느 지점까지 오면 많은 관객들이 약간 방심한 상태로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거의 절반에 이르렀을 때 불꽃놀이가 벌어지면서 2부로 넘어가고 컬러가 시작됩니다. 1부에서의 흩어진 정보들이 2부에서 조립되고, 우리는 보고 들은 기억을 더듬으며 2부를 보면서 1부도 재조립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우 독특한 매력일 것입니다. 1부는 흑백으로, 2부는 컬러로 진행했는데 1부는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의 이야기고 2부는 그 감독의 영화입니다. 둘을 나눈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영화 속의 현실인 1부를 컬러로, 2부를 흑백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끝내 버리기 힘들었습니다. 효과가 덜했다는 게 아니라 둘이 바뀔 수도 있을 텐데 장건재 감독이 앞을 흑백, 뒤를 컬러로 했을 때는 영화에 대한 미학적 결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장: 1부를 흑백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제가 고조시를 헌팅 하러 갔을 때 공간에 대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거든요. 그런 감정과 더불어 형식적으로 그 공간에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해야 했고 그 공간을 관객들에게 감독 ‘태훈’을 매개로 소개해야 했어요.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이었으면 했고 그게 효과적이려면 흑백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촬영감독님께서는 컬러로 찍어서 흑백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하셨지만 카메라 세팅값을 흑백으로 했고 촬영 전에 테스트도 거쳤어요. 2부 같은 경우는 컬러로 찍자는 설정만 있었고 왜 컬러인지는 찍어나가면서 합리화를 했다고 할까요. 흑백과 컬러로 구분했다기 보다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영화를 찍을 계획이 있었어요. 당시 찍을 때는 컬러도 색채감이 돋보이는 컬러였으면 좋겠다, 1부랑 대비가 많이 되게, 라는 생각이었어요. 사람이 없고 죽어있는 공간을 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니는 이야기니까 공간을 건드리면 컬러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런 느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아마도 이 영화는 보는 관객에게 마음의 여유를 요구하는 영화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특별함 중 하나는 쇼트가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인물이 들어오기 전에 화면이 시작하고 있고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간 다음에도 여전히 카메라가 멈춰 서서 그 장소를 음미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롱테이크 영화들의 특징은 통상적으로 사람을 음미하는 것인데, 이 영화는 한편으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음미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편집에서 앞뒤를 잘라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남겨놓고 그것을 느껴달라는 요구인 셈인데요. 맨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 보니 편집도 감독님이 직접 하셨더라고요. 이 여유가 이 영화의 미학의 핵심 중 하나일 것이고 이것을 발견한 사람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이 영화에서 느끼는 느낌이 굉장히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 편집을 제가 하긴 했지만 같이 했던 이현정 기사와 공동 작업을 한 셈이에요. 그리고 촬영감독님과 일본 조감독님이 상업영화, 광고 등을 하던 분들인데, 1부를 찍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한 컷의 길이가 너무 길다’ 라고 (그분들이) 느끼는 것을 제가 느꼈거든요. “현장에서 배우와 너무 얘기를 많이 한다, 일본 영화의 현장에서는 감독이 배우와 얘기하는 것은 NG가 났을 때 딱 한가지의 경우이다.” 라고 하셨어요. 영화의 호흡과 현장의 호흡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눈치 없이 그렇게 찍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2회차 끝나고 스태프들을 다 모아놓고 “(이 촬영 방식이) 한국 감독의 스타일도 아니고 제 스타일도 아니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일본 말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2배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통역을 거쳐야 하고요. 그때 스태프들이 이해해주었고 현장의 고유한 리듬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1부가 끝나고 2부 시작할 때쯤은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누르고 끄는 시간에 상당히 여유가 생겼어요. 일단 그런 환경이 있었고,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촬영할 때 테이크 길이가 길었어요. 보시는 것보다 훨씬 더 앞뒤가 더 긴 장면인데, 인물이 빠지고 나서도 공간을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리듬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낸 쇼트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감독 ‘태훈’은 어떤 감독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감독이 찍은 이야기가 2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이 사람이 어떤 이유로 여기 왔고,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고, 이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지를요. 통역사와 감독 사이의 감정의 교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이 영화가 과도하게 무심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영화 스스로 ’태훈’에게 거리를 끝까지 유지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장: 1부의 감독 ‘태훈’은 ‘저’라고 볼 수 있어요. 편집하면서 느낀 게 임형국 배우에게 죄송하긴 한데 ‘내가 아무 생각이 없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웃음) 말하신 것처럼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면이 ‘미정’하고 술을 먹으면서 본인이 오늘 느꼈던 것들을 얘기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은 대사가 특별히 없었고 배우들이 만들어낸 장면이에요. “그날 실제로 느꼈던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보고, 끝에 이와세 료(유스케 역)가 잘생겼다는 얘기만 하면 돼.” 라고 배우들에게 조언했어요. (웃음) 몇 가지 키워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안 나고요.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부분이 많아요. 저도 뭘 찍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 일본 관객들이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기를 기대하십니까?


장: 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일본 스태프들이 가장 가까운 저의 첫 관객인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이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1부가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일반적인 일본 관객보다는 고조 분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죠.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고조시 회관에서 상영을 한 적이 있어요. 초대해주셨는데 저는 못 갔어요. 200석 정도 되는 규모의 극장이었고, 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데 그 땐 극장이 꽉 찰 정도로 많이 오셨대요. 자기네 동네에서 영화를 찍은 걸 좋아했고 인터뷰 나온 분들이 다 동네 주민 분들이니까 그런 것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주머니들은 2부를 되게 좋아하셨다고 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이 전해주셨는데, 키스신 나올 때 ‘이야-’하는 반응이었다고. (웃음) 저는 너무 감사하고요, 이 영화가 외부인이 와서 찍은 영화처럼 보이진 않았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 2부가 시작됐을 때 인상적인 것은 두 사람을 소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혜정’을 소개할 때 바로 소개하지 않고 카메라가 360도를 빙 돌고 나서야 비로소 ‘혜정’을 보여주고, ‘유스케’를 보여줄 때는 ‘혜정’이 서있는데 화면 바깥에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언제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라고 기다릴 정도로 보는 쪽이 기대하게 만들었죠. 그러고 나서 1부의 ‘유스케’가 들어오기에 ‘음, 그렇군.’ 했죠. 두 사람을 소개하는 방식에 대해, 연출자로서 어떤 소개의 전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 여행지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진부함을 피해갈 수 없는 설정이고, 두 사람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할 수 있을까가 그 장면을 찍을 때 저에게 주어진 미션이었어요. 찍을 때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일까 확신이 없었어요. 거기서 둘이 만나자마자 ‘혜정’은 자기 계획이 틀어지는 거거든요. 남자하고 데이트 같은 걸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웃음) 이게 가능한가 스태프들한테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관객: 1부는 다큐멘터리 적인 느낌이 강하고 2부는 영화 같은 느낌인데 두 개의 연기를 주문할 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2부를 보면서 남자 배우가 1부와 같은 사람인지 몰랐어요. 느낌이 되게 달라요. 두 개를 찍을 때 텀을 두고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장: 배우들하고 인물의 감정을 만들어 낼 때 특별히 다르게 한 점은 없었어요. 저는 배우가 연기할 때 당시에 무슨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가 궁금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전 그렇게 봤는데 배우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다시 찍는 편이에요. 1부 촬영 끝나고 이와세 료 배우에게 ‘유스케’는 감 농장에서 일하는 청년이 될 것 같으니 준비해 달라 했고, 이와세는 3일 동안 뙤약볕에서 몸을 그을리고 수염을 길렀어요. 그래서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었어요. 


정: 마무리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제 방식의 이야기로 끝내겠습니다. 둘은 키스를 하고 헤어진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의 교차편집이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혜정’은 혼자 밥을 먹고 ‘유스케’는 혼자 축제를 갑니다. ‘혜정’은 혼자 목욕을 하고 ‘유스케’는 혼자 거기서 뭔가 사먹고 있습니다. ‘혜정’은 바깥 축제를 보고 있고 ‘유스케’는 혼자 앉아있습니다. 불꽃이 터지고 영화는 끝납니다. 문득 이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섹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이 화면에선 헤어져있으나 편집의 방식은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두 장면을 붙여놨습니다. 이때의 퍼즐에서 불꽃을 어느 쪽으로 해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일 것입니다. 그렇게 이 장면은 마지막을 열어놨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여러분이 느낄 판타지아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드엔딩으로 보이겠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할 일은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것입니다. (웃음) 




일본 고조시라는 이국적인 배경, 낯선 시골 도시라는 생경한 풍경에 대한 설정을 통해 한여름이라는 시간을 더욱 환상처럼 담아낸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한여름을 통과하면서 이 영화를 통해 익숙한 시간을 새롭게 통과해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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